< 예기치 못한 결전(6) >
“......”
유세현의 입이 한순간 꾹 닫혔다.
단 한 명의 승리자.
놈의 말은 과연 진실일까 거짓일까?
만약 이강호가 정확히 대답해 주었더라면 유세현은 두말할 것 없이 당연히 거짓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허나, 지금 다시 떠올려보니 분명 그때의 이강호는 100% 확신하지 않았었다.
세계가 끝난다는 것만 알고 있었고. 나머지는 반쯤 추측성 말이었던 것.
그 당시에는 이강호가 수많은 지식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넘어갔었는데.
‘기억 결손이었던 건가?’
아무쪼록 놈의 말이 사실이라면, 알베타스는 엄청난 기댓값을 지니고 있는 종족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도 과거 알베타스는 판도라 내부에서도 꽤나 강세를 이어나갔다고 들은 바가 있었다.
여러 종족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는 특수한 힘과 그 압도적인 물량은 여타종족에 비할 바가 못됐기 때문.
유세현이 답이 없자 알베타스가 말했다.
“불가능하다. 인간은 그런 종족이니까. 허나, 나는 가능하지. 이 싸움에서 승리하는 이는 내가 될 것이다.”
확신이 담겨있는 어조였다.
그래, 확실히 그런 룰이라면 인간은 하나로 합쳐질 수 없을 것이다.
심리상 타인에게 운명을 맞기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까.
분명 파편을 두고 내분이 일어나게 되고, 갈라지게 되겠지.
허나.
‘그런 것도 어느 정도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과거 안주한 인간진형은 살아남기에도 급급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외부가 아닌 내부에 들어가서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드래곤, 천족, 마족. 그리고 먼저 진입한 무수히 많은 종족들.
이번에는 아마도 이야기가 조금 다를 테지만, 그래도 평범한 사람들은 협력해 싸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으리라.
그러니 전투 자체는 상관없다.
문제가 있다면...
강제적으로 싸우게 만들 명분이 사라지는 것.
여기까지 생각 했을 때 알베타스가 유세현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리고는 다분하게 최후의 통첩을 날렸다.
“이번이 내가 하는 마지막 권유다. 여태껏 내가 이렇게까지 많을 권유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자, 나를 따르겠느냐? 따른다면 훗날 내가 승리했을 시 인간을 살려주고, 지배할 수 있는 권한을 주겠다.
끝에 이어진 말은 유세현을 회유하기 위해 일부러 덧붙인 것이 틀림없었다.
모든 인간 위에 군림한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한번쯤을 꿈꿔봤을 로망.
때문에 유세현이 단순히 탐욕만이 가득한 인간이었다면 제안을 수락하고 따랐을 수도 있는 노릇이었다.
확률이 낮은 쪽에 붙는 것보다는 높은 쪽에 붙는 게 훨씬 좋으니까.
게다가 알비론과 스카이레블 등 알베타스의 병사들은 목숨을 아끼지 않는다.
불리해지면 도주할지도 모르는 인간보다도 훨씬 든든한 것!
그러나.
유세현은 인간위에 군림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리고 인간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오직 자신이 인정한 사람들.
그들이 나아가기에, 유세현은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존재하기에 유세현은 살아가고 있는 것이었다.
그들이 없는 세계는 살아있을 가치가 없다
유세현이 묵묵히 알베타스를 응시했다.
정말 오래 이야기 한 것 같은데.
그리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지 자신의 마족화나 놈의 불그스름한 피부는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다.
“후...”
길게 터져 나오는 한숨.
일단은 거짓으로 따르겠다고 말할 수도 있었다. 허나, 놈의 특성을 완벽하게 모르는 이상 그것은 도박.
언약만으로 결박이 되는 것이라면 파멸에까지 치닫을 수 있는 노릇이다.
유세현이 자세를 다잡자 알베타스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그게 그대의 선택인가...”
“......”
“정말, 유감이군.”
쉬익-
콰과광!
알베타스가 허공에 팔을 휘젓기 무섭게 수십 개의 발톱이 유세현의 눈앞으로 쏟아졌다.
“크으!”
유세현은 항전했다.
부패의 어둠을 날리고, 천마반탄기를 통해 적의 스킬을 쳐내고, 검법을 운용하고.
그는 한 수 한 수에 모든 것을 걸었다.
콰광!
콰과광!
곳곳에 생겨나는 크레이터.
그들의 발길이 닿은 장소는 무엇 하나 제대로 남지 않았다.
이것이 판도라 외부 최강자들의 전투.
마침내 알베타스의 손톱이 유세현의 어깨에 닿았다. 그건 몸을 단번에 반토막 낼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니고 있는 일격이었다.
허나.
치지직-
제 역할을 다해주는 전쟁갑주.
곧바로 라 아닐더가 목을 노려오자 알베타스는 잠시 몸을 뒤로 무를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지긋이 혀를 찼다.
“쯧.”
이토록 단단한 경도를 지니고 있다니.
‘스킬을 담을 걸 그랬군.’
알베타스의 공격이 다시 한 번 더 유세현을 향해 쏟아졌다.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채재재쟁!
심장이 터질 것 같이 움직여야 겨우 따라갈 수 있는 움직임.
마침내 두 번째 마족화가 해체된다.
유세현은 황급히 스킬을 재시전 했다.
이번이 마지막 마족화였다.
5분.
만약 그 안에 놈의 스킬이 풀리지 않는다면...아니, 그것보다도 다른 걱정이 머릿속에 박힌다.
“허억...허억...허억...”
체력적으로 한계였기 때문이다.
과연 버틸 수는 있을까?
쾅!
“크으윽.”
시야가 흐릿하고 정신이 몽롱했다.
이윽고 두개로 겹쳐 보이기까지 하는 사물.
유세현의 눈동자에 다시 한 번 더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있는 칼날이 비쳤다.
궤적으로 보건데 위치는 대략 어깻죽지였다.
본래라면 루크루프의 전쟁갑주를 믿었겠지만 갑주는 이미 수차례의 방어로 인해 걸레조각이 된 상황.
즉, 방어를 기대하기 힘든 만큼 막거나 회피해야 된다는 것인데.
회피는 너무 늦었다.
그리고 두개의 사물 중 어디에 기준을 맞춰야 될지 알아볼 시간도 없다.
이지선다.
우측 아니면 좌측.
이번만큼은 운에 걸어야 된다.
유세현은 좌측에 기준을 맞추어 행동했다.
허나.
스르륵 허공을 통과해 날아오는 알베타스의 검.
50%의 확률이었건만 틀린 것이다.
대위기.
만약 이것에 베이면 다음공격에는 죽어도 반응 할 수 없다.
0.1초.
검이 유세현에게 당도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었다.
무수히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슨 수를 써야 이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당연히 방도는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완벽한 외통수이기에 방도 따위는 없다.
지금 유세현을 구할 수 있는 것은 제 3자의 개입 뿐.
허나, 지금에 와서 그의 주위에는 아무도...
그 순간.
치지지직-
유세현의 피부를 아주 얇은 반투명한 막이 감쌌다.
‘이건...’
벌어준 시간은 고작 해봐야 1.5초.
그러나 자리를 이탈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기척을 읽은 유세현의 시선이 우측으로 향했다. 안개가 낀 듯 상이 정확히 잡히지는 않았지만 루시아가 틀림없었다.
마찬가지로 똑같이 고개를 돌려 루시아를 확인한 알베타스가 중얼거렸다.
“잡졸주제에 감히...”
슈욱-
순식간에 루시아의 앞에 다가선 알베타스.
어찌나 빠른지 그녀는 반응하지도 못했다.
허나.
치지직-
앞을 가로막은 단단한 방어막.
단순한 무력만으로 찢어버리려고 했던 그녀의 눈이 순간적으로 파르르 떨렸다.
단단하다.
지금까지 보았던 그 무엇보다도.
씨익 올라가는 입꼬리.
“너도 특이병인 게로군.”
쉬이이익-
검에 절기가 담긴다.
팔을 내뻗는 루시아의 몸이 움찔움찔 떨렸다.
레어 등급인 스킬만으로는 도저히 버틸 수 없는 압도적인 힘. 그녀는 지금 고유특성만으로 버티고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상대가 다가오는 것을, 접근하는 것을 거절한다.
파괴와 재생이 반복되고 있는 방어막.
그녀는 머리가 부숴질듯이 아팠지만 이를 악물고 버텼다.
유세현이 기회를 틈타 곧바로 달려들었다.
치지직-
알베타스는 검을 치켜세우는 것만으로 손쉽게 방어했다.
속도가 많이 저하 됐기 때문.
이에 루시아가 전력투구를 하는 투수처럼 모든 것을 불살라 알베타스를 공격해 나갔다.
“후후, 잡졸이란 말은 취소하도록 하지. 하지만...”
알베타스가 눈을 번뜩 빛냈다.
“격차가 너무 크구나.”
푹-
방어막을 관통한 검이 루시아의 심장을 꿰뚫었다. 유세현은 황급히 마력을 끌어올려 부패의 어둠을 날렸다.
위험한 것을 잘 알고 잽싸게 뒤로 빠지는 알베타스.
가슴을 움켜쥔 루시아가 뒤로 털썩 쓰러졌다.
단순한 관통상이었다면 움직일 수 있었을 테지만 알베타스가 마지막에 손목을 비틀어 검을 꺾어 버린 탓이다.
경계하고 있는 유세현을 향해 루시아가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도망...치세요.”
그녀는 이곳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에서 유세현을 구할 수 있었으니까.
이젠 그가 이곳에서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루시아의 고개가 툭 떨어졌다. 쇼크로 인한 기절이었지만, 유세현은 그녀가 죽은 것인지 기절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시선을 돌릴 수도 없었고, 또 곧바로 놈이 달려들었기 때문.
“후후, 아깝구나. 조건만 되었다면 저 애도, 그 특이한 검사도 너와 같이 종족화를 시켜줬을 터인데...”
퍽-
재차 가격당한 유세현의 몸이 주위 환경을 부수며 날아갔다.
루시아가 스스로의 생명을 불살라 구해준 목숨이건만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다.
이대로 죽는 것인가?
죽음.
생명체라면 반드시 다다르게 되는 마지막.
잃을 것이 없는 과거에는 죽음이 전혀 두렵지 않았다.
아니, 여전히 두렵지는 않다.
다만 소중한 것인 생긴 지금에 와서는 죽기 싫을 뿐이다.
마왕.
죽음을 관장하는 자.
죽음 그 자체인 존재.
그 누구도 그에게 죽음을 권할 수 없으며 그 누구도 그를 영멸시킬 수 없다.
그리고 지금은 자신이 마왕이었다.
“이제 끝내주도록 하마. 얌전히 내 종이 되어라.”
순식간에 접근한 알베타스가 유세현의 심장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유세현은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몸을 억지로 움직여 자리에서 일어섰다.
핏빛같이 차가운 눈동자 속으로 쏟아지는 뇌전.
‘난 아직 이런 곳에서 죽을 수 없어.’
그 순간.
[특수특성 마(魔), 3차 권능. 암연(暗嚥)을 개화하셨습니다.]
[권능에 대한 개입이 가능해집니다.]
[3차 권능의 개화로 인해 스킬[마족화]에 대한 특성 발휘가 가능해졌습니다.]
[암흑투기의 숙련도가 100%가 되었습니다. 권능에 의해 암흑투기의 등급이 유니크 SSS 랭크에서 레전더리 E 랭크로 승격됩니다.]
콰아앙!
커다란 파공성이 숲속으로 뻗어나갔다.
동시에 뒤로 밀려나는 두 사람의 육신.
알베타스가 머리를 감싸 쥐었다.
눈가에 맺혀 있는 경악.
“이, 이건...”
그녀로서는 생전 한 번도 경험해본 적 없는 감각이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권능이 흔들린다.
놈의 차갑고 어두운 기운에 의해.
알베타스는 애써 진정하며 정신을 다스렸다. 당황하면 당황할수록 더욱 깊숙하게 침투해 온다는 것을 단번에 눈치 챈 것.
‘이 정도의 속박력이라니...’
몸이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무거워졌다.
‘그래도 아직은 내가 훨씬 유리하다.’
판단을 내린 알베타스는 곧장 행동을 개시했다.
방금 전은 놀라서 힘이 순간적으로 빠졌지만 이번에는 그런 실수를 하지 않으리라.
한편, 알베타스가 상황을 살피는 잠시 동안 유세현은 황급히 이번에 얻은 마족화의 특성을 살폈다.
마족은 거대화, 저항력강화 등 개체마다 서로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데 유세현의 특성은...
[영역선포: 어둠 속성 강화.]
일정한 필드를 형성해 그 안에서 어둠에 관한 능력을 일정수준 강화시키는 것이었다.
더 볼 필요도 없이 그는 황급히 특성을 사용했다.
그를 중심으로 빠르게 주위를 잠식해 나가는 새까만 어둠.
소비마력이 적은 덕에 그렇게 넓지는 못했지만 효과는 분명했다.
< 예기치 못한 결전(6)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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