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66화 (266/612)

< 예기치 못한 결전(5) >

툭.

지면으로 떨어지는 케레누프의 조각난 얼굴.

[......]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듯 긴 정적이 세상에 내려앉았다. 카르베스도 근처에 있던 알베타스도 그 일순간만큼은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

케레누프가 당하다니?

그것도 이토록 허무하게.

투웅!

마치 꽉꽉 눌러 담아 놓은 압축용기가 부서지듯 코인이 터져 나왔다.

하나하나, 무척 높은 순도를 자랑하는 결정체.

그런 코인이 처음으로 향한 곳은 당연히 에반의 몸이었다.

제일 가까이 위치해 있었으니까.

허나, 곧바로 이어진 카르베스의 견제타.

흡수할 때까지 1초의 시간조차도 필요하지 않지만, 카르베스의 공격은 그것보다도 훨씬 빨랐다.

휘이이잉-

촤자자자작.

덕분에 코인은 경로를 이탈해 사방으로 비산.

눈을 힐끔 흘긴 유세현이 곧바로 천마군림보를 극성으로 운영했다. 저걸 먹는다면 보다 더 쉽게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스텟이 높아 증가폭이 적은 놈들의 비해 유세현은 스텟이 낮아 증가폭이 크기 때문.

허나, 그 순간.

지이이잉-

콰앙!

어마어마한 크기의 구체가 일대를 향해 날아 왔다.

저편에 떨어져있던 베아렉클의 파멸옥!

유세현은 천마혈사장을 날리거나, 천마반탄기를 사용해 쳐내고 싶었지만 알베타스가 있는 턱에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코인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멀리멀리 날아갔고, 유세현이 흡수할 수 있는 것은 몇 개 밖에 없었다.

뭐 그래도 전투 중 주요 스텟이 상승했으니 이득이라면 굉장한 이득이긴 하다.

채앵!

검을 쳐낸 카르베스의 경계어린 눈동자가 에반을 살폈다.

역시 뭔가가 이상하다.

아무리 좋은 스킬이라 할지라도 모름지기 미미하게나마 전조현상은 존재한다.

대기가 살짝 진동한다느니, 혹은 자신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의 회오리가 발생한다드니.

허나, 방금 전의 놈의 공격에는 그런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마치 평범한 베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여러 개의 스킬을 중첩시킨 케레누프의 도끼를 종잇장 베어버리듯 단번에 잘라냈다. 마치 자신의 창을 가를 때와 같이.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생각한 카르베스는 문득 머릿속을 잠식해오던 위화감의 존재에 대해 눈치챌 수 있었다.

그래, 스킬에 상관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존재하긴 한다.

‘고유특성인가.’

채앵!

카르베스의 창을 쳐낸 에반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후우...’

생각보다 더한 정신력의 사용.

이것은 케레누프의 그 마지막 스킬이 장난이 아니었다는 것을 방증한다.

‘뭐, 그래도 한 마리는 죽였으니...’

유세현이 알베타스만 잘 맡아준다면 카르베스도 죽일 수 있다.

거기까지만 해도 놈들의 전력은 대폭감소.

놈들도 다음부터 무작정 쳐들어오지는 못하리라.

‘나머지 한 마리...’

에반이 자세를 잡자, 유세현과 맞붙던 알베타스가 중얼거렸다.

“케레누프의 일격을 그대로 잘라내 버리다니...저자도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허나, 나는 여전히 그대가 더 마음에 든다. 다시 한 번 더 말하지. 내 것이 되지 않겠나? 내 그대라면 직접 씨를 배어볼 생각도 가지고 있

다.”

“......”

유세현은 답하지 않고 알베타스를 몰아붙이는 것에 힘썼다.

루베르크의 검 끝에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부패의 어둠.

슈우욱-

각종 무공과 천마의 검법이 합쳐지자 알베타스도 쉽사리 방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아니, 확실하게 밀린다.

퍼엉!

타협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패도의 힘에 압도되어.

‘이길 수 있다.’

여기서 끝내버리는 것이 가능하다.

그때, 알베타스의 표정이 그의 눈동자에 들어와 박혔다.

유세현의 눈썹이 순간적으로 씰룩였다.

“후후후.”

결코 좋지 않은 상황임에도 알베타스는 여전히 짙은 미소를 짓고 있었기 때문.

유세현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뭐지? 무슨 자신감으로...’

왠지 모를 불길함이 올라온다.

알베타스가 툭 말했다.

“그대, 이제 나와는 말조차도 섞지 않을 생각인가?”

“......”

“...유감이군. 내, 그대의 모든 것을 가지고 싶어 이런 형상을 취했건만...뭐 되었다. 죽기 직전이 되면 마음이 바뀔 테니...”

휙-

알베타스가 왼손에 들고 있던 방패를 옆으로 던졌다.

길게 자라나는 손톱.

허나, 알베타스의 변이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온몸 곳곳에 붉은 문신이 새겨나고 그것은 이내 점점 알베타스의 흰 피부를 뒤덮어갔다. 그녀가 천천히 무릎을 굽혔다.

쉬익-

바람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신형.

그녀는 어느 샌가 유세현의 바로 앞에 도달해있었다.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마어마한 속도!

“?!”

어깨위로 날아오는 검을 확인한 유세현이 황급히 루베르크를 들어올렸다.

투두두둑.

강력한 힘이 짓누르자 유세현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스텟 증가?’

오크의 폭주를 넘어선, 마족화와 비등비등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상승이었다.

‘젠장, 어떻게 저런 스킬을...’

푸념 할 틈은 없었다.

검법의 운용에 실패하는 순간 치명상을 허용하고 쓰러질 것이기에.

흡사 곡예를 펼치는 듯 아슬아슬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유세현.

그는 기회를 봐 전심전력으로 천마군림보를 운용해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암흑투기에 있는 데로 마력을 쏟아 부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마왕의 권능으로 인한 어둠속성 저항력 감소.

어떻게든 육신을 옭아매어보기 위함이었지만.

“후후. 다급해 보이는 구나.”

퍼엉!

역시 통하지 않는다.

게다가 놈이 사용하는 스킬.

[고혼획사격(高昏劃死激)]

찌르기 자세를 취한 검의 끝에서 거대한 창을 연상케 하는 마력이 뿜어져 나왔다.

범위가 넓고 너무도 가까웠기에 피할 틈 같은 것은 없었다.

유세현은 잽싸게 천마광룡참을 운용했다.

쉬이익-

모든 것을 가르며 날아가는 기다란 선.

그러나 알베타스는 이미 자리를 벗어난 뒤였을 뿐더러, 마력이 갈라지며 후폭풍이 유세현을 덮쳤다.

쿠우우웅-

“크으...”

유세현은 입을 악물었다.

특색이 담겨져 있는 마력과 저 기묘한 감각.

역시 이것은 무공이 틀림없다.

‘젠장, 그래서 처음에 마력을 파악하지 못했던 건가.’

시야가 차단된 유세현은 공격에 대비하기 위해 마력의 흐름을 읽었다.

놈은 바로 자신의 머리위에 있었다.

콰앙!

치지지직-

잽싸게 움직인 라 아닐더가 놈의 공격을 버텨냈다.

역시 에픽 C랭크의 무기.

만약 지금 라 아닐더가 없었더라면 오른쪽 어깨가 작살났을 것이다.

‘젠장...그 지경에 이르기까지 힘을 숨기고 있었다니.’

사실 스텟의 증가는 예상 범위 안에 있었다.

다만 간과한 게 있다면...

‘역시...아무리 봐도 마족화와 비슷한 정도의 수치다.’

이 정도까지 증가할 줄은 전혀 몰랐다는 것.

유세현은 마음을 진정시키며 차분히 생각했다.

이제라도 도망쳐야 되는가?

천마군림보를 극성으로 운용하면 가능해 보이긴 하다.

허나 그런 행동을 취할시 다른 이들은 99.99%의 확률로 죽는다.

알베타스가 가세하는 순간 확 휩쓸릴 것이기에.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리고 놈도 분명 제한시간은 존재할 터.’

마족화보다 짧을 것인가. 길 것인가.

그런 것을 따질 겨를은 없었다.

마력회복이 작용하고 있는 유세현은 아직 한 번 더 마족화를 사용할 수 있으니까.

어떻게든 버틴다.

그리고 놈의 스킬이 끝나면 그때 치명적인 일격을 선사한다.

유세현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허나.

채재재쟁!

퍽.

콰과광!

대치한지 몇 초도 지나지 않아 나무를 박살내며 날아가는 유세현의 몸.

그리고 그때 베아렉클이 등장했다.

온몸이 땀에 찌든 유세현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만약 놈이 가세하게 된다면...

허나, 우려와 달리 놈은 유세현을 공격하지 않았다.

놈이 노리는 것은 에반!

이렇게 되면 케레누프를 처리하기 전과 다시 조건이 동일해진 것이기에 에반에게서 빠른 처리를 기대할 수 없다.

“허억...허억...”

충격이 쌓여서 그런지 몸이 무거웠다.

다가오는 알베타스.

“후후후. 어때? 마음이 이제 좀 바뀌었나?”

유세현이 잽싸게 답했다.

“...그 정도의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 나를 왜 그렇게 원하는 거지?”

의미를 가지고 내뱉은 말은 아니었다.

시간을 끌어보기 위함.

알베타스의 입이 호선을 그렸다.

“후후, 너의 그 힘.”

“...힘?”

“그렇다. 나는 너의 그 힘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느꼈다. 자, 그럼 다시 한 번 묻도록 하지 나에게 오겠나?”

“...가게 된다면 나에게 무슨 이득이 있지?”

“흠, 이득이라...우선 네 자아가 그대로 남겠지. 그리고 인간과 달리 이 전투에서 승리 할 것이다.”

알베타스의 말에서는 차고 넘칠 정도의 자신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사람은 승리가 절대 불가능하다는 말인가?”

“후후. 그렇지. 아까 전에도 분명 언급했던 것 같은데...듣고 있지 않았던 게냐?”

“...아까전이라면 사람의 욕망에 대한 것을 말하는 거냐?”

“그렇노라. 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답변이 된 것 같다만...그대 정도라면, 아니 사실 모든 인간이 인지하고 있지 않...”

유세현의 표정을 본 알베타스의 말이 뚝 끊겼다.

유세현은 시간 끄는 행위가 들켰나 싶었지만, 알베타스가 이런 행동을 취한 데는 다른 이유가 있었다.

“후후후후후. 그 표정...설마 모르는 것이냐? 파편을 지니고 있는 그대도?”

“...뭘 모른다는 거지?”

유세현이 되묻자 알베타스의 걸린 미소가 더욱 짖어졌다.

“후후후. 그래, 그렇군. 인간은 아직 여기에 다다르지 못한 모양이군.”

“......”

유세현의 표정에 미약한 변화가 생겼다.

알베타스의 저 아리송한 말.

압도가 가능한 이상 자신의 방심을 유도하기 위해 그냥 떠벌리는 말은 결코 아닐 것이기 때문.

알베타스가 말을 이었다.

“그대는 파편을 왜 모으는 것인지 정확한 이유를 알고 있나?”

“......”

“역시 모르는 군. 그렇다면 이건 알고 있나?”

유세현이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음에도 단언 한 알베타스가 한차례 템포를 끊은 뒤 진중한 어조로 말했다.

“성물의 주인은 오직 단 한 명뿐이니라.”

“...?!”

한 명? 주인?

전부 모으면 그 종족을 제외한 모든 이들이 끝나는 것이 아니던가? 그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그런데 주인이라니?

알베타스가 어깨를 으쓱였다.

“후후후, 그래 그대의 말도 맞긴 맞다. 모으면 확실히 끝이 나지. 허나, 성물을 모은다고 해서 모든 종족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그래야 할 필요도 이유도 없지. 그대는 이 세계가 왜 탄생했을 것 같나? 장난? 단순히 심심해

서?”

“......”

“그렇지 않다. 생명체 이건 아니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행동을 한다. 신도 마찬가지지. 그리고 신은 그에 대한 힌트를 이곳저곳에 흩뿌려 놨다.”

“힌트?”

“그렇노라. 만약 파편을 얻기 위해 돌아다녔다면 첫 구절은 들어 봤을 게다. 읊어주지.”

[하나의 뿌리에서 뻗어 나온 줄기가 1천개에 달하니, 뿌리가 사라지자 줄기는 뿌리가 되고자 한다.]

유세현의 눈동자가 순간적으로 흔들렸다.

저 문구.

뒷부분은 잘려있었지만 분명 읽은 적이 있다.

그래, 레이커드만의 연구실. 바로 그곳에서.

“후후, 역시 첫 소절은 본적이 있는 모양이군.”

“그래서?”

“나는 뒷내용까지도 전부 알고 있노라. 그 의미도 파악했지. 아니, 사실 찾기만 한다면 누구든 파악할 수 있도록 일부러 쉽게 만들어 놨다. 허나, 진득하게 설명하기는 시간이 소요되니 넘어가도록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

마. 종족이 승리하는 것이 아니다. 단 한 명. 오직 단 한 명만이 이 싸움에서의 승리자가 될 수 있다. 그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게 되지. 그런데 그대는 이기적이고 욕심 많은 인간이 과연 믿고 협조하리라 생각하나?”

< 예기치 못한 결전(5)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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