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4화 (244/612)

< 군락지(3) >

절벽의 벽을 마치 평지 거닐듯 타는 그 움직임에 도저히 따라올 수가 없었기 때문.

허나, 그럼에도 놈들은 포기하지 않고 막대한 물량을 토대로 계속 치고 올라왔다.

무림인이 한 마리를 베어 넘길 때, 두세 마리가 추락하는 동료를 넘어 그 흉흉한 아가리를 들이민다.

그러다 보면 삼류무사가 전해준 일반 무공을 익혀 평범한 보법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기사들은 높은 스텟에 걸맞지 않게 어이없는 위기를 맞기도 했다.

“크윽...이놈들이...놔라! 이 괴물자식들아!”

다수의 혼종에게 발을 붙잡힌 기사!

그는 한 손으로 간신히 몸을 지탱하며 검을 이용해 놈들을 떨쳐내려 했지만 결코 쉽지 않았다.

자세도 자세거니와 혼종이 목숨 따위는 아무런 상관없다는 식으로 일부러 잡아끌고 있는 탓이다.

-키릭. 키릭.

뭐가 좋은지 되려 어깨를 들썩이며 웃기 시작하는 혼종.

놈들이 무서운 이유였다.

상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

그래도 자신의 목숨은 염려하고 움직이는 여타 생명체와 달리, 놈들은 명령이 떨어지면 불구덩이건 낭떠러지건 무작정 뛰어든다.

또한 보통의 종족들은 장군이나 수장을 베어버리면 움츠려들기 마련인데 이놈들은 되려 극성을 부렸다.

파득.

파드득.

중량을 견뎌내지 못한 암석이 서서히 갈라지기 시작하자 기사의 눈에 절망이 맺혔다.

그는 필사적으로 동료 기사를 찾았다.

“칸트! 도와줘! 칸트!”

하지만 그들 또한 여유가 없는 것은 마찬가지.

길드연합의 인원들도 그렇고, 무림인들 또한 적을 베기에 여념이 없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금 기사를 구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기사는 체념했다.

그의 뇌리 속에 이전 자신이 외면해버려 죽어버린 동료가 떠올랐다.

그 또한 이런 마음이었겠지.

‘이럴 줄 알았으면 어떻게든 구해볼걸...’

혹시 아는가?

구해줬더라면 이번엔 그 친구가 자신을 살려줬을지.

암석이 완전히 떨어져나가려는 순간이었다.

쉬이익-

고막을 찌르는 바람소리와 함께 뚝 떨어진 무엇인가가 그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그 흔한 투구조차도 착용하지 않은 남성.

겉모습은 여지없이 길드 연합을 연상케 했지만, 움직임은 무림인 뺨 싸대기를 후려갈길 정도로 정말 신묘하기 그지없었다.

촤자작-

어느새 가벼워진 다리.

“아 감사합...”

혼종이 떨어져나갔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은 그가 잽싸게 인사를 하려 했으나, 남성은 이미 코인의 흡수를 마치고 다른 장소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격렬하게 이어지는 접전.

-키아아아!

2차로 비상한 스카이레블의 군세가 하늘을 뒤덮었다.

이번에는 몸체가 작은 혼종까지 등 뒤에 올라타 있었다.

접근하여 뛰어내릴 생각인가 본데.

“그럴 순 없지! 스킬준비!”

3개의 세력이 다시 한 번 더 요격할 준비를 갖췄다.

“발사!!”

쉬이익!

콰과과광!

광역스킬에 맞아 추락하기 시작하는 수많은 무리.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적과 싸우고 있던 유세현이 몸을 틀었다.

막대한 양의 코인을 향해!

“우리도 가세나!”

“예!”

유세현을 따라 내려와 전투를 펼치고 있던 아린과 카텐 또한 적진을 향해 파고들었다.

절벽위에서 이를 확인한 병사들은 경악했다.

“뭐야? 저거?”

일행이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질 때만 해도 미친 것인 줄만 알았다.

베테랑인 자신들조차도 절벽에서 만큼은 전투를 펼칠 수 없는데, 이제 막 알베타스의 진형에서 도망쳐온 생존자가 뭘 할 수 있다고.

그런데, 그럴 터인데.

하늘을 날다니?

“야야! 카텐! 방향 제대로 못 잡냐? 방금 코인을 몇 개나 놓쳤는지 알아?”

“아씨! 어쩌라고! 이거 컨트롤 힘든 거 모르냐?”

“아는데 더 잘 좀 해봐!”

“너가 너무 무거워서 무리야.”

“아니, 이 새끼가...”

카텐의 어깨위에는 케드리나가 타고 있었다.

카텐이 추진 장치로 회피하면 케드리나가 로켓포를 이용해 적을 견제하는 모습.

아린도 이리저리 열심히 날아오는 갈고리를 피해가며 코인을 주워 먹었다.

횡재하듯 코인을 가져가는 그들!

한편, 절벽위에서는 루시아가 그것을 초조한 마음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떻게든 차이를 좁히고 싶은 그녀였다.

튜토리얼부터 서쪽대륙까지 생존과 안정이 목표였다면 이번에는 그와 함께 나아가보고 싶어 이곳에 오는 것을 택했다.

나란히 하고 싶다.

그것이 솔직한 마음.

그러나 이대로라면 차이는 더욱 벌어진다.

아버지께 심려를 끼쳐드리게 되는 것이 되겠지만...

“아버지 다녀올게요.”

“뭐? 그게 무슨 말...”

파앗-

지드먼이 대답할 새도 없이 날아오른 그녀의 몸이 빠른 속도로 저편으로 사라져갔다.

* * *

천마군림보를 이용해 적을 베어가며 코인을 흡수하던 유세현의 눈동자에 짧은 백발이 비쳤다.

‘루시아 아인셰르?’

그녀는 방어 장막을 발판으로 하여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유세현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저런 응용법은 굉장히 불안정한 법이라 웬만큼 작정하지 않고서는 전장에 나올 수 없기 때문.

이는 즉, 그녀 스스로 더 강해지길 원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그 순간 루시아의 몸이 살짝 휘청거렸다.

허나, 염려 같은 건 딱히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슈우욱!

날아오는 갈고리를 확인한 유세현이 몸을 틀었다.

정말 미세한 동작이었으나 갈고리는 적중하지 못하고 그대로 육신을 지나쳤다.

촤좌자작-

순식간에 접근해 스카이레블을 작살낸 유세현.

코인의 흡수를 시작한 그는 현재 적군 대신 스테이터스 창을 응시하고 있었다.

A랭크에 도착했다지만 너무도 미미한 증가 폭.

‘역시...’

약하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놈들의 추정 스텟은 B랭크 10%정도였다.

이래서는 가까스로 절벽위에 도달해도 A랭크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당해낼 수 없다.

알베타스도 그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뇌리 속으로 퍼지는 의구심.

‘도대체 뭐 때문에...’

그 순간 스카이레블이 일제히 몸을 틀었다.

혼종과 알비론들도 스스로 급류 속으로 몸을 던졌다.

퇴각이었다.

빠르게 사라져가는 놈들.

알라함은 유세현의 활동장소를 멀뚱멀뚱 쳐다봤다.

어떻게 하늘을 밟을 수 있는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지?

넋이 반쯤 나간 그의 귓가에 병사의 말이 울려 퍼졌다.

“알라함님 지휘를...”

알라함은 그제야 아차한 표정이 되어 높이 검을 치켜세웠다.

‘젠장, 내가 정신을 팔다니...’

팀장들도 마찬가지로 그처럼 병장기를 들어올렸다.

터져 나오는 함성.

“우와아아아!”

승리했을 시의 관례로 사기증진과 인간세력이 아직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행동이었으나 체면을 많이 따지는 무림인들은 따라하지 않았다.

알라함의 옆에서 팔짱을 낀 채 전장을 주시하고 있던 알데우스 로아드가 넌지시 말했다.

“저자는 누구지?”

“아, 저자는...”

그렇게 간략히 설명이 이뤄지자 알데우스가 뒤돌며 말했다.

“조건을 높여서 포섭해봐라. 안 되면 직접 내 앞으로 데려오고.”

“예.”

정중히 답한 알라함은 곧바로 유세현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주위에는 이미 엄청난 인파가 몰려있었다.

하나 같이 신기한 눈초리로 쳐다보고 있는 인원들.

접근할 길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엇험.”

알라함은 결국 몇 번의 헛기침을 하고 나서야 유세현에게 접근할 수 있었다.

“자네 대단하군.”

“감사합니다.”

한참 상념에 잠겨있던 유세현은 정석적으로 답했다.

그는 현재 알베타스의 의중을 파악하기 위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뭐든지 이유 없는 행동은 없으니까.

허나 갑작스럽게 생긴 많은 관심은 유세현의 생각을 계속해서 방해했다.

또다시 이어지는 알라함의 제의.

“죄송하지만 거절하겠습니다.”

그리고 길드 연합 팀장들의 접근.

마지막으로는 무림인까지.

무림인 중에서는 정말 우습게도 남궁세가 말고도 그를 알아보는 인원이 있었다.

과거 무공을 훔치기 위해서 무림맹에 들어갔을 때 펼쳤던 비무의 대상자들.

“하하, 누군가 했더니 세현공 이셨군요. 저를 기억하시는지요.”

“예. 팽진공 아니십니까.”

팽진은 하북팽가의 직계출신 무인이었다.

혼원벽력공이라는 무공과 도법을 구사하는데 상당히 호쾌하고 파괴적인 것으로 기억한다.

무공서를 훔치고 싶었지만, 가지고 있지 않아 얻지 못한 무공 중 하나.

“검술의 성향이 많이 바뀌신 거 같던데...”

“아, 예.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결국 유세현은 생각하는 것을 잠시 중단하기로 했다.

어차피 지금 무리할 필요 없이 추후 남궁시영의 집에서 다 같이 의견을 나눠보면 조금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이기에.

팽진과 이야기를 나누며 이동하는 유세현.

사람들은 유세현과 팽진이 대화하는 것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무림인들은 상당히 폐쇄적이라 팀장급 되는 이들 정도만 간간히 말을 건네는 정도이기 때문.

비무를 해서 실력을 증명한다면 조금 가까워 질 수는 있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그렇게 까지 할 생각을 갖지 못했다.

무참히 깨지면 쪽팔리기 그지없을 뿐더러, 밑천을 드러내게 되는 것이었으니까.

또한 그렇게 무리해서 친해져 봤자 무공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무공을 얻기 위해서는 문파에 들어가거나 사제관계를 맺어야하는데, 이게 또 정말 엄청난 속박이 아닐 수 없었다.

구두계약이라지만 파기했다가는 정말 목숨 줄이 날아갈 수 있기에.

아니, 그리고 정확히 말하자면 문파에 입문 한다고 해서 무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도 없다.

무공을 얻으려면 그들이 책을 저술해 주어야하는데 저술할 수 있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탓이다.

그런 면에서 확실한건 스승을 두는 것이지만...

‘소원 3개라니...씨벌 내가 무슨 용신이야?’

무림인들이 강하고, 권력욕이 없다는 점에서 그냥 지금의 관계가 딱 좋았다.

유세현은 본래 있던 장소로 돌아오기 무섭게 팽진과 갈라졌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비무를 요청했을 수도 있었겠으나 지금은 전쟁, 그리고 전투 후다.

그럴 여유는 없는 것.

유세현은 회의에 루시아와 카텐, 케드리나, 아린을 참가시켰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아린.

“많이 약했네.”

느낀 바는 역시나 그와 동일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는 루시아와 카텐 그리고 케트리나.

이번에는 남궁시영이 의견을 말했다.

“하지만 절벽에 달라붙어 있던 혼종과 알비론들은 평소와 비슷했어요.”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절벽에 붙어있는 놈들은 제법 강했다.

그럼 대체 의도가 무엇일까.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입을 뗀 것은 신기하게도 평소 말이 적은 루시아.

“공격하는...척.”

“......”

가지고 있는 정보로만 보자면 굉장히 답에 가까워보이 말이었다.

아니, 현재로서는 내릴 수 있는 답 그 자체다.

문제는 이유.

“정말 이유가 없구먼...”

공격하는 척해봤자, 다른 곳에서 이득을 얻지 못하면 결국에는 단순한 전력손실일 뿐이다.

그들은 오랜 시간 머리를 맞댔지만, 결국 결론을 도출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와이번의 둥지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숲 내부에서 군락지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 * *

“정말 엄청난 크기였어요.”

군락지를 발견한 인원은 주변 수색을 맡고 있는 팀이었다.

“평소에는 알비론들이 너무 많아서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는데...어제는 상당히 적어서 들어 가본 거였거든요.”

“그렇겠지. 놈들은 이곳에 있었으니.”

“어떻게 하실 건가요?”

수색원의 물음에 각 길드 연합의 대표 키란과 백작, 알데우스 그리고 남궁시영이 짐짓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들의 판단에 의해 모든 것이 정해진다.

이어지는 각 보좌관들의 조언.

연합의 경우에는 팀장들이었고, 알데우스의 경우에는 알라함이었으며, 남궁시영의 경우에는...

“레피아언니, 세현씨 어떡하는 게 나을 것 같으세요?”

남궁시영의 말에 알라함은 어이없는 눈초리로 유세현을 쏘아봤다.

하루 만에 총3번의 제의를 거절한 인물.

그는 백작이 직접 찾는다는 것을 통보했음에도 오지 않았다.

‘건방진...’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놈은 확실히 대단하다.

이건 인정한다.

자세한 스텟은 모르지만 조종할 수 있는 인형이 있었고, 하늘을 날 수 있는 모종의 스킬도 가지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래봤자 놈도 한 명의 인간에 불과했다.

이제 막 팀을 구성하였기 때문에 공적이 없어 길드연합의 주측도 아니었으며, 가지고 있는 병사도 수십밖에 되지 않았다.

남궁시영과의 친분이 제법 있는 모양이지만.

그래봤자다.

무림인들이 놈의 말을 들을 리가 없으니까.

반면 알데우스 백작은 이곳에 있는 군 전체를 통솔하는 자.

개개인의 한계가 분명한 만큼, 급이 다르면 적당히 들어주는 척이라도 해야 하건만.

놈은 너무도 완고했다.

아예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

마치, 아니다 싶으면 뭐든지 무시해버리는 이강호처럼 말이다.

< 군락지(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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