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39화 (239/612)

< 수확관(1) >

마치 과외를 하듯 한 명 한 명에게 딱 달라붙어 설명을 하는 제국군들.

“이 과일은 우리에겐 괜찮지만 너희 같이 스텟이 낮은 새내기들에게는 복통을 일으키니 잘 기억해둬. 알았냐?”

말을 끝마친 병사가 케드리나의 엉덩이를 툭 쳤다.

마치 아무런 사심이 없다는 듯이.

허나, 자세히 살펴보면 입 꼬리가 미세하게 올라가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

난동을 피울 마음이 없었던 케드리나가 일부러 심드렁한 모습을 보이는 반면 카텐의 눈이 이글이글 타올랐다.

‘저 새끼가...’

카텐은 유세현이 신호를 주기만을 기다렸다.

휑하니 뚫려있는 도시와 달리 이곳은 몸을 은, 엄폐 시킬 수 있는 장애물들이 많으니 슬슬 시작하리라.

그리고 일이 시작된다면 카텐은 제일먼저 놈을 죽일 것을 다짐했다.

허나.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바라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왜지? 달리 노리시는 게 있으신 건가?’

묻지 못해 더욱 답답한 마음.

처적-

나아가던 선두의 발걸음이 멈췄다. 어느새 그들의 바로 앞에는 거대한 동굴이 위치해 있었다.

-쉬이이.

내부에서 흘러나오는 코를 찌르는 악취.

카텐은 살짝 당황했다.

딱 봐도 이곳이 최종 목적지인 것처럼 느껴진 탓.

아니나 다를까 지금까지 바깥만을 향하고 있던 병사들의 검 끝이 순식간에 팀원들을 향했다.

그때까지도 유세현은 먼 곳을 응시하기만 할뿐 별다른 행동을 취하지 않고 있었다.

석고상처럼 굳어가는 팀원들의 표정.

레반코프와 병사들은 갑자기 돌변한 자신들에 태도에 새내기들이 겁을 집어먹은 것이라 생각했다.

음흉한 눈이 되어 입맛을 다시는 병사들.

“흐흐흐, 저 흰머리는 내가 먼저 찜해둔 거 알지?”

“검은년은 내꺼다.”

굳이 무리해서 의미를 파악하려 하지 않아도 자연스레 이해가 되는 언사였다.

레반코프가 유세현의 팀원을 향해 지그시 통보를 내렸다.

“당장 죽고 싶지 않으면, 착용하고 있는 장비를 모두 해제해라.”

“......”

무반응.

레반코프의 검이 곧바로 최전방에 서 있는 지드먼을 향했다.

난데없이 태도를 돌변하면 대개 이런 반응을 보이는데, 칼질을 해주면 모두 정신을 차리기 때문.

그런데 그 순간.

휘융-

거센 바람이 일었다.

휙휙휙 턱.

저 멀리 날아가 지면에 박히는 검.

“어...어?”

레반코프의 입에서 헛바람이 튀어나왔다.

그는 현재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한 순간 뭔가가 번뜩이더니 자신의 칼이 날아가 버렸다.

욱신거리는 손목.

놀라서 잔뜩 커진 두 눈동자 속으로 새까만 검신이 비쳐 보인다. 시선을 돌려 무기의 주인을 확인한 레반코프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놈이 지금 내 검을 쳐냈다고?’

놈은 새내기다.

스텟의 차이가 무려 100%나 난다.

때문에 본래라면 튕겨내긴 커녕,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의 검에 상처 입는 것이 정상이었다.

“네 네놈 방금 무슨 짓을 한 거냐!”

레반코프가 물었으나, 유세현은 묵묵부답이었다.

현재 그는 레반코프를 전혀 보지 않고 있었다.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이 저편에 뭉쳐 있는 다른 집단.

‘도와주기 위해서 대기하고 있던 것인 줄 알았는데...아니었나?’

유세현은 이 산맥에 들어오자마자 레피아의 존재를 확신했다.

사천당가, 당운룡이 지니고 있던 마력과 무척 흡사한 마력이 느껴졌기 때문.

레반코프가 나아가는 방향에 레피아가 대기해 있었고, 플로라로 추정되는 마력이 계속 뒤 따르고 있었기에 혹시나 마음이 바뀐 건가 싶었다.

감시용 아이템도 있을 테니 자신이 이곳에 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내가 착각한 모양이군.’

암흑투기를 끌어올린 유세현이 비로소 팀원을 향해 말했다.

“쓸어버리도록 하죠.”

* * *

푹-

서걱.

“으아아악!”

지금까지 고요하기 짝이 없던 숲에 비명이 메아리쳤다.

잘리고, 베이고.

전투가 발생한지 30초도 지나지 않아, 레반코프의 병사들은 아비규환의 생지옥을 맞보고 있었다.

아무런 반항도 할 수 없다.

지금까지 몸을 지켜주었던 스킬을 발동시켰음에도 무용지물.

150명 중 벌써 100명 가까운 인원들이 싸늘한 주검으로 변한 상황이었다.

“지, 진정해라!”

한 명의 병사가 다가오고 있는 카텐을 향해 손을 거칠게 휘저었다. 아까 케드리나를 성추해 했던 그 병사였다.

“방금 전 상황은 오해...”

“오해는 개뿔! 이 빌어먹을 꼭두각시 인형들이!”

번뜩이는 칼날.

레반코프는 전력으로 동굴을 향해 질주해나갔다.

그 과정에서 잘려나간 부하의 목이 발에 채였지만 전혀 개의치 않았다.

‘괴, 괴물 같은 놈!’

여타 병사보다도 20%나 높은, B랭크 60%나 되는 힘과 민첩을 지니고 있는 그다.

그런데도 전혀 손을 쓸 수가 없었다.

어떠한 타협도 통하지 않기에 이제 믿을 것이라고는 정말 어이없게도 알베타스 뿐.

그러나.

푸부북!

그는 내부에 당도할 수 없었다.

몸통을 관통하고 있는 화염의 창. 아린이 날린 마법이었다.

앞으로 고꾸라진 그의 전신에서 촉수가 뿜어져 나왔다. 조금이라도 더 싸우기 만들기 위함.

“안돼...안돼에에에!”

한 번 촉수가 발동 되면 두 번 다시 되돌릴 수 없기에 레반코프는 구슬픈 비명을 내질렀다.

허나, 그것도 잠시.

푹-

무자비한 검이 머리를 꿰뚫자 그의 머리는 축 늘어져 다시는 움직이지 못했다.

사망.

유세현이 코인을 흡수하기 시작하자, 1km 가량 떨어진 장소에서 그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허...저 팀 상당히 강한데?”

“응. 특히 저 새까만 검을 들고 있는 남자는...”

“하지만, 너무 깊이 들어온 데다가 수가 적어. 빠져나가긴 힘들 거라 생각한다.”

빠르게 이어지는 각 리더들 간의 대화.

레피아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꾹 짚었다.

안 될 때는 뭘 해도 안 된다더니.

지금의 상황이 딱 그 꼴이었다.

‘아니, 쟤는 도대체 왜 여기까지 기어들어 온 거야?’

군락지는 순식간에 깨부숴야 된다. 공격에 들어가는 순간 적이 곧바로 몰려오기 때문.

레피아는 그 과정을 이용해 시간을 벌어주려 했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되면?

레피아가 말도 꺼내기 전 다른 팀의 리더가 선수를 쳤다.

“철수하자.”

“난 찬성.”

“나도.”

역시나 이렇게 되어버린다.

더 이상 군락지를 공략할 수도 없었고, 팀의 피해를 산정한 바, 구하지 않는 편이 이득이라 결론을 내렸기 때문이다.

레피아는 이를 으득 갈았다.

이들에게 어설픈 감정호소는 통하지 않는다.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한 가지.

희생하여 구해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

하지만 그녀는 유세현이 무슨 스킬을 지니고 있는지 모를 뿐더러 말할 입장이 되지 못했다.

밝히는 순간, 이곳에 사람들을 모은 진짜 의도를 들키게 되는 것이니까.

즉, 그들을 도우려면 이젠 팀원만으로 도와야 된다는 것인데.

현재 그녀의 팀원은 213명.

너무나도 적은 병력이었다.

‘젠장!’

그녀는 마음속으로 수많은 욕을 곱씹었다.

때마침 돌아온 플로라가 레피아의 옆으로 착지했다.

“어, 언니!”

“플로라! 너 왜 전서구 안 날렸어? 쟤네가 이곳까지 올 거 같으면 미리 날렸어야지!”

“아...그, 그게 나도 날리고 싶었는데. 날릴 수가 없었어 언니.”

“...왜?”

“수, 수확관. 수확관이 그들의 근처에 있었어. 날렸으면 100% 걸렸을 거야.”

플로라의 말에 레피아의 두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엎친 데 덮친 격. 혹은 설상가상.

“수확관? 정말로?”

“응.”

“...염병...수확관이라니...”

최악이다.

안그래도 좋지 않던 생존확률이 더욱 극악해졌다.

스스스-

숲이 좌우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알비론이 몰려오고 있다는 전조현상.

레피아는 이마를 짚었다.

‘젠장, 이렇게 되면...’

그때 마지막까지 쌍안경을 붙들고 있던 팀 레인보우의 리더, 레옹의 입에서 억소리가 튀어나왔다.

“어...어? 이게 무슨...”

상당히 당황한 음색.

“뭔데 그래? 아니, 그보다 철수 할 거니까 그만보고...”

“살렸어...”

“응?”

“그 새까만 검을 들고 있는 남자...죽은 사람을 살렸다고...”

레옹의 말에 사람들이 인상을 살짝 구겼다.

“야, 그게 무슨 소리야, 세상에 어떻게 죽은 사람을...”

반박하며 눈에 쌍안경을 갔다댄 남성의 입이 꾹 다물어졌다.

진실이었던 탓이다.

유세현의 곁에는 머리가 관통당한 레반코프가 서 있었다.

그 이외에도 스멀스멀 일어나는 무수히 많은 시체들.

해답을 내놓은 것은 알테리아 대륙 출신인 제이큰이었다.

“이, 이건 설마 흑마법?”

“흑마법이라고?”

“어...옛날에 시체를 부릴 줄 아는 지인이 있었거든...마족의 마력을 빌린 자들...세간에서는 그들을 네크로멘서라고 불렸었지. 마족과의 연결이 끊긴 지금은 분명 사용이 불가능 해졌다고 했는데...”

“흠...네 말이 맞다면 그럼 저 남자는 어떻게 쓸 수 있는 거지? 아니 그보다 저 시체 제대로 사용은 가능한가? 만약 가능하다면 살려보는 것도...”

관심이 쏠린다.

허나, 그 관심은 채 30초도 유지되지 못했다.

“......”

주위를 집어삼키는 깊은 정적.

유세현의 팀이 위치한 장소에 무엇인가가 등장한 탓이었다.

풍만한 가슴과 엉덩이.

몸은 여성과 무척 흡사했으나, 놈은 인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존재였다.

무려 6개나 되는 팔.

그 팔에는 거대한 칼날이 달려있었는데 비릿한 미소를 짓고 있는 놈의 얼굴은 좌, 우측으로 총 2개였다.

칼날의 군주 헤드리아에서 파생된 아류작.

수확관.

[레브레스]

“빠지자. 저건 정말 글렀다.”

레브레스의 옆에 있는 알비론을 본 제이큰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몸을 돌렸다.

그 또한 아주 잠시나마 유세현의 팀을 구해볼까 제안을 고려하던 중이었었지만 저 알비론은 그가 싸워봐서 안다.

놈들은 한 마리 한 마리가 부 팀장급과 비등비등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팀원들을 이끌고 순식간에 자리를 이탈하기 시작하는 이들.

남은 것은 레피아의 팀뿐이었다.

깊은 한숨을 내뱉는 그녀.

레피아는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 레베카를 향해 말했다.

“레베카, 플로라랑 같이 애들 이끌어서 C-3포인트로 먼저가 있어.”

“...예? 그게 무슨 말이에요 언니? 지금 설마 저 남자를 혼자 구하러가겠다는...”

“그래 맞아. 갔다 올게. 그러니까 절대 따라오지 마.”

레피아는 그대로 몸을 휙 돌렸다.

당황한 레베카가 황급히 그녀의 어깨를 낚아챘다.

“아, 아니. 언니! 이건 너무 위험해! 아무리 언니라지만 죽을 가능성이 너무 높아.”

“맞아! 내가 봐도 이건 아닌 거 같아.”

플로라도 한마디 거들었다. 레피아는 피식 웃었다.

“얼씨구? 날 어제 들볶은 건 어디 누구더라?”

깜짝놀라 움찔거리는 플로라. 그녀는 잽싸게 변명했다.

“아, 아니 그건 함께 계획을 짜서 안 위험한 쪽으로 어떻게든 해보자는 뜻이었지. 이런 걸 말하는 게...”

“플로라.”

“응?”

“이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계획은 없어. 너도 잘 알잖아?”

레피아는 피식 웃으며 플로라의 머리를 헝클어뜨렸다.

“그, 그럼 우리도 같이...”

“안돼 너희들은...고유 특성이 없잖아?”

“...하지만...”

“하지만은 무슨 하지만이야? 조심히 빠져 나가기나 해.”

레피아는 그 말을 끝으로 말릴 틈도 없이 그림자에 녹아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 수확관(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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