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31화 (231/612)

< 요새전(3) >

난데없는 방송이 선체 내에 울려 퍼졌다.

그는 순간적으로 것인가 잘못 들었나 싶었다. 그러나 곧이어 나타난 반응은 방송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었다.

-치잉.

잠금 상태가 되어버리는 통로.

루위드의 인공피부가 씰룩였다.

‘뭐냐 이건...’

그의 머릿속에서는 약간의 혼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왜냐하면 현 상황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기 때문.

격벽을 폐쇄시키는 메뉴얼은 확실히 존재한다.

함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아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할 때나 또는 침입자가 발생하여 몰아세워야 할 때.

허나, 그 어떤 상황에서도 모든 격벽을 동시에 폐쇄하는 일은 없다.

그는 개인 통신을 사용했다.

“무슨 일로 격벽을 폐쇄한 거지? 레브아르, 응답해라!”

묵묵부답.

‘이놈들 설마...’

순간적으로 루위드의 한 단어가 뇌리에 번쩍 스쳐지나갔다.

반란.

불온분자는 미리 제거해놨지만, 이것 말고는 사실상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는 설마 이 함선에 인간이 잠입했을 거라고는 차마 생각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침입자가 시스템을 해킹했으리라는 것도.

꾸구국.

꽉 움켜쥐어지는 손아귀.

그러나 단순히 화풀이를 하기 위해 주먹으로 기기장치를 파괴하는 일은 없었다.

그는 우선 비상 신호를 울려 밖에서 대기하는 호위병들을 불러들임과 동시에 비상용 제어장치를 가동시켰다.

‘내가 대비를 안 해놨을 것 같으냐.’

그리고는 마스터 키를 사용해 함선의 메인 시스템을 장악하려했다.

이 마스터 키만 있다면 놈들이 프로그램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조작의 큰 의미가 없다.

레벨 3을 넘어 최고단계인 레벨 4까지 다룰 수 있기에.

그러나.

삐이- 삐이-

[접근이 불가합니다.]

“무슨!”

루위드는 당황을 금치 못했다.

마스터 키가 통하지 않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프로그램을 뒤지던 루위드의 눈동자가 지진이 일어난 것 마냥 격렬하게 흔들렸다.

‘제어실에서 조종하고 있는 게 아니다.’

프로그램이 해킹되었다.

제어실에 있는 일반 마크들로서는 결코 불가능한 일!

‘대체 누가, 무슨 목적으로...’

우우웅!

더 생각을 이어갈 틈도 없이 요새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방금 전처럼 공격을 받아서가 아니었다.

무척 빠른 속도로 어디론가 이동을 시작한 것.

루위드는 신속하게 시스템을 분석해나갔다.

그의 실력이라면 시간은 좀 걸릴지언정 다시 되찾는 것이 가능하다.

“후우우...”

호흡이 필요 없는 생명체답지 않게, 숨을 크게 내뱉은 루위드가 근위병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5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제어실로 가라! 방해되는 건 전부 처리해도 좋다. 무슨 일이 생긴 건지 알아내라!”

“예!”

고개를 숙인 근위병들은 이내 빠른 속도로 함장실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 * *

“좋아. 제대로 작동하는군.”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유세현의 발밑에는 고철이 된 마크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폭시퀀스를 발동시켰다.

삐빅-

[30:00]

화면에 시간이 표시 되고 격벽이 폐쇄 되었을 대처럼 전 선체 내로 방송이 퍼졌다.

[자폭 프로그램이 가동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한시라도 빨리 안전한곳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랍니다.]

방송을 없애고 싶었지만, 이것만큼은 유세현도 어떻게 할 수 없었다.

유세현은 잽싸게 몸을 돌렸다.

살짝 아쉬움이 스쳐간다.

이 포격 요새를 자신이 사용할 수 있었다면 무척 좋았을 텐데.

포격 요새는 아이템으로 치부되고 있었다.

이전까지는 마크의 소유물이라 정보가 나타나지 않았지만, 해킹한 지금은 또렷이 보이고 있다.

아이템 명: 포격 요새 B1Q002

등급: 레전더리 [C Rank]

상세정보: 행성, 프론데의 포식자가 사용하던 요새입니다. 적을 섬멸 할 수 있는 각종 열 방출형 병기가 탑재 되어 있고 거주 공간이 마련되어있어 일상생활 또한 가능합니다.

마력을 불어 넣어주는 것으로 지속 사용이 가능하며 파손된 선체는 가공된 금속이 있어야 수리가 가능합니다.

유세현은 이내 미련을 털어냈다.

선체 내부에 있는 존재하는 마크들은 많을 뿐더러 강했다.

유세현이 놈들의 마력수준이 낮게 읽혔던 것은 그들이 이 선체에 마력을 계속 공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포격요새를 강탈해도 놈들이 활개를 치면 결국에는 요새는 박살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자폭이야 말로 최선.

한편, 마크들은 혼비백산 했다.

“뭐, 뭐야? 무슨 일이야? 자폭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

그들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제어실로 가보자!”

“그래!”

그들은 아이디 카드를 긁었다. 하지만 괜히 격벽이 폐쇄 되었겠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열리지 않았다.

지금 현 상황에서 열고 닫고 할 수 있는 인원은 오직 유세현 뿐!

“비켜 부숴버리게!”

“야! 수리하는데 들어가는 금속이 얼만데 루위드님이 알면...”

“젠장, 그러면 어쩌라고!”

빚어지는 갈등.

그렇게 그들이 머뭇거리고 있는 동안 유세현은 루위드가 있는 함장실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함선이 커서 자폭하기까지 최소 30분이란 시간이 필요한데, 그사이 루위드가 시스템을 재 해킹하면 무용지물로 돌아가기 때문.

‘더군다나 물을 것도 있고.’

성물에 대한 정보.

‘일단 1개는 무조건 가지고 있을 확률이 높다.’

놈들의 스펙은 유적을 클리어하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렇다면 가지고 있는 이는 루위드일까 아니면 프랑코스일까.

인간과 비슷한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자면 일단 둘 중 한명인 것은 분명하다.

에픽 SSS 등급의 아이템을 타인에게 맡기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쾅!쾅!

격벽이 찌그러지는 것을 확인한 유세현은 잽싸게 천장 위로 올라갔다. 마력소비를 줄이기 위해서라도 불필요한 전투는 일단 피한다.

자그만 한 구멍 틈으로 보이는 놈들의 모습.

쾅!쾅!쾅!

20초가량 주시하던 유세현은 놈들이 완전히 지나가고 나서야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는 지나간 놈들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함장실에 인원이 남아 있다는 것은 놈들 중 루위드가 없음을 증명하는 것이기에.

부서져 있는 격벽을 본 유세현이 실소를 내뱉었다.

너무 넓은데다가 길을 완전히 외우지 못해 종종 헷갈렸는데, 이건 이정표를 만들어 준 것과도 다름이 없었다.

순식간에 함장실로 다가간 그는 호위병의 마력을 다시 한 번 살폈다.

B랭크 70%.

거기서 그치지 않고 조금씩 차오르고 있다.

‘강하겠군.’

이 정도의 마력만 지니고 있어도 힘 스텟은 사실상 자신과 비슷할 터였다. 그런데 마력이 계속 오르고 있다는 뜻은...

‘어쩌면 힘 스텟은 A랭크를 넘을 수도 있겠는데...’

그런 놈들이 5명. 루위드까지 치면 6명.

허나, 유세현은 질 거라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다.

이것을 모조리 커버해줄 수 있는 스킬과 검법이 자신에게는 있었으니까.

‘가볼까.’

유세현은 검에 마력을 실었다.

* * *

자폭시퀀스가 발동한지도 어느덧 5분.

루위드는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보안을 뚫어내고 있었다. 지능이 높은 탓도 있지만, 인간과의 전쟁 이후로도 꾸준히 자기개발에 힘써온 덕분이었다.

그러던 와중 발견한 해킹범의 흔적.

‘MP...주파수라고?’

루위드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MP주파수.

행성 프론데에 있던 모든 기기에 개입할 수 있는 주파수로, 루크루프조차도 위험성을 고려해 이를 발산할 수 있는 기기를 단 하나밖에 제조하지 않았다.

자료도 전부 파기한데다가 하나 밖에 없던 기기 또한 녹여버렸기에, 루크루프를 처리한 뒤에는 사실상 완전히 소실된 과거의 유산.

‘젠장...MP주파수라니...’

현재 MP주파수에 대응할 방법은 없었다. 대항하기 위해서는 제일 기본이 되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되는데 전쟁 이후로는 개발의 필요성이 없어져 새로운 운영체제를 개발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이 포격요새의 코어는 유적의 보상으로 얻은 것.

여러 법칙이 뒤섞여있는 이곳에서 바꿀 수나 있을지.

루위드는 어떻게 일을 수습해야 될지 머리를 굴렸다.

현 상황에서 방법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시스템을 복구한 뒤, 해킹범이 다시 해킹하기 전에 잡아야 한다.

‘다행이도 메인 시스템에 접근할 수 있는 건 함장실과 제어실 뿐이다.’

즉, 그 두 곳만 사수한다면 범인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뜻. 결국에는 제 발로 나타날 것이다.

만약 안 나타난다면 요새의 인원들을 조사 해보면 된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쉬이익!

마치 바늘로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바람소리가 청각센서에 포착되었다.

그 순간 루위드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죽음의 기운을.

그는 생각할 것도 없이 자세를 최대한 낮췄다.

슈욱.

몸통이 있던 부분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깜짝 놀란 루위드는 황급히 부하가 있던 장소를 바라봤다.

“어? 방금 뭔가가...”

부하들은 아직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는 눈치였지만 루위드의 눈에는 똑똑히 보이고 있었다.

점점 무너져가고 있는 부하들의 육신이.

“무, 무슨!”

부하들은 허둥지둥 팔을 움직여 잘려나간 하체를 상체에 갖다 대려했다. 육체 재생은 로봇의 몸체를 가지고 있는 그들에게도 적용이 되었기 때문.

허나, 그 순간 손목 또한 뚝 떨어져나갔다.

적을 찾으려는 루위드의 눈에 문득 길게 늘어져 있는 실선이 비쳤다. 실선은 잘려나간 함장실부터 시작해서 저편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심코 손을 갖다 대자 마치 핸드폰 액정이 깨진 것 마냥 우수수 무너져 내리는 배경.

‘고, 공간이 잘렸다고?’

루위드는 믿기지 않았다. 아니,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것은 현실.

쿠웅!

갑작스럽게 생겨난 압박이 심신을 옭아맨다.

타다닥!

모습을 드러낸 유세현은 쓰러져 있는 부하들을 무시하고 곧장 루위드를 향해 달려들었다.

“...?!”

루위드가 팔에 장착되어있는 검으로 황급히 대응했다.

생전 처음 보는 적의 모습.

놈은 그가 알고 있는 인간세력의 총지휘자도 아니었으며 마크는 더더욱 아니었다.

“크으...네놈은 도대체...”

“네가 루크프 루위드냐?”

유세현의 입에서 이름이 튀어나오자 루위드의 인상이 더더욱 구겨졌다. 그런 그의 눈에 비친 유세현의 손목.

너무도 익숙한 기계 팔찌였다.

“너...대체 어떻게 그 팔찌를...”

대답해줄 용무는 없었다. 그리고 답도 듣지 않아도 되었다.

방금 전의 말로 알아챘으니까.

쉬이익-

어둠이 피어오르자 루위드는 위기감을 느꼈다.

심신압박을 해오고 공간까지 베어버리는 놈이다.

이 어둠도 예사 스킬은 아닐 터.

‘보통의 상태로는 위험하다.’

루위프가 입을 떡 벌렸다. 목젖에서 총구가 앞으로 튀어나온다.

그 앞으로 모이는 마력의 구슬.

‘파동격!’

콰아아아앙!

노란빛이 일대를 광활하게 메웠다.

천마혈사장에 비할 바는 아니었지만, 일반적인 광역 스킬과는 차원이 다른, 실로 엄청난 파괴력이었다.

반경 1km가 넘는 이 거대한 비행정에 작게나마 구멍을 뚫을 뻔한 것이었으니까.

허나, 그 만큼 마력 소비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또한 유세현은 잽싸게 회피한 상태.

후웅-

뿌연 연기 속에서 거대한 손이 튀어나왔다. 어디선가 본 형태.

‘기간트와 닮았군.’

허나 루위드는 기간트 말고도 다른 무기를 지니고 있었다.

그의 주위를 떠다니는 파편조각.

파편조각은 마치 의지를 가지기라도 한 것 마냥 서로 뒤섞이며 검과 창 등 무수히 많은 형상을 만들었다 사라지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의 전쟁무기.

[라 아닐더.]

치지직-

전기신호를 받은 라 아닐더가 창이 되어 유세현을 향해 쏟아 졌다.

어둠을 흩뿌리자 라 아닐더는 위아래로 갈라지며 회피하는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정말 별게 다 있군.’

유세현은 루베르크를 휘둘러 방어했지만 갑작스럽게 파편조각으로 나뉘는 덕에 전부 쳐낼 수는 없었다.

치직.

팔을 스쳐지나가기 무섭게 길게 남는 자상.

유세현의 내구력이 A랭크에 거의 다다른 상태였으니 라 아닐더는 실로 엄청난 날카로움과 경도를 지녔다고 볼 수 있었다.

< 요새전(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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