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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30화 (230/612)

< 요새전(2) >

그의 말마 따라 렉스를 붙잡은 건 자신이었으니까.

그는 사실 렉스가 정신적 한계에 몰려있다는 것 또한 어렴풋 느끼고 있었다.

이런 건 내색하지 않으려고 해서 티가 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시도 때도 없이 숨통을 죄어오는 적과 빛 한줄기 들어오지 않아 어둡기 그지없는 방공호의 내부.

아무것도 없는 흰 벽지만 붙어있는 곳에서 세 달만 생활해도 사람은 미쳐버린다는데 사실 언제 마음이 붕괴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는 일이었다.

그래서 게릭은 제일먼저 렉스에게 이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가 그토록 원하던 희망을.

공장을 파괴했다는 것과 일만 잘 풀리면 게이트를 손쉽게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심호흡을 한 게릭이 조심히 입을 뗐다.

“렉스. 그 건에 대한 건데 좋은 소식이 있...”

“게릭 잭슨. 현 시간부로 2부대의 모든 것을 너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도록 한다.”

“아니, 렉스 내말을 좀 들어...”

“난 여기까지 하겠어. 잘해봐라 게릭.”

게릭이 말을 끝낼 새도 없이 잽싸게 단검을 빼든 렉스의 손이 본인 스스로의 목을 향했다.

게릭의 눈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본능적으로 손을 뻗었지만 차마 자살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기에 너무 반응이 느렸다.

이대로 목에 단검을 꼽고 스킬을 사용한다면?

“렉스 멈...”

-팅!

그러나 단검이 그의 목에 다다르는 일은 없었다. 난데없이 불쑥 튀어나온 새까만 검이 단검을 쳐내버린 것.

“큭, 넌 뭔데 방해를...”

렉스의 분에 찬 말에 유세현이 입이 천천히 열렸다.

“죽고 싶은 거라면, 밖에 있는 마크와 싸우다 작렬이 전사해라.”

“뭐, 뭐라고?”

“유세현!”

유세현은 손을 살짝 들어 게릭의 행동을 저지했다.

두 사람이 나눈 대화는 무척 짧았지만 이미 유세현은 모든 상황파악을 끝낸 상태였다.

“렉스라고 했나. 넌 네가 지금 겪고 일이 모두 게릭 때문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틀렸다. 이 상황은 네가 선택한 거다.”

“...뭔 개 같은 소리를...”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한 가지만 묻도록 하지. 게릭이 너를 힘으로 붙잡았나? 아니면 억지로 지휘관 자리에 앉혔나? 만약 이 둘 중 하나라도 부합된다면 다시 자살해라. 이번에는 말리지 않겠다.”

“......”

렉스는 차마 움직일 수 없었다. 틀린 말이 하나도 없었으니까.

잠시 기다리던 유세현이 말을 이었다.

“렉스, 선택한건 너다. 그 누구도 아니야. 넌 비겁하게 책임을 전과하고 있는 거다. 전부 다 게릭 탓이라고 말이야.”

“......”

억지로 들춰진 마음.

공허하기만 하던 렉스의 눈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내 터져 나오는 실소.

“하...그래서 나보고 나가서 싸우다가 죽으라고 한 거냐? 지휘자로서 책임을 다하라고? 하지만 네 말대로라면 자살도 내 선택이다.”

“그렇지. 하지만 적어도 억울하다는 듯이 자살하진 마라.”

“이 새끼가...”

유세현의 말은 렉스의 속을 바득바득 긁어놓기에는 충분했다.

게릭은 속으로 감탄했다.

그 답지 않게 계속 도발하는 것이 이상했는데 이제야 그 이유가 이해가 된 것.

렉스의 표정에 생기가 완전히 돌아왔다.

위로, 희망. 그 무엇도 아닌 분노 때문에.

“너...어디서 굴러들어온 개뼈다귀냐.”

덕분에 분위기는 살벌해졌지만 이 정도는 게릭이 커버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진정해라 렉스. 내가 전부 설명해 줄 테니. 하지만 지금은 그것보다도 너에게 전해줄 정보가 있다.”

“......”

결국 렉스는 게릭이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동그랗게 커지는 눈.

“고, 공장을 파괴했다고?”

“그래.”

“허...말도 안...”

“못 믿겠으면 나중에 정찰병을 보내봐라. 지금 우리는 놈들의 비행정을 떨어트릴 계획도 가지고 있다.”

비록 모든것이 유세현에게 달려있긴 하지만, 거짓말은 아니었기에 게릭은 당당히 말했다.

“비행정을? 어떻게! 무슨 수로!”

“그보다는 탈출이 먼저야. 절대 허튼 소리가 아니야. 만약, 내말이 거짓이라면 나중에 내목을 따라.”

“......”

렉스의 손이 스스로의 관자놀이를 향했다.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하던 그의 입에서 걸걸한 욕이 터져 나왔다.

“이런 씨팔! 이젠 쪽팔려서 자살할 수도 없고...유세현이라고 했나? 너 이거 노린 거지?”

“......”

유세현은 긍정하지도 부정하지 않았다.

사실, 그가 죽지 않았으면 하긴 했다.

지휘자가 자살이라니.

전력손실이야 그렇다 쳐도, 사기가 엄청나게 저하 될 것이 분명했으므로.

허나, 그렇다고 해서 유세현이 꼭 자살을 막을 생각으로 그에게 일침을 가한 것은 아니었다.

그가 이러한 행동을 한 것은 게릭이 죄책감에 물들어 렉스의 전처를 밟게 하지 않기 위해서.

만약 렉스가 재차 자살을 시도했다면 보내주었으리라.

정신 차린 렉스는 정황부터 살폈다.

“옘병...완전 좃됐군. 미안하다 게릭. 내가 정신을 놓고 있는 바람에...”

“됐다 임마. 아직 늦지 않았어. 바깥에 있는 내 병력이 함께 퇴로를 확보하면 돼.”

게릭과 렉스는 동료답게 호흡을 맞췄다.

의외로 많은 준비를 해둔 것인지 작전이 짜지는 것은 한순간.

“그럼 정확히 한 시간 후에 보자고.”

“그래, 들키지 말고 조심히...”

그 순간.

콰아앙!

귓가에 커다란 폭음이 들려왔다.

입술을 질끈 곱씹은 렉스가 부하에게 물었다.

“염병할! 어디 쪽이 발각 된 거냐!”

“A-1 입구입니다!”

“봉쇄해! B-2출구로 지금 즉시 나간다!”

“그곳에도 적이 있습니다만...”

“어쩔 수 없어! 현재로서는 그곳이 최선이다.”

옳은 판단이었다.

작전이고 자시고 지금 안 나가면 이곳에서 생을 마감하게 되리라.

그렇게 이루어진 준비태세.

생존자들은 패닉을 일으키지 않고 빠릿빠릿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렉스가 평소 훈련을 착실히 시켜놓은 것이 분명했다.

유세현이 B-2출구로 질주했다.

이런 밀폐된 공간에서는 출구를 확보 했냐 확보하지 못 했냐의 그 사소한 차이가 무척이나 크게 작용하기에.

유세현의 행동을 본 렉스가 게릭을 향해 외쳤다.

“야! 쟤 붙잡아! 혼자 나가면 개죽음...”

“아니. 유세현이라면 괜찮아.”

“뭐?”

렉스는 그 말의 의미를 B-2출구를 나간 후에야 알 수 있었다.

부서지고 잘려나가고.

놈들은 마치, 천적을 만나기라도 한듯 힘도 써보지 못하고 당하고 있었다.

마크를 베어 넘긴 렉스는 이상함을 깨달았다.

‘이놈들 움직임이 좀...’

단순히 느리거나 한 것이 아니다. 뭔가가 부자연스럽다.

‘아무튼 이건 기회다.’

“뚫어라!”

생존자들은 물밀듯이 쏟아졌다. 해일과도 같이 파죽지세로 휩쓸고 지나가는 이들.

마크들의 지휘관 오벨로가 당황스러운 음성을 토해냈다.

[어떻게?]

본래 이렇게 될 수 없는 노릇이었다. 입구를 잘만 봉쇄하면 적은 인원으로도 무수히 많은 적을 상대할 수 있기 마련이니까.

더군다나 그들은 수도 부족하지 않다.

그런데 밀리다니?

그 순간 암흑투기가 오벨로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뭐, 뭐냐 이건...’

노출된 메인칩을 누군가가 꽉 움켜쥐고 있는 느낌.

그 순간 시퍼런 검날이 시각렌즈에 잡혔다.

오벨로는 잽싸게 몸을 틀었지만 그럼에도 왼팔이 잘려나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가짜인간 주제에...]

허나, 개조된 그의 육신에 달려있던 팔은 총 6개.

남은 5개의 팔에 부착된 총구가 불꽃을 토했다.

투두두두!

상상할 수 없는 빠르기와 물량이었지만 유세현은 그것을 전부 회피했다.

쇄도하는 검.

치지직.

칩으로 향하는 유세현의 손을 본 오벨로가 비릿한 조소를 내뱉었다.

[크크크. 어차피 네놈들은 이곳에서 전부 죽을...]

콰드득.

코인을 흡수한 유세현은 다음 적을 향해 나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 순간 머리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공간 자체가 새까맣게 물드는 것이 먹구름 같은 것에 햇빛이 가려져 생긴 현상이 아니었다.

지잉 지잉 지잉 지잉.

무심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 생존자들의 표정이 사색으로 변해간다.

지금까지 줄곧 섬 위에 떠있던 비행정이 지금 그들의 머리 위에 있었다.

멀리서 볼 때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

“미, 미친...”

일순간 원형으로 된 비행정의 끝 부분이 번쩍였다.

이것의 의미를 알고 있는 렉스와 팀장들이 황급히 외쳤다.

“저, 전군 산개하라!”

콰아앙!

쏟아지는 보랏빛의 입자포.

빔 병기처럼 보이는 것에 비해 속도가 그렇게 빠른 편은 아니었으나, 사람들이 뛰어서 회피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특히나 입자포의 중심부에 위치해있는 생존자들은 빼도 박도 못했다.

“끄아아악!”

빛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생존자들.

단순한 위력 면에서는 드래곤이 내뿜었던 브레스를 능가하는 파괴력이었다.

유세현은 어떻게 해야 될지 생각했다.

비행정이 오고 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엄청난 양의 마력이 대규모로 이동하는 것이 느껴졌으니까.

그래서 최대한 빠르게 아린과 합류하려 한건데...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상황은 더욱 안 좋아진다.’

게다가 지금 비행정의 아래에는 무수히 많은 사람이 있다.

놈들도 이들에게 집중하고 있을 터이니 몰래 잠입하기에는 최적의 상황.

‘혼자 간다.’

순식간에 결론을 내린 유세현은 디코이를 몸에 붙이고 곧바로 천마군림보를 운용했다.

* * *

삐빅. 삐비비비빅-

치이잉.

해킹이 가능하다는 것을 적이 눈치 채지 못했기에 내부로 잠입하는 건 손쉬웠다.

금속으로 이루어진 벽과 바닥.

유세현은 위치가 어딘지 부터 잽싸게 확인했다.

‘A-1 지역인가.’

시스템 제어실에서 그나마 거리가 가까운 장소. 그는 천장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장소가 있나 살폈다. 아쉽게도 조금 나아가야만 있었다.

검으로 자른 뒤 올라갈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조금이라도 파손되면 경보가 울릴 수도 있다는 루크루프의 경고가 떠올랐기에 실천하지는 않았다.

그는 마력과 소리에 집중하며 조심조심 걸어 나갔다.

웃고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들려온다.

“캬아~인간 놈들의 비명소리는 언제 들어도 듣기 좋다니까?”

“키키키. 이거 개 변태 새끼네.”

“흐흐, 나 원래 19금으로 개발 된 안드로이드인거 몰랐냐?”

“어이고 잘나셨수.”

마크들은 드론이 전송해주고 있는 화면을 보고 있었다.

마치 영화를 감상하는 사람처럼 잔뜩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들은 유세현이 지나가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잽싸게 천장위로 올라간 유세현.

‘개발자들이 어떤 놈들이었을지 뻔히 보이는군.’

그는 발소리가 들리지 않도록 전선 뭉치를 밟으며 이동을 개시했다.

* * *

상황실에서는 루위드가 좀 더 생생한 음량과 선명한 화질로 영상을 즐기고 있었다.

반격해보려 노력하지만 막강한 화력 앞에 무릎을 꿇는 인간들.

루위드는 포격요새를 가동시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마력 효율이 좋은 편이 아니라 축적해놓은 마력이 상당히 많이 소비 되었으나 그래도 기분 전분전환은 충분히 되었기 때문.

그래, 오랜 전쟁에는 때때로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풀어줄 필요가 있는 법이다.

“크흐흐. 과연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30분? 1시간?

그 와중 생존자들이 더 튀어나오자 루위드는 환호성을 질렀다.

“크크크, 다른 팀도 있던 거였나? 이렇게 되면 이곳에서 아예 끝장을 볼 수도 있겠는데?”

허나 그것도 잠시.

폭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에 그 큰 포격 요새의 선체가 미친 듯이 요동쳤다.

아린이 시전한 마법이었다.

치지지직.

외벽이 일부 찢겨져 나갔다는 경고음이 울린다.

이어지는 생존자들의 스킬 세례.

인상을 살짝 구긴 루위드는 좀 더 높게 날 것을 지시했다.

몸체를 만드는 것과 같이 고치는데도 상당한 제물이 소요되기 때문.

허나, 이상하게도 그의 지시는 받들어 지지 않았다.

“뭐냐. 왜...”

이상하게 생각한 루위드가 재차 지시를 내리려는 찰나.

[모든 격벽이 폐쇄됩니다.]

< 요새전(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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