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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218화 (218/612)

< 기계제국(1) >

지드먼이 루시아의 손을 잡아당겼다.

“가자꾸나!”

“......”

한 걸음 두 걸음.

이끌려가는 루시아의 시선은 도무지 숲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붕괴속도는 더욱 빨라져 어느새 물이 바로 앞까지 차올랐는데,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은.

빛에 휩싸인 그녀가 입술을 질끈 곱씹는 순간.

그녀의 눈동자는 지진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

스슥!

타다다닥!

생존자들이 그렇게 바라고 바라던 남자가 이곳을 향해 질주해고 오고 있었다.

무엇인가를 주렁주렁 매단 채.

“야 칼리드! 꽉 잡아! 놓치면 우리 전부 다 죽는 거야!”

“알고 있어 미친놈아! 안 그래도 힘드니까 그 입 좀 다물어!”

정체는 다름 아닌 생존자들이었다.

슈우욱!

뒤로 가루다들의 스킬 세례가 이어진다. 루시아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내 방어스킬을 펼쳤다.

쿵!

쨍그랑!

너무 극소량의 마력이고, 정신력이 부족해 얼마 버티지는 못했지만, 유세현이 빠져나오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포탈 게이트 앞에선 아린이 손짓했다.

“빨리 오게! 빨리!”

유세현은 온 힘을 다했다.

연이어 벌인 전투와 마력재생.

그 부작용으로 인해 체력은 저하 될 대로 되어 심장은 당장 부서질 것만 같았고 허벅지는 터질듯이 지끈거렸지만 입을 악물고 질주했다.

잠시 뒤 환한 빛이 유세현과 생존자들을 포근하게 감쌌다.

* * *

“후우...후우...”

유세현은 환경이 변화하기 무섭게 주위를 살폈다.

가루다들은 다른 장소로 이동된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먼저 넘어와 있던 생존자들의 입에서 환희어린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세, 세현씨!”

“살아서 오실 줄 알고 있었어요!”

무척 격한 반응.

고개만 살짝 끄덕인 유세현은 평소처럼 마력의 흐름부터 살폈다.

D랭크, C랭크 등급의 마력이 주위에 다수 분포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C랭크 마력을 가지고 있는 생명체 몇몇은 이곳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수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몬스터? 아니면 적?’

판도라 외부에는 무수히 많은 종족이 살아가고 있기에 특정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유세현은 일단 몸을 숨길 곳을 찾기 시작했다.

정보도 없이 상대와 맞부딪치는 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었으며, 모두 지친 상태에다가 부상자들도 많았기 때문이었다.

제일먼저 눈에 띤 것은 고철이 쌓여 만들어진 산.

이 금방에는 부서지고 망가져 버려져 있는 기계들이 무척 많았다.

형태도 다 제각각.

때문에 알테리아 대륙인들은 잔뜩 경계하는 반면, 현대인들은 의아해했다.

“파, 판도라에도 기계가 존재하는 건가?”

그때, 숨을 곳이 마땅치 않다는 것을 깨달은 유세현이 입을 열었다.

“뭔가가 이곳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가깝고 수가 많아 들키지 않고 빠져 나가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 말에 생존자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지금까지 계속 싸웠다. 그런데 쉬지도 못하고 또 싸워야 되는 것인가.

투정 부린다고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만큼 행동은 재빨랐다.

생존자들은 유세현의 지시에 따라 살짝 볼록하게 튀어나온 언덕에 자리를 잡았다.

후방에서도 무엇인가가 접근해오고 있었지만, 전방 쪽이 좀 더 빨리 나타날 터였다.

잔뜩 곤두서는 신경.

특히나 카텐 같이 부상이 심각한 사람들은 압박감으로 인해 숨이 거칠어지기까지 했다.

귓가에 묘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지잉. 지잉.

기계음이었다.

정체를 확인한 현대인 한 명이 눈을 비볐다.

“저, 저건...”

사람보다 살짝 큰 동체.

놈들은 동물과도 같은 4개의 다리를 가지고 있었으며 두개의 손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달려있는 머리까지.

여기까지였다면 현대인들이 놀라지 않았을 것이다.

지잉.

100마리 가량 되는 놈들의 움직임이 갑자기 멈췄다.

생존자들을 향해 난데없이 돌아가는 목.

탕! 탕! 탕! 탕! 탕!

놈들의 팔, 아니 총구가 불꽃을 토했다. 현대인들은 반사적으로 경악을 내뱉었다.

이제 와서 총이라니!

위력도 꽤나 강하다.

납으로 된 일반적인 탄과는 뭔가 차원이 다른 느낌.

지이잉!

놈들의 발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놈들의 발은 전차의 바퀴처럼 바뀌어져 있었다.

트드드드득.

이어지는 돌격.

유세현이 손을 들자 생존자들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적을 향해 나아갔다.

총이라고 해봤자, 이제 와서는 광역스킬과 비슷한 느낌이었으니까.

놀랐던 이유는 어디까지나 놈들이 기계라는 것 때문이었다.

스텟의 차와 물량의 차가 컸기에 생존자들은 지쳐있었음에도 그야말로 순식간에 적을 쓸어버렸다.

대리자라는 것을 증명하듯 코인이 터져 나왔지만, 몇몇은 그대로 작동을 정지할 뿐 코인을 뱉지 않았다.

영국인 한 명이 고철덩어리가 된 적의 동체를 발로 툭툭 찼다.

“옘병...기계 종족도 있어?”

“기계요? 그게 뭐죠?”

“아, 그러고 보니 넌 잘 모르겠구나. 그...기계란 게 뭐냐면...”

유세현은 엄청난 악력으로 코인을 내뱉지 않는 놈의 갑판을 잡아 뜯었다. 그리고는 손을 푹 집어서 이곳저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마침내 빠져 나오는 자그만 한 칩.

부수자 코인이 뿜어져 나온다.

유세현은 그것을 본 순간 확신할 수 있었다.

이 종족이 예전 이강호가 말해준 종족임을.

기계종족 마크.

마력을 이용한 마력 탄환을 즐겨 사용하는 놈들은 이 영혼과도 같은 칩을 부수지 않는 한 몸체를 바꿔 부활할 수 있는 게 큰 특징이다.

“헉!”

아연실색 하여 다급하게 동체를 찌르기 시작하는 생존자들.

위이잉.

흡사 모기와도 비슷한, 귀에 상당히 거슬리는 소리에 유세현은 고개를 치켜세웠다.

저 높은 상공, 정말 집중해야 보일정도의 자그만 한 무엇인가가 떠 있었다.

‘드론? 이래서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있었던 거였나.’

드론에는 마력이 없고, 소음도 사실 무척 미미한 편이라 발견하기 위해서는 유세현처럼 예민하거나 청각이 상당히 좋아야만했다.

서걱.

순식간에 도약하여 베어버린 유세현은 곧바로 이동을 개시했다.

방금 전에 그것이 자극이 되었는지, 약간 놈들은 물러나고 더 강하고 많은 수의 마크들이 몰려오고 있었다.

산 넘어 산.

케드리나가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는 카텐 앞에 섰다.

“야, 업혀.”

“허억...허억...내가 알아서 할 수...”

“아, 닥치고 빨리!”

“후...”

결국 카텐은 케드리나에게 업혔고, 그 즉시 전투가 발생했다.

아까보다도 훨씬 많은 병력이었지만, 마크도 생명체라 그런지 암흑투기가 통했고 이는 불행 중에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유세현이 양산형과 달리 특이한 몸체를 지니고 있는 마크를 꽉 움켜쥐었다.

“인간세력이 위치한 장소가 어디지?”

내공처럼 특색이 있는 게 아닌 이상 마력으로는 누가 적이고 누가 사람인지 특정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은 놈들을 피해 무작정 움직이고 있는 것에 불과한 것.

위치를 알면 인간에게 갈 수 있다.

물론, 놈이 알고 있을지, 제대로 불지 미지수였지만, 감정이 있다는 것은 협박도 통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시도 해볼 만은 했다.

그는 본보기로 다른 마크의 가슴을 꿰뚫고 칩을 부쉈다.

그러자 인간 포획조의 대대장 아그메크의 노란색 눈이 점등되었다 꺼졌다를 반복했다.

그의 무력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저 장갑을 한 번에 꿰뚫다니...’

저 장갑은 비슷한 스텟으로는 절대 저런 식으로 뚫지 못한다.

양산형이라고 해도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몸체니까.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이 장소는 인간 측 새내기들이 넘어오는 장소.

그리고 새내기의 스텟은 아무리 높아봐야 D랭크 최상정도였다.

그런데 C랭크 부대를 전멸시키는 것으로도 모자라 600에 달하는 정예 포획조까지 몰살 시켰다.

이게 말이나 되는 일이란 말인가?

트득! 트드득!

반응이 없자 유세현은 아그메크의 장갑을 깨부순 뒤 손을 밀어 넣어 칩을 붙잡았다.

사람으로 치자면 심장이나 뇌수에 직접적으로 닿는 느낌.

[마, 말하면 나를 살려줄 건...]

그러나 말을 끝낼 새도 없이.

텅! 텅! 텅!

강철로 이루어진 땅바닥이 미친 듯이 진동했다.

생존자들의 대다수가 비틀거렸다.

대체 언제까지 싸워야 휴식이 가능할 것인가.

눈앞이 흐릿하고 정신이 아늑거린다.

억지로 검을 들어 올린 생존자들의 어깨가 한순간 들썩였다.

이윽고 터져 나오는 탄성.

“어?”

“세, 세현씨! 저거! 저거!”

유세현은 고개만 살짝 돌렸다.

몸을 감싸고 있는 갑주. 그리고 각양각색의 병장기.

밀려오고 있는 것은 마크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생존자들을 구출하...어?”

이미 정리가 되어있다는 것을 확인하기 무섭게 질주를 멈추는 사람들.

고개가 갸웃거린다.

아그메크가 바둥거렸다.

[사, 살려...]

콰득.

칩을 박살낸 유세현이 앞으로 다가서자, 사람들이 당황 섞인 눈빛으로 그를 주시했다.

“너희들은 대체...”

유세현은 그사이 개개인의 마력을 살폈다.

B랭크 초반.

힘 스텟은 아마 그것보다 살짝 더 위일 것이다.

유세현은 새내기인 것만 밝히고 간단히 통성명을 나눴다.

상태가 상태였기에 나머지는 가서 설명하기로 했는데, 이전 때와 달리 배신자 같은 건 없는지 의심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여차하면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알아낼 생각이었던 유세현으로서는 무척 달가운 일.

많은 생각이 차오른다.

이곳은 어디이고, 현재 상황은 어떠할까.

생존자들의 요새는 그다지 멀지 않은 곳, 지하에 위치해 있었다.

들어가기 무섭게 와르르 쓰러지는 인원들.

유세현은 주위를 살폈다.

길이 뒤죽박죽 나있는 데다가, 통로가 서로 얽히고설켜 무척 조악해 보였지만 족히 몇 천 명은 살아갈 수 있을 정도로 무척이나 넓어보였다.

“이곳에서 쉬고 있어라. 일단 보고하고 올 테니.”

그들을 여기까지 이끈 수색조의 팀장, 룽겐은 자신의 상관, 총지휘자에게 찾아가 보고했다.

“생존자들을 구해왔습니다.”

“후우...새내기인가? 그래 이번에는 대략 몇 천 명이 넘어왔지?”

“그게...”

차분히 룽겐이 설명하자 검은 피부를 지닌 남성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뭐? 약 400백명? 그리고 놈들이 포획조를 부쉈다고? 새내기들이?”

“예...역시...말이 좀 안 되죠?”

“야 이 자식아! 말이 좀 안 되긴! 그냥 안 되는 거지! 너 D랭크가 C랭크 잡을 수 있다고 생각 하냐? 수도 적은데?”

“음...그럼 그자들은 대체...별로 거짓말할 이유도 없지 않습니까.”

“하긴, 것도 그렇긴 한데...”

흑인 남성의 표정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사정청취 할거지?”

“예. 물론이죠.”

“그래, 그럼 해서 다시 보고해. 말이 좀 안된다고 생각하면 직접 내 앞으로 데려오고.”

“알겠습니다.”

룽겐이 나가자 흑인남성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 * *

룽겐은 총지휘관실의 문을 두드리기 전 유세현에게 당부했다.

“들어가면 바른대로 말해야 된다. 워낙 성깔이 더러워서 바른대로 말 안하면 어떻게 될지 나도 모르니까.”

그는 결국 유세현의 말을 믿지 않았다.

제법 그럴싸한 이야기였지만 너무 허황되었다고 생각한 탓이다.

‘자기가 무슨 이강호인 줄 아나.’

똑똑똑.

“어 들어와라.”

내부에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뭔가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듯한 음성이었다. 두 사람은 총지휘자의 앞에 가 섰다.

조악한 의자에 앉아 무엇인가를 고민하듯 고개를 푹 박고 있던 흑인 남성이 비로소 머리를 치켜세웠다.

“그래, 너가 이번에 들어온 새내기들의 리더...”

뚝 끊기는 말.

흑인 남성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미친 듯이 흔들렸다.

룽겐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잘못된 거라도 있으십니까?”

“아...아...아...”

유세현이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오랜만이군. 게릭.”

“유, 유세현!!”

게릭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룽겐은 도대체 뭔 일이 일어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원래세계의 친구라도 되는 것일까?

그런데 이어지는 게릭의 다음 말은 가관이었다.

“드래곤과의 전투에서 죽었다고 들었는데...사, 살아 있었던 거냐.”

“...그렇지. 이제 막 이곳에 도착한 참이다.”

“......”

그 말에 게릭의 안면근육이 살짝 움찔거렸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룽겐, 의자 하나 더 가지고 와라.”

“...총지휘자님께서 앉고 계신 그게 전부입니다만”

“에이 썅!”

게릭은 깔고 앉고 있던 의자를 유세현에게 건넨 뒤 자신은 테이블에 걸터앉았다.

< 기계제국(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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