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16화 (216/612)

< 멸족(3) >

콰득.

목을 비틀어버리자 오크의 몸속에서 데루오나의 본체가 튀어나왔다.

다른 사람의 육체로 갈아타기 위함이었지만.

푹.

그림자는 채 3보를 이동할 수 없었다.

[캬아아아아!]

서걱.

괴로워하는 놈을 그대로 갈라버린 유세현은 팔찌를 억지로 빼냈다.

아이템 명: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의 팔찌.

등급: 레전더리 [C Rank]

상세정보: 천재박사 루크아프 라 루크루프가 제조한 기계 팔찌입니다.

특정 주파수에 대해 간섭작용을 일으키는 MP주파수를 지니고 있으며 기본적으로 주파수에 의한 탐지를 막아줍니다.

공명음을 발산할 수 있어 파동, 정신계열 스킬의 효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정보창이 떴지만 확인할 여유는 없었다.

데오펠을 포함한 여타 데오폴론들이 와르르 몰려든 것.

“네놈 따위가 넘볼 아이템 아니다!”

콰과과광!

스킬의 난무.

유세현은 놈들이 지껄이거나 말거나 할일을 했다.

팔찌를 착용하자 금속이 들쑥날쑥 움직인다.

마치, 팔뚝의 두께를 재는 것 마냥.

지잉. 지잉.

빠르게 변화가 일어나고, 어느새 유세현의 팔목에는 팔찌가 장착되어 있었다. 유세현은 곧바로 부패의 어둠을 흩뿌렸다.

솨아아.

[큭!]

육신이 바스라지기 무섭게 또 다른 몸으로 갈아타는 놈들.

유세현은 데오펠을 향해 질주했다.

그는 사실 웬만해서는 마족화를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오크들을 상대한 이후 있을 가루다와의 2차전도 고려를 해야 되는데, 마족화는 마력효율이 좋아진 지금도 한 번 사용하는데 마력을 엄청나게 잡아먹는 탓이었다.

그래서 통상 100배에 달하는 마력회복능력을 개방했을 때만 사용하는 것.

그리고 100배라고 하더라도 만능은 아니다.

쉬익!

퍽!

몰아치던 유세현이 데오펠의 몸을 짓밟았다. 데오펠이 안간힘을 주어 들어 올리려고 했지만.

“크으으으...”

스텟이 월등하게 높아져 꿈쩍도 하지 않았다.

유세현이 검을 치켜세운 바로 그때.

[네가 감히 나의 계획을...]

데오펠의 눈이 번쩍 빛났다.

트드드드!

대지가 거칠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크윽...어떻게 된...”

케드리나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 잡았다.

바로 앞에서 익숙한 음성이 들려왔다.

“크으...정신 차렸냐?”

언제나 티격태격 치고 박던 카텐의 목소리였다.

“으...카텐이냐. 젠장. 놈들에게 당했던 모양이...”

중얼거리던 케드리나의 입이 별안간 꾹 닫혔다.

이제야 본 것이다.

자신의 손에 쥐어져있는 검을, 그리고 그 검이 향해있는 곳을.

그녀의 눈앞에는 자신의 검에 심장을 관통 당한 카텐이 서 있었다.

“어...어?”

데루오나가 지배력이 풀리기 직전에 명령을 내렸던 탓이었다.

[서로를 죽여라.]

완벽하게 지배당하지 않아서인지, 카텐을 찔렀을 때의 기억이 수면위로 떠오른다. 카텐은 빨리 정신을 차렸는지 자신을 베지 않았다.

“너, 너...너를 내가...”

케드리나의 떨리는 눈을 본 카텐이 중얼거렸다.

“어쩔 수 없던 거야. 신경 쓰지 마라. 그리고 나 아직 안 죽었어...검이나 빨리 빼줘.”

케드리나는 그 말에 얼른 검을 뺀 뒤 잽싸게 부축했다.

확실히 그의 말대로 초인이 된 현재, 심장을 관통 당했다고 해서 무조건 죽는 건 아니었다.

으깨지거나 완전히 바스라지지 않는 이상 버티고 버티다 보면 회복은 되니까.

허나, 그래도 다른 장기들에 비해 치명적인 것임에는 분명하다.

휴식을 취하면 낫긴 낫는다. 휴식을 충분히 취할 수만 있다면...

그러나 피비린내가 나는 이 전장에서 어디서 휴식을 취할 수 있단 말인가.

“죽어라 인간!”

-캬아아악!

지금도 유세현이 되살린 구울이 아니었다면 당장 서있을 만한 장소조차도 없었다.

그런데 그때.

트드드드!

거센 진동과 함께 하늘에 균열이가기 시작했다.

-쿠구궁!

떨어져 내리는 암석.

너무 익숙해지는 바람에 대다수가 까먹고 있었지만, 이곳은 탑의 내부였다.

그것도 법칙에 의해 중력이 바뀐.

휘이잉.

저편에서 강풍이 불어와 사람들을 덮쳤다.

고개를 치켜세우기 무섭게 생존자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콰과과과과!

무너져 내리고 있다.

남쪽의 끝을 시작으로. 이 공간이, 이 세계가.

[크아아아! 그 몸을 내놔라!]

세 마리의 그림자들이 순식간에 다가와 루시아를 향해 주둥아리를 쫙 벌렸다.

루시아는 옆에 있는 지드먼까지 고려해 크게 방벽을 둘렀다.

“하아 하아...”

상당한 정신력의 소모.

쉬지 않고 전투를 이어온 덕에 그녀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콰드드득.

점점 생기는 균열.

지드먼이 온 힘을 다해 검을 휘둘렀다.

놈의 육신의 일부가 잘려 나간다.

[캬아아악!]

데오폴론의 내구력이 무척 약한 덕에 통한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방벽은 그새를 버티지 뚫려버렸다.

[크으! 내놔라! 내놔!]

그들이 노리는 것은 오직 루시아였다.

그 강한 정예오크의 수많은 스킬을 계속해서 방어해낸 그 능력을 탐하는 것.

체력이 다한 루시아가 계속 회피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그림자가 드리운다.

커다란 입이 바로 앞에 있었다.

자세는 완벽히 무너진 상황.

‘끝인가.’

그녀가 입을 꽉 악문 순간.

후욱!

어떤 이름 모를 힘에 의해 몸이 휙 밀려났다.

마치 정지하는 듯 느려지게 느껴지는 시간 감각.

루시아의 눈동자에는 한 남자가 비치고 있었다.

지금까지 단 하나 뿐이었던 자신의 아군.

자신을 위해 가문, 명예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아버지, 지드먼 아인셰르.

지금까지 그녀의 세계이자 모든 것이었던 지드먼의 입이 뻥긋거렸다.

“살거라.”

꿀꺽.

지드먼을 삼킨 그림자가 요동쳤다.

* * *

푹.

카취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고 부패의 어둠을 발산하자 데오펠이 튀어나왔다. 지금까지 본 데오폴론과는 차원이 크기.

시체의 틈에 모습을 은, 엄폐하며 도망치기 시작한 놈을 뒤쫓으려는 찰나, 하늘을 새까맣게 메우고 있는 가루다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남쪽, 탑의 아래쪽부터 서서히 차오르고 있는 물까지도.

인원들이 빠져나간 뒤 자연스럽게 사라질 세계를 데오펠이 지배자의 특권을 이용해 강제적으로 부순 것이다.

[케르젠이 도착할 때까지 어떻게든 놈이 출구로 향하는 것을 막아라!]

모든 오크 병력이 출구로 쪽으로 집중된다. 제정신인 오크 전사들이 한마디씩 토해냈다.

“취익! 이곳을 당장 빠져 나가 된다! 대장이 당했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맞다! 빠져나가야 된다!”

“대기하라! 갈 땐 가더라도 인간에게 복수는 해야 되지 않겠나!”

“무슨 수로!”

“가루다들이 오면 그때 빠져나간다!”

“크으...이해했다!”

한 명이 뛰어와 유세현에게 외쳤다.

“오, 오크들이 출구로 보이는 포탈 근처를 장악했어요!”

유세현은 최대한 되는 데로 언데드들을 되살렸다. 이제 제한 시간이 거의 다 되어가고 있었다.

되살릴 수 있는 것은 이게 마지막.

나머지 마력은...

“뚫도록 하겠습니다.”

유세현이 오크들을 향해 손을 들어 올리자 광귀 어린 눈빛을 내뱉고 있던 언데드들이 총 공격을 개시했다.

* * *

‘나와. 나와. 나와!’

루시아는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몇 번이고 되삼키며 맹공을 퍼부었다.

지드먼의 몸을 먹은 데오폴론이 혀를 찼다.

“쳇...이런 조잡한 스킬뿐이라니...네 몸이 가지고 싶었지만 이젠 어쩔 수 없지...주기 싫다면 죽어라!”

챙! 챙!

놈들은 큰 부상을 입어야 숙주의 몸에서 나온다. 즉, 어딘가를 딱 죽지 않은 만큼만 찔러야 된다는 것인데.

지금 그녀는 생명에 지장이 안가는 곳을 공격할 수가 없었다.

그런 곳을 찌르는 순간 날아오는 검에 목이 날아갈 것이기 때문.

주위에 사람이 있다면 도움을 청하고 싶었지만.

여유도 없거니와, 그들은 오크의 군세를 뚫느라 겨를이 없었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싸움에 잡생각이 너무 많았던 것일까.

순간적으로 무기를 놓은 지드먼의 손이 루시아의 양손을 낚아챘다.

비릿하게 올라가는 지드먼의 입꼬리.

“크크크! 진짜로 포기한 줄 알았어? 야! 데로타프! 팔 잘린 그딴 몸뚱어리는 그만 버리고 이거나 먹어라!”

그 말에 육체를 버린 그림자가 맹렬한 속도로 지면을 가르며 다가왔다.

루시아는 벗어나기 위해 바둥거렸지만 너무도 완벽하게 붙잡혀 움직일 수가 없었다.

누가 구해준 목숨인데.

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드먼의 얼굴에, 평소 자상한 얼굴이 오버랩 되어보였다.

그녀는 마지막 힘을 쥐어짜냈다.

터어엉!

지드먼과 루시아 사이에 장막이 생기며 육신이 땅을 뒹굴었다.

황급히 자세를 잡으려고 하는 루시아.

그러나 때는 너무 늦은 후였다.

쫙 벌려진 그림자의 입.

데로타프라는 데오폴론이 그녀를 잡아먹으려는 순간.

-푹.

그림자를 꿰뚫고 루시아의 얼굴 바로 앞으로 검이 툭 튀어나왔다.

[크으으으...네, 네놈은!]

쉬익!

시원한 바람소리와 함께 그림자가 반으로 갈라지며 정체가 드러난다.

“아...”

루시아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내뱉었다.

“크으으! 유세혀어어언! 이건 네 동료의 몸이다. 동료 앞에서 죽일 수 있으면 한번 죽여 보...”

데오폴론은 말을 채 끝낼 수 없었다.

시퍼런 칼날이 목을 향해 곧바로 쇄도해 들어왔기 때문.

진실인지 거짓인지 판단할 새도 없다.

숙주가 죽는 순간, 잠식한 데오폴론도 죽게 되니까.

본능적으로 빠져나오는 그림자와 동시에 멈춰서는 검.

데오폴론은 속았다는 것을 깨달을 새도 없이 찢겨져나가는 신세가 되었다.

루시아를 살짝 본 유세현이 지드먼을 가리켰다.

알아서 챙기라는 뜻.

“아...감...”

재빨리 다가온 루시아 입도 뻥끗하기도 전 그는 이미 오크 속으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 * *

“버텨라! 가루다들이 오기까지 버티기로 했지 않느냐!”

“불가능하다 취익! 동족이 죽어나가기만 할뿐이다! 이동한다! 그리고 나중을 도모한다!”

어느새 게이트의 앞에는 데오펠의 충복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촤자작.

눈치 챌 새도 없이 조각조각 잘려나가는 육신.

“허억 허억...끄, 끝난 건가...”

힘이 다한 생존자들은 지면에 털썩 주저앉았다.

날아오는 가루다들을 보며 한 남성이 말했다.

“세, 세현씨. 이제 이동하실 거죠?”

그 말에 땀을 훔치던 유세현이 툭 말했다.

“아뇨. 아직 해야 될 일이 남아 있습니다.”

“...예? 그게 무슨...”

“더미조.”

유세현의 말에 사람들의 몸이 움찔거렸다.

그래, 더미조가 아직 이곳에 도착하지 않았지.

유세현이 몸을 돌렸다.

“혼자 갔다 올 테니 이곳에서 계시기 바랍니다. 가루다들이 몰려오면 먼저 이동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들은 이제 전투를 지속할 수 없다.

그러니 이건 자신을 따라온 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그가 폐허가 된 숲으로 몸을 던지자 사람들은 한동안 그의 등을 멍하니 바라봤다.

* * *

[크으으. 뚫리다니...]

놈이 도망치면 아이템의 회수는 불가능.

재도약 하는 시기가 미친 듯이 멀어지는 것이다. 아니, 기약이나 할 수 있을까.

[케르젠 좀 떠 빨리 이동시켜라!]

[최고 속력으로 이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몇 분 후면 도착합니다.]

보고하고 있는 케르젠의 시야로 북쪽으로 질주하고 있는 수많은 인간들이 눈에 띄었다.

케르젠은 몇 개의 부대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대응하듯 펼쳐지는 아린의 윙 블래스터.

[데오펠님 그 강한 광역마법을 사용 하는 놈이 여기 있습니다. 일단 드시겠습니까?]

[먹겠다!]

위치를 알려준 케르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과연 놈이 남아있을까? 그는 아닐 것이라 판단하고 있었다.

멀쩡하게 정신이 박혀있는 이상 이미 포탈을 타고 빠져나갔겠지.

‘저 몸이라도 먹고 기분이라도 나아지셔야 될 텐데.’

생각에 잠겨있던 케르젠의 눈가가 살짝 움찔거렸다.

가루다가 하늘을 메우고 있다면, 놈들은 지상을 메우고 있었다.

유세현이 만들어낸 구울!

-키아아아.

‘안 갔다는 건가?’

원격조종일 가능성도 있다. 세계는 넓고 신기한 종족과 스킬은 많으니까.

허나, 그런 생각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리움님! 제 2-3부대가!”

가루다가 가리키는 장소는 인간이 있던 장소였다.

흩뿌려지고 있는 부패의 어둠.

케르젠의 입가가 올라갔다.

가지 않았다는 건가. 저놈들은 구하기 위해서!

아니면 만만하게 봤다던가.

가리움이 몸을 틀었다.

“공격해라! 한 마리도 남겨두지 마라!”

< 멸족(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