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붕괴(2) >
“...그렇단 말이지.”
차분한 어조에서는 묘하면서도 의미심장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셀론이 팔을 치켜세웠다.
주위를 감싸듯 펼쳐지는 마법진.
이강호는 그들이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큭...저놈들...”
-콰콰쾅!
이어지는 연쇄 폭팔.
흙먼지가 다시금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흙먼지가 걷혔을 때는 놈들은 모습에서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쿠구구궁!
요동치는 대지.
이것이 붕괴의 조짐이라는 것을 깨달은 빙제가 혀를 찼다.
“예에엠병할! 모두 여기서 뒈지고 싶지 않거든 지금당장 싸움을 멈추거라! 힘을 합쳐 당장 이곳에서 빠져나가야 된다!”
-챙! 챙!
허나 충성스러운 장사월의 심복들은 멈출 줄을 몰랐다. 아니, 장사월이 사라진 것을 아예 모르는 눈치.
-쿠구궁!
그 사이 바위가 무너지며 출구로 향하는 통로를 막아섰다.
“에이이!”
이렇게 되면 힘이 온전한 놈들의 도움을 받아 뚫어야 된다. 그들의 무공이라면 길을 낼 수 있을 것이므로.
빙제의 눈이 줄곧 구경만 하고 있던 고수들을 향했다.
안 그래도 잔뜩 주름진 그의 얼굴에 더더욱 깊은 주름이 생겼다.
“에이이! 빌어먹을 마교 놈들!”
놈들은 이미 잽싸게 튄 상태였다.
이곳에 남아있는 것은 잔뜩 지친 인원들과 장사월의 잔당. 그리고 제물이 되어 죽은 시체 뿐.
‘이대로 있다가는 전부 매장 당한다.’
초인이 된 만큼, 암석 따위에 매장된다고 바로 죽는 것은 아니겠지만.
빠져나간 놈들이 가만히 둘리가 없다.
‘어쩔 수 없군. 상성이 좋지 않지만 해볼 수 밖...’
빙제가 자세를 잡으려는 순간.
-콰아아앙!
흡사 마그마를 보는 듯한 강한 열기가 상공을 향해 일직선으로 솟아올랐다.
동그랗게 뚫리는 구멍.
그 틈으로 빠져나가는 이강호와 유세현이 빙제의 눈에 비쳤다.
-툭.
동시에 유세현이 던진 돌멩이가 빙제의 발밑으로 날아왔다.
먼저 가겠다는 신호.
빙제는 그때 알 수 있었다. 놈들은 단순히 남궁시영을 구하려는 것뿐만 아니라.
완전히 끝장을 볼 생각이란 것을.
빙제가 재빨리 남궁시영을 들쳐 업었다.
“이 아둔한 졸개 놈들아 네 주인은 너희들을 버렸다. 그러니 허무하게 뒈지고 싶지 않거든 그 칼 당장 버리고 길을 열거라! 지금 즉시 이곳을 탈출한다!”
잠시 뒤 아퀼라를 포함한 모두가 빙제의 뒤를 따랐다.
* * *
“놈들을 여기서 죽인다.”
“뭐?”
셀론의 말에 장사월의 둥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번 전투는 그들의 패배였다.
셀론도 이강호를 당해내지 못했고, 자신도 부상 때문에 천마의 제자 놈을 당해내지 못했다.
그런데 여기서 죽인다니?
“놈들은 곧 저곳을 빠져나올 것이다. 그리고 빠져나오기 위해서는 상당한 마력을 소비해야 되지.”
“...그래도 내 몸 상태가.”
“울티마 큐어(Ultima Cure).”
셀론이 지긋이 읊조리자 장사월의 몸이 눈 깜짝할 새에 회복되기 시작했다.
“이, 이건...”
“네가 나에게 신공이란 걸 제공했다면 익혔을 마법이지.”
신성력이 아닌, 마력으로 할 수 있는 치유 중에서 최고위를 자랑하는 치유마법.
“손을 내밀어 봐라.”
“......”
장사월은 일단 말을 따랐다.
“마나 트랜스펄(Mana Transfer).”
마력이 손을 타고 들어온다.
장사월은 셀론을 괴물 같은 표정으로 쳐다봤다.
‘뭐냐...이놈은...’
세레나라는 여자는 여기까지 마법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셀론도 지금까지 이런 걸 사용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보여줄 기회가 마땅히 없던 이유도 있지만.
‘이놈들...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위험하다.’
장사월은 거래가 끝나면 놈들을 전부 죽이려 했다.
마교의 최강자는 어디까지나 자신이어야만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놈들이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더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니.
꼭 없애리라 재차 다짐한 장사월이 입을 열었다.
“갑자기 놈들을 죽이려하는 이유가 뭐지?”
“...방해되니까.”
“무공을 창시하는데 말이냐?”
“그렇다.”
물론, 그런 의미도 포함되어있었다.
허나 셀론이 정말 방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 두 놈들...’
한 놈은 이미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정신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놈은...
셀론이 이곳에 대타로 오기 전 에이션트 드래곤 세레나가 그에게 일러 준 말이 있었다.
거래가 끝나면 놈들을 전부 죽이라고.
처음에는 약소 종족을 뭣 하러 신경 쓰는지 그녀의 행동이 이해 가지 않았지만 이번 전투로 확실히 깨달았다.
인간은 무척 위험하다는 것을.
‘이곳에서 놈들을 죽이고. 무공을 받는 즉시 나머지도 싹 죽여 버린다.’
더 이상 강해질 수 없도록. 도달할 수 없도록.
셀론은 장사월에게 보호마법을 걸어주었다.
“이게 놈의 투기에서부터 너의 몸을 보호해줄 것이다. 물론, 그 스킬의 특성상 전부 당해내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많이 나아질 것이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품에서 스크롤 한 장을 꺼내 장사월을 향해 내밀었다.
“이건?”
“정신계 마법, 마나 브레이크 등 여러 마법이 종합되어 있는 스크롤이다. 찢은 뒤 3분 내에 타겟의 얼굴에 직접적으로 접촉해야 된다는 게 큰 흠이라면 흠이지만 이전에 사용했던 것보다 훨씬 강한 것이지. 틈을 봐 사용하도록 해라.”
“크! 이런 것도 준비해 놓다니...잘 쓰도록...”
그 순간.
-쿠우우!
불길이 솟구치며 유세현과 이강호가 튀어나왔다.
셀론의 눈이 번뜩였다.
[그놈] 때문에 마력을 한 번에 폭발시킬 수는 없다.
허나, 이제 막 지상으로 나온 놈들은 완전한 무방비 상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것이다.
‘지금 한 놈을 처리한다.’
초고속으로 영창 된 마법이 사방에서 둘을 향해 쏟아졌다.
강력한 냉기를 머금고 있어 스치기만 해도 생체조직이 파괴되는 6서클 빙계 마법.
[아이스 블래스트(Ice Blast).]
하지만 이강호의 몸을 붙잡은 유세현은 천마군림보를 이용해 이것을 전부 피해냈다.
동시에 셀론을 향해 돌아가는 시선.
“...?!”
유세현이 바람을 뚫고 셀론과 장사월을 향해 빠른 속도로 접근해 나갔다.
셀론은 그 순간 경악을 금치 않을 수가 없었다.
‘위치를 한 번에 알아냈다고?’
마나스캔(Mana Scan)에 대한 대비는 항상 해둔 상태다.
차단 마법도 여러가지 걸어둬서 후각탐지 같은 조잡한 스킬로는 발견하지 못하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분명 그럴 터인데.
‘저놈은 정말로 대체 뭐하는 놈이지?’
증표가 발동 했을 때의 [놈]처럼 저 남성은 너무도 정확하게 위치를 찾아내었다.
‘장사월에게 뭘 해둔건가? 아니...분명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았는데.’
그래, 확실히 아무것도 걸려 있진 않았다.
유세현은 단지 마력의 흐름을 읽었을 뿐이니까.
-슈욱!
콰아아앙!
2:2 격돌.
그들은 서로 뒤엉켜 난전을 벌였다.
번개가 내려치고 화염이 주위를 잠식한다.
비등비등한 형세.
허나, 시간이 지날수록 균형는 조금씩 기울기 시작했다.
“저놈들...”
장사월이 입술을 곱씹었다.
두 사람의 협공이 장난이 아니다.
마치 쌍둥이처럼 오랫동안 합을 맞춰온 그런 움직임을 보인다.
더군다나 패도가 실린 유세현의 검.
검을 받아쳐낸 손목이 아직도 떨린다.
‘지금 사용해야겠군. 분명히...3분이라고 했었지.’
장사월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스크롤을 찢었다.
* * *
“후우...어찌어찌 빠져 나오긴 했구나.”
“허억...허억...선배님들은...어디에...”
두리번거리던 김주희의 시선이 불길이 치솟고 있는 격전지를 향했다.
“도와...드려야 되는데...”
한 발 내딛자, 빙제가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네가 가봤자. 두 사람의 발목을 붙잡을 뿐이다. 그리고 아퀼라라고 했었지? 너도 거기 서거라.”
“...난 가봐야 한다. 가서 죽는 한이 있더라도 마왕님의 힘이...”
“허허. 지금까지 내가 한 말을 잘 못 알아들은 것 같구나. 네가 감으로서 안 죽어도 될 놈이 죽게 되는 게야.”
“...무슨 말이냐. 나는 내 목숨을 바쳐 돕기 위해서 가는 것이다. 그건 말이...”
“되지. 그놈, 타인에게는 굉장히 비정하지만 자기 것은 무척 아끼는 스타일이 아니더냐. 아니면 내가 놈을 잘못 판단한 게냐?”
“......”
아퀼라는 부정하지 못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체력을 아끼고, 마력을 회복하는데 전념해라. 다행이도 교인들도 저 싸움에는 끼어들지 못할 것 같으니.”
빙제의 말마 따라 교인들은 격전의 흉폭함 때문에 좀처럼 다가서지 못하고 있었다.
천마의 제자와 현 마존의 격돌.
격이 달라도 너무 달랐으니까.
휩쓸리면 무엇하나 해보지 못하고 그냥 사망이다.
-콰아앙!
연쇄적인 폭발이 재차 이어졌다.
* * *
-챙!
찔러 들어오는 장사월의 검을 쳐낸 유세현의 눈매가 좁혀져 들어갔다.
‘대체 뭔 짓을 한 거지?’
스크롤을 찢은 이후 장사월 주위 마력의 흐름이 이상하게 변했다.
마력이 장사월의 몸을 휘감고 있는 느낌.
묘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흐른다.
“죽어라 제자 놈아!”
오른손으로 검을 휘두르려던 장사월이 그대로 허리를 돌리더니 왼쪽 손바닥을 폈다.
[귀혼마패장(鬼昏魔覇掌)]
유세현은 황급히 몸을 틀었다.
-콰앙!
응축된 마력이 아슬아슬하게 옆구리를 빗겨나간다.
귀혼마패장이 휩쓴 장소는 휑하게 뚫려있었다.
상당한 마력을 쏟아 부었다는 증거.
‘이놈...지금 끝을 보겠다는 건가? 대체 사용한 스크롤이 뭐 길래...버프마법은 아무리 봐도 아닌 것 같은데...’
일행의 정신을 잃게 한 빛에 대해 주의는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그런류의 마법은 분명 단발성이라고 들었는데.
‘최대한 조심해서 상대한다.’
흑암과 마족화는 드래곤 때를 대비해 아껴둔다.
뭔 짓을 하던지 장사월은 결코 실력으로 자신을 이길 수 없으니까.
유세현은 손을 치켜세웠다. 달려오던 장사월의 몸이 일순간 허공으로 떠올랐다.
[천마등공(天魔騰空)]
물질을 들어 올려 균형을 무너트리는 무공.
“이놈이! 블링크!”
장사월이 재빨리 이동을 했으나, 이 무공은 리버스 그래비티(Reverse Gravity)처럼 일정공간의 중력을 역전시키는 것이 아니다.
즉.
“제기라알!”
이동한 그는 계속 허공에 떠있는 상태였다.
“천근추!”
그는 자신의 몸을 수십 배 무겁게 만들고 나서야 땅으로 내려올 수 있었다.
장사월은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저 빌어먹을 놈이...’
눈치를 챘는지 틈을 보이지 않는다.
이래서는 절대 얼굴에 몸이 닿을 수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
상념을 하고 있던 찰나.
“유세현!”
이강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파앗!
터져 나오는 광명.
셀론의 정신계 마법은 대비한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유세현의 입에서 침음이 터져 나왔다.
‘크윽...’
고통스럽다. 머릿속으로 기생충 같은 무엇인가가 파고들어오는 느낌.
이강호는 이것을 버텼단 말인가!
유세현이 이를 악무는 순간.
-파아아!
어둠이 꿈틀거렸다.
-콰드득 콰드득.
정신력과는 별개로 몸 내부에 있는 흉폭한 힘이. 마왕의 높디 높은 격이 마법의 근원을 잡아먹는다.
셀론은 유세현이 정신계 마법에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장사월!”
“크으!”
장사월은 손을 쭉 뻗었다. 유세현 또한 황급히 검을 내질렀다.
속도는 막상막하.
-턱.
아슬아슬하게 먼저 닿은 것은 장사월의 왼손이었다.
-치지지직!
수십 가지가 복합 된 마법이 내부로 침투한다.
어둠의 마력이 필사적으로 커버를 쳐주고 있었지만, 버티기에는 유세현의 정신력이 많이 부족했다.
“으으윽...”
흐릿해지는 의식.
그 속에서 유세현은 볼 수 있었다.
눈앞으로 떠오르는 하나의 문구를.
[마나 브레이크에 의해 영혼의 귀걸이 일부(우측)가 일시적으로 기능을 정지합니다.]
[영혼을 잡아두는 것이 불가능 합니다.]
[천마(天魔), 독고천의 영혼이 일시적으로 풀려납니다.]
< 붕괴(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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