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77화 (177/612)

< 난투(2) >

일반적인 호신강기로는 버틸 수 없는, 실로 엄청난 열기였다.

남궁시영과 남성의 눈가가 동시에 경련을 일으켰다.

이 불꽃은 설마?

“제기랄. 이건 무슨...”

-타다닥!

말을 내뱉기 무섭게, 암석너머에서 모습을 드러낸 이강호의 창이 남성을 향했다.

남성이 대응하며 다분히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예~엠병! 저 놈은 왜 또 이곳에 있어?”

-채재챙!

순식간에 3합의 공방이 이루어진다.

-후웅!

-퍽!

밀려난 것은 남성이었다.

“크으으! 뭔 놈의 힘이...”

손목을 움켜쥔 남성이 믿지 못하겠다는 듯 이강호를 노려봤다.

그 사이 이강호는 남궁시영에게 다가갔다.

“몸은 좀 어떻습니까?”

차분히 묻는 이강호를 올려다보는 남궁시영의 얼굴은 여전히 멍했다.

끝났다고 생각하고 있던 그녀였다.

도움은 바라지도 않았고, 바랄 수 도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그런데. 그럴 터인데.

“왜, 이곳에...”

중얼거리는 순간 저편에서 귀신처럼 산발머리를 한 여성이 지면에 착지했다.

이강호가 지금까지 상대하고 있던 적들 중 하나인 백령이었다.

“백령! 저놈이 왜 여기에...”

묻는 무사의 말이 뚝 끊긴다.

타버린 옷자락과 새까맣게 그을린 피부.

나체의 모습을 하고 있는 백령의 상태는 가히 좋지 못했다.

“백령 너...”

“큭. 꼴이 말이 아니네.”

“역시 놈에게 당한 거냐?”

“수치스럽지만...맞아.”

“사무월은 어디 있지? 같이 협공하기로 하지 않았었나?”

“...그 자식은 죽었어.”

“......”

죽었다는 말에 세 명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비록 사이는 안 좋더라도 사무월은 무려 7위의 강자다.

무려 7위!

그런데 단독도 아니라, 백령과 협공을 했음에도 당했다는 것인가?

이는 지금처럼 대충 웃어넘길 수 있는 일이 결코 아니었다.

“너희 둘을 상대로 대체 어떻게...”

“정말 한순간에 당했어. 저 자식의 불길이...”

“불길이 뭐?”

“사무월의 화기를 집어삼켰어.”

“......”

사무월은 양공으로는 마교에서 제일이었다. 그런 자를 불로 제압한 다라.

그렇다면 당할 만도 했다.

특기분야에서 밀릴 거라고는 차마 생각하지 못 했을 테니까.

그때였다.

남궁시영을 순식간에 안아들은 이강호가 반대편을 향해 도약했다.

대화를 전부 엿들은 남궁시영은 그제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 남자는 자신을 구하러 왔다는 것을.

우연 같은 것이 전혀 아니었음을.

“쫓아! 여기서 끝을 내야 된다!”

“명령하지 마! 나도 그럴 생각이었으니까.”

요주의 인물로 점찍은 놈들이 곧바로 뒤를 따랐다.

남궁시영이 중얼거렸다.

“저를 놔두고 이 장소에서 이탈하세요. 공께서 아무리 빠르다고 하시더라도 경신술 때문에 저를 안고서는 머지않아 따라 잡힐 거예요.”

그럼에도 이강호는 남궁시영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저 다시 물을 뿐이다.

“몸은 어떻습니까?”

“...조금 회복이 되긴 되었어요. 하지만 내력을 전부 소진한 덕에 그들을 상대하는 것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저를 놓고...”

“그렇다면 숨어 있다가 당운룡씨를 찾아 합류해 있으시기 바랍니다. 혹은 그대로 빠져나가셔도 됩니다.”

“예? 그게 무슨 말인가요?”

이강호가 남궁시영이 입고 있는 무복을 꽉 움켜쥐었다.

“...강호공?”

그리고는 높게 솟아난 암석에 잠시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 우측을 향해 던졌다.

동시에 좌측으로 꺾이는 이강호의 육신.

-화르륵!

시선을 끌기위한 불길이 솟구친다.

남궁시영은 빠르게 멀어져가는 이강호를 보며 생각했다.

고작 해 봐야 두 달 남짓 본 사이인데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몇 년을 함께한 사람조차도 자신을 배신했는데.

-두근.

다른 의미로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어느새 그녀의 눈앞에서 이강호는 완전히 자취를 감춘 상태였다.

* * *

-촤아아악!

수많은 물줄기들이 백청, 박귀원, 양미라를 향해 소용돌이 쳤다.

전후좌우. 사방에서 날아오는 것이기에 그들로서도 회피는 불가능.

할 수 있는 것은 빙공으로 얼려서 막거나, 아니면 강한 힘으로 밀쳐내는 것뿐이었다.

동그랗게 빙벽을 만들어 방어한 양미라가 혀를 찼다.

“이런 썅! 저거 진짜 뭐야?”

물을 마음대로 다루다니, 이는 이 세계에 들어와 기이한 능력을 봐온 그녀로서도 지금까지 한 번도 보지 못한 능력이었다.

그나마 뇌전, 빙공, 음공이라는 극상성 무공이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일반적인 무공을 지닌 자들이었다면 쏟아지는 물세례에 그대로 수장 당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물을 통과하는 음공을 지닌 박귀원의 육신을 물의 창이 정확히 꿰뚫었다.

상당한 부상.

“크으윽! 이런, 개 같은 년이...”

박귀원이 도를 들어 올리며 당장에 달려 드려하자 백청이 재빨리 어깨를 붙잡았다.

“진정해라. 내가 봤을 때 거의 끝났다.”

“크윽. 끝나긴 뭘 끝나! 이거 놔! 내가 직접 찢어 죽여야...”

“그러다가는 네놈이 죽을 거다.”

“뭐? 이 새끼가 보자보자 하니까...너도 내 도에 한번 찢겨봐야 정신을...”

박귀원이 으르렁거리자 양미라가 백청을 향해 말했다.

“놔줘버려. 뒤지고 싶다는 놈을 왜 굳이 말려?”

“...양미라 네년...”

“어머, 설마 틀린 말이라고 생각하는...”

-촤르륵!

그 순간 물의 세례가 한 번 더 쏟아졌다. 양미라가 부릅뜬 눈으로 김주희를 주시했다.

“아오, 진짜 개 같은 년...곱게 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양미라가 쥐고 있던 창을 크게 휘둘렀다. 그러자 사방으로 냉기가 퍼져나가며 거대한 꽃의 형상을 만들기 시작했다.

마라빙공(魔羅氷功).

[빙계위상화(氷契僞狀花)]

-트드득.

얼마 남지 않은 물이 빠르게 얼어간다. 얼어붙은 물은 이윽고 중력에 의해 지면으로 떨어져 부서져 나갔다.

김주희가 인상을 와락 구겼다.

저 빙공만 아니라면, 그래서 물을 계속 다룰 수만 있었다면 이길 수 있을 터인데!

“운디네 물을 더 만들어줘!”

“마력이 간당간당해! 김주희! 그냥 도망쳐!”

“뭐?”

“너랑 나와는 너무도 극상성인 존재들이야. 주위에 물이 충분하다면 몰라도 암석뿐인 지금은 이길 수 없어. 트라이던트에 내제 되어 있는 스킬도 다 사용 했잖아?”

“......”

“거기다가 저 뇌공이라는 거 위력이...”

-치지직!

때마침 날아온 백청의 뇌전이 김주희와 운디네를 휩쓸었다. 김주희와 운디데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그래...저 뇌공...우리가 웬만 큼의 저항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저건 당해낼 수 없어. 그러니 내가 시간을 끌 테니까 넌 도망쳐. 네 덕에 저놈들도 마력을 엄청나게 소비했으니 2분정도는 버틸 수 있을 거야.”

“......”

“김주희. 잘 생각해. 죽으면 그걸로 끝이야. 세현 오빠나 강호 오빠에게 가! 분명히 어떻게든 해 줄 거야.”

“운디네...”

“빨리 가라고, 멍청아! 네가 죽으면 누가 나 소환해주냐?”

김주희가 운디네를 지긋이 쳐다봤다.

항상 티격태격거리지만 우습게도 그녀는 최고의 파트너다.

“야, 운디네.”

“고마우면 나중에 유지시간이나 늘려...”

“아니, 그런 게 아니고 2분은 너무 짧아 5분은 버텨봐.”

“아오, 이년이 정말...최대한 해볼 테니까 가!”

김주희가 몸을 돌리자, 양미라가 눈에 불을 켜고 달려들었다.

“어딜 가려고!”

운디네가 마법을 사용하며 앞을 가로막았다.

“너희들은 내 상대야.”

“이런 손톱의 때 같은 게!”

김주희는 얼마 안 가 운디네가 역소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분 밖에 못 버텼지만, 스텟이 높아 거리는 어느 정도 벌여둔 상황.

‘잘 만하면 갈 수 있어...’

허나 그때였다.

“어딜 그렇게 급히 가는 거지?”

“......”

무사 한 명이 앞을 가로막았다. 지금까지 당운룡 쪽을 상대하고 있던 인원이었다.

“흠...양미라가 상대하기로 한 계집이군. 어떻게 아직 살아있을 수 있는 거지?”

진퇴양난.

앞은 1명, 뒤는 3명이었다. 그렇다면 당연히 뚫어야 되는 쪽은?

‘무슨 무공을 사용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차피 더 이상 스킬을 사용할 수 없다.

“흠...설마 그 세 명이 당한 건 아닐 테고. 도망 치고 있는...”

말을 하건 말건 김주희는 매섭게 몰아쳤다.

좌 찌르기에서 이어지는 올려치기.

[아르카드 창술 제 3식 광풍난무(狂風亂舞)]

이것은 검법을 구사하는 기사를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대응 창술법이었다.

-팅팅팅!

연계가 이어질수록 조금씩 틈이 벌어진다.

병장기를 맞댄 김주희는 알 수 있었다.

눈앞의 적은 겉보기에 굉장히 멀쩡해 보였으나 사실 많이 지쳐있다는 것을.

이 기세를 몰아 단번에 뚫는다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호오, 양미라보다도 훨씬 나은 창술이군.”

-휘이잉!

거센 검풍이 일었다.

풍압을 이겨내지 못한 김주희의 몸이 한순간 붕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암석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양미라가 혀로 입술을 훑었다.

“끝이다! 빌어먹을 년아! 스킬코인이나 남기고 사라져라!”

창끝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냉기 돌풍이 날아온다.

방향을 틀 수 없기에 이것은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이건 적중당하면 필히 죽는다.

“으윽!”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튜토리얼에서도, 구름섬에서도, 유적에서도 이러한 위기를 여럿 이겨냈다.

유세현도 필히 포기하지 않았으리라.

그녀는 창을 횡으로 펼쳐 방어자세를 취했다.

이를 본 양미라가 광소를 터트렸다.

“깔깔깔! 창대로 이걸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이제 냉기돌풍과 김주희의 거리는 불과 10m.

어떻게든 버텨내리라 다짐한 그녀가 입술을 악문 순간.

“에이이~!”

컬컬한 목소리가 귓가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가라앉는 냉기돌풍.

김주희가 화들짝 커진 눈으로 목소리가 울리는 방향을 살폈다.

그녀는 이 목소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 이 목소리는.

“할아버지?”

“에이이~!”

빙제, 설광현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양미라가 만들었던 얼음과는 한 차례 차원이 다른, 새하얀 얼음조각이 양 옆으로 뻗어나간다.

그 순간 양미라 눈이 화들짝 커졌다.

“이, 이건! 전부 뒤로 물러나!”

그들은 재빨리 백스텝을 밟았다. 얼음조각이 지나간 자리는 마치 길이 난 것처럼 전부 꽁꽁 얼어있었다.

반응하지 못했더라면 육신이 전부 얼어버릴 뻔한 것!

“하, 할아버지 여긴 어떻게...”

“보면 모르겠느냐?”

“...혹시 도와주시...”

“술 마시다 질려서 산책 나온 게다.”

“......”

솔직하지 못한 사람.

어떻게 알고 찾아 온 것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땀이 송글송글 맺힌 빙제의 이마를 확인한 김주희는 알 수 있었다.

그가 부리나케 뛰어왔다는 것을.

“그래서...산책은 어떠셨나요?”

“에잉~불청객들이 하도 많아서 마음껏 거닐기도 힘들구나.”

“그렇죠...”

창대를 지지대 삼아 힘겹게 자세를 유지하던 김주희가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이던 양미라의 표정이 흉악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백청이 중얼거렸다.

“저 노인...아무리 봐도 빙제처럼 보이는 데...”

“크...맞아. 틀림없어. 이렇게 기분 나쁘도록 새하얀 빙공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이제 그 노친네 밖에 없으니까.”

“흠...3대 1이라...”

내력까지 생각해 아슬아슬하다라고 백청이 생각한 찰나.

“너 이 새끼. 왜 나는 제외 하고 세냐?”

상처 때문에 뒤늦게 합류한 박귀원이 성을 냈다.

그들을 무심히 바라본 빙제가 툭 말했다.

“에잉~귀찮구나. 마음 같아서는 그냥 가고 싶지만 마교라면 이야기는 달라지지. 저놈들 마교인이더냐?”

“예, 할아버지.”

“에이이~그럼 어쩔 수 없구나. 상대할 수밖에.”

말을 마친 빙제의 눈동자가 돌변했다. 오랜 기간의 경험이 빠르게 견적을 낸다.

‘이 아이가 이정도로 궁지에 몰렸다는 건 상당히 강자라는 건데...’

그만큼 적의 상태도 좋지 않다.

‘4대 1이라...가능하겠군.’

그리고 그 생각을 한 것은 빙제 뿐만이 아니었다.

“우리가 제대로 협공만 한다면 빙제를 잡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백청의 말에 양미라가 물었다.

“승산은?”

“반반.”

“크크...네가 그 정도라고 본다면 괜찮네. 넌 안정주의자니까 말이야.”

“......”

양미라가 창을 쥐자, 빙제가 앓는 소리를 냈다.

“껄껄. 한번 해보겠다는 게로구나.”

“그렇지. 꿇릴게 전혀 없는 걸? 그보다 노친네. 당신을 죽이면 그 잘난 빙공이 나올까?”

“허허. 누구처럼 당돌하구나.”

누구는 과연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 김주희는 모른 척 넘어갔다.

빙제가 연이어 말했다.

“허나, 천박하군. 행여나 내가 죽더라도 내 무공이 네게 가는 일은 없을 테니 염려 말거라.”

“지금 죽을 노친네 주제에 말이 많아!”

양미라를 포함한 인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한 순간 감겼던 빙제의 눈이 번쩍 떠졌다.

김주희를 대할 때와는 전혀 다른 눈.

그는 눈앞의 모든 상대를 찢어버릴 만한 강한 기백을 내뿜고 있었다.

< 난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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