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71화 (171/612)

< 빙공의 행방 >

판도라로 넘어오게 되면서 실전된 무공서적.

때문에 기본 지식이 없는 현대인이 무공을 배우기 위한 방법으로는 딱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숙련도 100%에 오른 자가 직접 저술해놓은 무공비급, 즉 스킬 북을 손에 넣는 것.

또 하나는 타인에게서 무공을 승계 받는 것.

그리고 마지막은 던전의 보상으로 얻는 것이다.

첫 번째 같은 경우에는 무공을 온전하게 전부 얻는 것이 아닌 일부만 배울 수 있다.

9파의 문주나, 세가의 가주들조차도 무공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했기 때문.

그렇기에 홍등점주를 이겨서 무공을 획득한 아퀼라의 경우에도 배울 수 있는 것들은 홍등점주가 마스터한 환희심법이나 혼미양전화(混美樣展花)등 비전절기중에서도 주로 사용하는 절기나 기초무공뿐이었다.

그리고 이런 식으로 스킬을 입수하게 되었을 경우, 이론을 모르고 정식적인 절차를 밟지 않은 스킬의 등급은 레전더리로 환산되어 숙련도 100%를 찍어도 무공비급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

무공비급의 제작은 에픽 스킬, 오리지널 등급을 지닌 자 만이 가능한 것이다.

두 번째는 말 그대로 타인에게 물려받는 것이다.

단, 승계를 했을 경우 본래 힘의 주인은 모든 무공을 잃게 되고, 계승자에게 숙련도가 유지되는 것 또한 아닌지라 죽으면 죽었지 대개 승계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유세현의 심법이나 권능은 진짜배기였다.

“후우...”

김주희의 입에서 별안간 깊은 한숨이 터져 나왔다. 이 도시에 들어 온지도 오늘로서 벌써 열흘째.

그녀는 유세현이 남궁시영을 붙잡고 있는 동안, 꽤나 좋은 심법을 얻는데, 아니 몰래 탈취하는데 성공한 상태였다.

[음황강심법] [제황파심법]

허나, 김주희는 이것을 바로 배우지 않았다.

심법은 한번 익혔을 시 되돌릴 수 없는 탓이다.

또한 무공은 심법과 적당히 기운이 맞지 않으면 사용하지 못한다. 혹은 사용할 수 있더라도 위력이 많이 떨어지게 되고.

때문에 그녀가 익히고 싶은 것은 이전 이강호가 한번 거론한적 있었던 빙공이었다.

그것을 익히게 된다면, 현 스킬과의 시너지도 무척 좋을 터인데.

3류 심법도 배우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는 낙오자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무척 배부른 소리였지만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아퀼라 조차도 운이 좋아 딱 맞는 무공을 배우지 않았던가!

남궁시영이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 슬쩍 다가온 유세현이 물었다.

“수확은 좀 있었냐?”

“예. 두 개요. 강호선배가 말씀하시길 둘 다 좋은 무공이래요. 시영씨한테도 은근슬쩍 물어보니까 꽤나 좋은 상승내공심법이라고 하셨고요.”

“그래? 효과가 뭔데?”

“음...그게, 명확히 명시되어있진 않은데. 음황강신공은 음파나 장력 쪽으로 많이 알려진 무공이래요. 선배의 천마혈사장이랑 비슷하게.”

“오호, 다른 건?”

“제황파신공은 육체에 마력을 둘러 힘을 증대시키고 더 나아가...”

말을 들어보니 확실히 김주희에게 어울리는 무공은 아니었다.

“제황파신공은 차라리 태광 형님이 쓰는 게 낫겠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그리고 이 음황강신공이란 것도 그 이태광씨랑 같이 다니는 그 여성분 있잖아요?”

“이한별씨?”

“예, 그분 보니까 음파스킬을 많이 지니고 있던 것 같은데, 솔직히 이 무공도 저보다는 그 분이 사용 하시는 게 좀 더 좋을 것 같아요.”

“흠...확실히.”

유세현이 고개를 끄덕이자, 김주희가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어 재꼈다.

-휘이잉.

시원한 바람이 흘러 들어와 기다란 머리칼을 스친다.

가슴을 쫙 피고 크게 호흡하는 그녀의 옆모습에는 답답함과 조급함이 잔뜩 드러나 있었다.

진전이 없는 그녀와 달리 이강호는 마침내 발견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양공, 그중에서도 극상이라고 하는 태양신공의 모든 것을 지니고 있는 남해태양궁의 가주를!

“너무 조급해하지 마라. 네가 설사 빙공을 못 얻는다 하더라도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인 거니까. 정 안 될 시에는 다른 좋은 무공을 익히면 되지.”

“선배...”

유세현의 말에 김주희의 입가에 은은한 미소가 걸렸다.

그러다가 문득 무엇인가를 떠올리고는 몸을 움찔거렸다.

이거 지금 진짜로 위로 해준 것인가? 그가?

시무룩하던 감정은 대번에 사라지고 기운이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김주희는 손바닥으로 자신의 뺨을 탁 한번 친 뒤 주먹을 불끈 쥐었다.

“선배님! 저 다시 조사 좀 하고 올게요!”

“그래라.”

김주희가 몸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타다닥!

무수히 많은 인파가 여관 앞을 우르르 휩쓸었다.

평소 이러한 일은 없었기에 둘의 시선이 자연스레 인파 쪽으로 쏠렸다.

“빨리 가 빨리! 늦겠다!”

“아오, 쫌 밀지마라! 그보다 누가 누구랑 붙는다고?”

“양의궁제랑 신출내기!”

“양의궁제? 양공 쓰는 할아범? 그 양반 살아있었어? 아니 그보다 그 양반이랑 붙으려는 미친놈이 있다고?”

“어! 아르카드 제국에서 넘어온 놈이라던데?”

“큭...야, 그럼 결판이 너무 쉽게 나는 거 아니냐? 이리 뛸 필요 없겠는데?”

“아니야, 짜샤. 놈도 꽤나 한 가닥 한다더라. 모르고 있었는데 당한 고수가 꽤 돼. 그리고 뭘 걸었다고 하기도 하고.”

“뭘?”

“몰라 짜샤! 그거 보려고 지금 뛰어 가는 거 아니냐!”

사람들의 웅성거림.

김주희와 유세현의 사람들이 떠드는 말뜻의 의미를 명확하게 알아들을 수 있었다.

“선배님 역시 이건...”

“그래, 강호가 무공을 얻기 위해 뭔가 저지른 모양인데? 잠시 머리도 식힐 겸 가볼래?”

“흠...그럼 그럴까요?”

“좋아. 그럼 바로 이동하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세현이 곧바로 창문 아래로 몸을 던졌다.

* * *

관중들은 상당히 거리를 벌린 채 두 사람을 빙그르르 둘러싸고 있었다.

비무가 아닌 대결의 경우, 주위에 있다가 무슨 봉변을 당하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행은 도착하자마자 주위 사람들을 향해 어찌된 영문인지 물었다.

“쯧쯧, 신출내기가 양의궁제를 도발했다고 하네. 도발은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 되는 것이거늘. 제대로 노한 것 같은데. 무사히 끝나지는 않겠구먼.”

유세현은 그 말에 모든 이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둘을 살폈다.

한 사람은 백발의 노인, 한 명은 역시나 이강호였다.

초면인만큼 뭔가 어색해 보여야 정상이건만 노인의 인상은 어딘가 묘하게 익숙하다.

“젊은이 정말 후회 안할 자신 있겠지? 다시 말하지만 죽어도 난 모른다네.”

“걱정하지 마십시오 영감님. 그보다 약속은 확실히 지키셔야 됩니다.”

“끌끌끌. 그래, 어차피 자식도 다 죽은 몸. 나 남해태양궁의 가주 남태영, 양의궁제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지. 내가 자네에게 패했을 시 우리 가문의 비전무공을 전주해주도록 하도록 하지.”

노인이 검을 뽑았다.

김주희와 유세현은 살짝 놀란 얼굴이 되서 서로를 반복해 바라봤다.

남태영.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떠오른 것은 오직 하나였다.

마왕성에서 조우했었던 젊은 무사.

세월의 풍파 때문에 주름살이 졌다고는 하나, 묘하게 닮았다.

‘마왕성의 남태영은 저 자를 복제해 놓았던 건가?’

-후웅!

마력이 개방 되며 양의궁제의 검에서 불꽃이 솟았다. 남궁제와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만큼의 어마어마한 마력량.

“크윽...저기들! 뒤로 조금만 더 물러나죠!”

뜨거운 열기가 일대를 한순간에 잠식하자, 관중들은 뒷걸음질 치는 모습을 보였다. 마침내 이강호가 창을 뽑은 순간이었다.

-화르륵.

비스무리 한 열기가 피어오르자 남태영의 눈매가 가느다랗게 좁혀졌다.

“호오...그 기운 네놈 양공 종류의 심법을 익혔구나!”

“예, 맞습니다.”

“허! 타 내공심법을 익힌 주제에 우리 태양궁(太陽宮)의 무공을 탐내는 것이냐? 어설픈 심법으로는 우리 태양궁의 비전무공을 소화할 수 없음이야.”

“알고 있습니다. 허나, 이 심법은 어설픈 삼류 심법이 아닙니다.”

“큭, 그렇단 말이지? 꽤나 자신 있는 모양이구나. 그래 그렇다면 한 번 말해보아라, 무슨 심법을 익혔는지.”

남태영의 말에 이강호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사실 이강호는 이곳에서 남해태양궁의 가주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과거 정보에 의하면 태양신공은 빙공과 마찬가지로 자취를 감춰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

양의궁제가 은거를 하고 있던 턱에 남궁시영도 모른 것이다.

때문에 본래 얻으려던 것은 태양신공이 아닌, 그보다 하위의 양공이었다.

말이 하위지, 잘만 운용한다면 그것도 어마어마한 힘을 낼 수 있을 것이므로.

허나, 이렇게 된다면.

눈을 번뜩 빛낸 이강호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태양심법입니다.”

“...?!”

한순간 지진을 일으키는 남태영의 동공.

“태양심법이라고? 네가 지금 정녕 무슨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있는지는 알고 있느냐?”

“예, 하지만 저는 영감님도 알고 있는 정상적인 루트로 입수한 것입니다.”

던전.

두 사람은 이에 대해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 어차피 약속은 이미 되었기 때문.

“그래...나를 찾아온 게 그저 우연은 아닌 게로구나.”

“그렇죠.”

-파앗

선공을 취한 것은 이강호였다.

날카로운 창의 끝이 날렵하면서도 정확히 상대를 향해 쇄도한다.

-챙! 챙!

두 사람의 무기가 서고 교차할 때마다 강력한 열기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어찌나 뜨거운지 화 속성 저항력이 낮거나, 호신강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은 자리를 떠야만 할 정도.

“어우...구경하다가 타죽겠다. 방어스킬 가지고 계시는 분??”

몇몇은 아우성을 치기까지 했다.

허나, 관전중인 유세현과 김주희는 두 사람은 잘 알고 있었다. 지금 하고 있는 이것은 단순한 탐색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기 계셨군요.”

아퀼라를 따라 연이어 도착한 남궁시영이 둘 곁으로 뛰어왔다.

“예, 대결을 한다고 들어서요.”

“아...맞아, 어느 분이 양의궁제님께 도발을 했다고 들었는데...”

무심코 고개를 돌려 소란의 주역을 바라본 남궁시영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이, 이건...”

-콰아아앙!

일순간 불길이 일었다.

화산의 분화구를 연상시키듯 뻗어 올라가는 화염!

“끌끌,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너 같이 화기를 다룰 수 있는 자가 아직 존재했다니!”

격전을 더해갈수록 관중들은 목숨의 위협을 점점 더 뒤로 물러났다.

남궁시영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어떻게 이렇게 대등할 수가 있지?’

그가 화염을 다루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나 상대는 양공의 최강자 양의궁제, 무려 남해태양궁의 가주이다.

그런 자와 양공으로 호각을 겨룬다는 것은, 실력과는 별개로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세상은 넓구나.’

-콰아아아!

어느새 대결은 막바지에 이르고 있었다.

양의궁제가 주위를 향해 화염을 쏘아댔다. 관중들은 순간적으로 미친 게 아닌가 생각했다.

허나.

“물러나라.”

“......”

단 한마디.

오직 단 한마디에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곳에 있으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것을.

“야, 이, 이건 아무리 봐도 아닌 거 같다 일단 빠지자! 구경하다가 뒈지겠어!”

“으으, 저 노망난 영감탱이가 눈알 돌아가지고...”

대다수의 사라들이 반대편으로 질주하기 시작했다.

양의궁제가 입 열어 말했다.

“끌끌끌, 버르장머리가 없다지만 그래도 네가 마음에 들었다. 이걸 막아봐라. 막는다면 굳이 나를 쓰러트리지 않아도 전수해주마!”

양의궁제가 검을 한 바퀴 돌리자. 이글거리던 불길이 궤적을 따라 원을 만든다.

이강호는 피식 웃었다.

마음에 들긴 뭐가 들었단 말인가.

한 눈에 봐도 목숨이 위태위태해질 만한 커다란 기술을 사용하려는 것이 틀림없는데.

이걸 정면에서 받아줄 바에는 차라리 어떻게든 회피한 뒤 쓰러트리는 게 편할 것이리라.

허나, 이강호는 물러서지 않았다.

-쉬이익!

그는 오른팔에 모든 마력을 끌어 올렸다.

“영감님...위험할 것 같으면 알아서 잘 피하시기 바랍니다.”

“끌끌끌. 네 걱정이나 하거라.”

자세를 취하는 그들.

남궁시영이 물었다.

“저, 저기 우리도 자리를 피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뇨, 얼마나 강한지 좀 보고 싶습니다.”

“저도요.”

유세현과 김주희의 말에 남궁시영이 주위를 둘러봤다. 많은 인원수가 도망쳤지만, 고수로 보이는 몇몇은 그대로 남아 구경하고 있었다.

여러 군데에서 중얼거림이 들려왔다.

“역시 양의궁제. 정말 대단하군.”

“그러게, 이런 흥미진진한 대결은 정말 오랜만이야. 그런데 저 신출내기가 과연 절기를 막을 수 있을까?”

“글쎄...일단 상당한 양공의 소유자인 것 맞는데...양의궁제가 봐주냐 마냐 아닐까?”

“에이, 천하의 양의궁제가 그런 짓을 할까?”

“모르는 법이지. 이번 정사대전으로 인해 판도라로 넘어왔던 몇 안 되는 자식들을 다 잃었다고 들었는데. 사실 양의궁제도 살아있는지도 몰랐고. 그러니 제자 한명쯤은 거느리고 싶지 않을까?”

“흐흠...아무튼 지켜보세. 곧 끝날 것 같으니.”

-화르륵

“그럼 받아보아라.”

양의궁제가 검을 내지르자 불길이 수 십 갈래로 회오리치며 이강호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은 유니크 A랭크의 스킬. 불꽃의 각인보다도 훨씬 빠르고, 더욱 강한 화력을 지녔으며 흡사 범위까지 넓었다.

모든 것의 상위 호환.

이강호는 만족했다.

그래 이정도 되지 않는다면 성격에 안 맞게 신경을 긁고 도발하며, 대결을 받아낸 의미가 없다.

-쿠우웅!

이강호의 오른팔에서 뻗어 나온 불길이 창끝을 타고 뻗어나갔다.

유니크 A랭크라는 특성상 마력을 전부 먹일 수 없어 화력이 부족했지만, 그에게는 이를 커버해주는 고유특성과 이프리트의 창이 있었다.

-콰아아앙

청염과 적염의 대결.

불의 회오리는 청염의 틈으로 파고들어 갈기갈기 찢으려는 반면, 청염은 곧게 뻗어나가며 모든 것을 묵묵히 지탱하는 모습을 보인다.

결판이 나는 것은 정말 찰나의 순간이었다.

-쿠오오오. 콰아앙!

주위로 뻗어나가는 열기와 파공성.

상당히 상쇄되었으나 일대의 모든 것을 전부 태워버리고도 남을만한 그런 열기였다.

“튀어!”

고수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경공술을 쓰며 범위에서 이탈했다.

김주희가 재빨리 물을 일으켜 방어한 순간이었다.

-쉬익

저 먼 치에 있던 한 남자 또한 피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김주희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트드드득.

검이 움직이는 궤도에 따라 생성되는 새하얀 얼음조각을.

< 빙공의 행방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