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병모집(2) >
“흑접사.”
“흑접사는 무슨. 그냥 레피아라고 불러.”
“그래, 그럼 레피아. 발레르크 가(家)에 대한 정보도 이정도 수준으로 모아줄 수 있겠나?”
“후후. 어렵지 않지. 대신 추가요금 받을 거야.”
레피아가 입맛을 다셨다. 이강호는 실소를 내뱉으며 마석보따리를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호호, 항상 이용 고마워. 고객님~”
레피아가 보따리를 받아들자 셋은 곧바로 자리를 박차 건물 밖으로 빠져 나왔다. 잠시, 발걸음을 멈춰 정보길드 입구를 흘겨본 김주희가 중얼거렸다.
“레피아라는 저 여자, 목숨까지 노렸던 주제에 담이 크다고 해야 할까...돈을 진짜 엄청 밝히네요.”
“뭐, 그렇지.”
레피아는 알테리아 대륙에 있을 적 무척 가난했다고 한다. 약초를 캐고, 밭을 가꿔 전전긍긍하며 버티는 게 전부인 삶.
그런 삶을 뒤바꾼 것은 스테이터스 시스템이었다. 마력에 재능이 없던 자들이 마력을 지니게 되고, 인간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뛰어 넘는다.
풍족한 삶을 살고 있던 현대인에게 이 판도라는 단순히 괴물들이 득실거리는 세계에 불과하지만, 그녀에게 있어서는 일발 역전을 꿈꿀 수 있게 해준 세계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체제는 얼마 못가지만.
“그런데 너도 돈 좋아하지 않았나?”
“호호호...”
김주희가 멋쩍게 웃으며 얼른 시선을 돌렸다. 돈이나 남자에게 들러붙는 것으로 누굴 깐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선 스스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것과도 같았다.
아무튼, 잡담은 여기까지.
여관으로 돌아온 그들은 곧바로 의견을 나눴다. 대규모 토벌을 간다는 것은, 수상한 냄새가 나는 것과는 별개로 열쇠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세현아, 리체의 마력 수준이 분명 C랭크 초반이라고 했었지?”
“응. 확실해”
“흠...”
보통의 시녀는 그렇게 강하지 않다. 즉, 리체는 현재 시녀 겸 호위병일 가능성이 매우 컸다.
그리고 유혜인의 경우도 이와 비슷하다고 봐야 된다.
그렇다면 이 둘은 과연 이 토벌에 참가할 것인가? 아닐 것인가.
이강호는 99.99%의 확률로 참가할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들이 강해서라는 이유는 결코 아니었다.
몬스터 토벌은 그 특성상 제법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 와중 성욕을 풀어줄 사람이 없다.
그렇기에 대개 귀족들은 수발을 핑계로 시녀를 서너 명씩 동반 시킨다.
‘이걸 말해줘야 되나 말아야 되나.’
이강호는 잠시 망설였지만, 유세현을 믿기로 했다. 그는 감정에 휘둘려 앞뒤 안 가리고 무작정 달려드는 인물이 결코 아니었다.
“으...그렇단 말이지...”
“응.”
“...괜찮아. 아직 누가 건드린 적 없다고 했었어...필립도 꽤나 인품을 중요시 하는 것 같았고...”
하지만 결코 단언할 수는 없다. 만약 필립이 동생을 건드린다면...유세현은 안 좋은 생각을 억지로 떨쳐내며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리체도 동행하겠네?”
“자세한 것은 봐야 알겠지만, 거의 그렇지.”
“흠...그럼 작전은 2개를 짜놓는 게 좋겠네요. 토벌을 갔을 때와 안 갔을 때로 나눠서.”
“그렇지.”
리체가 토벌에 참가하지 않는다면 일은 생각보다 쉬워진다. 개인시녀일 경우 할일이 상당수 줄어들기 때문.
시간적 여유가 생겨 틈이 만들어지는 만큼, 침투하여 접촉하는데 좀 더 수월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난이도가 높은 것은 전자였다. 경계도 삼엄할 뿐더러, 이전처럼 우연을 가장해 접근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방도가 없는 건 아니야.”
귀족들은 정규군과 협동하여 토벌하지 않는다. 영지의 군사력을 자랑하기 위함도 있지만, 그보다는 공적을 확실히 하기 위함이었다.
허나 각 구역을 나눠 토벌을 행하는 만큼,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할 수도 있다. 그렇기에 귀족들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흔히 말하는 용병집단을 모집하곤 했다.
대상자는 나라에 공적을 쌓고 싶은 자. 많은 마석을 지급받고 싶은 자.
다만, 여기서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경쟁이 쟁쟁해 들어가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대다수의 귀족들은 인원수가 많은 대형 길드나, 인지도가 제법 높은 길드를 택하려
하는 경향이 있었다.
현대사회로 치면 브랜드를 보는 것!
때문에 팀 단위로 절차를 밟을 경우, 신생 길드인 리버티는 서류심사에서부터 아웃이다.
“흠...그럼 어떻게 해야...”
“다른 방법이 있어.”
대형 길드의 신뢰가 높은 것은 맞으나 귀족들은 그럼에도 변수를 둔다. 한 곳에서만 대량의 인원이 유입 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용병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개인적으로 참가를 받아, 한 두 팀 정도를 꾸리게 했다.
“오...그런 게 있으면 그걸로 하면 되겠네. 그런데 이런 건 선착순이냐?”
“아니, 일단은 전부 받고, 인원이 초과되면 토너먼트를 진행해서 강자를 가려.”
“으흠, 꽤 정당하네.”
토벌이 시작되는 날은 앞으로 7일 뒤.
갑작스레 토벌에 참가하게 된 볼프강 가(家)는 하루도 지나지 않아 용병 모집을 시작했다.
접수처로 들어서자 후덥지근한 열기가 공기를 타고 피부 표면에 와 닿는다.
플레이트 메일, 체인갑옷, 레더아머.
내부에는 각양각색의 방어구와 무기를 착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건물이 작은 것도 결코 아니건만.
서류작성을 하고 있자, 덩치가 큰 남성 한 명이 슬그머니 일행 옆으로 다가왔다.
그의 눈동자는 노골적으로 김주희를 향해 있었다.
“호오, 아가씨도 이런 토벌에 참가하는 거야? 괜히 나섰다가 험한 꼴 보기 전에 취소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이곳에 있는 자들의 배경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내뱉을 수 있는 언사였다.
시비를 일으키기 싫었던 김주희가 최대한 정중히 말했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않아주셔도 돼요.”
“호오~당찬데? 나 그런 여자 싫어하지 않는데. 어때? 서류작성하고 같이 술이나 한 잔 하러 가는 게.”
“아뇨, 괜찮습니다.”
“에이~빼지 말고~”
남성의 손이 슬쩍 김주희의 어깨로 향했다. 기척을 느낀 김주희의 눈가가 살짝 움찔거렸다. 한 트럭을 갖다 줘도 필요 없는 놈들이 왜 자꾸 건드는 것인지.
‘하아...’
김주희가 손을 쳐내려 하던 찰나였다.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남성의 손목을 낚아챘다.
“뭐야 당신?”
“거기까지 하시죠. 볼품없어 보이는군요.”
그 소화하기 힘들다는 8:2 가르마가 꽤나 어울리는 남성이었다. 덩치 큰 남성의 인상이 살짝 일그러진다.
“넌 뭔데?”
“보시는 바와 같이 서류를 작성하러온 용병 희망자입니다만?”
“그럼 하던 거나 마저 하지 왜 방해질이야?”
“방해라뇨. 숙녀 분께서 불쾌해 하는 것 안보이십니까?”
“뭐어?”
덩치 큰 남성은 당장이라도 한대 후려 칠 기세였다. 또한 그 험악한 목소리에 이목이 자연스럽게 둘에게 집중되었다.
김주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머리가 왠지 모르게 지끈거렸다.
“죄, 죄송해요 선배.”
“괜찮아.”
김주희가 벌이고 싶어서 벌어진 일이 아니다. 이 상황이 발생한 것은 어디까지나 음흉한 남성과 정의감이 넘치는 것처럼 보이는 남성 때문.
피해자가 굳이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야, 말 다했냐?”
“전 바른말을 했을 뿐입니다.”
“이게 그래도!”
그때, 큰 덩치의 남자가 멱살을 잡기위해 반대편 손을 뻗었다. 허나, 손은 끝내 목표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이거 안 놔?”
제압당한 남성은 팔을 휘둘렀다. 허나, 정말 우습게도 몸만 이리저리 흔들릴 뿐 손이 빠져나올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압도적인 힘의 차.
남성은 그제야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으...이거 놔! 갈 테니까! 나가 주겠다고!”
자존심이 순식간에 산산조각 난 덩치 큰 남성은 꽁지 빠져라 문 너머로 자취를 감췄다.
제압한 남성이 김주희를 향해 말했다.
“괜찮으신가요?”
“아, 예. 감사합니다.”
집중되던 이목이 분산되기 시작한다. 남성이 씨익 미소를 지었다.
“괜찮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이런 개인 용병지망생 중에서는 저런 놈들이 꽤있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아, 예. 충고 감사해요.”
“하하, 별거 아닙니다. 그럼 저도 할 일이 있어서 이만...”
남성은 정말 정의감이 뛰어난 것인지 생각보다도 빨리 떨어져나갔다.
치근덕거릴 줄 알았는데.
예리한 눈초리로 남성을 주시하고 있었던 유세현이 건물을 빠져나오기 무섭게 말했다.
“그 놈 많이 강했어. C랭크 60%정도.”
“흠...뭔가 있을 가능성이 크군.”
대형 길드도 이정도의 마력을 지닌 자들은 흔치않다. 많아봐야 5~6명 정도.
즉, 그는 대형 길드를 이끌어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라는 것이라는 게 되는데, 굳이 개인적으로 이런 모집에 참가할 필요성이 없다.
물론, 이태광이라는 별종이 있듯 아예 없는 것은 아니지만 주의해서 나쁠 것은 없는 것!
그들은 하루 뒤 토너먼트가 벌어질 장소로 이동했다.
사각으로 이루어진 넓은 대기장으로 들어서니, 어제와는 차원이 다를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이런 대규모 토벌은 상당히 안정적이기 때문에 많은 인원이 지원할 것이라고 이강호에게 진즉 들은바가 있었으나, 차마 이정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들은 바로 번호표를 지급 받았다.
유세현은 15221번, 김주희는 13452번, 이강호는 12663번으로 팀명을 써냈기에 같은 조에 배치되지 않았다.
“그럼 나중에 보자.”
“옙!”
유세현은 안내원이 나눠준 종이에 써져있는 룰과 경기 종류를 차분히 읽어나갔다.
사람이 많아서 그런지 처음 벌어지는 경기는 서바이벌 매치.
사람들을 경기장 밖, 즉 장외로 탈락시켜 일정 인원이 남을 때까지 전투를 벌여야하는 싸움이었다.
아마도 엄청난 눈치싸움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 된다.
그리고 이렇게 총 3번 인원을 거른 뒤에는 이강호가 말했던 토너먼트가 시작된다.
우승 같은 것은 당연히 없었다. 이것은 정식 경기 같은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수준급의 용병을 뽑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때문에 토너먼트도 3번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았다.
“참가번호 15200~15500번까지 D조 경기장 위로 올라와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원이 번호를 부르기 무섭게 많은 인원들이 우르르 위로 몰려갔다.
조금이라도 더 나은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반면, 유세현은 대충 외각에 자리 잡았다.
서바이벌 매치의 특성상 광역스킬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
즉, 이곳에서 적을 공격하기 위해서는 순수한 물리적 공격을 해야 된다는 것인데...
-삐이!
매치의 시작을 알리기 무섭게 유세현은 가볍게 발걸음을 뗐다. 불가 5m 거리에 위치해 있던 한 여성의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눈치싸움이 될 것이라 판단했던 예상이 빗나간 탓이었다.
“꺄악!”
힘을 받아내지 못한 여성은 그대로 장외탈락 되었다. 그리고 그 비명을 시발점으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유세현은 적당한 속도로 전장을 누볐다.
이런 곳에서 본 실력을 발휘하는 것은 정말 미련한 짓이다.
그렇게 5분 후.
많은 인원이 있던 경기장에는 달랑 10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안내원이 크게 외쳤다.
“10분께서는 경기장에서 내려 와주시기 바랍니다. 1차 통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유세현은 발걸음을 옮겼다. 새삼 익숙한 얼굴이 옆을 스쳐지나간다.
어제 김주희를 도와줬던 남성이었다.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은 것이 무척 여유로운 표정.
유세현의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토너먼트 1차전에서 저 남자를 만난다면, 암흑투기의 힘없이는 이기기 힘들 것이다.
‘음...안 걸려야 할 텐데.’
유세현은 연이어서 벌어진 2, 3차 서바이벌 매치를 손쉽게 통과했다. 그리고 마침내 시작된 토너먼트.
첫 대상자는 정말 우습게도 어제 김주희에게 작업을 걸던 거구의 남성이었다.
“크크크! 크게 다치기 전에 얌전히 내려갈 기회를 주마!”
남성이 크게 외쳤다. 영문 모를 자신감은 그의 특성인 게 분명하다.
유세현은 살며시 검을 뽑아 양손으로 쥐었다.
반면, 남성은 밸런스가 좋다는 한손방패에 한손검 사용자였다.
방패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남성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간다.
“크크!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육중한 그의 몸이 유세현을 향해 질주했다.
추정마력 D랭크 90%.
D랭크 50%가 난무하는 이곳에서는 제법 쓸만한 축에 속하는 스텟 수치였지만, 아쉽게도 유세현의 두 눈에는 너무도 느리게 보였다.
챙!
몇 번의 공방이 이어진다. 남성은 그때까지만 해도 신나 있었다. 지켜보고 있던 심판도 남성의 승리를 거의 확신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남성이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
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허나, 그 다음 순간 심판은 경악 할 수밖에 없었다. 검의 끝이 뱀처럼 파고든 방패를 쳐내버린 것이다.
“미, 미친! 이게 무슨!”
곧바로 유세현의 몸이 회전했다.
빠악!
관자놀이에 제대로 적중하는 발등. 남성은 그대로 정신을 잃고 말았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슬아슬하게 이긴 역전승 같은 것이었지만, 사실 이는 스텟을 감추기 위한 유
세현의 계산된 행동이었다.
더 나아가 굳이 관자놀이를 가격해 기절시킨 것은 어제 소란을 일으킨 것에 대한 보복.
< 용병모집(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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