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137화 (137/612)

< 용병모집(1) >

각기 달랐던 5개의 파동이 서로 공명하며 흐릿하던 형상이 점점 뚜렷하게 변해간다. 장풍의 외관은 마치 거대괴수의 날카로운 발톱과도 같았다.

또한 속도마저 무지막지하게 빨랐다.

목숨을 위협하는 회심의 일격!

“윽!”

깔끔히 회피하는데 실패했다고 판단한 유세현이 재빨리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허나, 그 다음 순간 새빨간 액체가 그의 눈앞을 가렸다.

‘이건!’

유세현이 살짝 고개 돌려 살피니, 자신의 팔을 곧게 뻗고 있는 김주희의 손바닥에서 새빨간 피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마력과 피를 이용하는 스킬.

-치지지직!

날카로운 발톱이 피의 장막을 갈기갈기 찢으며 파공성이 일었다. 유세현은 곧 튕겨져 나가듯 공격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크윽...”

허나, 아직 그들의 공격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차분히 사전 자세를 잡고 있던 음영대주의 눈이 번뜩 빛났다. 그가 허공을 향해 검을 내질렀다.

거친 바람을 동반한 불길이 휘몰아치며 무수히 많은 사자의 형상이 셋을 향해 질주했다. 바람에 거칠게 흔들리는 그 모습은 마치 사자가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보이기까

지 했다.

음영대주가 익힌 수라검마공의 최강 절초.

[수라멸사화(修羅滅獅火)]

이 절기를 정면으로 받은 사람 중 몸이 성한 사람을 음영대주는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음영대주는 그들이 죽지 않기만을 바랐다.

반면, 이강호는 차분히 주먹을 뻗었다.

휘양 찬란한 사자와 달리, 무척 단순한 원기둥 형태의 불길.

단, 특이한 게 있다면 색이 푸른색이라는 것뿐이었다.

음영대주의 입꼬리가 살며시 올라갔다.

수라멸사화는 불의 현상을 띠고 있지만 근본은 바람에 더 치우쳐져 있다. 반면 놈의 불은 정말 순수한 불길.

단순한 불길은 되려 힘을 실어줄 뿐이다.

음영대주는 강대한 두 힘이 맞닿는 순간까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허나.

“...?!”

자신만만하던 눈이 경악으로 점점 물들어간다. 시퍼런 불길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바람, 불길, 형상화 되어있는 사자까지.

‘어, 어떻게!’

음영대주는 내력을 더 불어 넣었다. 정말 모든 것을 사용했다. 허나, 그럼에도 이강호의 불길은 끄떡도 하지 않았다. 상승무공도 아니건만 어떻게, 어떻게 이런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단 말인가!

0.1초.

불길은 어느새 음영대주와 대원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대, 대주님!”

장곽이 황급히 외쳤지만 이미 때는 늦은 상황.

곧, 시퍼런 청염이 음영대가 위치해 있던 장소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후...”

상황이 종결되었다는 것을 파악한 유세현이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친우, 이강호의 고유특성은 언제 봐도 정말 대단했다.

자신의 색을 입히는 이 특성은 불에 관한 모든 것을 뛰어넘게 해준다.

‘나도 가질 수 있으려나.’

이전에 들은 바, 고유특성의 대부분은 성격에서 비롯돼 개화한다고 한다. 싸움을 좋아하는 이태광이 광전사를, 누구보다 열정적인 성격을 지녔던 이강호가 화속성 강화

를 개화한 것처럼.

그렇다면 자신은 어떤 특성을 가질 수 있을 것인가.

웬만한 사람들이 개화하지 못한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도통 짐작이 가지 않았다.

‘후...’

유세현은 자리에서 몸을 서서히 일으켰다. 상당한 무리를 한 덕분에 온 근육이 난자되고, 뼈마디가 으스러진 느낌이 든다.

“서, 선배님 괜찮으세요?”

그와 중 김주희가 물었다. 눈이 퀭하고 혈색이 없는 것이 당장 쓰러져도 전혀 이상할 것 같은 모습.

분명, 마지막 스킬에 상당한 피를 사용했기 때문이리라.

“어, 고맙다. 덕분에 사지는 멀쩡해. 넌 어때? 괜찮냐?”

“헤헤...조, 조금 많이 어지럽긴 하네요.”

“움직일 수는 있겠어?”

“예...걷는 거라면 어찌어찌는...대신 뛰는 건 아직 좀...”

“흠...그래? 그럼 업혀. 바로 추격할거야.”

행여나 이동 중 빈혈이 발생하게 되면 쓰러질 수도 있다. 유세현은 도움을 준 것 등 여러가지를 고려해서 한말이었으나, 김주희는 고개를 황급히 저었다.

“아, 아뇨 그냥 뛰어 볼게요!”

김주희의 그런 발언은 유세현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처음에는 도움만 바라던 여자의 입에서 이런 말을 듣게 되는 날이 오다니.

“그러다가 쓰러지면 시간만 더 걸려. 빨리 업혀!”

“예, 옙!”

김주희가 유세현의 등에 다소곳이 업혔다. 어깨를 살짝 붙잡고 있는 어설픈 자세였다.

“야, 균형이 뒤로 쏠리잖아. 몸 좀 더 밀착시켜.”

“아, 알겠어요. 선배.”

김주희는 그제야 비로소 얼굴을 등에 푹 파묻었다.

저벅 저벅.

유세현이 이강호에게 향했다. 이강호는 다가오는 유세현을 보며 볼을 긁적였다.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가 보기에는 유세현 또한 살짝 변화한 상태였다.

예전에 그였다면, 절대 저런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을 테니까.

“강호야, 가자! 그 여자...지 병사를 버리고 도망치고 있는 거 같아.”

“...그래, 알았다.”

둘의 신형이 바람을 가르며 빠르게 숲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 * *

“허억, 허억...”

레니칼과 휘하 30명의 병사들.

C랭크 30% 정도의 스텟을 지니고 있는 그들은 도망치는데 여념이 없었다.

구울화 된 무수히 많은 마수.

지능이 낮고, 육체가 약화된 만큼 100마리 정도였다면, 어떻게든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허나, 100마리와 수백 마리는 그 차이가 너무도 컸다.

더 나아가 놈들은 자신의 몸을 신경 쓰지도 않는다. 다 부서져도 급소를 노리고 밀려 들어오는 놈들은 그 어떤 몬스터보다도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크으...스켈레톤도 아닌 구울을 다루다니...’

구울화는 스켈레톤화보다 한 단계 높은 흑마법이다. 뼈만 남아 움직이는 것이 아닌, 근육이 존재하는 육신 그 자체를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니까.

레니칼의 입술이 부들부들 떨렸다.

‘젠장...어떻게 해야 되지?’

이곳에 들어와서 마수에게 잃은 병사만 400명.

동생의 복수는 커녕 목이 날아가게 생겼다.

레니칼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어떻게 조치를 취해야 자신이 살 수 있을지. 복수를 이어나갈 수 있을지. 허나, 그런 상념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스르륵.

수풀이 양옆으로 갈라지며 섬광이 번뜩였다.

산불덕에 연기가 계속 피어오르고 있었기에 레니칼은 그 순간 무엇이 지나간 지도 알 수 없었다. 이상함을 느낀 것은 목이 달아난 병사 두 명이 풀숲에 털썩 쓰러졌을

때.

두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레니칼의 눈동자가 부들부들 떨렸다.

“네, 네놈들!”

유세현은 피로 범벅된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그 사이로 내비치는 두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도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다.

“너희는 이곳에서 못 살아나간다.”

“...크, 다 죽어가는 놈이...”

말과 같이 유세현의 몰골은 처참했다.

갑주는 심하게 회손 되어 걸레조각이 되어있었으며, 상처가 아물지 않은 육신은 어디하나 성한 곳이 없다.

“상대는 빈사다! 죽여 버려!”

레니칼이 검을 내지르자 병사들이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그 모습은 마치 괴물을 앞에 둔 민간인들이 공포를 이겨내려는 것처럼 보였다.

유세현이 손을 딱 튕겼다.

레니칼을 포함해 달려들던 병사들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뭐, 뭐해? 왜 멈춰? 빨리 죽여 버리라니...”

그때 세찬 바람이 불며 풀숲이 거칠게 흔들렸다. 주위를 잠식해가고 있는 불과는 다르게 시퍼런 한기가 흐른다.

-꿀꺽.

자신도 모르게 넘어가는 마른침.

-캬아악!

이윽고, 3초도 지나지 않아 언데드화 된 마수들이 양옆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으, 으 오지 마!”

검을 휘두르고 있는 데로 스킬을 사용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한 병사가 크게 외쳤다.

“대, 대장님 어, 어떻게 합니까!”

“무조건 막아!”

레니칼은 그렇게 답하며 슬금슬금 뒤로 내빼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자신만이라도 빠져나가려는 속셈이었지만, 아쉽게도 언데드는 뒤에도 포진해있었다.

“꺄아아아!”

뜯겨나가는 사지. 언데드들은 단번에 왼팔과 오른 발목을 앗아 갔다. 레니칼은 땅을 필사적으로 기어 유세현을 향해 다가갔다.

“사, 살려줘.”

“......”

“사, 살려준다면 뭐든 할게. 내, 내가 다 잘못했어. 다시는 쫓지...”

-캬아악!

그 사이 언데드 한 마리가 하나 남은 왼쪽 발목도 물어뜯었다. 이제 남은 것은 오른팔 하나.

유세현이 손을 올리자, 구울의 공격이 멈췄다. 그가 입을 열었다.

“너는, 필사적으로 빈 사람들의 말을 들어준 적이 있었나?”

“가, 갑자기 무슨...”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도 모르는 모양이군. 하긴, 그렇겠지 너희들에 눈에는 상품으로만 보였을 테니까.”

그는 다시 손을 내렸다. 허벅지, 가슴, 창자, 언데드가 무자비하게 그녀의 육신을 갉아먹기 시작한다. 건드리지 않은 것은 오직 심장과 머리 뿐.

레니칼이 실성하듯 웃기 시작했다.

“흐흐흐흐! 너! 이 자식 지금 하는 행동 분명 후회하게 될 것이다! 우리 실버어레스트는 결코 추격을 포기하지 않아!”

유세현이 손을 한 번 더 휘젓자, 언데드들이 그녀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명심해라! 너희는 반드시 우리 길드의 손에...꺄아아아악!”

레니칼은 그렇게 언데드에게 먹혀 사라졌다. 유세현은 심호흡을 했다. 아쉽게도 분은 풀리지 않았다.

되려, 억울하게 잡혔을 동생을 다시 한 번 떠올리자니, 도화선에 불을 붙인 것 마냥 강한 증오심이 타오른다.

이강호가 유세현의 어깨에 손을 턱 얹었다.

“걱정마라. 나중에 완전히 부숴버릴 생각이니까.”

실버어레스트. 그들이 있어서는 새내기들이 성장하지 못한다. 그는 미래를 도모하기 위해서라도 부술 생각 이었다

단지, 지금 그것보다 급한 것은 더 빠른 성장과 열쇠를 찾는 것.

하나의 일을 해결한 그들은 다시 수도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실버 어레스트가 박살났다는 소문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허나, 누가 그들을 박살냈는지는 베일에 쌓여있을 뿐. 그 누구도 정확히 아는 자는 없었다. 상부에 보고하기 전 정보길드에 의뢰한 핵심병사들이 전부 살해된 덕분.

그리고 모든 것을 알고 있을 정보길드는 이강호와의 계약에 의해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상태였다.

셋과 마주하고 있던 레피아가 테이블 중간을 향해 3부의 종이뭉치를 쓰윽 내밀었다.

“이게 당신이 추가로 요구했던 볼프강 가(家)에 대한 다른 귀족가(家)와의 관계도. 객관적인 사실만을 바탕으로 만들어봤어.”

일행은 그 자리에서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먼저 보고서를 덮은 것은 김주희였다.

“흠...이리저리 엄청 꼬여있네요.”

“호오, 그걸 벌써 다 읽은 거야?”

“예...뭐. 별로 어렵지 않은 내용이니까요.”

그러고 보자면 김주희도 유세현과 똑같은 대학교를 다니는 학생이었다. 상당히 경쟁률이 높아 뚫기 힘든 곳인데.

공부를 잘한다고 다 똑똑한 것은 아니나, 공부머리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때마침 정독한 유세현도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볼프강 가(家)는 향후 2년 안에 망한다.

모든 사건에는 이유가 있는 만큼, 범인을 간추리기 위해 자료를 원한 것인데, 역시나 귀족이라 그런지 자잘한 트러블이 무척이나 많았다.

“그나저나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이런 건 왜 조사해 달라고 하는 거야?”

질문을 하는 레피아는 정말 궁금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기야, 자유 신분을 지닌 자들이 귀족들의 관계도를 알아봤자 뭐하겠는가. 어차피 아무 쓸모도 없는 것을.

이강호가 피식 웃었다.

“이유는 묻지 않는 게 원칙 아니었나?”

“아, 그래서 말했잖아! 정말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라고. 말하기 싫다면 됐어. 캐물을 입장은 못 되니까.”

“납득이 빨라서 좋군. 그보다 다른 정보도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응, 맞아. 볼프강 가(家)에 대해 군사적 이동이 있을 예정이면 알려 달라고 했었지? 이번에 대규모 토벌이 있을 거야. 이전처럼 깔짝거리는 게 아니라.”

“토벌? 이렇게 갑자기 말인가?”

“음, 그게 갑자기라면 갑자기라고 할 수도 있지만...그렇게 갑자기는 아니야.”

토벌은 사실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다. 생존자들의 이탈을 막기 위해 겉치레적인 행사를 하는  것이다.

다만, 본래 이 토벌에는 필립과 발렌이 참가할 예정이 없었다.

필립은 참가하고 싶어 한 모양이지만, 개혁파인 그의 인지도가 올라갈 것을 꺼려한 고위 귀족들이 합심하여 일부러 막은 탓이다.

“그런데...갑자기 참가하게 되었다 이거군. 혹시, 이유도 알아냈나?”

“대충은, 하지만 확실하지 않은 정보라...”

“괜찮아, 말해봐라.”

“발레르크 가(家)에서 추천서를 넣어 줬대.”

“발레르크?”

추후 김수현을 발굴하여 아르카드의 실세로 떠오르는 가문이었다.

이강호 고개를 살짝 돌려 바라보자 유세현과 김주희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둘 또한 뭔가 냄새가 난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 용병모집(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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