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과와 대책(1) >
하루 세 번, 해일을 일으키고 다룰 수 있는 유니크 C 랭크 아이템, 에르토락스의 트라이던트가 그녀에게 반응하듯 부르르 떨린다.
레콰이크는 인간진형 하나를 깨부순 것과 별개로, 절대 그들을 살려 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한계가 보이지 않는 강대한 스킬.
그들이 만약 이곳에서 살아나가게 된다면, 이번 전투로 인해 엄청난 양의 코인을 흡수한 그들은 상상할 수 없는 속도로 성장할 것이다.
“죽여라, 절대 놓치면 안 된...”
콰과광!
레콰이크가 말을 끝낼 새도 없이 유세현의 손바닥에서 뿜어져 나온 검붉은 빛이 일대를 휘감았다.
“캬아아악!”
정확히 적중 당한 고블린들의 육신이 바스라지고, 거친 강풍을 이겨내지 못한 수백그루의 나무가 지면으로 우스스 쓰러졌다.
이어지는 후폭풍.
파바밧.
유세현은 코인을 흡수해가며 일자로 만들어진 길을 쭉 나아갔다.
두 차례나 고블린들을 휩쓸었건만, 그 수가 어찌나 많은지 정면에는 아직도 상당수의 고블린들이 분포해 있었다.
“김주희!”
“예!”
말을 잽싸게 알아들은 김주희가 후방부대를 막고 있던 물살을 이동시켜 유세현의 바로 앞에 거대한 파도를 만들었다.
정령화가 풀리기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고작 해 봐야 몇 초.
파앗!
이윽고 김주희의 몸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파도가 무너지며 고블린들을 휩쓸었다.
그들은 그 틈을 전진해 나갔다.
이번만, 이번만 어찌 어찌 돌파해내면 그 흉흉했던 군세를 마침내 뚫게 된다.
“빠, 빠져나갈 수 있어! 조금만 더하면!”
생존자들의 눈가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조금씩 비치고 있었다.
허나.
“캬륵! 어딜!”
“전부 죽여라!”
풀숲에서 튀어나온 고블린 수 십 마리가 일제히 생존자들을 덮쳤다. 이미 자리를 이탈한 전방의 인원들은 괜찮았지만, 후방에 있던 인원들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도미노처럼 우르르 무너졌다.
“태, 태성씨! 꺄아악”
“사, 살려줘! 끄아아악!”
울려 퍼지는 비명.
“큭!”
생존자들은 그 애절한 목소리를 애써 무시하며 필사적으로 달려 나갔다. 아주 잠깐, 단 1초라도 망설이는 순간 그곳이 무덤이 된다.
일행은 무기를 치켜들며 물리적으로 돌파할 준비를 했다.
그 순간 바로 뒤에서 생존자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비, 비켜주세요! 이번엔 저희가 뚫어보겠습니다!”
나름 광역스킬을 소지하고 있는 인원들이었다.
순간적으로 시선을 교차시킨 유세현과 이강호가 양옆으로 살짝 길을 터줬다. 당연한 말이지만 속도는 줄이지 않았다.
이에 광역스킬을 지닌 생존자들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앞으로 튀어나와야만 했다.
“하아 하아...”
마침내 전방에 서는데 성공한 이한별과 여타 생존자들.
가쁜 호흡을 이어가던 그녀가 숨을 크게 들이 쉬었다.
투퉁!
그러자 그녀의 가슴이 터질듯이 부풀어 올랐다. 다른 여타 생존자들도 나름의 사전준비를 했다. 마침내 이한별이 입을 쫙 벌렸다.
“꺄아아아-”
귀를 찌르는 듯한 비명소리와 함께 전방을 향해 퍼져나가는 파공성.
도시에서도 보았던 그녀의 메인스킬, 파멸의 울음소리였다.
등급이 레어 S 랭크인데다가, 단발성 발포 효과인 덕에 그녀의 공격 또한 상당히 많은 수의 고블린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어서 생존자들이 스킬을 남발했다.
“풍아 참격술!”
“바람 가르기!”
“연쇄 폭참격!”
쿠구궁!
무작위로 날아가 부딪치는 각종 스킬. 허나, 유세현이 사용한 천마혈사장만큼 위력이 강한 것은 아니었기에 고블린들을 완전히 뚫을 수는 없었다.
“하아 하아...”
마력을 전부 소진한 생존자들은 무기를 치켜세웠다. 할 수 있는 것은 전부 했다. 이제 남은 것은 목숨을 던져 돌파하는 것뿐.
“흐아아압!”
생존자들은 얼마 남지 않은 전방의 고블린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 * *
끼룩끼룩.
풀벌레 소리가 고요히 울려 퍼지는 숲.
“허억 허억...”
“후욱 후욱...”
그곳에서는 수많은 생존자들이 탈진상태가 되어 땅에 드러누워 있었다.
찐득한 피로 얼룩진 육신, 부서진 갑주, 이가 잔뜩 나간 무기.
추격하는 고블린들을 전부 죽이고 가까스로 따돌리는데 성공한 그들의 몰골은 무척이나 참담했다.
“이, 이제 안 따라오겠지?”
생존자 한명이 중얼거렸다.
이에, 유세현은 조심히 몸을 일으켰다. 안타깝지만 놈들의 수색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땀에 전 앞머리를 쓸어 올린 유세현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움직이도록 하겠습니다.”
“크으...알겠습니다.”
일방적인 통보라고 볼 수 있는 말에도 생존자들은 별 기분 나쁜 내색 없이 바로바로 반응했다.
추격이 없다 하더라도 사실 이런 곳에서 계속 쉬고 있을 수도 없을 뿐더러, 눈앞에 있는 남자가, 아니 세 명이 얼마나 대단한지 몸소 체험한 탓이다. 신예라고 불리 워서 이름은 진즉 알고 있었지만 이정도일 줄이야.
만약 이 셋이 없었더라면 99%의 확률로 주둔지에서 전멸했을 것이다.
스륵 스륵.
유세현이 앞서가자 생존자들이 뒤를 따랐다.
무척 긴 시간이 이 지난 것 같건만, 지면에 짙게 깔린 어둠은 아직도 걷힐 줄을 모르고 있었다.
* * *
삼일 뒤.
처참한 모습으로 나타난 생존자들의 모습에 의해 요새는 발칵 뒤집혔다.
주둔지가 함락되다니?
근처에서 매복이나 습격 등 자잘한 전투가 있을지언정 이런 식으로 직접적인 공격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공격하는 쪽에서는 굳건한 외벽 덕에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되기 때문이었다.
일반론적으로 보자면 공격하는 쪽에서는 방어하는 쪽의 약 3배가량의 병력이 필요하다.
물론, 육체의 능력이 같은 현대와 달리 스킬과 스텟의 차이가 있음으로 차이가 좁혀지긴 한다. 허나, 그렇다고 한들 습격이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우선 저층계와 고층계 인원.
둘 중에서 누가 많이 살아남느냐 가정한다면 당연히 고층계다.
즉, 상당수의 코인을 그들이 먹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층계 인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판도라로 떠난다.
그렇다면 남은 인원들은?
물론 나머지도 코인을 흡수했을 것이기에 질은 더 좋아졌을 것이다. 허나, 수적으로는 상당히 불리해지기 때문에 던전을 공략해 보다 더 좋은 아이템이나 스킬을 얻어야 되는 입장에서는 그리 좋지 않다. 또한 몬스터라는 별
피해 없이 강해질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는데 뭣 하러 무리해서 쳐들어간단 말인가.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승리를 했다는 가정 하에다.
만약 승리를 못할 시에는 적이 역으로 코인을 흡수하고 강해질 수가 있다. 그렇게 되면 이후에 벌어질 쟁탈전은 완전히 작살나게 된다.
또 이것 말고도 다른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주둔지를 공략하더라도 마땅히 얻을 이점이 없다.
보통은 식민지화 시키던지 식량을 약탈하던지 하겠지만, 식민지화하기에는 존재하는 인원들 모두가 전투원이라 너무 위험했으며, 식량은 숲이나 몬스터 등에서 얻기 쉽다.
때문에 그나마 좋은 것이라고는 지리적 이점을 얻는다는 것뿐인데, 한국의 GP같이 경계에 지뢰가 깔려있는 것도 아닌지라 눈앞으로 이동하고 있는 적을 딱히 방해할 수도 없다.
그렇기에 그들이 주둔지를 공략해 얻는 것이라고는 정말 조금 더 안락한 보금자리뿐이었다.
고작 보상이 이정도인데 누가 공략 하려 하겠는가.
이런 이유로 아이언연합이 망명을 환영한 것은 사실 주둔지의 힘을 강화시키기 위함보다도, 진형이 가까워 잦은 습격을 하고 있는 고블린들에게 활발한 움직임을 선보여 기를 죽이려는 의도가 더 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구름섬에 있는 대리자들의 목적은 힘을 축적하여 판도라로 나아가는 것이지 상대종족을 전멸 시키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적절히 석판을 얻고, 적이 너무 강해지지 않게 견제하며 인구수를 유지하는데 힘썼다. 몬스터 웨이브를 뚫는 것도 뚫는 것이지만 판도라가 어떻게 되어있을지 모르는 만큼, 최대한 뭉쳐가는 게 안전하기
때문이다.
브라이언에게서 자세한 진상을 들은 요새 3대 팀 중 헤르메스의 수장, 게릭의 표정을 와락 일그러졌다.
“그럼 나머지 인원들은...”
“후...아마도 전멸을 면치 못했을 겁니다.”
“...미친...”
물빛의 사원에서 고블린들의 집결을 한차례 확인한적 있던 게릭은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드렸다. 지금까지 부족단위로 생활해온 것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 만큼, 보통의 고블린들은 그렇게까지 몰려다니지 않는다.
이제 막 팀 솔져의 수장이 된 이치하라 쿄타로도 심각함을 느꼈는지 표정이 안 좋은 것은 마찬가지.
반면, 팀 아돌프의 에단 호크만큼은 무척 덤덤했다.
“그러게, 애초부터 요새에 있었으면 좋았지 않습니까. 버티지 못하고 무리에서 이탈하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겁니다.”
퉁명스러운 내뱉는 말투에서는 기분 나쁜 조소를 머금고 있었다.
쿵!
팀 라이트의 수장 클락이 책상을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항의를 하기위해 이런 행동을 취한 것이었지만, 브라이언은 손을 살짝 내리는 것으로 그의 행동을 저지했다.
지금 요새 3대 팀 중 하나인 팀 아돌프와 시비가 붙어봤자 좋을 게 하나 없기 때문.
지금은 끓어오르는 감정을 사려야한다.
이에 유세현과 이강호가 에단을 주시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라는데 지금 보면 딱 그가 그러했다. 그 많은 인원이 죽었음에도 강 건너 불구경 하는 꼴이라니.
브라이언이 말했다.
“아무튼, 이분들이 없었으면 저희는 그곳에서 죽었을 겁니다.”
“호오...게릭의 목숨을 부지시켜준 그 신예인가? 신예는 확실히 신예인가보네.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따라 왔다며? 한 번 해봐.”
에단이 거만한 자세로 말했다. 이강호는 차분히 입을 열었다.
“지금, 고블린들의 움직임은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우선, 집단적으로 움직이죠. 더군다나 치고 빠지는 것이 영리합니다.”
“그래서?”
“적의 저층계 인원은 이번일로 제법 강해졌을 것 입니다. 때문에 우리도 이제부터는 적극 견제를 해야...”
“우리가 왜? 당한 건 너희들인데.”
에단이 말을 잘랐다. 이강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입을 닫았다. 아무리 떠들어봤자 소용없다는 것이 태도에서 부터 떡하니 드러나고 있었으니까.
에단을 외면한 이강호가 게릭과 쿄타로를 향해 쓰윽 고개를 돌렸다.
게릭에게 있어서 이것은 무언의 압박처럼 느껴졌다. 에단을 향해 고개를 돌린 그가 입을 열었다.
“에단 그렇게 말하지 마라. 이건 심각해.”
“허~심각해? 뭐, 그렇지. 그런데 조심만 하면 되잖아? 설마 우리 요새가 저들처럼 뚫릴 거라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그리고 아~주 용맹하게 싸우신 이분들 덕에 그놈들 이번에 꽤나 죽었을 거 아니냐. 그리고 이제 게이트가
열리는 시간까지 고작 사흘밖에 남지 않았어. 걔네들도 판도라로 가야되는데 수가 줄어든 놈들이 과연 쳐들어올까?”
“아니, 에단. 지금은 그걸 말하고 있는 게 아니잖아. 그 이후는 생각하지 않는 거냐?”
“킥. 게릭. 우리도 이제 약 1년 남았어. 지금까지 하던 대로만 하다 올라가면 돼. 그리고 몬스터가 풀리면 사냥 때문에 당분간 저놈들도 바쁠 꺼다. 그리고 그사이 이 기억은 잊혀 지겠지. 그럼 만사 오케이 아니냐. 안 그래?
그게 아니면 이제 와서 복수를 위해 칼을 갈아주는 성인군자가 되리라 마음먹은 거냐?”
“...그게 아니랬지. 너 진심으로 저놈들이 이곳을 안 덮칠 것 라고 생각 하냐?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은 쉬워. 수단은 분명 강구해야 된다.”
“하! 수단? 경계 인원 늘리고! 조심만 하면 되는데 수단은 무슨 수단! 너 저놈들에게 빚진 거라도 있냐? 아~맞아. 뎅겅 목이 잘릴 뻔한 널 그들이 살려줬지? 그런데 이걸 어쩌냐? 주둔지 인원들은 이제 전부 풍비박산이 났는
데~”
“이 새끼가...보자보자 하니까. 나한테 쳐 발리고 바닥을 기던 옛 기억이 이제 슬슬 잊혀져가나 보지? 한 번 더 그 뇌에서 꺼내줘?”
“하! 몇 달 전 이야기를! 넌 이제 족밥이야 새꺄! 꼬우면 지금 한 번 다시 해볼까?”
파지직.
시선을 마주하고 있는 두 사람의 눈동자에 불똥이 튀었다.
이야기가 논제에서 벗어난 것은 이미 먼 옛날.
이강호의 눈이 에단을 흘겼다.
‘처리해 버릴까.’
그는 이기심 및 권력 등 사람의 개인적인 감정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는 편이었다. 자신도 그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니까.
허나, 이건 도가 지나치다.
지금 이강호의 입장에서 에단은 암세포였다.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생존자들을 좀 먹으며 자라나게 될 암세포.
그리고 암세포를 정상 세포로 되돌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걸린다.
“너희 둘 거기까지 해라. 지금 이 자리가 싸움하려고 만든 자리가 아닐 텐데?”
쿄타로가 중재하고 나서야 둘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그제야 싸움을 멈췄다.
“죄송합니다. 우선은 여기까지만 하도록 하죠. 아! 브라이언씨는 이번에 판도라로 향할 고층계 인원 분들을 따로 모아서 저희 팀 솔져에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예. 알겠습니다.”
이윽고 일행은 요새 가장 외각에 위치해 있는 공터로 돌아왔다. 그곳에는 추격을 따돌리느냐 잠도 자지 못하고 먹지도 못한 약 3천 명 가량의 생존자들이 처량한 몰골로 땅에 누워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 결과와 대책(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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