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99화 (99/612)

< 덫(2) >

“세현아. 혹시 75~85% 되는 놈들도 있냐?”

“어, 있어.”

“그놈들이 어디로 들어가나 봐봐. 적당한 숫자는 한 100~150마리 정도.”

“조건에 부합하는 곳이 딱히 없으면?”

“그럼 질을 좀 더 우선시해서 봐줘.”

“오케이.”

제이미에게서 빼앗은 시야 확대 아이템을 든 유세현의 예리한 두 눈이 고블린의 이동경로를 살핀다.

그는 곧 장소 두 개를 선정했다.

이것으로 준비단계는 거의 끝.

남은 것은 반나절 정도 기다렸다가 고블린들의 뒤를 밟는 일만 남았다. 제대로 흔적만 남긴다면 추적은 분명 그들이 알아서 해줄 것이기에.

‘와라. 헤르메스.’

토끼를, 아니 사자를 위한 덫은 이미 마련되어있었다.

* * *

“확실한 거겠지?”

“예. 분명히 물빛의 사원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이한철의 보고를 받은 게릭이 미간을 좁혔다. 그렇게 바랐던 정보였으나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 첫째.

물빛의 사원은 그 크기가 어마어마하다.

즉, 소수인 그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좋은 것이 하나 없다.

자칫 잘못하다간 이 종족과 조우할 뿐만 아니라, 최악의 경우에는 뒤통수를 맞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둘째.

쟁탈전에서 승리했다고 한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석판의 수로는 그리 많은 단계를 나아갈 수 없다.

물론, 운 좋게 1~2단계에서도 꽤 괜찮은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고는 하지만...

‘아니, 어차피 이런 식으로 생각해봐야 의미가 없나.’

게릭은 고개를 저으며 머릿속을 비웠다.

그들이 소수인원으로 구름섬을 누비는 미친놈들인 만큼, 상식적으로 생각해봐야 별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혹시 아는가? 다른 것을 노리고 물빛의 사원을 찾았을지.

“좋아, 잘 알았으니 이만 가봐라.”

“예!”

이한철이 90°도 경계 후 바깥으로 빠져나가자 게릭은 곧장 스케줄 표를 살폈다.

앞으로 6일 뒤에 구름섬 5층의 던전 공략이 예정이었다.

중간에 합류한다고 가정한다면 약 4일간의 여유가 있는 상황.

게릭은 곧장 이동을 개시했다.

빠르게 섬을 올라가는 100명가량의 정예부대원들!

숨어서 다니는 유세현 일행과 달리 그들은 단 하루 하고도 반나절 만에 물빛의 사원에 도착할 수 있었다.

주변을 경계하며 입구 앞에 선 게릭이 탐색병을 향해 물었다.

“어때? 흔적 찾을 수 있겠어?”

“흠...잠시만 기다려 주십쇼. 생각보다 발자취가 너무 많습니다. 모양을 보니 대부분이 고블린의 것 같은데...”

“고블린?”

“예. 이놈들 최근에 사원 내부로 진입한 거 같습니다.”

“진입? 그럴 리가...”

게릭이 말꼬리를 흘렸다. 유세현 일행이 있다고 하여 온 것인데 생뚱맞게 고블린들이 있다니.

‘아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다.’

고블린들은 쟁탈전에서의 패배를 기습으로 메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대량의 석판이 그들의 손에 넘어갔다. 객관적으로만 따지자면 유세현 일행이 이곳에 왔을 가능성보다 훨씬 큰 것.

‘역시 속은 건가?’

게릭이 막연히 되뇌고 있을 때였다.

주위를 세심히 살펴보던 탐색병의 눈이 번뜩 빛났다.

동시에 터져 나오는 말.

“중대장님 분명히 세 명이라고 하셨죠?”

“그래. 맞아.”

“그렇다면 찾은 것 같습니다.”

“뭐, 진짜?”

“예. 서로 다른 세 개의 발자국이 내부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것도 고블린의 것보다도 선명하게...”

“오~그렇단 말이지? 안내해라.”

“예. 알겠습니다.”

그들은 곧 탐색병의 안내를 따라 던전으로 이어지는 입구에 섰다. 내부로 들어가기 전 탐색병이 말을 덧붙였다.

“아무리 봐도 이 내부에는 고블린이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그 말은 그놈들이 고블린의 뒤를 따라 들어갔을 거라는 거냐?”

“아마도...”

“큭.”

조소를 내뱉는 게릭의 입가가 비틀리듯 말려 올라갔다. 유세현 일행의 의도를 대충이나마 파악했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게릭의 생각한 유세현 일행의 의도는 이러하다.

고블린들이 내부를 나아간다. 상당한 석판을 가지고 있을 것임으로 그들은 분명 1~3단계까지는 무난하게 클리어 할 것이다.

허나, 이 물빛의 사원은 아직까지 끝까지 도달한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마의 던전.

즉, 고블린들의 석판은 좋으나 싫으나 끝까지 가지 못하고 결국에는 반드시 떨어지게 되어있다.

그리고 그렇게 석판이 다 떨어진 고블린들이 던전을 나가게 되면?

뒤를 밟은 유세현 일행이 자연스레 던전을 이어나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상당한 강심장이 아니거나, 머리를 제법 굴리지 못한다면 도저히 취할 수 없는 행동.

‘영특한 놈들...’

혹은, 쉬고 있는 고블린의 뒤를 노리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들의 스킬은 구름섬 3층의 고블린들을 쓸어버리기에는 충분했음으로.

더 나아가 그들은 급습에서 살아남아 강해지지 않았던가.

‘전부 무너트려 주지.’

과연 역으로 뒤치기를 당했을 때 놈들은 어떤 표정을 할 것인가.

게릭은 마음속으로 상상하며 인원들을 향해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

치이잉!

금속성의 마찰음과 함께 번뜩이는 칼날.

“가자.”

“예!”

그들은 곧 열려있는 문을 너머 내부로 진입해 들어갔다.

* * *

“왔다!”

고블린들의 뒤를 밟고 있던 유세현이 눈을 번뜻 빛냈다. 그러자 이강호가 그의 어깨를 툭 쳤다.

“내말이 맞지? 알고도 올 거라고.”

“크...진짜네.”

“선배님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실 거죠?”

“우선 말했던 대로 계속 나아 갈 거다. 움직이는 건 그들이 일정 거리로 붙은 이후. 경계하면서 오는 만큼 반나절 사이에서 하루정도 걸릴 가능성이 커. 그러니깐 가까워지면 말해줘 세현아.”

“오케이.”

일행은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갔다.

곳곳에는 새까만 물웅덩이가 군데군데 파여 있었다.

이 던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 타락한 인어 아쿠무스의 개인 공간이었다.

폭은 좀 좁지만 꽤나 깊기 때문에 세 명이 들어가 숨기에는 충분한 것이 포인트.

이것이 물빛의 사원을 고른 사실상 제일 근본적인 이유였다.

물의 정령인 운디네가 있는 그들은 이곳에서 보다 더 손쉽게 은엄폐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일행들은 팀 헤르메스의 접근에 따라 조금씩 고블린과의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마침내, 고블린 진형과 유세현 일행, 게릭의 팀은 엎어지면 코 닿을 만큼 가까워졌다.

* * *

“조심하십쇼. 발자국이 많이 짙어 졌습니다. 슬슬 적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 알았다.”

몸을 밀착시킨 게릭이 고개만 슬쩍 내밀어 전방을 훑었다. 육안으로 확인 되는 것이라고는 아직까지 딱히 없었다.

웅덩이의 여파로 생긴 진흙을 더욱 유심히 탐색병이 말을 덧붙였다.

“중대장님. 지금 보니까 3명뿐만 아니라 고블린과의 거리도 제법 가까워 진 것 같습니다. 혹시나 지금 세 명과 전투를 치르게 된다면...”

“눈치를 챌 수 있다는 뜻이지?”

“예. 그렇습니다.”

“흠, 그렇단 말이지...”

셋을 노리는 것은 고블린들이 던전을 빠져 나갔을 때 혹은 그들이 고블린들을 덮쳐 힘이 빠졌을 때 하면 된다.

굳이 무리할 필요는 없는 것.

판단을 내린 게릭이 부하들을 향해 재빨리 명령을 내렸다.

“알았다. 그럼 지금 이곳에서 잠시 추격을 정지...”

그때였다.

쾅!

문 너머로 갑작스레 커다란 폭음이 이어졌다.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던 부대원들과 게릭이 깜짝 놀라 황급히 벽에 몸을 밀착시킨 채 전방을 살폈다.

“뭐야? 지금 거? 설마?”

세 명과 고블린들이 맞부딪친 것인가?

게릭이 뇌리 속으로 여러 가지 추측을 하고 있을 때였다.

“키륵? 뭐, 뭐냐!”

고블린들이 저편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모습을 보니 그들도 당황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전투가 벌어진 것이 아니었단 말인가?

“키륵! 뭐가 있다! 주위를 탐색해라!”

“적을 찾아라!”

킁킁 냄새를 맡으며 게릭이 위치해있는 장소로 맹렬히 달려오는 고블린들.

게릭은 입을 악물었다.

물웅덩이를 제외하고는 텅텅 비어있는 공간이라 마땅히 은폐할 곳도 없건만, 유세현 일행은 어디로 제치고 자신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온단 말인가!

무기를 치켜든 부대원 전원이 황급히 게릭을 쳐다봤다. 명령을 내려달라는 뜻.

“젠장! 일단은 모두 퇴각한다!”

세 명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이상 붙어봐야 전혀 좋을 것이 없다.

그들이 그렇게 뒤로 내빼려는 순간이었다.

덜컥.

트드득.

톱니바퀴가 맞물리는 소리와 함께 공간을 통로를 나눠 있던 두터운 문이 갑작스레 닫혔다.

문 앞에는 보랏빛 머리카락을 지닌 여자 한 명이 몸매를 강조하듯 요염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게릭을 향해 고혹스러운 미소를 지어보인 아퀼라가 손을 뻗었다.

“파이어 볼.”

영창과 동시에 사방팔방으로 매섭게 날아가는 불덩이.

불덩이는 외벽에 닿기 무섭게 큰 폭발을 일으켰다.

“으으으! 이게 무슨!”

게릭의 이빨이 부득 갈렸다. 난사를 하고 있는 그녀의 의도를 단번에 파악했기 때문.

“전원 전투 준비!”

“예!”

“우선은 저 여자부터 베어버려라!”

게릭의 입에서 터져 나온 분노와 함께 부대원들이 아퀼라를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허나, 그 순간 아퀼라가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당당한 도발!

“이년이!”

슈욱!

펑!

검이 닿기 직전 아퀼라의 육신은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다.

“염병할!”

부대원들의 입에서 욕설이 세차게 터져 나왔다.

다 잡은 것을 놓치다니!

잔뜩 열을 내고 있는 그들을 향해 후방에서 고블린들의 포효가 울려 퍼졌다.

“키리릭! 인간이다! 인간이 이곳에 들어왔다! 전부 죽여라!”

“캬아아악!”

이내 광기어린 모습으로 달려들기 시작하는 고블린들.

“전부 처리해라!”

게릭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그는 그때까지만 해도 눈앞에 보이는 적이 단순한 6~8개월 차의 고블린이라 생각했다.

허나.

“크윽! 이건!”

검을 맞댄 순간 단번에 깨닫는다.

눈앞의 적은 자신들과 동급의 힘을 지니고 있는 1년차라는 것을.

이렇게 되면 단순히 압도적인 힘으로 짓누르는 게 불가능 하다.

“전원 B-2포메이션으로!”

게릭은 부대원들과 힘을 합치기 위해 전술 포지션을 외쳤다.

“크윽!”

“흡!”

하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난전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가는 자연스레 소모전의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게릭은 전력손실을 막기 위해서라도 곧바로 최강의 스킬을 사용했다.

“이런 염병할 놈들이! 라이트닝 쇼크!”

파지직.

검신 주위로 맹렬하게 튀어 오르는 스파크.

큰 폭으로 검을 휘두르자 움직이는 궤도에 따라 갈래번개가 퍼져나간다.

차마 회피하지 못한 곳곳에서 비명소리가 울려 퍼졌다.

“키에엑!”

“캬악!”

“비켜라!”

게릭은 새까맣게 그을린 적들을 검으로 계속 베어나가며 팀원들을 빠르게 규합해 나갔다.

그러자 게릭의 팀은 빠르게 안정을 되찾기 시작했다.

진형을 가다듬는데 성공한 게릭이 외쳤다.

“스텟이 비슷하다고는 하나, 어차피 적은 진형을 짜지도 못하는 미개한 종족! 포메이션을 유지하며 싸워라!”

“예!”

그들은 막무가내로 달려드는 고블린들을 차근차근 베어나갔다.

이대로라면 좀 더 적은 피해로 적을 척결할 수 있다.

그렇게 팀 헤르메스는 약 40명이 죽고 고블린들은 그 수가 한 자리로 줄었을 때였다.

피잇!

좀처럼 달려들지 못하고 있는 고블린의 어깨너머로 검붉은빛이 순간 번쩍였다.

게릭의 두 눈동자가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검붉은빛을 발산하는 스킬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번 밖에 본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모, 모두 양옆으로 흩어져라!”

콰과광!

외침과 동시에 유세현이 발산한 천마혈사장(天魔血死掌)이 일대를 휩쓸었다.

어찌나 날아오는 속도가 빠른지 재빨리 움직였음에도 무려 1/2에 해당하는 인원이 적중 당했다.

“커...컥.”

기술을 피하지 못한 고블린과 게릭의 부대원은 제자리에서 쓰러져 연신 피를 토해 냈다.

상당한 중상이었다.

또한 몇몇은 아예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빌어먹을 놈들이...’

천천히 걸어오는 셋을 응시하는 게릭의 눈에는 핏발이 잔뜩 서있었다. 젖어있는 일행의 몸을 확인한 게릭이 낮은 어조로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쥐새끼 마냥 물웅덩이 속에 숨어 있었던 건가...”

“......”

답해줄 의리는 없었기에 일행은 구태여 말하지 않았다. 대신 묵묵히 무기를 치켜세울 뿐이었다.

그 모습에 게릭 또한 무기를 다잡았다.

“곱게 죽을 생각은 하지 말아라!”

말과 동시에 발산되는 뇌격.

중력이 존재하고 공기가 흐르는 세계인만큼, 물에 젖어있는 사람들이 잘 감전되는 것은 지구에서나 이곳에서나 똑같았다.

“모두 A-13포메이션으로! 몰이사냥을 한다!”

“예!”

게릭의 말에 따라 부대원들이 그들을 넓게 포위하려는 순간이었다.

쿠구궁!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강한 압박이 그들의 몸을 짓눌렀다.

그리고 그 순간.

세 개의 섬광이 게릭의 눈앞에 번뜩였다.

< 덫(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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