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섬(2) >
그 순간 이변이 일어났다.
“키릭. 퇴, 퇴각해라!”
“두, 두고 보자! 인간!”
적의를 띠며 달려들던 고블린들이 일제히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한 것이다.
지능이 낮았을 때는 아니, 지능을 떠나 그 어떤 몬스터도 이런 전술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전술적 퇴각이라니.
승리에 대한 기쁨보다도, 막연한 불안감이 이제 막 구름섬에 올라온 생존자들의 목 끝을 스쳐지나갔다.
허나.
“크하하하하. 별 것도 아닌 것들이! 안그러냐 길태야!”
어딜 가나 예외는 반드시 존재하는 법.
유세현이 귓가로 들려오는 익숙하면서도 유쾌한 웃음소리에 볼을 긁적거린 찰나였다.
[쟁탈전에서 승리하셨습니다. 공헌도에 따라 석판이 차등 지급됩니다. 특수필드가 해제 됩니다.]
파앗.
별안간 터져 나온 밝은 빛과 함께 손바닥 만한 크기의 육각석판이 생존자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유세현과 이강호, 김주희의 눈앞에는 각각 1개의 석판이 둥실둥실 떠 있었다.
아이템 명: 제1 석판.
등급: 레어[E Rank]
상세정보: 구름섬 1층에 위치한 마굴의 입구를 여는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음...”
유세현은 일단 손을 뻗어 석판을 회수했다. 여러 개의 석판을 지급받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결코 성과가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왈가왈부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불가항력적으로 이 전투에 참전한 것이니까.
생존자 일동의 두 눈이 언덕 위를 향했다.
전투가 끝난 지금, 이제는 제대로 된 자초지종을 들을 차례였다.
* * *
생존자들은 기수별로 나뉘어 베이스 캠프로 이동했다.
단상에 서 있던 흑인 남성이 생존자들의 정렬이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다시 살아서 만나게 되어 반갑다. 이곳에 서 있는 생존자중 내 얼굴을 모르는 자는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일단 이번 기수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의 이름과 소속을 정확히 밝히고 들어가도록 하겠다. 나의 이름은 게릭 잭슨! 팀 헤르메스 소속으
로 이제 1년차에 들어선 생존자다.”
게릭은 얼굴도장을 찍듯 한 번 주의를 훑었다.
생존자들이 마땅한 반응을 보이지 않자 게릭이 말을 계속이었다.
“갑작스럽게 전장에 끌려갔던 만큼 궁금한 점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그전에 앞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간단히 설명부터 해주겠다. 이곳 구름섬은...”
구름섬은 총 7개의 층계로 나뉘어져 있는 계단 형식의 섬이다.
각 층에는 마땅한 괴수들이 살고, 층계를 올라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그리고 생존자들의 목표인 판도라로 이어지는 게이트는 6층에 존재한다.
즉, 그들은 2년 내에 6층까지 도달하기 위해 몬스터를 잡고 강해질 필요성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강해지는 게 그리 쉽지 않다는 것.
몬스터의 수준도 수준이거니와 인간처럼 한계를 벗어난, 또 다른 종족의 존재 때문이었다.
“너희들도 이미 봤을 것이다. 형세가 불리해지자 쟁탈전을 포기하고 퇴각하던 고블린들을!”
아무리 수가 많아도 단순무식하게 달려든다면 비상한 잔머리를 지니고 있는 인간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
허나, 인간이 육체의 한계를 벗어났듯, 고블린 또한 종족의 한계를 넘어서 높은 지능을 손에 넣는데 성공했다.
단순한 몬스터에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지성생명체가 된 것이다.
“뭐?”
“무슨...”
생존자들이 술렁였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자신들처럼 한계를 벗어난 존재라니?
그 말은 즉슨.
“그렇다. 놈들 또한 우리처럼 코인을 흡수해 강해질 수 있으며 최종적으로 노리는 것 또한 우리와 같은 6층에 위치한 게이트다.”
게릭의 말에 생존자들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지성을 손에 넣은 것뿐만이 아니라 자신들처럼 강해질 수 있다니?
더군다나 목표가 같다니?
현재 생존자들의 뇌리 속으로는 한 가지 가설이 정체 없이 맴돌고 있었다.
게릭이 생각을 읽듯 말했다.
“이쯤 되면 너희들도 어렴풋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들은 놈들 또한 튜토리얼의 통과자들이라 결론을 내렸다.”
“......”
무거운 중압감이 감돌았다.
게릭은 계속해서 연설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내용은 이러했다.
구름섬의 몬스터의 객체 수는 정해져있다. 한 번 죽이면 이 몬스터들은 게이트가 열리게 될 약 6개월의 시간 동안 재생성 되지 않는다. 즉,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사람과 고블린에 의해 저층부 몬스터의 씨가 마르는 것.
고층부로 분류되는 4층과 달리 저층부 3층까지는 몬스터들의 수준은 그렇게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새내기들이 고블린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필히 던전에 들어가 강해질 필요성이 있었다. 그리고 던전의 입장료는 특수한 조건을 만족 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석판.
게릭은 이를 전쟁터로 보낸 이유라 내세웠고, 생존자들은 나름 납득했지만 유세현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새내기들이야 석판을 얻어 좋다고 하지만, 선배 격 생존자인 그들에게는 아무런 이득이 없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서야 제 밥벌이도 하기 힘든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굳이 시간을 쪼개 자선사업을 한단 말인가?
유세현은 분명 꿍꿍이가 있을 거라고 판단했고 그 꿍꿍이는 곧 얼마 안가 들어났다.
게릭이 외쳤다.
“그럼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더 하겠다. 지금 이 요새에는 약 수백 개가 넘는 팀들이 주둔해있다. 허나, 팀이라고 해도 다 같은 팀은 아니다. 지금까지 너희들을 인솔한 선배들은 이 요새에서 최고를 자랑하는 팀 헤르메스, 팀 아돌프, 팀 솔져에 속해있는 이들이
다. 규모가 요새 최고이니만큼 식량조달, 경계 및 각종 주요 임무를 도맡아 하고 있지! 지금부터 너희 새내기들은 지금까지 함께했던 인솔자들과의 간단한 면담을 가진 이후, 팀에 속할 것인지 속하지 않을 것인지 선택을 하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선택은 자유다.
팀에 가입을 할 시에는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한다. 허나, 만약 팀에 속하지 않겠다는 경우에는 인솔자에게 석판을 반납해야 한다. 우리가 지금까지 너희에게 설명해준 이야기는 그 정도의 값어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럼 알아들은 것으로 생각하고 바로 실시하도
록 하겠다. 이상!”
말을 마친 게릭은 그대로 단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곧 각 팀의 인솔자들이 자신이 맡았던 인원들을 데리고 간이식 천막으로 이동을 실시했다.
하나, 둘. 천막 내부로 들어가는 생존자들.
차례를 기다리던 유세현이 앞에 있는 이강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너 어떻게 할 거냐?”
“넌 내가 어떻게 할 거 같은데?”
이강호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머리카락을 살짝 긁적인 유세현이 나직이 말했다.
“안하겠지 뭐.”
“잘 아네~ 근데 왜 물어 본거야?”
“...그래 물어본 내가 죄인이다. 죄인. 짜샤.”
장난스레 답한 유세현은 차분히 차례를 기다렸다. 이윽고 이강호가 내부로 들어 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천막 안에서 다음 사람을 찾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세현은 석판을 손에 쥔 채 천막 내부로 들어갔다. 그러자 금발이 돋보이는 청년이 그를 반갑게 맞았다.
“안녕하세요. 에드워드 릭입니다.”
“유세현입니다.”
“흐음. 유세현씨라...”
에드워드가 들고 있는 평평한 돌에 단검을 꾹꾹 눌러 유세현의 이름을 새겼다. 유세현의 이름 말고도 여러 이름이 새겨져있는 것을 보니 추후 발생할지 모르는 예기치 못한 상황을 대비해 작성해놓는 일종의 문서 같았다.
수기를 끝낸 에드워드가 유세현의 얼굴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처음과 달리 마력이 듬뿍 맺혀있었다.
‘뭐지?’
알 수 없는 불쾌한 감각이 피부를 타고 흐른다. 유세현은 조심스레 주위를 살폈다. 에드워드의 몸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방출된 미미한 마력이 몸 주위를 넓게 분포해 에워싸고 있었다. 보랏빛의 일반 마력이 피부에 침투하려던 순간이었다.
‘어딜.’
파앙!
유세현은 몸 안에 있는 어둠의 마력을 이용해 재빨리 에드워드의 마력을 밀어내었다.
“헉!”
에드워드의 입에서 별안간 탄성이 터져 나왔다. 유세현의 얼굴을 쳐다보는 그의 두 눈동자는 강한 경련을 동반하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방금 그가 유세현에게 사용한 스킬은 상대방의 능력치와 스킬을 확인하는 능력인 간파 스킬이었으니까.
비록 자신보다 낮은 스텟을 지닌, D랭크 이하의 생존자들에게 밖에 통하지 않는 것이 단점이라면 큰 단점이지만 그럼에도 이 스킬은 무척이나 쓸만하다.
보다 더 좋은 능력을 구비한 유능한 새내기들을 차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스텟을 알고있기에 행여나 거절시에도 좀더 좋은 대우로 스카웃을 할 수있는 것!
간파스킬은 그만큼 새내기들에게 있어 완벽한 스킬이었다.
무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미친! 간파할 수 없다니. 새내기를? 내가? 두 명이나?’
에드워드는 현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E랭크 80%에 달하는 자신이 새내기보다 약하단 말인가?
아니,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
튜토리얼에서 아무리 강해져봤자. 거기서 거기란 것을 이 구름섬와서 뼈 빠지게 느껴본 탓이다.
‘그럼 대체 무슨...’
방금 전 이강호란 놈에게도 먹히지가 않았다. 이게 말이 되는가. 아니면 스킬이 망가지기라도 했다는 것인가.
당연한 말이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가 유세현을 향해 재차 능력을 사용하려던 찰나였다.
“저, 질문은 안하시는 건가요?”
“아...아. 그렇죠. 내 정신 좀 봐. 죄송합니다. 그래서 유세현 씨는 팀에 가입할 마음이 있으십니까? 제가 있는 팀은 헤르메스로...”
에드워드는 마음을 최대한 가다듬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딱 대화를 끝낸 참이었다.
상대방의 기분을 고려하여 듣고 있던 유세현이 비로소 정중히 석판을 에드워드의 앞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나직한 한마디와 함께 밖으로 나왔다.
“아뇨. 죄송합니다.”
“......”
에드워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잠시 동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 * *
밖으로 나서자마자 기다리고 있던 이강호가 곧바로 물어왔다.
“야 세현아, 너도 혹시 에드워드가 사용한 스킬 쳐냈냐?”
“스킬?”
“응, 몸에 뭔가 침투하는 느낌이 분명 들었을 텐데.”
“아...그거? 역시 스킬이었나.”
새삼 꺼림 직했던 기분에 유세현이 살짝 인상을 구기자 이강호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예상치 못하게 너무 눈에 띠었다.
하필 면담을 해도 일반 탐지 스킬이 아닌 그 희귀한 간파 스킬을 가지고 있는 놈과 하게 될 줄이야.
“세현아. 김주희가 만약 거절하고 나오면 당장 이곳을 떠야나겠다.”
본래 이 권유 아닌 권유가 끝이 나면, 중규모의 팀의 스카웃 제의와 동시에 개인적인 소규모 팀을 꾸릴 시간이 주어진다.
때문에 이강호도 본래의 계획대로라면 소규모 팀을 만들 생각이었다.
허나, 이런 상황이 발생하면 그런 것은 불가능하다.
그가 헤르메스, 솔져, 아돌프 이 세 팀의 특징을 너무 잘 파악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량 공세로 인한 던전 및 몬스터, 그리고 아이템 독차지.
그들은 겉으로는 생존자들을 위하는척하지만, 실상으로는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움직이는 존재들이었다.
새내기들이나 별 마땅한 재능이 없는 자들을 버림 패로 사용하는 악독한 팀.
이강호도 과거에는 보기 좋게 당했다.
잘 대해준다는 말에 미련하게 속아, 팀에 가입 한 뒤 한 것이라고는 석판 셔틀 뿐.
사실, 그들이 중요하다면서 전해 준 정보는 판도라로 향했던 선구자들의 기록일지에 전부 적혀있는 내용들인지라 어차피 2주 만 지나면 전부 알게 될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굳이 이런 짓을 하면서 까지 1번 석판을 모으는 것일까.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1층에 위치한 던전 중에서도 수천 개의 석판을 이용해 들어갈 수 있는 강한 던전을 클리어하면 애매한 2~3층의 던전 보다도 더 좋은 아이템이 나올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 구름섬(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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