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섬(1) >
깜짝 놀란 생존자들의 시선이 목소리의 근원지를 향해 재빨리 돌아갔다.
위치는 곧게 뻗은 나무의 위.
그곳에는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여러 인종의 생존자들이 저마다 다른 나뭇가지에 두발을 딛고 당당히 서 있었다.
익히 파악한 마력 주인들.
힘의 차이를 느낀 유세현은 긴장하는 반면 일반 생존자들의 눈에는 그저 놀라움만 맺혔다.
“뭐, 뭐야?”
“누구?”
“하, 한국인이 아니잖아?”
이 빌어먹을 장소에 잡혀온 게 한국인뿐만이 아니었다니.
잠시나마 고요해 졌던 주위가 다시 산만해지려는 찰나였다.
이목이 집중된 것을 확인한 한 흑인 남성이 연설을 시작했다.
“우선, 우리로 말할 것 같으면 이곳에 한발 앞서 도착한 생존자 연합이다! 너희들의 선배라고 할 수 있지! 지급부터 너희들은 우리들의 통제를 따라 베이스 캠프로의 이동을 실시할 것이다! 궁금한 게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만 시간이 없는 만큼 질문은 받지 않
는다! 거부권도 없다! 여기 있는 전원은 무조건 우리를 따른다! 알겠나? 자 이해했으면 곧바로 각 나무에 배치되어있는 인원을 향해 10렬 종대로 200명씩 정렬할 수 있도록!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없다!”
“...무슨 개똥같은...”
의견을 나누고 협력해 생존에 성공한 인원들에게는 터무니없는 일방적인 통보였다.
아무런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설명할 시간이 없으니까 그냥 닥치고 따르라니.
거기다가 결정권도 없다고 한다.
나름대로 역경을 헤치고 온 생존자들에게는 잔뜩 반발심을 불러일으키기는 말.
유세현은 몇몇 자존심강한 생존자들의 비난이 일컬을 것을 예상했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던 이강호의 입 꼬리가 다분히 올라갔다.
‘그때는 이게 노림수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지.’
이윽고 예상과 같이 몇몇 생존자들의 불만을 제기해왔다.
“저기요. 선배는 선배인거고. 도대체 무슨 권한으로 우리 전부를 움직이려는 겁니까? 적어도 설명은 해줘야 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따르지 않겠다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이런 식의 행동은 받아드릴 수 없습니다. 제대로 설명이라도...”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
그 순간이었다. 흑인의 남성의 몸이 별안간 솟구치더니 불만을 제기한 남자의 앞에 착지했다.
주먹이 다분히 들어 올린 그가 말했다.
“귀가 먹었나? 질문은 받지 않겠다고 했을 텐데.”
퍽.
말과 동시에 빛처럼 빠른 속도의 주먹이 복부에 정확히 들어가 꽂혔다.
“컥...이게 무슨...”
기습을 당한 생존자의 눈에 핏대가 벌겋게 섰다. 그의 손은 이미 허리춤에 차있는 일본도로 향해있었다.
그러나.
“어쭈구리? 기껏 봐줬더니 무기를 사용하시겠다?”
퍼버벅!
남자는 채 검도 뽑아보지 못하고 바닥에 들어 눕는 신세가 되었다. 주위에 있던 그들의 팀원의 인상이 험악하게 돌변했다.
그들은 저마다 각자의 병장기를 뽑아 흑인 남성을 향해 휘둘렀다.
“이런 별 거지같은 싸이코 새끼가 감히 대길씨를!”
“조져! 너희가 시작한 거다!”
솨악!
매섭게 들어오는 협공.
허나, 흑인 남성은 그저 허탈하게 웃으며 발을 뗄 뿐이었다.
솨아악!
한차례 거친 폭풍이 주위를 휩쓴다. 흑인 남성이 생존자들의 사이를 누비기 시작한지 무려 2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탁탁탁.
손의 먼지를 터는 흑인의 주위에는 50명가량 되는 생존자들이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있었다.
“...무슨...”
“미친...”
얌전히 지켜본 생존자들의 눈에 경악이 물들었다. 지금 쓰러진 자들이 얼마나 강한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럼에도 그들은 힘겨운 튜토리얼의 관문을 돌파 한 자들이다.
생존하는데 성공한 강자!
헌데 한 명. 고작 한명에게 2분도 걸리지 않아 제압당하다니?
흑인 남성이 넋이 반쯤 나가있는 주위 생존자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직도 불만 있는 사람?”
“......”
생존자들은 입이 꾸벅 닫혔다. 전부 의도된 상황이었다.
추가적인 설명 없이 보다 더 편리하게 생존자들을 다루기 위해.
본디 질문이란 것 자체가 한번 받아주면 쓸데없는 부분까지 꼬치꼬치 캐묻기 마련이다.
흑인 남성이 박수를 짝 쳤다.
“자자. 이동해야지? 정렬해라!”
“......”
흑인 남성을 어떻게 가까스로 죽인다 한들 나무 위에 배치되어 있는 인원의 숫자는 수 백.
당해낼 재간이 없다고 판단한 생존자들은 결국 체념하고 그들의 말을 따라 열을 만들어 이동을 개시했다.
* * *
장장 1시간에 걸쳐 도착한 베이스 캠프는 단단한 외벽이 높게 늘어서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요새 같은 곳이었다.
이전 이 구름섬을 지나간 아르카드 제국인들이 남겨놓은 유산.
넓디넓은 연병장에 생존자들이 정렬이 끝나자 높은 단상에 선 흑인남자가 입을 열었다.
“우선 우리들의 베이스 캠프에 온 것을 환영한다. 그럼 앞서 말했던 것과 같이 시간이 없는 관계로 이번에도 간단히 말하도록 하겠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다시 특정 장소로 이동하여 적과 전투를 하게 될 것이다.”
두서를 다 잘라먹은, 아니 이해가 되지 않는 흑인 남성의 말에 생존자들이 순간적으로 멍한 표정이 되었다.
싸우라니? 그렇다면 베이스 캠프에는 도대체 왜 왔단 말인가.
“저, 전투라니...이건 또 무슨 개소리냐. 제발 알아듣게 좀 말을 쳐해!”
“맞아 이 새끼들아 좀 얼버무리지 말고 제대로 설명을 하라고!”
목숨이 걸려있는 만큼, 생존자들의 항의가 재차 빗발쳤지만 흑인 남성은 무척이나 완고했다.
“세 번 말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 너희들은 전장에 참전한다! 이유는 전투를 완전히 끝마치고 해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없다! 다른 인원들은 이미 전투를 하고 있다! 너희들만 하는 게 아니다!”
“...미친.”
히틀러도 울고 갈 수준의 독재.
아니, 이건 독재도 아니다, 그저 힘을 이용한 협박일 뿐인 것이다.
단상에 선 흑인 남성을 바라보는 생존자들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과연 이대로 끌려가서 영문 모를 전투를 벌여야 된단 말인가. 그럴 바에는 차라리 모두가 작심하여 이들과 싸우는 게 났지 않을까.
생존자들의 머릿속으로 그런 막연한 생각이 들고 있을 때였다.
흑인 남성이 생각을 읽기라도 하듯 외쳤다.
“너희들 전부가 덤벼도 우리의 상대는 되지 못해!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괜한 생각은 하지마라! 그리고 이는 사실 모두 너희들을 위한 것이다!”
“......”
그렇다면 자기들이 직접 나가 싸우지 왜 타인을 사지로 내보낸단 말인가. 허나, 이 말을 입 밖에 내뱉는 생존자들은 없었다. 피떡이 된 자들도 예외 없이 이곳까지 질질 끌려온 것을 봤기 때문이다.
전투를 피해갈 수 없다면 컨디션이라도 최상의 상태를 유지해야한다.
“이동해라!”
“......”
결국 그들은 또 질질 끌려가는 소처럼 전장을 향해 이동을 시작했다. 개미떼처럼 끝없이 줄지어 나아가는 생존자들의 뒤를 따라가던 유세현이 턱을 짚었다.
너무 갑작스럽고, 터무니없는 데다 정보 또한 없어 이번만큼은 그 또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도저히 예측이 가지 않았다.
그들은 무슨 의도로 이런 무리한 행동을 취하게 하는 것일까.
유세현이 묵묵히 걷고 있던 이강호를 향해 물었다.
“강호야. 지금이게 무슨 상황인지 넌 예상이 가냐?”
“대충은.”
“...대단한 놈.”
“서, 선배님 호, 혹시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김주희의 얼굴 또한 잔뜩 불안감이 어려 있었다.
이강호의 두 눈이 흘끔 김주희를 향했다.
그는 아직 유세현이나 김주희에게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추후 스카웃 제의나, 스펙 오디션을 통해 정식적으로 팀을 변경할 수 있는 선택의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었다.
유세현이야 목숨을 희생할 정도니 미리 이야기 할 수도 있었지만, 어차피 굳이 말하지 않아도 그는 따라줄 것이 분명하거니와, 그렇게 된다면 예비 팀원인 김주희에 대한 예우가 아니다.
이강호는 김주희를 정식적으로 받아들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일반 생존자들보다 높은 스텟과 스킬로 여타 팀들에게 스카웃 제의를 받을 그녀가 유혹을 완전히 이겨낸다면.
이강호가 툭 말했다.
“아마도 1번 석판을 얻기 위해서 일거다.”
“1번 석판이요?”
“응. 자세한 건 어차피 저들이 전투가 끝난 후 전부 완벽하게 설명해 줄 테니까 그때 들어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야.
“...그럼 어떤 게...”
김주희가 살며시 말꼬리를 흘렸다.
이강호의 대답 대신 전방을 가리켰다.
그때였다.
고오오오
공기를 무겁게 가라앉히는 광활한 울림이 새하얀 산기슭 너머로 들려왔다.
높디높은 비탈길에 올라선 생존자들이 마침내 지평선을 내려다 본 순간이었다. 생존자들의 안색이 시퍼렇게 변했다.
초원처럼 드넓은 광활한 대지.
그곳에는 가슴이 턱 막힐 정도로 빼곡히 들어선 생존자들과 괴물이 서로 얽히고설켜 난전을 벌이고 있었다.
“그하하합!”
“캬아아아!”
챙!챙!
서걱!
병장기가 맞부딪치는 소리, 몬스터의 울음소리, 사람들의 함성이 한데 어우러져 공간에 울려 퍼진다.
소규모 팀으로 튜토리얼을 치러왔던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규모.
눈이 보름달처럼 커진 생존자들을 향해 각 팀의 지휘자를 맞고 있는 선배 생존자들이 크게 외쳤다.
“지금부터 너희도 아래의 인원을 도와 전투에 돌입한다! 너무 걱정하지는 말아라! 수준은 서로 엇비슷할 것이다!”
그들은 그리 말하며 뒤로 빠졌다.
동시에 생존자들의 눈앞으로 나타나는 알림창.
[쟁탈의 평원에 들어섰습니다. 자격을 평가합니다. 구름섬 진입 한 달 미만 확인 완료. 쟁탈전에 참가 됩니다.]
“아...”
아주 단순하면서도 짧은 글귀였지만, 생존자들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도 생존의 일환임을, 그들이 딱히 자신들을 속이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것을.
튜토리얼은 비로소 끝이 났지만, 모두를 옭아매던 빌어먹을 법칙은 아직도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씨발...결국 이런 거였군.”
욕지거리를 내뱉은 생존자들의 표정이 돌변했다.
그들은 침착하고 냉정하게 전장을 살폈다.
적이 무엇인지 명확히 보이지는 않지만 겉으로만 보았을 때의 전투의 양상은 서로 비등비등한 상황.
수준이 비슷할 것이라는 선배 생존자들의 말이 사실이라면 물량공세를 펼칠시 승리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이것이 이제 막 들어온 생존자들을 허겁지겁 끌고 온 진짜 이유!
“씨발, 애들 팰 시간에 처음부터 물량 딸린다고 분히 설명하면 됐던 것을...모두 가죠!!”
바로 뒤에서 흑인 남성이 눈에 시퍼렇게 불을 켜고 있었기에, 생존자들은 여태까지 생사고락을 같이 한 팀원들과 함께 적을 향해 돌진했다.
“우리도 가자. 세현아 너 왼쪽 팔은 아직 쓰지 마라.”
“알고 있어.”
“옙!”
유세현과 김주희, 이강호도 적을 향해 달려 나갔다.
채재쟁!
점점 가까워질수록 전투의 열기가 등을 뜨겁게 달군다. 다치지 않은 오른손으로 루베르크의 손잡이를 다부지게 쥔 유세현의 두 눈이 재빨리 적의 모습을 살폈다.
초록색 피부에 성인의 1/2만한 작은 키 그리고 살짝 굽은 등까지.
먼저 의문을 표한 것은 김주희였다.
“고블린?”
외관은 그야말로 튜토리얼 최하급 몬스터 고블린이 확실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그 행동의 수준이 다르다는 것.
이곳에 위치해 있는 고블린들은 튜토리얼의 고블린보다도 훨씬 빠르고, 날렵하고 강했으며 몬스터답지 않게 언어를 구사 할 줄 알았다.
“키릭. 죽어라 인간!”
“호오...”
채챙!
유세현은 재빨리 검을 들어 공격을 막았다.
한손과 양손의 대결.
고블린의 힘은 제법 강했다. 대략 수치로 환산하자면 일반생존자들보다 5~10% 높은 20% 정도.
허나, 그렇다고 해서 힘 스텟이 30% 차이나는 유세현을 이길 수는 없다.
한손으로 검을 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한 고블린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커졌다.
“키릭?”
스스로서도 현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없던 것.
양손을 한손으로 막다니?
그 순간이었다.
“하압!”
힘찬 기합과 함께 루베르크의 새까만 검신이 고블린이 들고 있던 검을 밀쳐냄과 동시에 그대로 목을 갈랐다.
고블린은 목이 떨어져나갈 때까지도 자신이 이렇게 어이없게 죽을 것이라는 걸 예상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같은 기수 생존자들 사이에서는 그 누구보다도 압도적으로 높은 스텟.
그들은 여유가 있고, 보는 눈이 많은 만큼 스킬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저 패도적인 무력을 선보이며 고블린들을 학살해나갈 뿐이다.
어찌나 빠르게 추풍낙엽처럼 고블린들이 떨어져나가는지 싸우기에 급급한 생존자들의 이목이 잠시나마 집중될 정도.
둥!둥!둥!
곧 얼마 지나지 않아 고블린들의 뒤편에서 커다란 북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 구름섬(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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