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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왕 유세현-66화 (66/612)

집착(2)

그도 그럴 것이, 문 너머에서 헤비 스네이크와 싸우고 있는 생존자들은 이용석의 팀이었다.

대체 무슨 연유로 정보도 없는 그가 이런 깊숙한 곳까지 들어왔단 말인가.

여러 가지 방면으로 신경이 쓰였으나 유세현은 현 상황에 대해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뭐가 되었던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다른 공간 우회해 앞질러 나아가면 되는 것이었으니까.

차분히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이강호의 어깨를 두드린 유세현이 나직이 말했다.

“일단 기다렸다가 쟤들 지나가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다른 공간으로 우회해서 나아가자.”

“...할 수만 있다면 그게 최선이긴 하지. 하지만 여기부터는 공간이 나눠지지 않아.”

“......”

이강호가 답한 말의 의미는 무척이나 명료했다

만일 이용석이 계속 해서 앞으로 전진 하게 된다면, 1차 튜토리얼 통로에서 조우했을 때처럼 같이 나아가야 된다는 것.

이전 있었던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는지 인상이 살짝 구긴 김주희가 말을 이었다.

“선배님. 그런데 저들이 계속 앞으로 나아갈까요? 아무것도 모를 텐데 분명...”

맞는 말이다.

유세현이 했었던 생각도 김주희과 똑같다.

차분히 그들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이강호가 입을 열었다.

“흠...세현아 너 혹시 과대랑 언제 만났는지 기억하냐?”

“응. 지금으로부터 약 4~5일 전에 만났던 거 같아.”

“내가 중간 지점에 도착하기 2~3일 전이군. 꽤 빠른데?”

“그렇지. 나도 과대가 말 걸었을 때는 조금 의외이긴 했어.”

“흠...알았어. 잠시만 기다려봐.”

말을 마친 이강호는 이용석에 대한 팀의 전체적인 스텟 수준을 살폈다.

생각보다 재빠른 움직임과 반응속도로 보건데, 수준은 대략 F랭크 최상 아니면 E랭크 초반.

그들은 아주 강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오합지졸도 아니었다.

어디를 가도 각자 1인분의 역할은 할 수 있는 존재.

이강호는 이 정보를 바탕으로, 모래성에 나타나는 몬스터와 대조해 그들이 이곳에 도달하기까지 며칠이 걸릴지 계산을 했다.

결과는 아이템을 일부 사용했다는 가정 하에 아슬아슬하게 세이브.

즉, 이용석은 지금 티켓으로 바꿔야 될 소중한 증표를 아이템에 투자해 이곳까지 도달했다는 것이 된다.

생각을 정리한 이강호가 나직이 말했다.

“세현아 과대가 이곳에 뭔가 있다는 걸 눈치 챈 거 같다.”

“응?”

“과대가 너와 헤어진 뒤 바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가정 하에 계산을 해봤는데, 길을 모르는 쟤네들은 아이템을 사용하지 않는 한 지금 이곳까지 도달할 수 없어. 넌 과대가 허투로 아이템을 쓸 거 같냐?”

“......”

과대가 확실히 감정적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멍청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니 그는 분명 일반 생존자로서는 눈치 채기 힘든 단서를 찾은 것이 분명했다.

마왕성에 먼저 들어와 있던 군인과 김주환 형제처럼.

대화를 마친 둘은 다시 관찰에 집중했다.

서걱!

촤악!

시간이 흐름에 따라 헤비스네이크는 점점 수세에 몰리고 있었다.

꼬리를 이용한 맹렬한 공격이 사라지고 방어에 전념 한다는 게 그 증거.

적의 체력이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은 이용석이 기다란 배틀엑스를 높게 치켜들었다.

기어코 마무리를 하려는 모양.

이용석의 신호를 눈치 챈 팀원들은 재빨리 원거리 스킬을 사용해 공격을 할 수 있도록 틈을 만들었다.

“프로즌 에로우!”

“이글거리는 칼날!”

콰쾅!

키이익!

이전에 비해 확연히 달라진 팀플.

유세현은 중간지점에서 조우했을 당시 이용석이 왜 그리 자신감에 찬 모습을 보였는지 새삼 이해 할 수 있었다.

“합!”

틈을 놓치지 않고 헤비 스네이크를 향해 도약한 이용석이 쥐고 있던 배틀 엑스를 힘껏 내리쳤다.

두터운 도끼의 날이 단번에 헤비스네이크의 목 부분에 내려가 꽂힌다.

키에엑!

혼신의 일격에 맞은 헤비스네이크는 많이 괴로운지 몸을 이리저리 움직이며 난동을 부리다 마침내 쓰러져 절명했다.

유세현은 이용석이 어떻게 나올지 매서운 눈초리로 동향을 주시했다.

역시나 그들은 이강호의 예상처럼 다음 방으로 넘어가려고 하고 있었다.

되도록 마주치는 것은 사양이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는 상황.

유세현과 이강호, 김주희는 그들이 떠나기 직전 문을 완전히 열고 모습을 드러냈다.

인기척을 느끼고 뒤를 돌아본 이용석의 인자했던 인상이 순식간에 보기 흉하게 일그러졌다.

“너, 너희들...”

죽은 줄로만 알고 있던 이강호와 김주희.

그리고 낙오자 유세현까지.

“...어떻게 이곳에...”

순간적으로 뇌에 과부하가 일어난 이용석은 도저히 상황정리가 되지 않았다.

분명 중간 지점에서 유세현을 보았을 때는 이강호와 김주희가 없었을 터인데.

아니, 그런 모든 것을 떠나 어떻게 단 3명이서 이곳까지 도달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때, 가까이 다가온 유세현이 살짝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건넸다.

“또 뵙게 되는군요.”

그 말을 들은 이용석은 내면에서 무엇인가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별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말하는 저 여유, 저 표정, 그리고 옆에 철썩 붙어있는 김주희까지.

어처구니가 없어진 지금, 이 상황을 떠나 그저 모든 것이 맘에 들지 않는다.

허나.

“어 그래, 여기서 또 만나게 될 줄을 몰랐네?”

애써 표정을 핀 이용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이성을 잃게 되면 이전처럼 이강호와 유세현의 언변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그는 화를 식히며 슬그머니 물었다.

“전에 봤을 때는 분명 이강호랑 주희가 없었던 거 같은데...어떻게 된 거냐 세현아.”

“그냥 그런 일이 좀 있었어요. 큰일은 아니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허나, 유세현이 이런 질문에 제대로 대답해 줄 리가 없었다.

적당적당 한 대답을 들은 이용석의 얼굴색이 다시금 붉게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은근히 비꼬는 것 같으면서도 공손한 이 말투는 그의 성격을 긁어 판다.

두 주먹을 불끈 쥔 이용석이 다시 한 번 크게 호흡을 했다.

‘참자 참아...놀아나지 말자.’

지금 중요한 것은 이 타이밍에 세 명이 왜 나타냐는 것.

단서를 발견한 뒤, 아이템을 사용해 여기까지 도달한 만큼 이용석은 유세현을 향해 슬쩍 의중을 떴다.

“그래. 그건 그냥 그렇다고 치고. 그럼 여기까지는 어쩐 일이냐. 여기까지 올 정도면 세 명이 사용할 증표는 다 모았을 텐데?”

“오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그래? 하하하!”

겉보기에는 적당히 대답하고 적당히 넘어가는 모습.

허나, 두 사람의 속마음은 겉과 전혀 달랐다.

‘유세현 이 새끼...알고 있구나!’

‘과대...정말 대충 눈치를 채고 있었군.’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경쟁구도로 이어지게 된다.

아니, 유세현이 등장한 시점에서 이미 이용석은 콩고물이라도 얻어먹기 위해 따라오리라.

가까이 다가온 이한철이 이용석을 향해 속삭였다.

“저놈들도 뭔가 이상한 점을 눈치 채고 온 거 같죠?”

“확실해. 제단에서는 능력이 안 됐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넘겼지만...”

이번에는 뭐가 되었든 반드시 차지하고 마리라.

이용석은 몸을 돌려 시끌벅적해진 학과 인원들을 바라봤다.

김주희가 뛰어난 미모만으로 학교에서 유명인사 였던 만큼, 다른 지역에서 살아남은 학과생들이 그녀에게 엄청난 관심을 보이고 있었다.

한데 엉켜 자연스레 수다를 떨고 있는 모습은 그야말로 가관.

2차 튜토리얼에서 합류해 유세현과의 대립적인 관계를 모르는 남학생 한 명이 이용석을 향해 말했다.

“팀장님 그럼 이제부터는 저 세 명도 우리랑 같이 다니는 건가요? 저희 팀 안 그래도 인원수가 조금 부족한데 이쪽으로 좀 채워주세요.”

사심이 일부 담겨있는 말. 중간지점에서 유세현만 달랑 혼자 있었을 때는 이런 말을 꺼내지 않았다.

“......”

철없는 그의 언사에 일부 학과생들의 표정이 얼음장처럼 굳었다.

겉으로는 내색하지 않고 있지만, 이용석이 김주희에게 차였다는 것은 1차 튜토리얼을 함께한 사람들이라면 누구든 알고 있는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유세현과 이강호가 가만히 있자 눈치 빠른 김주희가 재빨리 말을 대변했다.

“아뇨, 우리는 따로 행동할게요.”

“뭐? 왜? 같이 다니는 게 훨씬 안전...”

거기까지 말을 한 남학생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기어이 보다 못한 일부 학과생들이 재빨리 입을 막아버린 것.

그들에게는 그만큼, 자신들을 버렸던 이강호와 유세현보다도 이용석의 심기가 훨씬 중요했다.

헛기침을 내뱉은 이용석이 차분히 팀원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개인적인 대화 때문에 지체가 되었네요. 바로 출발하도록 할 테니 정렬해주시기 바랍니다.”

“예!”

그렇게 두 팀의, 아니 이용석의 경쟁은 시작되었다.

* * *

후웅!

촥!

세찬 바람과 함께 날아온 쌍두코브라의 2개의 날카로운 꼬리가 이용석의 팔 끝을 아슬아슬 하게 빗겨 나간다.

만약 이용석이 조금만 더 늦게 몸을 숙였더라면, 옆구리를 정통으로 허용해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치잇!”

이용석은 무너진 자세를 황급히 다잡았다.

타다닥!

그때 이용석의 옆으로 유세현이 미끄러지듯 스쳐지나갔다.

서걱!

공격해 들어오는 꼬리를 일격에 잘라내는 마검 루베르크.

유세현의 활약을 본 이용석이 이빨을 꽉 악물었다.

‘제기랄!’

이렇게 되면 유세현이 할당량 더 많이 채운만큼 코인과 스킬의 분배권이 그에게 간다.

이용석은 스텟이 비등비등해졌으리라 생각하는 만큼, 1:1로 유세현에게 밀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반나절이 지난 지금은 평소 하던 팀플레이를 버리고, 지휘도 이한철에게 넘긴 채 유세현이 상대하려는 몬스터만 족족히 따라 붙어 상대하고 있었다.

유세현이 1:1로 몬스터를 잡을 수 있다면, 자신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야말로 미련에 가까운 집착과 오기.

“흐하합!”

서걱!

힘찬 함성과 함께 내리찍은 이용석의 배틀엑스가 남아있던 꼬리하나를 마저 베었다.

이렇게 되면 각각 꼬리하나를 제거해 비긴 것이 된 셈.

이용석은 곧장 배틀엑스의 내장되어있는 스킬 [바람도끼]를 사용하여 코브라의 목을 베어버린 뒤 광소어린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유세현보다도 할당량을 더 많이 가지게 된 것이다.

이용석이 다부진 목소리로 유세현을 도발했다.

“하하하. 이러다가는 내가 코인을 더 많이 갖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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