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착(1)
“서, 선배님 왜 갑자기...”
깜짝 놀란 김주희가 중얼거렸지만, 유세현은 신경도 쓰지 않고 이강호의 어깨를 덥석 붙잡았다.
“강호야.”
“왜?”
“우리 이전에도 이곳에 끌려 온 사람이 있겠지?”
“그렇지. 그런데 왜?”
대답은 빛처럼 빨랐다.
유세현은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 혜인이는 다부지니까...’
이 순간만큼은 항상 냉정함을 보이던 유세현도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었다. 아니, 애써 하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 동생이 살아있을까?”
“응?”
Ex등급의 아이템의 부작용으로 인해 사고에 대한 기억이 싹 날아간 이강호는 자다 일어난 유세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동생이 지구에 있을 것이라 생각한 이강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살아있겠지.”
같은 주제를 두고 대화를 하고 있지만, 서로 전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
잔뜩 굳어 있던 유세현의 표정이 눈에 띠게 점점 밝아져갔다. 이곳에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이강호의 말은 틀린 적이 없었다.
비록 선의의 거짓말 일지라도, 영혼 없는 빈 말일지라도 그저 고마웠다.
‘살아있다라...’
유세현은 마음속으로 이강호가 한말을 계속 되뇌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지만 이렇게 되면 생존해야 되는 이유가 또 하나 생겼다.
“고맙다 강호야.”
“뭘.”
유세현은 나직이 인사를 한 뒤 마음을 편하게 먹고 다시 잠을 청했다.
그간 계속 꿈에 나타나 괴롭히던 사고의 악몽이 오늘만큼은 나타나지 않았다.
* * *
“세현 선배님. 근무 교대시간이에요.”
“아...그래?”
유세현은 단번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김주희와 근무 교대를 했다.
고작 2시간 취침한 것에 불과했지만, 좋은 소식을 들어서 그런지 푹 취침한 것만 같았다.
유세현은 마력이 다 떨어져 힘을 잃게 된 나무괴수를 되살려 한층 더 경계를 강화시켰다.
그런데 그때였다.
취침을 취해야 할 김주희가 갑자기 창을 다부지게 쥐었다.
‘뭐지?’
이상함을 감지한 유세현의 손이 재빨리 루베르크의 손잡이로 향했다.
딱히 이상함 점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이곳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는 곳.
경계심 속에서 마침내 김주희가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을 내리뻗어 창을 앞으로 찌르고, 재빨리 창대를 올려치며 발길질을 한다. 그리고 이어지는 자연스러운 회전 베기까지.
어색하지만서도 한편으로는 물 흐르듯 자연스레 움직인다.
그리고 이 움직임을 유세현은 익히 본적이 있었다.
“이강호...”
“봐봐. 내가 가르친 게 아니라고 했지?”
김주희가 눈썰미와 감이 좋다는 것은 자신들에게 여우같이 들러붙을 때부터 익히 알고 있던 사실.
하지만 그런 좋은 눈썰미를 이런 식으로 이용할 줄은 몰랐다.
이강호의 어깨너머로 창술을 베껴 낼 생각을 하다니.
쓰러져가는 생존자들을 보며 김주희는 스텟이나 스킬뿐만 아니라 움직임도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첫 전투의 방아쇠가 유세현의 독설이었더라면, 이제 그녀는 능동적으로 조금씩 자신을 바꿔나가고 있었다.
험난한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최근에는 이렇게 매일 밤마다 연습 한 건가.’
열심히 한다지만 고작 해봐야 며칠 안 됐을 것이기에 아직은 많이 미숙한티가 난다. 그러니 스킬 없이 격돌해도 아직까지는 제압이 충분히 가능하리라.
허나, 뇌리 속에서 드는 판단과 달리 유세현의 눈동자는 잔잔히 흔들리고 있었다.
최대한 합리적이게 움직인다지만, 그는 순수한 검술보다도 월등한 스텟과 스킬에서 나오는 압도적인 힘을 사용해 적을 짓눌러왔으니까.
‘그래, 나도 더 실력을 높여야 돼. 스킬에만 의존하면 안돼.’
힘이 비슷한 적을 만나게 된다면, 혹은 그보다 더한 존재를 만나게 된다면, 그때는 믿을 것은 뭐가 있을까.
바로 자신의 실력 뿐.
하지만.
‘어떻게 검술 실력을 늘리지?’
당연한 말이지만 스승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이태광 같이 탁월한 격투센스를 지닌 것도 아니다.
고심을 하던 유세현은 이전 마음속으로 한번 삼킨 말을 이강호에게 내뱉었다.
“강호야. 나도 무기를 창으로 바꾸는 게 나을까?”
“뭐, 창?”
갑작스런 물음이었지만 이강호는 단번에 유세현의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었다.
피식 웃은 그가 말을 이었다.
“단순히 따라 배울 생각이라면 하지 마.”
이강호의 창술을 완벽한 실전창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아니, 애초에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없다.
그저 직접 당해보고 겪어가며 조금씩 더 다듬어지는 것일 뿐.
그렇기에 자신이 배우는 무술이 최강일 것이라 단정하고 있던 사람들은, 한계에 부딪치게 되었을 때 의지를 잃고 추락하게 된다.
틀에 갇혀 더 이상 발전할 수 없게 되는 것.
그럴 바에는 아직은 미숙하지만 계속 검을 사용해 자신만의 검술을 만드는 게 차라리 났다.
‘그리고 그러다보면...’
혹시 모른다. 이전 제단에서 나타났었던 이가검법처럼 검술에 관한 무공을 얻을 기회가 생길지.
“아...”
유세현이 말을 흘렸다.
그는 이강호의 말을 듣자마자 바보 같은 생각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래, 조급해 하지 말자.’
유세현은 다시 경계에 집중했다.
밤은 점점 더 깊어만 가고 있었다.
* * *
다음날 아침.
일행들은 붉은색 증표 50개를 사용해 타 지역으로 안내해주는 [여행자의 붉은 발자국] 아이템을 구입한 뒤, 이어지는 발자취를 따라 숲의 미로를 벗어나기 위해 움직였다.
그리고 종종 만나는 몬스터를 죽여 나가며 증표를 다시 채웠다.
하지만 이는 숲의 미로에 아직 많은 인원이 도착하지 않았기에 가능한 일.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할 것이다.
미로에 배치되어 있는 몬스터가 많고 강하다 한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그 수가 자연스레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아이템 사용에 따른 증표의 수량 부족 현상.
즉, 공급은 없는데 계속해서 수요가 발생하다보니, 단순히 인원수가 많은 팀은 개인당 증표 30개를 모아야 되는 상황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그래서 악질적인 몇몇 생존자들은 같이 나아갈 인원수가 갖춰지기 무섭게 동료 생존자들을 일부 버리고 내부 미로로 이동한다.
그리고 그때부터 일 것이다.
몬스터를 발견해 사냥하는 것을 포기하고, 먼저 도착했다는 이점을 이용하여 통로에 대기하다가 생존자들을 노리는 일당이 본격적으로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
그야말로 생존자들끼리의 악질적인 대결이 되어버리는 셈.
그런 이유로 이강호는 숲의 미로를 빠져나가기 전 둘을 향해 충고했다.
“향후 2~3일 정도는 아직 괜찮겠지만 그 이후로는 생존자들도 몬스터로 판단하는 게 나을 거다.”
“예. 선배님.”
“알았어.”
그들은 숲의 미로 구석에 위치해 있는 포탈게이트를 넘어섰다.
환경이 순식간에 변화하며 흩날리는 모래 알갱이가 일행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얼추 미로처럼 느껴지던 숲의 미로와는 완전히 다른 광활한 사막.
그들의 시선 정면에는 5개의 커다란 모래성이 일렬로 늘어져 겹겹이 붙어있었다.
갖은 함정과 상대적으로 강한 몬스터로 인해 여섯 지역 중에서 생존자들에게는 최악이라고 일컬어지는 [성의 미로].
이곳이 어딘지 단번에 파악한 이강호의 입가에 되려 미소가 살짝 맺혔다.
그는 사실 이 장소가 걸리기를 마음속으로 무척이나 원하고 있었다.
‘잭팟이군.’
이 지역, 성의 미로는 다른 5개의 지역과 달리 특수한 점이 있다.
단순히 똑같은 몬스터가 반복되는 여타 미로와 달리, 나열되어있는 5번째 성 맨 끝에 보스 몬스터가 잠들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보스 몬스터는 구름섬이나 판도라에서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스킬을 내뱉는다.
[2서클 종합 마법]
이전 제단에서 얻었던 1서클 종합 마법의 한 단계 위의 스킬.
그렇기에 이강호는 죽음의 협곡을 대비하기 위해서라도 지도를 얻게 되면, 내부로 들어가기 전 어떻게든 한 번 찾아올 생각이었다.
그런데 의도치 않게 이렇게 단번에 찾게 되다니.
이강호는 발이 쑥쑥 들어가는 사막을 걸으며 모래성의 입구를 향해 나아갔다.
* * *
이강호에게 간략히 설명을 들은 유세현과 김주희는 생존자들을 교묘히 피해 숲의 미로 때보다도 보다 더 빠르게 성의 내부를 치고 나갔다.
익히 오려고 했었던 장소인 만큼, 이강호가 이리저리 공간이 꼬여있는 다중공간의 길을 전부 외워 놓은 덕택이다.
파앗!
무려 하루라는 시간 동안 4개의 성을 공략하는데 성공한 그들의 눈앞으로 밝게 빛나는 포탈이 나타났다.
벌써 4번째로 조우하는 포탈이었다.
이제 공략 가능한 남은 성은 한 개.
이 문 너머에 위치한 성의 맨 끝에는 이강호가 그토록 원하던 보스가 잠들어있다.
이강호는 포탈 뒤에 위치해 있는 문 앞에 다가섰다.
챙챙!
조금 벌어진 문틈 사이로 미세하게나마 마찰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유세현을 포함한 이강호가 미간을 좁혔다.
자신들과 같이 타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이런 깊숙한 곳까지 들어온 팀이 있었다니.
유세현은 관찰을 하기 위해 문을 살짝 열어 재꼈다.
내부에서는 100명이 족히 넘는 생존자가 3m 크기에 육박하는 헤비스네이크와 한창 힘겨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키아악!
괴음을 내뱉은 헤비스네이크가 그 큰 주둥아리를 생존자들을 향해 쫙 벌렸다.
특기능력인 모래독을 내뱉기 전 취하는 사전행동.
만약 독을 포함하고 있는 이 모래를 정통으로 맞게 된다면, 상당량의 독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는 한 전신이 녹아내리며 사망에 이르게 된다.
2번째 모래성의 중간에 배치되어 많은 생존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던 몬스터.
허나, 단계를 차근차근 거쳐 마지막 성까지 도착한 지휘자가 이것을 모를 리가 업었다.
“전부 양쪽으로 흩어져라!”
말과 동시에 순식간에 양옆으로 갈라지는 생존자들.
그 순간 헤비스네이크의 입에서 발사 된 모래독 입자가 생존자들이 발을 딛고 있었던 땅을 순식간에 녹였다.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지휘자의 얼굴을 살핀 유세현이 중얼거렸다.
“이거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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