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58화 (58/612)

아키몬드(2)

강력함 때문에 봉인당한 보스.

“크윽.”

실낱같은 희망이 무너지며 의지가 꺾인다.

김길태는 검을 지팡이 삼아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 가까스로 견디는 두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다.

“저, 전원 돌격!”

애써 힘내어 외친 함성이건만, 그 누구도 쉽사리 따르지 못했다.

모든 이가 강력한 마법 앞에서 머뭇머뭇 거리는 찰나였다.

“괜찮냐. 길태야.”

밝게 빛나는 병동에서 내부로 거구의 남자가 걸어 들어왔다.

밖에서 키메라를 상대하고 있을 이태광.

김길태를 포함한 생존자들의 눈동자가 잔잔히 떨렸다.

“혀, 형님!”

“고생 많았다. 일단 회복해라. 내가 상대하마.”

손가락을 휘휘 턴 이태광이 다부지게 바스타드 소드를 쥐었다.

김길태의 눈이 재차 출구로 향했다.

또한 사람은 어디에 갔단 말인가.

‘설마...도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높다.

이태광과 유세현이 서로 형 동생 하기로 했다지만, 행동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유세현이 이태광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은 너무도 뻔히 보인 사실이었으니까.

김길태는 그래도 혹시 몰라 물었다.

“혀, 형님. 그...유세현은?”

“나 대신 괴수를 상대하고 있다.”

“...?”

김길태의 눈이 이전보다도 더욱 커졌다.

그 정도로 강한 다수의 키메라를 혼자 상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유세현의 그간 보여준 힘은 딱 이태광과 비슷하거나 살짝 높았으니깐.

“형님, 그건 말도 안 되는 말 입...”

퍼퍼펑!

그 순간 김길태를 향해 불덩이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자신을 앞에 두고 대화가 이루어지자 열이 받은 아키몬드가 마법을 난사한 것.

덕분에 김길태는 움직이기도 힘든 몸으로 황급히 바닥을 굴러야만 했다.

“크흐흐흐. 겁을 너무 먹어 너희들이 정신이 나가다못해 미친 모양이구나! 나를 앞에 두고 망발을 지껄이다니!”

화르륵!

무수한 화염의 비가 재차 생존자들을 덮쳤다.

파앗!

이태광의 신형이 지면에 녹아들었다.

자세를 낮춘 그는 그 큰 덩치와는 맞지 않게 날렵하게 움직여 날아오는 마법을 회피했다.

높은 스텟 덕에 접근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

프로즌 디퓨전의 영역에 다다르자 이태광은 크게 호흡을 했다.

“후웁.”

그의 큰 육체가 단번에 더욱 부풀어 올랐다.

이성의 일부를 대가로 육체의 능력을 보다 더 강하게 만들고 극대화 시켜주는 유니크 F 랭크 스킬.

[전사의 광분]

절제가 안 되는 능력이니 만큼 100%까지 올린 뒤에는 정말 위급한 순간이 아니면 사용 하지 않게 되었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처음부터 전력을 다하는 것이다.

트드득!

빠르게 몸을 잠식해가던 얼음조각에 금이 가며 우수수 떨어져 내리자, 항시 이빨을 딱딱 부딪치며 웃던 아키몬드의 턱이 움직임을 멈췄다.

상당한 저항력이 아니고서야 이 빙계 마법을 뚫는 것은 불가능 하건만.

아키몬드가 이상함을 느낀 순간이었다.

폭풍 같이 강한 바람과 함께 벌겋게 핏대가 오른 이태광의 육중한 바스타드 소드가 왼쪽 위부터 사선으로 쇄도해 들어왔다.

“프로텍트 쉴드!”

지지직! 쨍그랑!

일격에 부서지는 3중 쉴드.

수정구슬로 확인할 때는 전혀 보지 못했던 강함이었다.

깜짝 놀란 아키몬드는 황급히 흑마법을 시전했다.

“어둠의 장막!”

지지직!

어둠의 장막은 검격이 신체에 닿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아키몬드의 신체를 감쌌다.

파앙!

반발력에 의해 이태광의 신체가 곧장 뒤로 밀려났다.

하지만 반격은 이것으로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었다.

프로즌 디퓨전에서 단순한 방어마법으로 전환되자 상태가 그나마 양호한 유한동과 장원석, 일부 생존자들이 검을 휘둘렀다.

트득! 트드득!

어둠의 장막의 방어력이 일반 마법에 비해 아무리 단단하지만, E랭크의 거의 근접한 수 명의 힘을 동시에 막는 것은 불가능.

그들은 아키몬드가 다른 마법을 시전하기 전에 끝낼 심산이었다.

서서히 부서져가는 장막을 확인한 아키몬드가 이태광을 향해 다시 눈길을 돌리며 지긋이 말했다.

“이런 능력을 숨기고 있었다니 제법이구나. 그렇다면 답례로 나도 마땅한 선물을 줘야겠군.”

딱!

아키몬드가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아키몬드를 향해 검을 휘두르던 일부 생존자들의 움직임이 일제히 멈추며 어둠의 장막이 조금씩 수복되기 시작한다.

조금만 더 공격 했더라면 방어막을 부수고 일격을 가하는 것이 가능했는데.

장원석이 멈춰있는 A팀 인원을 향해 외쳤다.

“대필씨 공격 하세요!”

“......”

허나, 상대방은 아무리 말해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이상함을 느낀 장원석은 황급히 뒤로 물러나 주위를 살폈다.

아키몬드를 상대하는 사람들 외에도 무수히 많은 인원이 영혼이 빠져나간 것 마냥 멍하니 서있었다.

동료의 이상행동에 김우성과 유한동도 당황스러워 하고 있는 모습.

‘도대체 왜...설마?’

장원석도 이상함을 눈치 채려는 찰나였다.

저 멀리서 김길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광 형님! 원석아! 이제부터 A팀은 완전한 적...”

슈우욱!

말이 채 끝나기도 전, 등 뒤에서 목을 서늘하게 만드는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김길태가 직접 일러 두었던 만큼 장원석은 황급히 몸을 돌리며 무기를 치켜세웠다.

챙!

힘에 의해 밀린 검이 아슬아슬하게 목 끝에서 멈춰 선다.

장원석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1초 아니, 0.5초라도 더 망설였다면 어떻게 됐을지.

결과는 기습을 막지 못한 김우성과 유한동을 보면 알 수 있었다.

단번에 난도질을 당한 그들의 입에서 경악 섞인 아우성이 터져 나왔다.

“크윽! 지후씨! 도대체 왜 저희를...”

허나, 돌아오는 것은 싸늘한 무기 뿐.

타다닥! 푹!

뒤에서 뛰어온 또 다른 배신자의 검이 유한동의 심장을 정확히 꿰뚫었다.

칼을 붙잡은 채 고개를 돌려 얼굴을 확인한 그가 사색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왜...왜?”

슈욱!

배신자는 말 대신 검을 빼는 것으로 답했다.

칼날을 붙잡고 있던 열개의 손가락이 단번에 잘려나가고, 쓰러진 몸에서는 피가 폭포처럼 쏟아져 나와 땅을 새빨갛게 적혔다.

“컥! 커커컥...”

유한동이 몸이 물고기처럼 팔딱팔딱 뛴다. 배신자들은 그런 유한동의 목을 무자비하게 베었다.

여태까지 동고동락을 함께한 동료의 죽음.

간신히 쥐어 짜내 힘으로 검을 휘둘러, 접근을 막고 있던 김우성이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왜! 도대체 왜 배신을!”

퀭한 두 눈에서는 아직까지도 믿을 수 없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들은 지금까지 줄곧 생과 사를 함께 해왔었으니까.

“저주? 세뇌? 환각? 왜...도대체 왜...”

눈앞까지 다가온 죽음의 대한 공포가 안 그래도 힘든 그의 몸을 강하게 짓누른다.

그는 이런 알지도 못하는 장소에서 곳에서 절대로 죽기 싫었다.

그래서 그렇게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인원들을 모았던 것 아닌가.

그런데 적에게도 아닌 같은 팀에게 배신당해 죽다니.

“도대체 왜...”

허무한 음성으로 계속 중얼거리는 그의 뇌리 속에 이한별이 이전 했던 말이 불현듯 떠올랐다.

[세현 씨가 말하기로는 적일 가능성도 있다는데요.]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그래도 주의해서 살펴주세요.]

“아...”

톱니바퀴가 딱 맞물리며, 이태광 팀을 흘겨본 김우성의 어깨가 들썩였다.

부상당한 김길태를 대신해 장원석이 팀을 이끌며 재빨리 배신자들을 처단해나가고 있었다.

마치, 이미 분류를 해놨다는 듯이.

“하...하하하.”

털썩.

여태까지 간신히 붙잡고 있던 정신이 붕괴되며 그의 몸이 힘없이 무너졌다.

상황의 반전을 꾀할 수 있도록 여지를 준 것은 그 누구도 아니라 다름 아닌 자신.

무릎을 꿇은 그의 목을 향해 배신자의 시퍼런 칼날이 날아오고 있었다.

* * *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자들을 수세에 몰렸다. 아키몬드를 전담한 이태광의 체력은 거의 떨어졌으며, 배신자를 처단하기 위해 상당수의 인원들이 죽었다.

팀워크를 잃은 이한별의 팀은 거의 전멸하다 시피까지.

이렇게 아키몬드가 준비한 무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었다.

“허억 허억...”

“크크크. 정말 재미있었다. 이렇게 만족한 것은 정말 오랜만이군.”

아키몬드의 말에 김길태의 눈이 슬쩍 출구로 향했다.

역시 아무것도 없었다.

무엇을 기대했단 말인가.

20마리나 되는 마수를 전부 처치하는데 성공했다 하더라도, 상당히 지쳤을 터인데 올 리가 없지 않은가.

그의 시선을 의식한 아키몬드가 중얼거렸다.

“크크. 누가 구해주기라도 바라는 것이냐? 바깥에는 아무것도 없다!”

“......”

아키몬드의 말에 김길태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

‘여기까지인가.’

그렇게 생각 하는 찰나였다. 이태광이 웃음을 잃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세현 동생은 올 거다.”

“크크 동생? 동생이 있었나?”

“그래.”

키메라를 상대하고 있을 당시, 이태광은 어둠속에 파묻힌 팀원이 신경 쓰여 좀 처럼 전투에 집중을 잘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을 눈치 챈 유세현은 그에게 한마디를 지긋이 건넸다.

“먼저 가세요.”

이태광 조차도 생각지 못했던 말.

하지만 유세현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다른 말까지 덧붙였다.

“나중에 따라 가겠습니다.”

이태광은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믿고 있었다.

순진하다면 순진한 것이고 바보 같다면 한없이 바보 같다고 할 수 있는 남자.

털썩.

이내 힘이 풀린 김길태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온몸이 망가진 채로 이 정도를 버틴 것은 거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가 높은 정신력의 소유자가 아니었더라면 진즉 쓰러졌을 것이다.

출구 쪽을 잠시 바라 본 아키몬드가 광소를 내뱉었다.

“크흐흐. 네 부하도 네가 하는 말이 어처구니가 없는 모양이군. 마지막 유흥이다. 네놈들이 지금까지 간신히 쓰러트린 수족을 다시 한 번 상대하다 죽어라. 언데드 레이즈(Undead Raise)”

아키몬드가 손을 치켜들고 영창 했다.

스르륵.

그러자 지금까지 죽었던 인원들이 좀비처럼 땅을 기며 천천히 일어났다.

적을 속이거나 생전의 기억을 가지고 미약하게나마 기술을 응용하는 것 없이, 오직 흉흉한 기세와 물량만을 이용해 압도적으로 적을 짓누르는 능력.

캬아악!

구울화 된 생존자들이 이빨을 들이 밀었다.

생존자들은 지친 몸을 억지로 이끌고 항전했지만, 끝없이 밀려오는 그들을 막을 수 없었다.

부숴도 부숴도 아키몬드가 어둠의 마력을 주입하면 끝없이 되살아난다.

그야말로 개미지옥.

간신히 버티다 못한 김길태와 장원석의 두 눈에 절망이 감도는 순간이었다.

타다닥!

매서운 속도로 출구에서 무엇인가가 내부로 뛰어 들어왔다. 반응한 것은 방어마법을 사용하고 있는 아키몬드와 이태광 정도.

순식간에 접근하여 어둠의 장막을 일격에 가른 유세현의 얼굴을 확인한 아키몬드의 턱이 떡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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