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40화 (40/612)

계략(3)

“결국, 이게 본론 맞지 않습니까. 제 말 틀립니까. 김주환씨.”

“맞습니다.”

“흠흠...”

생존자들의 입에서 연신 헛기침이 쏟아져 나오는 반면, 김시환은 눈을 빛냈다.

“마땅한 작전 같은 게 있나요? 그리고 저희에게 떨어지는 것은? 설마 지금까지 같이해왔다고 그냥 동조하라는 건 아니겠죠?”

“물론. 아닙니다. 저들이 떨어트리는 스킬, 코인, 아이템을 전부 여러분께 나눠드리겠습니다.”

“전부 말 입니까?”

“그렇습니다.”

김주환의 자신어린 대답에 생존자들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아무리 추후를 도모하기 위함이라지만, 리스크가 있는 만큼 모든 것을 넘겨준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

“그러면 김주환씨는 아무것도 얻으시는 게 없으실 텐데 왜 굳이...”

“아, 물론 전부 양보하겠다는 것은 아닙니다. 대신 저희 형제는 앞으로 나올 아이템 중 우선 습득권을 2개 정도 보장받고 싶습니다.”

“아...보상을 노려보겠다는 거군요.”

“그렇습니다.”

“...일단 한번 들어나 봅시다.”

보상이 생기자 생존자들의 태도가 슬그머니 돌변했다.

이왕 말이 나온 거 도덕성을 지킨답시고 혼자 내빼봐야 무리에서 소외될 것이 뻔할 뿐더러, 유세현 일행이 가진 스킬이 앞으로 생존하는데 있어 너무도 좋아보였기 때문이다.

특히나 그중에서도 프로즌 디퓨전은 유세현이 대놓고 애용하는 만큼 그 효과를 톡톡히 알고 있다.

만약 죽였을 때 이 스킬을 떨어트린다면 대박일 것이다.

생존자들의 태도를 본 김주환의 입꼬리가 비틀리듯 말려 올라갔다.

“사실, 마땅히 작전이란 것은 없습니다.”

“그게 무슨...”

“지켜보고 있다가 틈이 생기면 노리겠다는 거군요.”

눈치 빠른 김시환이 간단히 설명을 덧붙였다. 김주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저도 대놓고 처리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래서는 타 생존자들에게 면목이 없으니까요.”

“하긴...그럼 어떻게?”

“우선은 지금까지의 계속해서 보였던 지형 특성을 이용해서 한번 기회를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특성?”

“예. 그렇습니다.”

김주환은 자세한 설명을 시작했다.

설명은 이러했다.

지금까지 모든 방에는 반드시 트랩이 두개 이상 존재했다.

그중에서는 도주로를 차단하는 트랩도 있었다.

만약 그 트랩이 있는 방이 있다면 의도적으로 발동시켜 퇴로를 사전에 차단하는 것이다.

“둘이 붙어 있으면 사용할 수 없는 방법이군요.”

“예, 그렇죠. 하지만 그들은 분명 흩어져 각각 문을 맡을 겁니다.”

“어떻게 그렇게 확신을...다른 한쪽은 생존자 집단을 보낼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아뇨, 제가 보아온 바, 그들은 결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왜...”

“오만한데다가 저희들을 전혀 믿지 않기 때문이죠.”

일개 한 사람의 판단에 불과했지만, 그간 행보를 봐왔던 생존자들은 단번에 납득을 했다.

“만약 말대로 셋이 떨어지게 되면 우리들이 한명인 쪽으로 붙어야겠군요.”

“예. 당연히 그렇죠.”

“음...힘의 차이가 있는 만큼 모든 상황이 들어맞는다고 하더라도 저희는 위험할 것 같습니다만...”

“되도록 난전을 유도해주세요. 살짝만 시선을 끌어주신다면 나머지는 저희 형제가 나서서 처리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몬스터 수가 많아야 된다는 조건이 더 붙게 되는군요.”

“예. 그렇습니다.”

“흠...그렇게 딱 맞아 떨어질지...”

대답하는 생존자들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없었다.

반면, 김주환은 나름의 자신감에 차 있는 얼굴이었다.

생존자들은 모르고 있지만, 내일 행하려고 하는 미션은 게임에서 치자면 던전의 마지막 퀘스트와도 같은 것.

그러니 그 어느 때 보다도 몬스터가 많이 나올 가능성 높다.

두 장치를 제한 시간 내에 발동시켜야 된다는 조건만 들어봐도 냄새가 나지 않는가.

‘그리고 분명 보상도 좋겠지.’

아이템 우선권을 미리 말해 놓은 것도 사실은 이 때문.

김주환의 뇌리 속에 남태영이 떠올랐다.

자신의 손길을 거부 한 남자. 아니 NPC.

그는 만약 믿고 있던 사람이 함정에 빠져 사라져도 끝까지 자신의 도움의 손길을 거부할 수 있을 것인가.

김주환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보상은 결국 우리 것이 될 거다.’

본디, 모든 사람이 그러하듯 김주환 또한 처음부터 유세현 일행을 처리 할 생각은 없었다.

한 그룹의 영웅이 두 명일 수는 없지만, 던전을 나간 뒤 헤어지면 끝이었으니까.

허나, 애써 클리어하려는 던전의 보상을 독점하려 한다면 말이 달라진다.

‘너희들이 자초한 일이다.’

쟁취할 것을 생각하니 피가 자연스럽게 끓어올랐다.

허나, 김주환은 애써 굳은 표정을 연기하며 말을 이었다.

“그렇죠. 사실 제한이 많은 작전입니다. 더군다나 목숨을 잃지 않도록 조심도 해야 되죠.”

“상황을 보고 움직이겠습니다.”

“물론 입니다. 어디까지나 맞아 떨어졌을 때 도와주시면 됩니다.”

“뭐, 그 정도라면...”

어디까지나 가설을 세우고 작전을 꾸리는 것이었기에 사실상 생존자들에게 부담이 되는 것은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 후 한번 아귀가 맞아떨어진 생존자와 김주환은 여러가지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며 열심히 의견을 나누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근처에 한 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다.

사르륵.

이윽고 위치해 있던 그림자는 곧 순식간에 장소에서 사라졌다.

* * *

“저, 저 유세현씨!”

누군가가 유세현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며 일행에게 뛰어왔다.

짖은 갈색의 단발머리가 돋보이는 여성.

이전, 유세현이 크낙사스 초원에서 놓아준 여자 중 한명인 강희수였다.

눈을 부릅 치켜 뜬 김주희가 재빨리 앞을 막아섰다.

“살인자께서 여긴 무슨 일로?”

내뱉는 말에는 가시가 단단히 돋쳐 있었다.

“후우, 후우...그, 그게...”

김주희를 제외하고는 이미 용서받은 마당에 강희수는 주위를 둘러보며 심호흡을 하는 둥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그것은 일행을 경계하는 모습이 아니었다.

이상함을 느낀 유세현이 김주희를 뒤로 불러 세웠다.

“김주희 비켜봐.”

“선배, 하지만...”

“됐으니깐.”

“예...”

김주희는 어쩔 수 없이 뒤로 빠졌다.

앞으로 나선 유세현이 조심스럽게 강희수를 향해 물었다.

“무슨 일로 여기까지 오신건가요? 급해 보이셨는데.”

“그, 그게...오해하지 말고 들어주세요.”

“예, 알겠습니다. 차분히 말하세요.”

유세현은 우선 강희수를 안정시켰다.

한, 차례 호흡을 고른 강희수가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저...그게, 소변을 보러가다가 정말...정말로 진짜 우연히 들은 건데...김주환씨랑 몇몇 생존자 분들이...”

그림자의 정체는 바로 강희수였다.

강희수는 어렴풋이 들은 것들을 전부 유세현을 향해 이야기했다.

간절하게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절박함이 섞여 있었다.

초원의 악몽.

힘을 몸소 느꼈던 만큼 같은 오해를 받아 상황을 두 번 맞이하기 결단코 싫은 것이리라.

“저, 그, 그러니깐 저랑 승혜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그, 그리고 다른 몇몇 생존자 분들도...”

“...그렇군요.”

“어, 어떻게 해야 하죠? 내, 내일 전투에서 빠, 빠져 있을까요?”

“아뇨.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냥 모른 척 평소처럼 행동 하세요.”

마지막에 대꾸해한 것은 유세현이 아닌 이강호였다.

그의 입술은 미세하게 말려 올려가 있었다.

“그, 그럼 저흰 괜찮은 거죠?”

“피해가 없도록 해드리겠습니다. 물론 일반 생존자들도.”

“구, 구별이 어려우실 텐데...”

“괜찮습니다. 어차피 누군가 뒤통수를 치는 건 항상 생각하고 있던 거라...”

단, 예상이 빗나간 게 있다면 이렇게 누군가의 입으로 직접 전해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는 것.

이것은 유세현의 운, 아니 여성 두 명을 살려준 것에 대한 나비효과다.

“놀라셨을 텐데 돌아가서 쉬시죠. 그...”

“강희수입니다.”

“예. 희수씨. 정보는 굉장히 고맙습니다.”

“...아니에요. 저번에 살려주신 거 정말 감사해요. 그리고 다른 생존자에게 말 안 해주신 것도...”

“아닙니다.”

“예, 그럼 이만...”

강희수는 고개를 몇 번 더 숙이고 나서야 생존자 집단으로 돌아갔다.

유세현은 새로이 얻은 무기인 언월도를 빙빙 돌리고 있는 이강호를 바라봤다.

본래 내일 혼자 왼쪽 문으로 가게 예정돼 있던 것은 일행 중에서도 제일 강한 이강호였다.

“어떻게 할래? 이렇게 되면 지금이라도 집단을 그냥 나눠서 각각 클리어하자고 할까? 셋이 몰려 있으면 그런 방법 따윈 못 쓸텐데.”

“맞아요. 선배! 이게 안전한 방법인 거 같아요.”

“음...”

사실 이렇게 왈가왈부 할 필요 없이, 제일 편한 방법은 중간다리에서처럼 모략에 가담한 생존자들을 싹 몰살시키는 방법이다.

허나, 단순히 한 여자의 이야기를 듣고 무작정 움직이기에는 덫일 수도 있을 뿐더러 너무 비인도적인 행위다.

살인자가 아닌 이상에야 움직이기에는 확실한 명분이란 게 필요했다.

“아니, 그놈들이 분명 우리 뜻대로 해줄 리가 없어. 그러니깐 그냥 원래 계획대로 움직이자.”

“...괜찮겠냐? 분명 널 노려올 텐데.”

“킥. 물론. 괜찮으니깐 계획대로 하자고 한 거지 짜샤. 이 건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장치에나 신경써줘.”

살짝 실소를 내뱉는 이강호의 입가는 살짝 비틀어 올라가 있었다.

그 표정을 보며 유세현은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강호...너 일부러 상황 만들어서 다 끌어내 죽일 생각이지?”

“...넌 아무리 봐도 내 생각을 너무 잘 읽는 거 같아.”

“이런 미친...내가 널 몇 년 봐왔는데. 그거 하나 모르겠냐?”

물론 이곳에 오게 되면서 이강호의 성격이 많이 냉정해지긴 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열정적이고 살짝 다혈질인 본능과도 같은 기질이 변한 것은 아니다.

이강호가 중얼거렸다.

“어쩐지. 그놈들 끝이 안 좋더라니.”

“끝?”

김수현은 분명 한때나마 현대인의 신분으로는 절대 범접할 수 없다던 아르카드 제국의 대장군까지 올라갔다. 허나, 그들의 끝은 참수형으로 별로 좋지 못했다.

지금와서는 잘 생각도 나지 않지만, 누구나 그렇듯 모종의 모략을 세우다 발각된 것이리라.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