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마왕 유세현-24화 (24/612)

김주희(2)

동이 트기 무섭게 유세현은 나무에서 내려왔다.

애초에 부랴부랴 싸맬 짐이 없었기에 떠날 채비를 끝마치는 건 정말 순식간이었다.

“어이~형씨~이제 막 동이 텄는데 벌써 움직이려고?”

그때, 조금 떨어진 곳에서 야영을 했던 무리가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

이전 김주희에게 찍접 되던 마도철 패거리였다.

유세현이 고개를 살짝 돌려 바라보자, 제일 필두에 서 있던 마도철이 잔뜩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유세현은 이를 간단히 무시했다.

“에헤이! 잠깐만! 잠깐만! 어제 너희 여자를 건드려서 심기가 불편해 진거라면 정말 미안해~우린 그냥 잠깐 대화를 하고 싶은 거야.”

부랴부랴 앞으로 질러간 마도철이 일행을 가로막았다.

유세현은 옆으로 스쳐지나가며 간략하게 말을 잘랐다.

“저희는 할 말이 없습니다.”

“에헤이~그러지 말고 잠깐이면 된다니까?”

마도철의 커다란 손이 유세현의 어깨로 곧장 향했다.

하지만 그 보다도 유세현의 반응이 훨씬 빨랐다.

순식간에 뒤로 내 뺀 유세현이 검 끝이 그의 가슴에 맞닿았다.

“더 이상 접근하지 않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하하! 아, 알겠어. 뭐 그리 경계를 하고 그래? 같은 생존자끼리.”

마도철은 호탕하게 웃어보였다.

하지만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까지 어떻게 하진 못했다.

몸이 전혀 반응하지 못했다.

‘이 자식들 생각보다도 강한데?’

마도철은 마른침을 삼키고 말을 이었다.

“난 그냥 너희에게 제의할게 있어서 온 거야~ 일단은 좀 듣기라도 해봐.”

“...알겠습니다.”

유세현은 일단 듣겠다는 모션을 취했다.

계속 무시하면, 되려 시간이 더 소비 될 것만 같았다.

“후우. 이제 좀 대화할 마음이 생겼나보네~다름이 아니라 어제 고블린의 습격이 있었잖아?”

“예. 그렇죠.”

“우리 쪽은 상당한 피해가 나왔거든, 덕분에 힘을 합치게 됐지 뭐야.”

마도철에 어깨 너머로 정렬해있는 13명의 사람이 보였다.

남자 10명에 여자 3명.

마도철의 원래 팀원이던 남자 3명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살아남은 사람은 9명에 불과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20명이 얼추 넘었던 것 같은데.

“그래서요?”

“다름이 아니라, 너희도 우리 팀에 합류하면 어떻겠나 싶어서.”

“...저희는 괜찮습니다.”

유세현은 극구 거부했다.

그들은 목적은 어차피 다른데 있던 것 같았으니까.

김주희를 보며 입맛을 다신 마도철이 아쉬움을 토해냈다.

“하하...정말 아쉽네. 좀 더 빠르고 편할 텐데~”

“죄송합니다. 이게 편해서요.”

“아니야. 아니야. 됐어. 내가 너무 몰아세웠던 것 같네. 그래 나중이라도 같이 다닐 생각 있으면 말해~”

이 말의 의미는 대놓고 따라오겠다는 뜻.

‘때 되면 강호가 알아서 따돌리겠지.’

유세현은 멀어져가는 마도철을 잠시 바라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 * *

서걱!

유세현의 검이 고블린의 머리를 갈랐다.

이강호의 참마도 심장을 꿰뚫었다.근 3일 동안 그들은 무려 14번의 전투를 행했다.

그 사이 김주희는 여전히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이제는 나설 수조차 없었다.

“저, 선배님 저도 한번 잡아볼...”

촤악!

키에엑!

말을 채 다할 틈도 없이, 고블린의 상체와 하체가 나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유세현은 곧바로 롱소드로 머리를 찍었다.

두개골을 제대로 관통당한 고블린은 질긴 생명력을 지니고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더 이상 움직이지 못했다.

이것이 이번에 기습했던 마지막 고블린이었다.

“정리됐다. 출발하자.”

그들은 곧장 다시 이동을 시작했다.

슬쩍 고개를 돌려 유세현의 얼굴을 흘긴 김주희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세현 선배님...”

“왜?”

“저도 고블린 한 마리...”

“어차피 못 잡잖아.”

별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유세현의 얼굴표정은 미동하나 없었다.

마치 영혼 없는 인형을 대하는 느낌.

김주희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불안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건...’

자신은 호언장담했었던 둘째 날도 고블린을 잡지 못했다.

아마 그때부터 였을 것이다.

유세현과 이강호가 무차별적으로 고블린을 학살하기 시작한 것은.

처음에는 어떻게든 잡아보라고 한 마리씩 남겨줬다.

하지만 지금은 몬스터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조차 불가능하게 했다.

‘이건...안 좋아.’

느낌이 좋지 않았다.

분명, 자신을 지켜주고 있는 것이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그들이 자신에게 보이고 있는 것은 무관심.

‘어, 어떻게든 다시 눈에 띠어야 돼.’

김주희는 결국 비상용으로 가지고 다니던 활을 들었다.

남은 화살은 이제 총 6발.

이걸로 어찌어찌 어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슈우웅 푹!

발사한 화살이 고블린의 미간을 정확히 꿰뚫었다.

힘이 강한만큼 쓰러진 고블린은 그대로 절명.

생각보다 손쉬웠지만 김주희는 애써 화들짝 놀라는 표정을 지으며 유세현을 향해 외쳤다.

“서, 선배님! 한 마리 잡았어요!”

“어, 그래. 잘했네.”

돌아오는 것은 무척 시시콜콜하고 미적지근한 반응이었다.

김주희의 심장이 철렁 내려 앉았다.

‘나한테 전혀 기대가 없어.’

동시에 유세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직접 몸으로 싸워보라던 그 말.

‘하지만...’

베이고 할퀴고, 아픈 게 너무 무서웠다. 죽는 게 두렵다.

마음속으로는 몇 백번이고 다짐하지만, 막상 몬스터와 1:1로 조우를 하면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해 아무것도 눈에 뵈는 게 없었다.

‘어, 어떻게 해야 되지? 어떻게?’

답은 이미 정해져 있지만 행할 수 없는 게 답답했다.

그렇게 또다시 날은 저물어가고 있었다.

“삼일 뒤면 크낙사스의 초원에 도착할거야.”

“크낙사스?”

“응, 저항력이 좀 높은 몬스터지.”

“오~저항력? 그럼 거기가 목적지였구만?”

“물론.”

간단히 담소를 나누고 있는 유세현의 얼굴에는 표정이 가득했다.

살짝 웃기도 하고 찌푸리기도 하고.

이때다 싶었던 김주희는 분위기를 놓치지 않고 재빨리 둘 틈에 끼어들었다.

“저 선배님 크낙사스가 뭔데요?”

“나도 몰라. 이강호에게 물어봐라.”

“내일 보면 알게 될 거다.”

단번에 대화의 장이 깨지며 주위가 고요해졌다.

심장을 누르는 듯한 압박감과 어색함.

김주희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자, 잠시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내가 따라갈게.”

이강호가 슬쩍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전에는 결단코 보여주지 않던 과보호였다.

김주희는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어찌 심하게 젓는지 바람도 불지 않는데 그 긴 생머리가 머리가 난잡하게 휘날렸다.

“아, 아니에요. 혼자 다녀올 수 있어요!”

“만약이란게...”

“아니에요! 혼자 갔다 올게요! 부끄러워욧!”

결국 김주희는 도망치듯 나무를 내려왔다.

평소라면 혼자 돌아다니는 게 굉장히 무섭게만 느껴졌는데, 심란해서 그런지 지금은 별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쩌자고 내려왔지. 조금 있다가 돌아가야겠다.’

사실 김주희는 소변이 마렵지 않았다.

단지, 그 장소에 있기가 좀 뭐했을 뿐이다.

김주희는 일단 거짓말을 한만큼 풀숲에 몸을 숨겼다.

저 건너편으로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는 모닥불이 보였다.

마도철의 패거리가 만들어 놓은 구축해놓은 임시진지였다.

‘한번 가볼까?’

딱히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그들은 자신과 얼마나 다르게 생활하나 궁금했을 뿐이다.

“허억, 허...”

서서히 접근할수록 미세하게 울려 퍼지는 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고블린의 울음소리는 아니었다.

그것들의 목소리는 분간이 안 되기에는 너무 괴랄했으니까.

‘뭐지?’

김주희는 그 소리의 정체를 몇 발자국 더 나아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허억, 허억...”

“아...아~”

육체가 서로 부딪히며 내는 마찰음과 간드러지는 울리고 있는 여자의 교성.

김주희의 인상이 와락 구겨졌다.

그들이 하고 행위가 무엇인지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더러워...’

사방이 탁 트인 공간 그렇다면 누가 지켜봐도 이상하지 않다.

또한 이곳은 몬스터가 출몰하는 장소가 아니던가.

아무리 욕구가 왕성하다지만, 목숨이 걸린 만큼 자제를 하는 게 정설이다.

‘그냥 돌아가는 게 났겠다.’

김주희는 곧장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 순간 차갑고 서늘한 칼날이 그녀의 목덜미를 겨눴다.

“누구냐. 움직이면 죽인다.”

이전에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는 목소리.

김주희는 조심스럽게 마도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저, 전데요. 이 칼 좀...”

“저? 오오~전에 그 누님이잖아? 미안 미안~수상한 사람인 줄 알았어~그 이름이...”

“김주희요.”

“오, 그래 김주희씨. 밤이 됐는데 왜 혼자 이런 곳에 있어? 다른 사람들은?”

마도철이 겨누고 있던 롱소드를 슬그머니 내렸다.

김주희는 대답하기 싫었지만 패거리의 진형이니 만큼 일단 조신한 모습을 보였다.

“그게 볼일을 좀 보다가...”

“어이구! 미안 미안 숙녀에게 실례를 했네. 그런데 일왕 온 김에 잠깐 들렸다 라도 갈래?”

“아, 아니요. 일행이 기다리고 있어서...이만 가볼게요.”

노골적으로 말하는 마도철의 표정에서 좋지 않은 느낌을 받은 김주희는 얼른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마도철이 팔을 낚아챘다.

“에이~왔으면 대접해야지~일단 들어와~들어와~”

“아, 아니...”

“왜? 이상한 짓이라도 할까봐?”

“그, 그게 그렇게 생각은 안하는데...”

여태까지 든든한 백이였던 유세현과 이강호가 주위에 없자 김주희는 마도철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울타리 내부로 이끌려 들어갔다.

‘저건...’

모닥불 근처에 도착하기 무섭게 구석에서 열 띈 성교를 나누고 있는 두 명의 남녀가 자연스레 눈에 띠었다.

마도철이 안색이 창백해진 김주희를 보며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왜 그래? 신경 꺼~ 주희씨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니니깐~저건 그냥 기븐 앤 테이크야 기브 앤 테이크!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

“......”

몸을 주고 보살핌을 받는다는 뜻인가.

정확히는 알 수 없었지만 김주희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마도철이 곧장 옆에 있던 배낭을 뒤지기 시작했다.

“음 그리고 손님이니깐 뭘 주긴 줘야 되는데 딱히 없고...이거라도 좀 마실래?”

마도철이 내민 것은 현대사회에서만 만 볼 수 있었던 이온음료였다.

아직까지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니.

“아니에요. 괜찮아요.”

뭐가 들어있을지 모르는 만큼 김주희는 일단 거절했다.

그러자 예상했다는 듯 마도철의 입에서 갑자기 호쾌한 웃음이 터져 나왔다.

“하하하! 혹시 여기에 무슨 약이라도 타 놓은 거라고 생각 한 거야? 아니니깐 너무 걱정 말라고~”

그렇게 말한 마도철은 곧장 페트병을 따 음료를 반 정도 벌컥벌컥 들이켰다.

“크~맛 좋다~어때 이제 좀 믿겨? 우리 그런 짓은 안해~ 말했잖아 기브 앤 테이크라고. 그러니 안심하고 마셔.”

마도철이 재차 페트병을 내밀었다.

김주희는 어쩔 수 없이 그제야 음료를 한 모금 홀짝였다.

“하하하! 역시 이제 믿는군. 어때? 거기 남자들은 잘해줘?”

“...그럼요.”

“멀리서 보니깐 아닌 거 같던데? 최근에 코인 계속 못 먹고 있지 않아?”

싱글 벙글 웃으며 하는 마도철의 말에 김주희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전부 맞는 말이었다.

그녀는 최근 코인을 흡수한 적이 없다.

그 순간 마도철의 두 눈이 매섭게 빛났다.

“흠~기분 나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식으로 가다간 조만간 내쳐지게 될 것 같은데? 주희씨는 괜찮아?”

비수라도 꽂힌 것 마냥 가슴이 욱신거렸다.

자신 또한 마음속으로 몇 번이고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다.

어느새 슬그머니 접근한 마도철이 김주희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살짝 포개며 물었다.

“어때? 이참에 팀을 옮기는 게.”

“...팀을요?”

“그래! 거기 있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못 강해지는 것보다 났잖아!”

열띤 연설을 내뱉은 마도철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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