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득(3)
하지만 이 세계에 온 뒤 갑자기 사라진 후, 다시 만난 그는 무척이나 바뀌어져 있었다.
자신이 팔짱을 끼워도 눈 하나 깜빡하지 않는 냉정함. 아니, 되려 불쾌하다는 기색을 드러냈다.
그렇기에 이제는 현대에 있었던 때와 반대로 자신이 열렬히 구애를 해야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강호의 옆에는 방해꾼이 항시 붙어 있었다.
친구. 유세현.
표정으로 보나, 말투로 보나 대놓고 자신을 싫어하는 기색.
아마도 자신이 불순한 의도로 이강호에게 다가가는 것이 아니꼬운 게 분명했다.
펜션에서 술 게임을 했었던 당시, 유세현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흑기사를 자처했었던 이강호를 보다 좀 더 오래 살리기 위해 술까지 대신 마셔주었었던 사람이니깐.
가식적으로 살아온 자신은 한 번도 얻어 보지 못한 우정.
김주희가 보기에 둘은 그야말로 영혼의 콤비였다.
‘그래도 난 어떻게 해서든지 꼭 살아남을 거야.’
일단 이강호는 대놓고 자신을 밀쳐내지 않는다.
즉, 유세현의 마음만 조금이라도 되돌릴 수 만 있다면 이강호의 마음은 아직 얻지 못할지언정 같이 붙어 다닐 수는 있다는 이야기.
홀리는 것은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가능해진다.
그녀는 그래서 큰 결심을 했다.
‘그래, 우선은 내가 아무 쓸모가 없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면 돼.’
김주희는 마른침을 삼켰다.
자신을 제외한 대부분의 학생들은 미노타우르스의 시체에 비위가 상했는지 이미 통로에서 다 도망쳐버린 상황.
고기만, 어떻게든 고기만 잘라 들고 간다면 자신도 할 땐 한다는 사람인 것을 유세현에게 어필 하는 게 가능했다.
“주희야 왜 아직도 거기에 있어? 빨리 공터로 돌아와. 용석 오빠가 열매 찾으러 밖으로 빠져나간데! 이러다가 같이 못가겠어.”
“...먼저가. 난 안 따라 갈 거야.”
“뭐, 뭐? 서, 설마 이 고기를 진짜로 잘라서 먹을 생각이야?”
“응.”
단호한 김주희의 말에 그녀를 데리러왔던 같은 학번 동기 여학생이 소스라치게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그녀에게 있어서 미노타우르스를 먹는다는 것은 징그러웠던 웹 스파이더를 먹겠다는 것과도 같은 의미였으니깐.
“주희야 그러지 말고 용석 오빠 따라서...”
“난, 신경 쓰지 말고 가. 난 진짜로 이거 잘라서 먹을 거야.”
“...알았어.”
결국 여학생은 못이기는 척 통로에서 모습을 감췄다.
이에 김주희는 터질 것 같은 심장을 달래며 다시 한 번 일본도를 쥐었다.
그리고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그래, 이건 소고기야. 그것도 맛있는 1등급 소고기. 소고기...”
덜덜덜.
하지만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
동시에 서러움이 솟구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왜 자신이 이런 것을 해야 된다는 말인가.
답은 그 누구도 주지 않았다.
아니, 앞으로도 아무도 자신에게 답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이곳은 그런 세상이니깐.
“으아아아!”
결국 김주희는 그 약한 마음을 숨기기라도 하려는 듯 힘찬 기합과 함께 일본도를 내리쳤다.
* * *
김주희가 유세현과 이강호의 앞으로 돌아온 것은 식사를 거의 끝마치기 직전일 때였다.
김주희는 애써 활짝 웃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선배님~ 고기 구해 왔어요. 많이 잘라왔으니깐 같이 먹어요.”
“...그래, 여기 앉아라.”
이에 고기를 받아든 유세현은 살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웹 스파이더와 직접적으로 전투하며 맞서 싸웠던 학과생들 조차도 비위를 이기지 못하고 열이면 열, 먹을 수 있는 열매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항상 힘 있는 자에게 의존하면서 생을 연명한 그녀가 설마 진짜로 고기를 가져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
‘정말로 그렇게 고기가 먹고 싶었던 건가? 아니...아니군.’
닦아낸 흔적이 있는 눈가.
그에 비례하여 퉁퉁 부운 눈.
이를 본 유세현은 그녀의 의도가 대강이나마 짐작이 가능했다.
본래 그녀는 고기를 먹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분명 학과 생들과 같이 열매를 따 먹고 싶었을 것이다.
허나, 그럼에도 고기를 구해왔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자신과 이강호에 대한 어필.
유세현은 이강호를 슬쩍 쳐다봤다.
그가 어깨를 살짝 으쓱였다.
일단은 놔둬보자는 의미.
지금까지 김주희의 행동거지를 대강이나마 지켜보고 있었던 유세현은 친구의 결정이 무척 유감스러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왈가왈부하는 일은 없었다.
절대 나서지 않던 김주희의 행동이 이전과 달리 조금 변했을 뿐만 아니라, 이전 이강호가 자신에게 한 말을 믿는 것.
이강호는 고집을 부리면 부렸지, 상황을 모면하기위해 말을 돌리진 않는 친구니깐.
‘그나저나...김주희라...발목만 안 잡았으면 좋겠는데.’
유세현은 이만 잡념을 떨치고 스테이터스를 살폈다.
이름: [유세현]
성별: [남]
나이: [25]
키: [181cm]
체중: [75kg]
<주요스텟>
힘: 95.5% [F Rank]
민첩: 94.1% [F Rank]
체력: 45.9% [F Rank]
내구력: 41.3% [F Rank]
마력: 12.9% [F Rank]
<저항력>
물리저항: 15.5% [F Rank]
마력저항: 21.4% [F Rank]
<속성저항>
화: 3% [F Rank]
수: 3% [F Rank]
<스킬>
프로즌 디퓨전 [매직 F Rank][숙련도: 31%]
힘과 민첩 중심의 몬스터인 웹 스파이더 학살.
그리고 이강호가 보상을 대가로 양도한 코인을 전부 먹어서 그런지 힘과 민첩은 100%에 거의 가까워져 있었다.
이는 1차 튜토리얼을 마친 평범한 사람들이 대개 20~30%사이의 힘을 지니고 있는 것에 비해 무척이나 큰 차.
만약 학과 사람들을 튜토리얼 종료시까지 만나지 못했었다면 자신이 얼마나 센지 몰랐겠지만, 그들을 우연히 만나 상태를 본 유세현은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얼마나 강한지를.
또한 그것과 동시에 자신의 저항력이 얼마나 낮은지도 깨달았다.
만약 몸을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내구력 스텟을 얻지 못했다면 웹 스파이더를 제대로 상대할 수 없을 것이다.
큰 부상을 입어 지금 구석에서 쉬고 있는 남학생처럼 스치기만 해도 살점이 떨어져 나갔을 테니깐.
“선배님도 좀 드세요~”
“어, 어? 아니야 괜찮아. 지금은 배가 불러서. 그러니 나는 신경 쓰지 말고 먹어라.”
그 사이 점수를 따놓으려는 김주희가 갑작스레 유세현을 향해 고기를 내밀었다.
유세현은 이를 정중히 거절한 뒤 이강호를 향해 물었다.
“강호야. 튜토리얼이 이게 끝이 아니겠지? 분명 뭔가 더 있겠지?”
“...그렇지.”
이강호의 대답은 빠르고 간결했다.김주희도 대충 예상은 하고 있었는지 잠시 젓가락을 떨었지만 계속해서 고기를 먹었다.
그렇게 잠깐 동안의 휴식 및 식사시간이 끝이 났다.
“바로 이동한다. 소화는 걸으면서 시키면 되니깐.”
“그래 나도 알고 있어. 그런데 어디 통로로 갈 거냐?”
“처음 왔던 곳. 그 괴물은 동서남북으로 되어있는 산을 하루에 하나씩 이동하거든.”
“아하!”
유세현과 이강호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곧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에 옆에서 이야기를 흘려듣고 있던 김주희가 깜짝 놀라 솟구치는 것은 당연한 반응.
“서, 선배님 어딜 가시려고 하시는 건데요?”
“몬스터 잡으러.”
이강호는 딱 한 마디를 간추려서 말했다.
김주희의 안색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 몬스터를 또 잡으러 가신다고요?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피, 피곤하지 않으세요?”
“으음 피곤하긴 하지. 하지만 꼭 잡아야 되는 몬스터라서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넌 우리랑 같이 갈 거냐? 아니면 여기에 있을 거냐?”
그녀 또한 Ex아이템 [신의 회종시계]의 적용 대상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정황을 보니, 그녀는 중요기억의 중추보다는 안내를 하는 단서처럼 보였다.
즉, 지금의 이강호에게 있어서 그녀는 있으면 좋지만, 딱히 없어도 상관이 없는 그런 존재.
‘하지만 설마가 사람 잡는 다는 말이 있지.’
기억이란 것은 무척이나 애매하다.
한 남자를 열렬히 사랑했던 여자가 교통사로로 기억을 잃어버린 뒤, 사귀었던 남자를 냉대하게 대한 사례가 이에 대한 증거.
그래서 이강호는 김주희에게 선택권을 주었다.
만약 그녀가 스스로 선택하여 자신을 따라와 자이언트 머드 골렘을 잡는 데에 있어 노력이라도 하는 행위를 보인다면, 팀플로 이루어질 2차 튜토리얼 때도 자신에게 어느 정도 붙는 것을 허락할 셈이다.
지금의 자신은 2차 튜토리얼을 끝마친 사람보다도 높은 힘과 민첩, 그리고 레전더리 스킬을 가지고 있었으니깐.
한 사람 정도 지켜줄 힘은 된다.
‘하지만 그저 엉겨 붙어 먹으려고 한다면.’
1차 튜토리얼 이후로 그녀는 땡.
이후 후회하게 되더라도 사람이 아닌, 단순한 짐짝을 메고 다닐 생각은 없었다.
“갈 길이 바빠서 우린 간다.”
“......”
말을 마친 둘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김주희는 원래 있던 자리와 떠나가는 둘을 번갈아보며 망설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주먹을 꽉 쥔 김주희는 황급히 물품을 거치시켜 놓았던 곳을 뛰어가 무기를 챙겼다.
첫날 이한철의 만행으로 죽은 정미혜가 선택 했었던 장창.
자신이 이번 MT에서 꼬셔보려고 했던 이용한의 일본도.
그리고 직접 선택한 활.
“선배님! 기다려주세요! 같이 가요! 따라갈게요!”
그녀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자신의 파멸이 예정되어 있는 곳에 남는 것보다야, 더 이상 자신을 좋아하는 것같이 보이진 않지만, 그래서 헌신해주지는 않지만, 우직해 보이는 둘에게 붙는 편이 나았으니깐.
‘그래! 이제부터는 내가 잘해서 내 남자로 만들면 되지!’
둘에게 뛰어가는 김주희는 다시 한 번 더 마음을 단단히 다잡았다.
* * *
촤아악!
유세현이 휘두른 롱소드가 자이언트 머드골렘를 가르기 무섭게 끈적끈적한 액체가 땅으로 튀었다.
작은 액체는 곧 지면에서 꾸물꾸물 꿈틀거리더니 사람크기의 2/3 만 한 미니 머드골렘으로 재탄생했다.
그리고 재탄생한 미니 골렘들은 빠르게 둘을 천천히 에워쌌다.
그들이 숲의 파수꾼을 발견하고 공격을 행한지 채 1분이 지나지 않았을 때 발생한 상황이었다.
“제기랄 분열이라니! 이강호! 내가 우선 작은걸 처리할게! 혼자서 버티는 거 가능 하겠냐?”
“물론!”
“좋아! 그럼 버티고 있어봐!”
유세현은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무섭게 뒤로 빠지면 프로즌 디퓨전을 사용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예측하고 있었던 이강호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유세현을 살폈다.
역시나 스스로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뿐 유세현은 자신이 효과에 들지 않도록 범위를 줄여 사용하고 있었다.
천재만이 할 수 있다는 마력의 흐름을 읽고 제어하는 능력.
추후 이 능력을 갉고 닦은 사람들은 스킬의 유무와 상관없이 마력으로 상대의 기척을 읽을 수 있게 된다.
또한 스킬의 등급제약 때문에 능력을 강하게 만들 수는 없지만, 무턱대고 주위에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는다.
“하아압!”
서걱!
그사이 유세현은 조금 느려진 미니 골렘들을 처리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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