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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69)화 (169/200)

169화

“그… 방법이 유효할까요?”

엘라가, 어나니머스를 언급하는 정우현의 말을 듣고는 조금 머뭇거리며 물었다.

“예, 무조건 유효합니다. 현재로서 남은 선택지는 그것 하나밖에 없기도 하고요.”

이에 엘라가 잠시 생각해 보고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으음, 단기적으로는 의문이 없습니다만, 장기적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지….”

“엘라. 중요한 건 하루빨리 그 계획을 실행해 군부 세력을 저지하고 평화를 되찾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행여 무슨 일이 생긴다면, 제가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마세요.”

정우현의 말을 듣고는 엘라가 다시 곰곰이 생각하다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러고는 확신이 생겼는지 얼굴에 살며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우현 님과 함께라면 불가능한 것은 없으니까요.”

* * *

그렇게 해서 둘은 세계에서 가장 성능이 뛰어난 슈퍼컴퓨터 두 대를 앞에 둔 채, 각자 마주 보고 앉았다.

해당 컴퓨터는 정우현과 엘라가 수시로 성능을 업그레이드하며 개발한 컴퓨터다.

컴퓨터 하드웨어 강국인 중국과 일본 심지어 미국의 슈퍼컴퓨터보다도 기술이 훨씬 앞섰는데, 이와 같은 격차는 최근에 더욱 벌어졌다.

정우현과 엘라가 양자 컴퓨터 개발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즉 그들이 앞에 두고 앉은 컴퓨터는 세계 최초의 양자 컴퓨터였다.

애초 정우현이 발견한 소수의 법칙을 기반으로 구동됐던 알고리즘이, 양자 컴퓨팅 방식으로 작동하게 됐기에 그 성능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향상됐다.

언젠가 엘라는 이 컴퓨터를 두고 인류가 100년, 아니 1,000년을 노력해도 따라잡지 못할 기술의 결정체라고 표현한 적 있다.

왜냐하면 이 컴퓨터를 개발하기 위해선, 과거 정우현이 그랬던 것처럼 리만 가설을 입증한 후 소수의 법칙을 발견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듯 엄청난 슈퍼-양자 컴퓨터의 존재를 아는 이는 세계에서 또한 정우현과 엘라밖에 없었다. 즉 아직도 공식적으로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를 보유하고 있는 국가는 정우현의 대한민국이 아니라 미국이었다.

이와 같은 기술의 컴퓨터가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세상이 발칵 뒤집히기 때문이다. 마치 모든 보안 체계를 무너트릴 수 있는, 소수의 법칙을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되는 것과 비슷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엘라가 모처럼 상기된 표정으로 정우현에게 말했다.

그녀는 우 재단 관리자이기 전에 비트코인을 만든 프로그래머고, 프로그래머이기 전에 세계 해커 챔피언이다. 즉 해킹이 그녀의 장기다.

한데 그런 그녀가 아주 오랜만에 해킹을, 그것도 정당한 일을 위해 한 국가를 상대로 해킹을 하니 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예, 시작합시다.”

하고서 빠르게 키보드를 두드리는 정우현.

정우현이야말로 그 대단한 엘라를 뛰어넘는 세계 최강의 해커다. 일찍이 세계 해킹 대회에서 엘라를 압도한 뒤 미국의 9.11테러를 막기 위해 CIA 내부망을 해킹했으며, 시간이 흘러 다시 엘라의 비트코인과 그녀의 암호화된 보안 시스템을 모두 무너트린 어나니머스가 바로 그다.

“으음.”

그런 그가 이인자인 엘라와 함께 해킹을 시작한 지 단 1분 30초 만에 드디어 목적을 달성했다.

* * *

러시아 군 지휘 본부.

그들의 중앙 컴퓨터에 갑작스러운 문구가 떴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세계의 평화를 염원하는 어나니머스입니다.’

“이게 뭐야!”

현시점 크렘린궁을 점거하고 러시아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군부 지도자가 어나니머스의 문구를 보고 화들짝 놀라서 크게 소리쳤다.

“어떻게 좀 해 봐! 이게 대체 뭐냐고!”

이러나저러나 정우현의 문구는 계속됐다.

‘제가 이렇게 사이버상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건 정확히 21년 만이군요. 그동안 아쉽게도 세상에 평화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바로 여러분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젠장, 뭐 해! 다들 뭐 하고 있나? 얼른 이 문구를 치워 버리지 않고!”

지도자가 말하기 이전부터, 이미 러시아 최고의 컴퓨터 기술자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컴퓨터를 만지고 있었으나 모두 소용이 없었다. 즉 그들의 모든 군사적 통제권은 이미 어나니머스에게 넘어가 있었다.

‘으음,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건가요. 아무런 짓도 하지 마십시오. 러시아의 폭주는 오늘로써 끝입니다.’

어나니머스의 문구는 마치 지금 러시아군 지휘 본부의 모습을 모두 보고 있는 것처럼 계속됐는데, 사실 실제로도 그랬다.

정우현은 현재 우 재단 의장실에서 엘라와 함께 러시아군 지휘 본부의 모든 것, 즉 CCTV까지 해킹해 실시간으로 그들을 보며 문구를 쓰고 있었다.

‘그러니까 여러분은 현 시간부로 아무 일도 할 수 없으며, 또한 아무 일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

군부 지도자의 얼굴이 분노로 새빨개졌다.

그러고는 한순간 크게 소리쳤다.

“미사일을 쏴라!”

지휘 본부 실내가 조용해졌다.

지도자의 말에 애써 어나니머스의 침투를 막으려는 여러 컴퓨터 기술자들의 손가락이 멈췄다. 실내엔 더 이상 각종 전자 기기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뭐 하나! 미사일을 쏴라! 전부 쏴라! 우크라이나 전 영토를 불바다로 만들어 버려라!”

이성을 잃은 지도자의 말이었다. 우크라이나를 조준하고 있는 러시아 내의 탄도 미사일을 모두 발사하라는 뜻이었다.

“…정말입니까?”

급기야 미사일 발사 총 담당자가 뒤로 돌아, 조금은 두려운 표정으로 지도자를 보고 물었다.

“당연하지!”

“….”

만약 우크라이나 영토를 초토화시키는 미사일을 진정 쏴 버린다면, 서방 연합군으로 하여금 러시아의 영토에 진군할 수 있는 명분을 주게 된다. 즉 자멸하게 된다.

그런데도 지도자는 미사일을 쏘라고 한다. 그는 푸틴의 사망 시점부터 군부를 이끌고 크렘린궁을 점거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까지, 국가적 비상사태 앞에서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그의 머리를 지배하는 것은 오직 권력, 권력을 위한 야욕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다.

“뭐 해! 얼른 쏘라고!”

지도자가 다시 한번 미사일 제어 담당자를 다그쳤다.

미사일 제어 담당자는 잠시 고민하더니 천천히 버튼을 눌렀다.

군인은 어쩔 수 없는 군인. 상관이 공격 명령을 내렸으면 어쨌든 공격을 감행해야 하는 게 군인으로서의 본분이라고 생각하는 그였다.

더군다나 미쳐 버린 지도자를 따라 크렘린궁을 점거하는 등 그 또한 한배를 탔으니, 어쨌든 끝까지 같이 가야만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음?”

한데 미사일 제어 담당자가 의아한 표정으로 소리를 냈다.

그러고는 재차 미사일 발사 버튼을 눌렀다.

“…아아!”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것입니까?’

순간 전면 디스플레이에 어나니머스의 문구가 계속됐다.

‘제가 아무 일도 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이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여러분의 군 통제권은 저에게로 일찌감치 넘어왔다는 말입니다.’

“뭐 해! 빨리 쏴! 다 죽여 버려!”

지도자가 미친 듯 소리쳤다. 마치 미사일을 쏨으로써 어나니머스의 해킹 문구가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이에 미사일 담당자가 재차 버튼을 눌렀으나,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시 한번 경고합니다.’

이어지는 어나니머스의 문구.

‘아무 짓도 하지 마십시오. 재차 미사일 버튼을 누른다면, 러시아는 톡톡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입니다.’

말이 통하지 않는 러시아 군부였다.

이에 어나니머스는 본때를 보여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야만 이들이 이 미친 짓거리를 멈출 거라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그들 러시아 군부는 어나니머스의 경고를 또다시 무시한 채, 미사일 버튼을 눌렀다.

그러자 러시아 곳곳에서 우크라이나를 향해 발사 준비되어 있던, 각종 거대한 미사일들이 곧장 하늘로 치솟기 시작했다.

“오오!”

군부 지도자는 이 모습을 보고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기 뜻대로 일이 풀리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내 그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렇게 발사된 미사일이 하늘 위로 올라가더니, 한순간 궤도를 바꿔 미사일을 쏘아 올린 기지로 향했기 때문이다.

즉 수백 개의 탄도 미사일이 수천, 수만 개의 미사일이 저장된 자신의 탄생지로 방향을 돌렸다.

“…아아아아아악!”

쿠과과과과과과쾅!

그러고는 끝내 폭발해 버렸다.

즉, 러시아 전역에서 발사된 미사일들이 러시아 전역의 미사일 기지에 떨어졌다.

엄청난 자폭이었다.

‘제가 얘기했지 않습니까.’

그러고서 어나니머스의 문구가 계속됐다.

‘아무 짓, 하지 말라고.’

“….”

순간 지도자의 얼굴이 분노하는 것을 넘어 침울해졌다. 동공의 초점이 풀리고 숨이 턱턱 막혔다. 총포로 권력을 잡은 군인이, 총포를 잃는다는 것은 사망 선고를 받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딸깍.

지도자가 결국 참아 왔던 레버를 하나 내렸다.

오직 러시아 국가 원수의 자리에서만 작동할 수 있는 테이블 위 작은 검은 레버를, 지금 자신이 내렸다.

그러자 테이블 한쪽 강철 덮개가 스르르 분리되고는, 커다랗고 둥근 빨간 버튼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 더 위험한 짓을 하려는군요.’

그 모습을 보고 어나니머스가 문구를 띄웠다.

하지만 지도자에게 그 문구는 보이지 않았다.

지금 자신이 하려는 일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는, 핵을 쏘려고 했다. 핵을 단 한 발이라도 쏘면 인류가 공멸에 이르는 것을 잘 알면서도, 핵을 쏘려고 했다. 자신이 이대로 비참하게 힘을 잃고 사라지는 것보다는, 세상이 멸망해 버리는 게 낫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아니, 그건 생각이 아니다. 정확히 하면 욕망이다. 자신이 최고가 될 수 없다면 세상 따위는 어찌 됐든, 쪼개지든 부서져 버리든 상관없다는 미쳐 버린 권력자의 욕망.

탁.

마침내 그가, 핵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에 다시 그가,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역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러시아에 설치된 핵무기는, 마치 고철 덩어리인 양 혹은 장식품인 양 그대로 있었다.

군 지휘 본부에는, 누군가가 침을 꼴칵 삼키는 소리만이 들렸다.

‘실망스럽군요.’

다시 그들 눈 앞에 펼쳐진 어나니머스의 문구.

‘이로써 러시아군은 해체되어야 마땅함을 명백히 확신하게 됐습니다.’

하고서 그의 글이 계속됐다.

‘오늘로써 러시아군의 모든 지휘 통제권은 사라집니다. 그 어떤 전파 통신도, 산하 부대에 닿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어떤 공격 명령도 유효하게 전달될 수 없을 것입니다. 만약 그럼에도 무기를 들고 침략을 이어 나가고 싶다면, 지금 즉시 밖으로 나가 말을 타고 전선으로 달려가 공격하라고 외치십시오. 고대와 다를 바 없는 전투를 시작하라는 말입니다.’

군 지도자는 물론 지휘 본부 내 모든 사람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어나니머스의 문구를 바라봤다.

‘물론 그럼에도 전투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당장 인간의 시야나 목소리가 닿지 않는 조금 떨어진 곳과의 교신이 모두 불가능하니까요. 나아가 불능이 된 모든 디지털 무기로 무리하게 공격을 감행하다가는, 오늘처럼 아군 기지를 공격하는 자폭 공격으로 돌아오게 될 것을 알려 드립니다. 혹시 모르죠, 어떤 미사일은 현재 여러분이 있는 지휘 본부에 정확히 정면으로 떨어질지. 그 모두, 너무나 쉽게 제 의지로 가능합니다만.’

“…아아.”

순간 본부 내 누군가가 절망적인 탄식을 내뱉었다.

‘한편, 전산화된 모든 군 시스템이 뒤죽박죽되어 지휘 체계가 무너지고 종국적으로는 어느 부대가 아군이고 적군인지도 헷갈리게 될 것입니다. 군인들은 목숨을 걸고 서로 나서서 대화를 시도하며 그들의 고향 얘기를 나누는 것으로 힘겹게 아군임을 확인할 것입니다. 물론 누군가가 그럴듯한 거짓말을 하면 그 역시 소용이 없지만요.’

어나니머스의 문구가 펼쳐지는 본부 실내에, 깊은 정적이 흘렀다.

그들은 그들이 계획한 모든 시도가 헛되다는 것을 서서히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한편으로는 깊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이와 같은 일을 벌인, 어나니머스라는 해커의 정체를 알 수 없다는 미지에 따른 두려움이었다.

공포와 무기력감에 휩싸인 그들의 모습을 확인하고서는, 어나니머스가, 짧게 물었다.

‘여러분. 이래도, 계속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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