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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인생이 너무 쉽다 (135)화 (135/200)

135화

계속되는 <바이 더 베테랑> 촬영.

울고 있는 링의 앞에는 한 중년의 남자가 신음을 토하며 누워 있다.

링의 아버지다. 물론 당연히 아시아인이다.

한데 익숙한 배우다.

바로 김도진이었다.

우후 엔터테인먼트 소속, 연기파 배우로 거듭난 김도진이 정우현의 할리우드 연출 데뷔작 <바이 더 베테랑>에서 링의 아버지 역으로 출연했다.

“…….”

브래드가 울고 있는 링을 보고서 소녀의 아버지에게 시선을 돌리고는 바로 상황을 파악한다.

링의 아버지, 즉 김도진은 온몸이 상처투성이였다.

한데 링이 말했듯 어디에서 넘어진 상처가 아니었다.

폭행이었다. 시퍼렇다 못해 곪은 멍 자국과 부서진 갈비뼈 등 누군가에게 혹은 여러 사람에게 무차별적으로 구타당한 상처였다.

“…어떻게 된 거니.”

김도진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브래드가 말했다.

링이 울면서 대답했다.

“…며칠 전에 어떤 사람들이 갑자기 찾아와서는….”

하고 아빠의 손을 잡으며 말을 이었다. 

“아빠를 때렸어요….”

“음….”

브래드가 김도진의 몸을 살폈다.

상처와 출혈이 심했다.

중동에서의 군 복무 시절, 온갖 거친 경험으로 판단하기에 이 정도 부상이면 이미 늦었다.

즉, 링의 아버지는 이대로 죽는다.

“…왜.”

브래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병원에 가지 않은 거냐. 그리고 경찰은 왜 또 부르지 않고.”

“아빠가….”

링이 계속 엉엉 울며 말한다.

“부르지 말랬어요. 아무도 부르지 말랬어요….”

“크헉.”

순간 눈을 살며시 뜨며 피를 토하는 김도진.

브래드가 재빠르게 바닥에 떨어져 있는 천 조각을 주워 김도진의 피를 닦는다. 한편 주워 온 부엌칼은 링이 보지 못하게 살며시 뒤편에 놓았다.

의식이 희미한 김도진이 브래드를 보고는 조금 놀라다가, 자신의 딸 링과 브래드를 번갈아 보고서는 작은 목소리로 어설픈 영어를 한다.

“…당신입니까.”

김도진은 실제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한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이야기 속 링의 아버지는 이민자니까. 즉 설정상 애초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당신이 우리 딸을 돌봐준다는 그 사람입니까.”

“….”

브래드가 잠자코 있다.

브래드는 한 번도 자신이 링을 돌본다고 생각한 적 없었다.

굳이 따지면 링이 자신을 돌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게 중요하지 않다.

링의 아버지가 다 죽어 가는 마당에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다는 게 중요했다.

“…맞습니다.”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브래드.

이에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김도진의 얼굴에서 살며시 미소가 피어 오른다.

“다행이군요….”

그러고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딸을 바라보고 말을 잇는다.

“…우리 딸아이 곁에 이렇게 든든한 분이 계셔서 말입니다…. 하, 크헉!”

피를 토하는 김도진.

“…아빠, 아빠!”

링이 울음을 터뜨리며 김도진을 껴안는다.

“링아.”

이내 중국어로 말하는 김도진.

중국어만큼은 이번 영화를 위해 김도진이 피나는 노력을 했다.

“…이 아저씨 말을 잘 들으렴. 크헉!”

다시 피를 토하는 김도진.

끝이 다가왔음을 직감한다.

링은 더 크게 울고, 김도진은 그런 자신의 딸에게 아빠는 어디 있든 함께할 거라는 말을 한다.

그러고서는 링에게 엄마의 사진을 보고 싶다고 하면서, 거실 서랍에서 좀 찾아와 달라고 말한다.

이에 링이 얼른 아빠의 말을 따라, 억지로 눈물을 훔치며 밖으로 나간다.

“아내 사진은….”

김도진이 거실로 나간 딸의 뒷모습을 보고 말을 잇는다.

“없어요. 아내가 죽으면서 함께 묻어 버렸지.”

“….”

“당신에게만 할 얘기가 있어서 딸에게는 거짓말을 한 것입니다.”

그러고는 남은 힘을 쥐어짜 말을 잇는 김도진.

“딸을 데리고 도망을… 부디 함께 도망가 주십시오.”

하고 말을 하는 김도진의 이야기는 이랬다. 아내, 즉 링의 엄마는 생전 미국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술에 손을 댔고, 끝내 알코올 중독자가 됐다.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다. 애초 평범한 데다 벌이가 좋지 못한 링의 아버지 김도진은 그런 아내를 감당할 수 없었다. 아내는 거리로 나가 계속 술을 마셨고, 결국 동네의 불법 고리대금업자들의 눈에 띄었다.

링의 어머니는 그런 그들에게 반강제적으로 돈을 빌리게 됐다. 결과는 당연히, 갚지 못했다. 이자는 곧 원금보다 커지고, 사채업자들은 그런 아내를 모욕하고 때론 폭행하기 시작했다. 결국 이미 나약해져 있던 아내가 고통을 참지 못하다가는, 어느 날 술에 취한 채, 자살했다.

아내는 죽었지만, 빚은 남았다. 이에 김도진이 온 힘을 다해 갚아 보지만, 이미 이자가 어마어마했기에 역부족이었다.

결국, 사채업자 일당은 김도진 또한 폭행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신고하거나 심지어 병원에까지 가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딸 링 때문이다. 괜한 수를 썼다가는, 그들이 링을 팔아 버리겠다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부디, 딸 아이를 데리고… 멀리… 크헉…!”

피를 심하게 토하는 김도진.

애초 죽어 가고 있었던 가운데, 짧지 않은 얘기를 하느라 남은 힘을 모두 소진했다.

“멀리 달아나 주십시오…!”

하고서 그가 결국 눈을 감았다.

“…아빠, 사진이 없어요…!”

때마침 방 안으로 다시 들어오는 링.

이내 죽어 버린 아빠를 눈앞에 두게 된다.

“…아빠.”

아빠의 몸에 붙어서는, 그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링.

다시 엉엉 운다.

그런 링을 잠자코 보다가는 한순간 번쩍 안아 드는 브래드.

비가 세차게 몰아치는 집 밖으로 나간다.

“…아빠아아아아!”

세차게 내리는 장대비 사이로 링의 울부짖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 * *

비를 맞으며 빠른 걸음으로 걷는 브래드.

한쪽 팔로는 링을 안고 있다.

“…아빠….”

여전히 울며 아빠를 찾는 링.

이에 브래드가 짧게 한마디 한다.

“…네 아빠는 죽었다.”

“…흐흑.”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아.”

브래드의 말에 서럽게 우는 링.

이미 엄마를 떠나보냈기에 브래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다.

알고는 있지만 슬픈 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계속 울다가는 브래드의 품에서 주위를 둘러보며 천천히 말한다.

“…어디 가요?”

“….”

“우리 어디 가요, 아저씨?”

이에 브래드가 굵은 목소리로 답한다.

“복수를, 하러 간다.”

죽기 전 링의 아빠는 브래드에게 자신의 딸과 함께 도망가라고 했었다.

하지만 브래드의 사전에 도망이란 단어는 없었다.

과거 중동에서 그 어떤 위기와 동료의 죽음에도, 목숨을 걸고 복수는 할지언정 도망은 치지 않았다.

그런 그에게 이 상황에서 도망간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링을 안은 채, 계속 비를 맞으며 성큼성큼 걷는 브래드.

발걸음이 다다른 곳은 브래드 자신의 집이다.

“네 아빠와 엄마를 그렇게 만든 사람들.”

울타리 문을 열고 마당으로 들어가며 말을 잇는다.

“그리고 너를 이토록 슬프게 만든 사람들을 찾아서 복수하러 간다.”

하고서 링을 비가 내리치지 않는 지붕 아래 잠시 내려놓는 브래드.

빗물이 떨어지고 있는 납작한 의자 위의 위스키병을 손에 쥐고 단숨에 술을 원샷한다.

그런 브래드를 슬프면서도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링.

브래드가 집 안으로 들어가서는 곧장 나와 다시 링을 안고 마당 뒤쪽으로 간다.

자동차다. 낡은 차가 주차되어 있다.

문을 열고 링을 조수석에 태운 채 시동을 걸어 보는 브래드.

너무 오랜만에 거는 시동이라 엔진이 좀처럼 작동하지 않는다.

이에 수차례 계속 키를 돌리자, 결국 시동이 걸리는 자동차.

부르릉.

엑셀을 풀로 밟으며 마당 밖으로 나간다.

* * *

빠르게 동네를 달리는 브래드의 차량.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차를 세우고 차창을 열고 묻는다.

“돈놀이하는 사람을 아십니까?”

“….”

이에 사람들이 경계를 하며 말을 안 한다.

“지크라는 사람을 알아요?”

지크는 고리대금업자의 이름이다. 김도진이 숨을 거두기 전 이름을 밝힌 유일한 사람이었다.

“…아니요.”

알면서도 모른다고 하는 듯한 사람들의 눈치.

필시 이 동네를 지크가 좌지우지하는 게 틀림없었다.

계속해서 차를 몰고 세우고 몰고 세우며 물어보지만, 한결같이 모른다고 발뺌하는 사람들.

끝내 한 부랑자에게까지 물어본다.

“지크라는 사람을 아나?”

“아…!”

남자가 비에 젖은 브래드를 보고는 깜짝 놀라며 말한다.

“메시아로군! 메시아가 왔어!”

그는 오래전 정신 착란을 일으켜 마을 거리를 떠돌며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난 메시아가 아니다. 하여간 지크라는 사람을 아는지 물었다.”

“…메시아가 아니라고? 내가 꿈에서 본 형상이랑 똑같은데… 나는 메시아를 333년째 기다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하며 헛소리를 계속 지껄이는 부랑자를 브래드가 잠시간 가만히 바라보다가는, 짧게 입을 열었다.

“실은 맞다.”

“…”

“내가 너의 메시아다.”

“…오오!”

브래드의 말에, 비를 맞으며 반쯤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켜 무릎을 꿇는 부랑자.

흥분한 목소리로 크게 외친다.

“역시 그럴 줄 알았습니다, 오, 나의 구세주여!”

“그러니 묻는 말부터 대답해라. 지크가 어디 있나.”

“아, 아! 고 녀석은 말입죠! 저기 서쪽 산 중턱에 으리으리한 저택을 짓고 살고 있습니다!”

서쪽으로 고개를 돌리는 브래드.

과연 산 중턱에 저택이 있다.

“고 땅이 다 제 땅인데 말입죠! 녀석이 무단으로 저렇게 집을 지어서는, 땡전 한 푼도 주지 않는 거 아닙니까?”

여전히 헛소리를 하는 부랑자.

하지만 상관없다. 브래드는 지크가 어디 있는 줄만 알기만 하면 되니까.

“어쨌든 알았다.”

하고 지나가려는 브래드.

그러다가는 엑셀에서 발을 뗀 뒤 품에서 지갑을 꺼낸다.

지갑 안에 있는 지폐를 전부 꺼내 부랑자에게 주는 브래드.

“고맙다.”

부랑자가 황송하다는 눈빛으로 지폐를 손에 들고 외친다.

“오, 나의 구세주여. 만세!”

* * *

이윽고 도착한 산 중턱의 저택 앞.

브래드가 고개를 돌려 링을 보고 말한다.

“잠깐.”

슬픔과 괴로움, 그리고 두려움에 젖은 소녀의 새까만 눈을 바라보고 말을 잇는다.

“아주 잠깐만 있어라, 여기.”

“가지 마요.”

순간 브래드의 옷깃을 잡으며 말하는 링.

“가지 마요, 무서워요.”

그러자 브래드가 링의 손을 살포시 풀고서 답한다.

“괜찮다.”

그러고서는 차에서 내리며 말한다.

“네가 평생 무서움에 떨지 않게 하려고 가는 거니까.”

조수석에 홀로 남아서 브래드의 뒷모습을 보는 링.

이내 그가 높다란 벽을 폴짝 오르고는 시야에서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들려오는 사람의 비명.

“크어어어어억!”

툭! 쿠궁!

이윽고 둔탁한 소리가 마구 들린다.

“아아아악!”

그리고 또 이어지는 비명.

탕탕! 타다다다다당!

총소리마저 들린다.

심장 박동이 빨라지는 링.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궁금해서 차 밖으로 나가 확인해 보고 싶지만, 그럴 용기가 나지 않는다.

그리고 또 브래드가, 여기서 기다리라고 했던 말을 떠올린다.

그것도 아주 잠시만.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저택 안이 고요해진다.

그리고 이내 담 넘어 한 사람의 팔이 보이고, 곧장 폴짝 내려오는 한 남자.

머리부터 발끝까지 붉게 물들어 누구인지 알아볼 수가 없다.

천천히 차로 다가오는 그 사람.

“아아.”

가까이서 보니, 브래드였다.

브래드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피 칠갑을 한 채 차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뒤로는 저택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한다.

“오케이, 컷!”

크게 외치는 정우현.

“좋아요, 아주 강렬한 씬이 나왔습니다!”

“하하하하하.”

“좋았어!”

이에 브래드는 물론 스태프들도 환호성을 질렀다.

“우현아.”

한편 할리우드 촬영장에서 정우현을 한국어 이름으로 부르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김도진이었다.

김도진이 주연으로 열연한 <격분>에 브래드 퍼트가 출연했듯, 브래드가 주인공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는 <바이 더 베테랑>에도 김도진이 출연을 했다.

물론 모두 정우현의 캐스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예, 삼촌!”

“대박이다.”

이번 영화에서 단 한 씬만 출연했기에 촬영장의 분위기를 알 수 없었던 김도진이, 종반 씬을 찍는 모습을 살펴보며 말을 이었다.

“이건 진짜 대박이야. 시나리오가 영어로 쓰여 있어 잘 몰랐지만, 직접 카메라 돌아가는 거 보니, 후….”

순간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려는 듯 심호흡까지 했다.

“안 봐도 비디오다, 우현아.”

그러고서 그는 주먹을 쥔 채 엄지손가락을 펼쳐 보였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정우현이 환히 웃으며 답했다.

“저도 영화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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