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1년여 만에 다시 청와대에 가게 된 정우현.
무려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게 됐다.
“참….”
대통령이 훈장을 정우현의 가슴에 하나 달고 목에도 하나 걸어 주며 말을 이었다.
“…위대한 일을 해냈습니다, 우현 군!”
“감사합니다!”
정우현이 힘차게 대답했다.
그가 받은 훈장은 국민훈장 중 모란장이었다.
즉 현재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영예로운 훈장이었다.
법률상 최고의 훈장인 무궁화대훈장은 국가 원수 및 배우자에게, 건국훈장은 말 그대로 건국에 공로가 있는 순국 선열 및 독립유공자 등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그 다음이 바로 정우현이 받은 국민훈장인데, 정우현은 아직 나이가 어려 그중에서도 2등급인 모란장을 받게 됐다. 1등급인 무궁화장은 사회 원로에게 주는 훈장이기 때문이다.
사실 정우현의 훈장 수여에 관해 정부에서는 조금 이견이 있었다.
훈장을 주는 것 자체는 일찌감치 이론의 여지가 없었으나, 어떤 훈장을 줘야 하는지 의견이 나뉘었다.
왜냐하면 이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의 일은, 전시 또는 이에 준하는 비상사태였기에, 이에 따른 훈장도 무공훈장이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군인이나 하다못해 공무원도 아닌 민간인이므로 무공훈장이 아닌 국민훈장을 줘야 한다는 반론이 곧장 제시됐고, 결국 국민훈장으로 결정됐다.
“몸은 어때요?”
훈장을 받는 정우현을 향해 카메라의 플래시가 마구 터지는 가운데 대통령이 물었다.
“…좋습니다!”
“다행이군요!”
청와대로부터 훈장 수여 소식을 들은 정우현은, 물론 기뻤다.
한데 이 기쁨은 단순히 훈장을 받은 것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제 생활이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고, 행복한 일상을 되찾았다는 것에서 비롯된 기쁨이었다.
즉 대통령에게 받은 훈장은, 친구들과 함께 간 놀이 공원과 동물원처럼 평화롭고 즐거운 현실로의 복귀를 알리는 것과 같았다.
“우현 군 덕분에 대한민국의 위상이 한 층 더 높아졌습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다 우현 군을 극찬하고 있어요!”
“감사합니다!”
하고서 식순에 따라 대통령과 나란히 선 채 사진을 찍었다.
한데 그때 대통령이 옆에서 정우현만 들을 수 있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현 군, 그렇지만 다음엔 그러지 말아요.”
“…예?”
정우현이 대통령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대통령이 계속 정면을 바라본 채 말을 이었다.
“앞에 보시고요, 앞에.”
“아, 예.”
“제 얘기는 끝까지 남을 필요가 있었냐는 말입니다. 우현 군이 우리 한국 영재 학교 학생과 선생을 밖으로 내보냈을 때, 그때 함께 나왔어야 했다는 말이죠.”
“….”
“저는 대한민국 대통령입니다. 그래서 무엇보다 대한민국 국민의 안전이 가장 중요하죠. 그래요, 우현 군이 다른 나라 사람들을, 그것도 수십 명이나 구한 일은 무척이나 놀라운 일이에요. 솔직히 저는 처음에 믿기지 않았답니다.”
하고서 사진 촬영이 아예 끝나자, 이제는 대통령이 아예 정우현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한데 그러다가 우현 군이 다치기라도 했다면, 대통령인 저는 물론 우리 대한민국에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러면서 대통령이 정우현을 불렀다.
“우현 군.”
“…네.”
“우현 군은 훗날 대한민국 최고의 인재로 발돋움할 사람입니다. 아니, 벌써 그런지도 모르겠군요, 하여간.”
하고서 그가 정우현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제 말을, 좀 더 생각해 보세요. 어쨌거나, 감사합니다.”
대통령의 말에 정우현이 자신의 상체에 달려 있는 훈장을 보며 답했다.
“저도 감사합니다.”
한데 대통령이 다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우현 군에게 앞으로 오래오래 감사하고 싶어요.”
하고 정우현에게 가까이 가 재차 작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야 지금은 대통령이지만, 조만간 퇴임하면, 그저 늙은 사람일 뿐입니다. 뭐, 사람들이 전직 대통령이라느니 국가 원로라느니 추켜세우겠지만, 어쨌든 죽음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한낱 늙은이라는 말입니다.”
사뭇 친근하게 말을 잇는 대통령에게, 정우현도 모처럼 다정하게 답했다.
“에이, 아닙니다!”
“하하하, 맞아요, 맞아. 세월은, 아무도 피할 수 없죠. 어쨌거나, 곧 늙은이가 될 사람으로서 부탁합니다. 제 어린 손자를 오래오래 보고 싶듯, 우현 군이 성장하는 모습을, 그것도 무척이나 위대하게 성장하는 모습을, 오래오래 보고 싶다는 겁니다. 이것이 대통령이자 곧 늙은이로 남을 사람으로서, 우현 군에게 하고 싶은 단 하나의 공적이면서도 사적인 부탁입니다.”
“….”
“우현 군은 저보다 훨씬 똑똑하니, 무슨 말인지 알 겁니다. 그렇지요?”
“…예, 알겠습니다.”
하고서 정우현이 예의를 다해 답했다.
“대통령님의 말씀 새겨듣겠습니다.”
이로써 훈장 수여식이 거의 다 진행됐다.
한데 대통령이 이번 일과 관련해 정우현에게 끝까지 밝히지 않은 게 하나 있었다.
모스크바 인질극을 거의 홀로 해결한 한국인 정우현의 활약으로, 러시아는 대한민국 상대 수출 품목인 원자재, 즉 원유와 나프타 그리고 천연가스 등을 소폭 할인해줬다.
소폭 할인이라고는 하지만 국가 대 국가 무역 규모는 워낙 커 단 1%만 할인해도, 한국으로선 수백억 원의 이득이었다.
단 러시아는 타국 무역과의 형평성을 위해 단 한 번의 할인에 그쳤고, 그것도 비밀리에 부쳤다.
그래서 정부는, 언론은 물론 이 같은 국가적 이득을 이끌어 낸 정우현에게도 해당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하하하. 좋습니다, 좋아요.”
대통령이 보물과 다를 바 없는 정우현을 지그시 미소 지으며 바라보는 가운데, 카메라 플래시가 마지막으로 한 번 또 반짝했다.
* * *
한편 대통령에게 훈장을 받고 찍은 사진이 곧 인터넷 기사로 게재됐다.
댓글창은 물론 몹시 뜨거웠다.
-다행히 웃고 있네요. 우리 우현이, 건강하게만 해 달라고, 대전 사는 50대 이모가 매일매일 새벽에 기도했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
-형 33세, 가리봉동 강철 주먹이다. 다음부터 우현이 건드는 애들은 테러리스트고 뭐고 어금니 세 개 뽑고 시작한다.
-아 ㅜㅜ. 우현아, 이제 꽃길만 걷자. 꽃길, 비단길, 황금길, 다이아몬드길!
-솔까 대통은 관심 없고 훈장도 저게 뭐임. 우현이가 최고의 보물인데. 파이팅.
-정부는 다음부터 우현이 외국 보낼 땐 군 부대 하나 같이 파견 보내라.
물론 해외 언론도 그 일 이후 줄곧, 정우현을 칭송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심지어 그들은 국내 언론 이상으로 열광했는데, 해당 사건이 무려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일어났기 때문이다.
거기에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이번 사건을 단 한 명의 사상자도 없이 해결한 사람이 어디 정치인이나 군인 혹은 전문 협상가도 아닌 소년이라는 것에서부터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그 소년은, 다름 아닌 세계적 배우이자 위대한 수학자 정우현이었다. 이것만으로 세상 모든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하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매주 2천만 명이 구독하는 세계 최고의 주간지 월드 타임이 특집 섹션으로 정우현을 다루기까지 했다. 월드 타임 표지에 정우현의 얼굴이 실린 것이다.
표지 제목은 ‘Incredible Negotiator’, 즉 놀라운 협상가였다. 정우현의 영화 <인크레더블 킹 보이>를 따와 붙인 것이다.
사실 월드 타임지는 모스크바에서의 사건 이후 인터뷰를 하고자 줄기차게 정우현에게 연락을 취했다.
하지만 정우현은 한사코 거절했다. 자신이 그 사건을 해결했다고 해서, 마치 무용담을 얘기하듯 자랑스럽게 떠들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영영 아픔으로 남을 수 있는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월드 타임지는 결국 정우현을 표지로 하고서, 인터뷰 대신 인간 정우현을 조명하는 기사를 게재했다.
먼저 모스크바 인질극 당시 인질이었던 한 러시아인의 증언을 실어 정우현의 용감한 언행을 생생하게 알리고 이에 관해 이렇게 언급했다.
‘Robert, who worked for the FBI as a professional negotiator for decades, also said that Woohyun Jung's persuasion skills were surprising. (FBI에서 십수 년을 전문 협상가로 일한 로버트도 정우현의 설득술이 놀랍다고 했다.)’
하고 잡지는 정우현의 설득 과정을 상세하게 언급하며 글을 이었다.
‘In particular, he said that the fact that he moved the hearts of terrorists by singing was impressive enough to be studied in earnest. That's why he's clever and brave, but he's also a genius in many ways. (특히 그가 노래를 불러 테러리스트들의 마음을 움직인 사실은 본격적으로 연구되어야 할 정도로 인상적이라고 밝혔다. 그만큼 그는 영리하고 용감하면서도, 다양한 의미로 천재적이다.)’
그러면서 잡지는 정우현의 공식적인 이력을 현재부터 역순으로 해서 간략히 소개했다.
푸앵카레 추측을 입증하는 논문을 발표해 전 세계의 내로라하는 수학자들이 현재 검증에 매달리고 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단 두 편의 영화로 세계적 배우가 됐음을 강조한 것이다.
그러고는 마지막엔 이렇게 덧붙였다.
‘협상가, 수학자, 그리고 배우. 하나하나 이 위대한 업적들을, 모두 한 사람이 이뤘다는 것에서 사람들은 정우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애를 먹고 있다. 하지만 현재로서, 이것 하나는 확실하다. 그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소년이라는 것. 그리고 어떤 이들은 벌써부터, 이 소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성장하리라 전망하는 가운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되기를 몹시도 열망하고 있다.’
* * *
이번 사건과 관련해 가장 반응이 극적인 사람들은 사실 따로 있었다.
바로 정우현의 팬클럽 우현수호단이었다.
그들은, 우선 분노했다.
물론 당연히 예상할 수 없는 사고였기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건 애초 없었다. 오히려 정우현이 학교에서 단체로 여행을 간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그를 응원했을 뿐이었다. 즐겁게 잘 다녀오라며.
한데 믿지 못할 일이 일어나 버렸다.
그래서 그들은 절망했다. 말 그대로 정우현을 수호하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빠졌다.
물론 정우현이 무사히 귀국한 것을 넘어 사건을 완벽히 해결하며 영웅으로 거듭난 사실에는 뜨겁게 열광했지만, 그것만으로는 한참 부족했다.
어쨌든 정우현을 수호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곧 사건과 관련해 후속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그렇게 팬클럽은 수 주를 온라인 및 오프라인 모임으로 논의한 끝에, 드디어 결과물을 내놓았다.
우현수호단 단장 윤수정을 원고 대표, 즉 선정 당사자로 해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그리고 피고는 놀랍게도, 러시아 정부였다. 러시아 정부가 안전 관리에 소홀해 정우현을 위험에 빠트렸으니 이에 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내 해당 소송은 취소됐다.
정우현이 뒤늦게 그 소식을 듣고 엄규환을 통해 윤수정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단장님.”
“…네!”
물론 윤수정은 오랜만에, 그것도 모스크바에서의 일 이후 처음으로 정우현과 직접 전화 통화를 하는 것이기에 무척이나 흥분했다.
“그, 소송이요.”
“아, 러시아 정부요? 걱정 마세요! 증거도 확실하게 다 수집해 놨고요! 결정적으로 그때 인질이었던 러시아 현지인도 한 명 섭외해 놨어요! 당사자 적격이 좀 문제가 될 수 있는데, 우리가 우현 군의 공식적인 팬클럽이니까 가능할….”
하는데 정우현이 윤수정의 말을 도중에 끊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요….”
“…네?”
윤수정이 뒤늦게 정우현의 목소리에서 남다른 분위기를 느끼고 은근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 우현 군. 괜찮아요, 우현 군 하나도 신경 안 쓰이게 할 거니까, 우리만 믿고 편안히….”
“단장님.”
하고 정우현은 또다시 윤수정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다.
“…네?”
“고맙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만, 저는 이런 일로 개인이든 단체든 누군가와 소송을 하고 싶지 않습니다. 러시아 정부도 어쨌든 원해서 그런 일을 당한 것도 아니고요. 결국엔 잘 해결된 일을 뒤늦게 문제시하며 잡음을 만들고 싶지도 않아요, 하여간 그러니까, 이번 소송은 취하해 주시길 바랍니다.”
“아….”
“부디, 저를 생각해 주신다면요.”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윤수정이 소송을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그들 자신이 아니라 정우현의 행복을 위해 결성된 팬클럽 우현수호단.
정우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그의 뜻을 방해하지 않는다.
이것이 일찍이 그들이 팬클럽을 결성하며 서로가 서로에게 언약한 내용이기도 하니까.
이에 윤수정은 곧장 소송을 취소하고, 또 다른 계획도 포기했다. 바로, 행여 러시아 정부로부터 승소하지 못하면, 제삼국으로 망명한 체첸 반군을 어떻게든 찾아내 그들을 상대로 또 소송을 제기하려 했던 것이다.
비록 국제 소송에는 아직 경험이 없지만, 현직 변호사로서 유능한 법조인 선배들이 있는 윤수정이었다. 그래서 독하게 마음을 먹고 앞장서 나서려 했었는데, 정우현의 만류로 모두 백지화됐다.
그렇게 일이 마무리되고 어느 날.
윤수정의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단장님!”
정우현이었다. 정우현이 윤수정에게 직접 연락을 한 것이다.
“…아, 우현 군!”
물론 윤수정은 몹시 기뻤다. 경호원인 엄규환도 아니고, 정우현으로부터 직통으로 전화가 온 건 처음이니까.
“반가워요!”
“하하, 저도 반갑습니다.”
“무슨 일이세요?”
하고 윤수정이 곧장 물었다.
“아, 감사의 말씀을 전하려고 전화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우현은 어쨌든 자신을 위해 발 벗고 나서려 했던 팬클럽과 회장 윤수정에게 참 고맙고, 특히 이번에 자신의 뜻대로 소송을 취소한 것에 관해 무척이나 기쁘다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은 이렇게 든든한 팬들이 있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도 말했다.
“아아, 아니에요! 우현 군! 우리는 우현 군이 무사히 한국에 돌아온 것만으로 얼마나 기쁜데요! 거기에 또, 우현 군이 이번에 러시아에서 해낸 일은요? 정말, 놀랍다는 말로도 부족하죠! 그야말로 왜 우리가 일찌감치 정우현 군의 팬이 됐는지 여실히 보여 주는 일 아니겠어요?”
하고 그녀는 끊임없이 정우현을 극찬하며 미주알고주알 말을 이었다.
물론 무려 정우현과의 통화로 윤수정 본인이 가장 신났지만, 정우현 또한 직접적으로 자신을 칭찬하는 말을 한껏 들으니 기분이 좋아 밝은 목소리로 답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