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5.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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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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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5.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3)
2022.08.02.
이국적으로 생긴 문형일의 이목구비가 씨익 하고 미소를 그렸다. 방매는 그런 문형일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애초에 말린다고 해서 들어먹을 인간이 아니다.
거기다 만우의 명이라면 마치 신이 내린 것처럼 떠받드니 더더욱 방매에게는 문형일의 행동을 교정할 수 있는 자유가 없었다.
“또 바깥에 나가 계실 거죠?”
“예, 자가.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부르시면 됩니다.”
문형일은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방매는 그렇게 객잔 밖으로 나가는 문형일을 보면서 그 뒤통수에 대고 소리쳤다.
“올 때 당과!”
“예, 옹주자가.”
문형일은 피식 웃었다. 올 때마다 당과를 사오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단 것을 제법 좋아하는 듯했다. 나중에 이걸 기억해 뒀다가 만우에게 말해 줘야겠다고 생각한 문형일은 위사 노릇을 하고 있는 황보세가의 무인들을 슥 쳐다봤다.
움찔.
문형일과 마익후는 무림에서도 이미 유명세로는 원래부터 만우에 뒤지지 않았다. 중원에서 찾아보기 힘든 색목인들이었기 때문이다.
천축국에서 태어난 문형일은 그런 황보세가의 무인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처음 보는 얼굴들인데. 이제는 더 시비 안 거네? 소문이 퍼졌나 봐?”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소.”
말을 돌리는 황보세가의 무인을 보면서 픽 하고 웃었다.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문형일을 볼 때마다 알게 모르게 시비를 걸어 왔었다.
생김새가 한족이 아니기 때문이었는데 그럴 때마다 문형일은 한숨을 내쉬면서 팔을 걷어붙여야만 했다.
괴검(怪劍) 문형일.
검주 만우를 따르는 괴검과 괴권 중 초절정 고수로 곡도의 달인으로 알려진 문형일을 알아보지 못하고 감히 시비나 건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그에게 철저한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놈의 오대세가라는 자존심이 무엇인지 맨날 그렇게 깨지고 돌아가면 그 다음 날에는 새로운 얼굴이 나와서는 또 다시 시비를 걸었다.
그리고는 깨지고, 또 깨지고.
그러자 어느 순간에서부턴가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문형일의 얼굴만 보면 슬슬 피하기 시작했다. 자신들로는 감히 상대가 되지 않는 고수란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천하제일검 소리를 들음에도 동이족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시했던 만우에게 주제를 모르고 까불다가 그 꼴이 되었건만, 어떻게 된 것이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뇌까지 근육으로 돼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었던 문형일이다.
하지만 최소한의 학습능력이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어쨌거나 객잔 밖으로 나간 문형일은 딱히 볼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척.
대신 문형일은 객잔 밖에 선 금의위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섰다. 그러자 금의위들이 입을 다물고 문형일을 가만히 직시했다.
이렇게 금의위의 무사들과 문형일이 거리를 두고 서서 눈싸움을 한 지도 며칠이나 됐다. 항상 권비가 올 때마다 대동한 금의위 무사들 앞에 문형일이 시비를 거는 것처럼 버티고 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권비의 호위무사들도 쓸데없는 충돌을 일으키고 싶지는 않은 듯, 눈싸움이 실제 싸움으로 이뤄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대장님께서 지키라고 하셨으니 나도 지키는 거야.”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불만이 아예 쌓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금의위 무사들은 강호의 무뢰배 따위가 목을 뻣뻣하게 세우고 앞을 막아 선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런 그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문형일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이 황상의 후궁을 호위하기 위해 이곳에 왔듯, 나도 여기를 지켜야 하는 입장이거든.”
“놈.”
금의위 무사 중 하나가 목소리를 낮게 깔면서 으르렁거렸다.
“감히 출신도 미천한 강호의 무뢰배 따위가 감히 우리 금의위와 동등하다 말하려는가.”
“어? 이상하네?”
문형일이 발끈한 금의위 무사를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 출신도 미천한 강호의 무뢰배가 황상께 무림왕으로 임명이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난 그분의 직속수하이고.”
“…….”
“그러니까.”
문형일의 아미가 깊게 패였다. 그런 문형일에게는 짜증이 잔뜩 서려 있었다. 문형일이라고 해서 여기에 서서 그들이 돌아갈 때까지 눈을 부라리고 있는 것이 편한 일일 리 없었기 때문이다.
“눈 깔고 입 다물고 조용히 있어.”
만우는 황제로부터 무림왕이란 직위를 하사받았다.
그리고 문형일이 만우의 직속 수하라면 직위로만 봐도 금의위 따위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되는 상대다.
“아니면 한 판 뜰까?”
우우웅!!!
문형일의 전신에서 공력이 일어났다. 그러자 금의위 무사의 안색이 변했다. 금의위에는 알게 모르게 이미 소문이 다 퍼져 있었다.
북진무사와 남진무사의 패배.
특히 그중에서도 남진무사 순이 패배하여 요양하고 있는 이유가 무림왕 검주 만우 때문이란 소문이 금의위 안에서 돌고 있었다.
그런 무림왕의 수하가 고만고만한 실력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지금만 해도 당장 눈앞에서 공력을 끌어올린 문형일의 기세가 범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저벅.
금의위 무사는 한 발을 뒤로 물러섰다. 그가 받은 명령은 권비를 지키라는 것이지 저잣거리에서 난동을 피우라는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 이미 상부로부터 발우수리 객잔 앞에서는 경거망동을 하지 말 것임을 당부에 당부를 거듭하지 않았던가.
‘내가 약해서가 아니다.’
금의위 무사는 스스로 그렇게 합리화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것을 본 문형일도 공력을 가라앉히고는 히죽 웃어 보였다.
“잘 생각했어. 그러면…….”
문형일은 슥 금의위 무사를 보다가 가장 맨 끝에 선 금의위를 가리켰다.
“막내지? 가서 당과나 좀 사와. 우리 옹주 자가께서 자시고 싶다니까.”
“…….”
막내 금의위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당과를 사러 갔다. 문형일은 수고를 하나 덜었다는 것에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때 객잔 안에서 방매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문 아저씨! 문 아저씨!”
문형일의 고개가 팩 소리를 내면서 돌아갔다. 그러자 방매가 문을 벌컥 열고 뛰쳐나와서는 문형일에게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했다.
“무슨 일이십니까 옹주 자가.”
“사람이 찾아왔어요. 사람이.”
“사람이요?”
문형일은 고개를 갸웃했다. 발우수리 객잔이 기존 황룡객잔의 지침을 버리고 조선의 객주처럼 오가는 사람들이 자유롭게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뀌자 찾아오는 사람들이 대폭 늘어났다.
그리고 객잔은 기본적으로 사람이 찾아와야 하는 곳이다. 그러니 사람이 찾아왔다고 하여 호들갑을 떨 일은 없었다.
누가 찾아왔는지를 방매가 꺼내기 전까지는 말이다.
“마교에서요!”
“마교?”
문형일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문형일의 등줄기에 식은땀이 쏴아 하고 솟아났다. 만우가 직접 지켜 달라 부탁한 방매가 마교인을 만났는데도 문형일은 전혀 눈치도 채지 못했다.
‘고수!’
그렇다는 뜻은 상대가 문형일이 감지하지도 못 할 정도의 고수라는 소리다.
“그런데 의원이라고 하시던데…….”
“의원이라면……?”
문형일의 눈이 다시 한번 더 커졌다. 마교에 소속된 의원이라면 단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는 마교의 교주보다도 더 유명한 사람일지 모른다.
생사마의(生死魔醫) 국연.
그는 마교 소속의 마교인이면서도 마기를 익히지 않고 도가(道家) 계열의 정순한 내공 심법을 익힌 의원이었다.
허나 그가 마교에 투신한 이유는 정파의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
생사마의 국연과 비교되는 청수신의(靑手神醫) 이극.
그 이극이 가주로 있는 활인문(活人門)에서 생사마의를 무림공적으로 추포해야 한다면서 탄원서를 무림맹에 돌렸기 때문이다.
본래 국연과 이극은 둘도 없는 친우였으나 둘은 걸어가는 길이 완전히 달랐다.
국연은 인간의 생(生)과 사(死)에 관심이 많아, 정도(正道)를 표방하는 정파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기행들을 많이 하고 다녔다.
죽은 시체를 해부한다든가, 기상천외한 독을 조합하여 인체의 저항성을 시험해 본다든가 하는 식의 인체 실험을 많이 진행한 것이다.
반면 청수신의는 정파에서 딱 좋아할 수밖에 없는 길을 걸었다.
병자를 위한 희생의 길.
청수신의의 활인문에는 중원에 내로라하는 많은 의원들이 도제 관계로 지식을 가르쳐 새로운 의원들을 계속해서 탄생시켰다.
개중에는 황실에 들어가 어의(御醫)가 된 자들도 여럿 있었으니 무림맹을 넘어 명나라에서 활인문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런 활인문에서 청수신의 이극의 유일한 경쟁자가 될 수 있는 생사마의 국연을 눈엣가시처럼 여긴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게다가 생사마의 국연이 하는 짓을 보고 있으면 꼭 사파나 마교의 사특한 무리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기행을 벌이고는 했기에 명분도 충분했다.
그래서 생사마의 국연은 위험을 감지하고 곧바로 마교에 투신했다.
그래서 얻은 것이 바로 생사마의(生死魔醫)라는 별호였고.
허나 재밌는 것은 그를 생사마의로 부르고 마교에 투신하게 한 정파인들 가운데서도 상당수가 그에게 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다.
“생사마의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문형일의 안색이 변했다. 문형일은 곧바로 품 안에서 적(笛)을 꺼내 들어서는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불었다.
삐이이익-!!
연경은 정파의 중심지나 다름없다. 바로 연경에 황보세가가 있었고 하북팽가 역시 연경에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생사마의가 연경에 모습을 드러냈다?
“옹주 자가께서는 안에 들어가 계셔야 합니다. 거기 금의위들!!”
문형일은 금의위들에게 손짓을 했다. 금의위들이 고개를 삐딱하게 돌려서는 문형일을 쳐다봤다. 그들의 얼굴에는 아니꼽다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표정일랑 넣어 두고 일해야지. 응?”
“……일?”
문형일이 피리를 꺼내 부는 것까지 본 금의위들이다. 만약 이 객잔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권비를 지켜야 하는 금의위들도 당연히 나서야 한다.
“일단 그 무거운 엉덩이들부터 움직이고 말하자고. 빨리!”
문형일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금의위들을 닦달한 후 안으로 뛰어 들어가서는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무림인들에게는 별 소용이 없는 문이기는 하나 그래도 시각적인 효과는 있었다.
‘뭐 얼마나 신경을 쓰겠냐만은.’
무림공적으로 선포된 생사마의를 잡기 위해 황보세가와 하북팽가에서 무인들을 내보낸다면 이런 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을 것이다.
‘대장님의 이름이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 수밖에.’
문형일은 문을 쾅 닫고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들에게 손으로 손나팔을 만들어 공력을 담아 크게 소리쳤다.
“자, 자. 몸 성히 다시 상행을 나가야 되시는 분들은 뒷문으로 나가시고!”
만우는 믿고 의지할 구석을 하나 남겨 놓고 가기는 했다.
호선.
500년 먹은 백호이자 선주를 찾아 화경을 뛰어넘은 경지에 올라선 호선을 만약을 대비하여 놓고 갔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 객잔에 호선이 없었고 부를 만한 수단도 없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호선은 축지법을 자유자재로 쓰는 반선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마침 간장과 마익후는 대장간에 가 있었기 때문에 다행히 간장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문형일의 말에 제 몸이 가장 중요한 보부상들과 몇몇 여객들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뒷문으로 빠져나갔다.
그렇게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자 객잔 안에 남은 사람은 방매와 권비, 그리고 환관들과 초로의 노인뿐이었다.
생사마의 국연.
잿빛 수염을 대충 아무렇게나 묶은 채 얼굴에 주름이 잔뜩 진 국연이 마교의 상징인 흑포를 걸친 채 뒷짐을 지고 서 있는 모습이 문형일의 눈에 들어왔다.
“괴검인가?”
생사마의 국연은 한 눈에 문형일을 알아보았다. 문형일은 그런 마의를 보면서 인상을 썼다. 한 눈에 자신을 알아봤다는 것은 이곳이 검주의 영역임을 알고 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의께서 어쩐 일로 남의 영업장에 와서 방해를 하십니까. 그것도 대장님의 영업장을.”
“쓰읍. 본좌도 문 소협이 이리 재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지. 보아하니 이런 뒤치다꺼리를 하는 것이 능숙하구만?”
문형일은 뒤치다꺼리라고 한 마의의 말에 픽 하고 웃었다. 검주와 함께 다니다 보면 항상 뒤처리를 하는 사람은 문형일이었기 때문이다.
“마의보다 더 난장판을 피우는 분이 제 대장이신지라.”
“걱정 마시게. 의원이 되어 남에게 피해나 끼치고자 이곳에 온 것은 아니니.”
“황보와 팽가는 그리 생각하지 않을 겁니다.”
일방적인 한쪽의 의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양측의 의중이었다. 그리고 팽가와 황보세가라면 마의가 원하는 대로만 일이 흘러가지 않을 수도 있었다.
“쯧. 활인문 놈들의 위세가 대단하구만.”
“무림인이 되어 활인문의 도움 한 번 받지 않은 이가 있더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