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4.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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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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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4.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들 (2)
2022.07.30.
“허면 관찰자는 유지하겠나이다.”
“그러게. 최소한도로만. 어차피 그리 수가 많지 않아도 무림왕이 가는 곳이라면 큰 소란이 일어날 터이니 걱정하지 말고.‘
좋게 말해 관찰자지 사실은 감시자다. 하지만 천자는 그마저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라 명했다. 어차피 감시자가 적어도 검주 주변으로는 늘 폭풍이 부니, 바람이 거세게 부는 곳만 쫓아다니면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은 현인비의 일이온데.”
“현인비는 왜?”
본래 연경 안이라면 동창이 아니라 대내행창의 환관들이 보고를 받아 사례태감이 직접 보고를 올려야 할 일이다. 그에 동창제독은 뒤통수를 긁적였다.
“그것이 폐하께서 사례태감을 객잔으로 보내시는 바람에.”
“아. 그리했나?”
천자는 수염을 쓰다듬었다. 사례태감이라면 모든 태감을 총괄하는 대장 환관이다. 그런 사례태감이 요새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자신이 그리 조치를 취한 모양이었다.
“현인비께서 자주 객잔으로 가신다는 소리를 들으시고 불편해하지 않으시도록 조치를 취하셨나이다.”
“그렇지. 그랬어.”
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이내 천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 현인비가 왜?”
“그…… 요새 들어 너무 외출이 잦으셔서 궁인들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옵니다.”
“너무 잦다?”
“아침 일찍 나가셔서 늦게 돌아오실 뿐더러, 어찌 오고 나가시는지도 전혀 기척이 없이 사라지고 나타나시고를 반복하오니 걱정이.”
그 말을 하면서 동창제독은 황제의 눈치를 연신 살폈다. 동창제독이 하는 말인즉슨 현인비의 행적을 자미원 내의 그 누구도 제대로 포착하는 이가 없어 걱정이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동창이나 다른 궁인들이 현인비를 모시는 데 있어 부족한 능력을 실토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아.”
하지만 천자는 의외로 진노하지 않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일갈이라도 터져 나올까 우려하던 동창제독의 호흡이 편안해졌다.
“그 역시도 걱정할 필요 없다.”
“…….”
“짐이 허락한 것이니. 즐기고 싶어 하는 것을 즐기게 하라. 그것이 짐이 그녀에게 줄 수 있는 최선이니.”
천자는 그리 대답하고는 다시 시선을 떨궜다. 그것이 곧 알현의 종료임을 깨달은 동창제독은 뒷걸음질로 대전을 빠져나갔다.
“발우수리 객잔이라.”
그렇게 동창제독이 사라진 뒤에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천자는 격자 문양의 창호를 보면서 현인비, 권비를 떠올렸다.
“짐의 여인이 객잔의 여급이라니. 그 노인네들이 알면 난리가 나겠군.”
허나 그리 말을 하는 천자의 표정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그 노인네들보다 현인비의 밝은 얼굴이 천자에게는 더 중요했다.
*****
“소면과 만두 하나!!”
“만두 하나요!”
자미원에서 입던 질 좋은 비단 옷을 벗고 평범한 무명천으로 만든 옷을 입은 환관 점소이들이 마치 땅 위를 미끄러지듯 복잡한 객잔 내부를 내달렸다.
주문이 들어오면 주방을 향해 큰 소리를 쳤는데 환관들인지라 변성기를 벗지 못한 가는 목소리가 나와, 그럴 때마다 짓궂은 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자. 세 문 되겠습니다요.”
“오, 이렇게 싸다니.”
며칠간의 내부 수리를 거쳐 영업 재개를 시작한 발우수리 객잔은 황룡객잔이던 시절의 모습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객잔 내에서 파는 음식들은 대부분이 소면과 만두 종류였다. 오가는 이들이 많기에 다들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요깃거리를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부는 황룡객잔의 그것들을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쓰고 있었으니, 방문한 보부상들이나 손님들은 이 저렴한 가격에 이 정도로 높은 질의 시설을 쓸 수 있다는 것에 만족했다.
“식자재!!!”
“비켜 주세요!”
“아니, 그거 말고 이거요.”
“거참.”
발우수리 객잔은 그 덕분에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성업 중이었다. 연경은 명나라에서도 손꼽히는 대도시인지라 안 그래도 오가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발우수리 객잔은 연경대로의 눈에 잘 띄는 높은 고층 건물에 자리하고 있었으니 위치가 좋아 사람들로 하여금 절로 향하게끔 만들었다.
“아니 아저씨. 이런 조그마한 사향이 오십 냥이라고요?”
“그럼! 이게 어디서 구한 사향이냐면…….”
“에이. 오십은 무슨. 서른다섯 냥으로 하세요.”
“뭣!”
보부상이 발끈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자신 앞에서 흥정을 한 조막만 한 여인을 향해 삿대질을 하면서 목에 핏줄을 세웠다.
“이게 무슨 날강도 같은 짓이야! 오십 냥짜리를 서른다섯 냥으로 깎으면 뭘 먹고 살라고!”
“어머. 이 아저씨 좀 봐. 그 사향을 팔러 연 댈 곳도 없으면서 왜 이러실까. 그러니까 여기 와서 흥정하고 있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여인은 보부상이 코앞에서 삿대질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었음에도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래도 상도란 게 있지 말이야! 그렇게 후려…….”
“장사치한데 상도는 무슨. 삼십 냥.”
여인은 가차 없이 다섯 냥을 더 깎았다. 은병 다섯 개가 세 개로 줄어든 것이다. 보부상의 이마에 핏줄이 솟아올랐다.
“안 팔아!”
“아 그럼 나가시던지요. 나가시면 되지 왜 여기서 자릴 차지하고 있어요.”
여인은 나가는 문을 손으로 가리켰다. 보부상은 그런 여인의 태도에 오기가 솟아올라서는 얼굴을 벌겋게 물들였다.
“내가 나가던 말건 네가 뭔 상관이야! 내 물건 내가 안 팔고 내 돈 낸 이 자리에서 더 있겠다는데!”
“원래라면 그렇죠. 그런데 아저씨.”
그런데 그 순간 여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랐다.
“그게 장물이라면 말은 달라지지.”
“무슨 개 같은 소리야? 어? 너 죽고 싶어?”
보부상이 허리춤에서 거무튀튀한 칼을 꺼내들었다. 사람을 찌르는 용도로 만들어진 소검이었다. 칼끝이 눈앞에서 어른거렸지만 여인은 눈 한 번 깜박하지 않았다.
아니, 그 여인뿐만이 아니다.
여인 주변에 있는 다른 보부상들이나 손님들도 큰 소리에 잠깐 돌아만 봤을 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자 오히려 검을 뽑아든 보부상들이 당황했다.
“뭐, 뭐야 너희들?”
어느새 여인의 뒤에 나타나 그를 향해 눈을 부라리고 있는 덩치 큰 장정들이 보부상의 눈에 뒤늦게 띈 것이다.
그중 한 장정이 입고 있는 무복에 황보(皇甫)라 쓰인 것을 뒤늦게 본 보부상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보부상은 사실 진짜 보부상이 아니라 보부상으로 위장하고 연경에 들어와 노획물을 팔려고 한 도적이었다.
“너야말로 소식이 많이 늦네.”
여인, 방매는 팔짱을 딱 낀 채 코웃음을 팽 하고 쳤다. 맨날 쓰고 다니던 패랭이가 아닌 비녀를 꽂은 채 머리를 틀어 올린 방매에게서는 여인의 태가 물씬 흘러넘치는 듯했다.
“어딜 굴러먹다 온 개뼉다귀 같은 게 사기를 치려 들어?”
하지만 겉모습의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해서 사람 자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방매는 여전히 한양제일매분구일 때만큼이나 억척스러웠고 입이 걸었다.
“너…… 너…….”
“황보 무사님.”
“예, 객주님.”
“개, 객주?”
황보세가의 무인이 지키는 객잔이라니. 보부상은 이 객잔이 황보세가에서 웬 조선에서 온 장사치의 손에 들어갔다는 것만 들었었다.
그런데 이 객잔을 아직도 황보세가에서 지키고 있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부탁드릴게요.”
“예, 객주.”
연경에서 황보세가에 감히 간 크게 덤벼들 도적은 없다. 도적은 결국 우악스런 황보세가의 손에 붙잡힌 채 노획물들을 남겨 놓고는 질질 끌려 나갔다.
“환관 아저씨.”
“예, 객주.”
황보세가의 무인들과 점소이 노릇을 하고 있는 환관들은 방매에게 깍듯하기 그지없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황제가 친히 황명을 내린 곳이 바로 이 발우수리 객잔이기 때문이다.
무림왕 검주 만우.
그를 위해 황제가 신경을 쓰고 있는 곳이라는 소문이 이미 파다하게 퍼져 있었다. 그 때문에 일부러 이곳까지 선물을 싸들고 찾아오는 사람들까지 있었다.
“이 장물들. 주인 찾아서 돌려주세요. 주인 못 찾으면 나눠들 가지시구요.”
“감사합니다, 객주.”
환관은 허리를 꾸벅 숙였다. 연경은 황제가 자미원을 세우고 황궁 건설에 착수하면서 그 도시의 규모가 급격하게 팽창했다.
그러자 필연적으로 남경보다 연경이 더 커질 것임을 직감한 온갖 장사치들과 부자들이 몰리면서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유통과 상업 역시 커졌다.
그에 발우수리 객잔은 연경 한복판에 자리한 거대 객주로 보부상들이나 상인들의 쉼터이자 물물교환터가 되기도 했고, 정보를 교류하는 장이 되기도 했기 때문에 언제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러다 보니 지금처럼 파리가 꼬였기에 방매는 그럴 때마다 얻는 부수입을 욕심내지 않고 거의 무료 봉사를 해 주고 있는 환관들과 황보세가의 무인들에게 다시 되돌려 주었다.
‘우리 사람이 아니니까.’
어릴 때부터 매분구가 되어 한양 곳곳을 쏘다니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 눈치를 키워 온 방매다. 그런 방매는 발우수리 객잔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환관들과 황보세가 무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최우선임을 깨달았다.
허나 그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가 시켜서, 가주가 시켜서 억지로 일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눈치챈 방매는 간단하게 그들의 마음을 돌렸다.
재물.
재물을 풀어 환관들과 무인들의 마음을 산 것이다.
한두 번 단기적으로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방매는 계속해서 베풀어 왔기 때문에 어느 순간부턴가는 그들도 객잔 일에 진심이 되어 갔다.
환관들이야 따로 녹봉을 받아도 쓸 일이 없는데 객잔에서 일하면서 돈 쓰는 재미가 무엇인지 깨달았고, 황보세가의 무인들은 직계가 아니라 방계들이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들어오는 수입이 생겨 본 것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으아아악!
어쨌거나 그렇게 끌려 나간 도적이 응징을 받는 소리가 울려 퍼졌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렇게 치안까지 확실하니 발우수리 객잔은 점점 더 소문이 나고 사람들이 많이 찾아올 수밖에 없었다.
중원의 그 어떠한 객잔을 가도 발우수리 객잔처럼 믿을 수 있는 오대세가의 무인이 지켜주는 곳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건을 팔러 다니는 상인들에게 있어서는 거부할 수 없는 큰 메리트다.
거기에 만우가 남기고 한 흔적은 환관과 무인들만이 아니었다.
“방매야!”
“또 왔어?”
“오늘은 뭐 할까?”
환관들이 일제히 새로운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향해 허리를 굽혔다. 그런 그들을 손짓 하나로 일으켜 세운 권비가 사뿐거리며 생글거리는 얼굴로 방매 앞에 섰다.
“뭐라고 안 해?”
“안 해. 나 원하는 대로 하라셔.”
“뭐.”
의외의 장소에서 만나게 된 권비와 방매이지만 권비에게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고 방매에게는 타지에서 만난 조선인이 신기하고 반가웠다.
그래서 친해지게 된 둘은 제법 궁합이 잘 맞았다.
아무래도 둘 다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전혀 예상치 못 하게 갑자기 신분상승을 경험해 본 경험 때문에 공감대 비슷한 감정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허나 자유로운 방매에 비해 권비는 그런 방매의 자유를 부러워했으니 자연스레 매일 방매를 찾아오게 되었다.
“이 사실을 아마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되면 뒤집어질걸?”
방매는 일하기 편한 옷으로 팔에 받쳐 든 권비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후궁이라고는 하나 정실과는 사별한 황제다. 그런 황제가 가장 총애하는 후궁이 권비인데 매일 객잔에서 일한다고 하는 것을 과연 누가 믿을까.
스윽.
“옹주자가.”
그때 문형일이 스윽 하고 객잔 내에 모습을 드러냈다. 항상 문형일은 이 시간 때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방매는 문형일을 반갑게 맞았다.
“왔어요, 문 아저씨?”
“예. 자가.”
“그놈의 자가자가. 안 할 순 없어요?”
“주모라고 불러드리리까?”
문형일이 히죽 웃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