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 대가리 나와 (1)2021.12.25.
“봐봐.”
감령이 씩 웃으면서 도를 어깨에 걸쳤다.
“앞으로는 상대방이 너희들이 생각하기에 이해 가지 않는 행동을 하면 누군지 한 번 물어 보란 말이야.”
중원무림의 끝자락에 있는 요녕의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자신을 알아보자 감령이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만우와 그 주변과 함께하면서 바닥까지 떨어졌던 자존감이 올라오는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좋단다. 산강아지.”
“이 미꾸라지가 아까부터!!!!”
필두가 옆에서 다 들릴 정도로 중얼거렸기 때문에 감령이 발끈했다. 하지만 앞에 자신을 보며 경악하고 있는 모용세가의 시선이 느껴졌기에 감령은 얼른 표정을 고쳤다.
“이래도 내가 무엄해 보이는가?”
“어울리지도 않는 말투 쓰고 있네, 진짜.”
“아오! 이 미꾸라지! 대부 들고 나와! 네놈부터 족쳐 주마!!!”
“누가 무서워할 줄 알고?”
필두가 벌떡 일어서자 모용청의 눈이 커졌다. 옥면산군과 저 정도로 티격태격 할 수 있다면, 사파에 그에 필적하는 단 한 명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역수교어 필두.”
“자, 장강수로채 대채주!”
산에 산적들의 왕인 녹림이 있다면, 강에는 수적들의 왕인 장강수로채가 있다! 팔검단의 무인은 사파, 그리고 사림곡에서도 손꼽히는 두 고수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에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질끈 모용청은 눈을 질끈 하고 감았다. 옥면산군과 역수교어라면 사파에서도 강하기로 손꼽히는 무인이었다. 완숙한 초절정에 들어 벽을 마주했다 알려진 극강의 고수들. 그 두 고수가 왜 저런 옷을 입고 호송단에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것 하나만은 확실했다.
‘나 하나로 끝낸다.’
모용청이 앞으로 나섰다. 그러자 경악하고 있던 무인들 중 하나가 다급히 모용청을 말렸다.
“옥면산군 선배에게 먼저 무례를 범하였으나, 선배께서도 가문을 욕되게 하셨으니 비무로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도련님!!!!”
“호오…….”
모용청이 포권을 하면서 말하자 감령이 재미있다는 듯 실실 웃었다. 팔검단 소속 무인들이 놀란 것은 덤이었다.
“욕한 놈 내보내. 왜 모용세가의 도련님이 나오시나?”
모용세가는 정파 무림의 외면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엄연히 말해 정파로 분류되는 곳이었다. 반면 감령은 녹림의 대채주다. 사파라는 뜻이다.
“정사대전을 벌이고 싶지 않으시거든 선배께서 손속에 인정을 두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모용청의 말은 스스로의 실력을 깎아내리는 말이었지만 동시에 상대를 띄워 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 예로 감령의 입꼬리가 절로 씰룩였다.
“그렇게 머리를 쓰시겠다?”
“모습을 감추셔서 금분세수를 하셨다 생각한 두 선배께서 이 자리에 있으니, 놀란 가슴에 저지른 일이니 너그러이 봐주셔도 됩니다.”
모용청은 말은 그리 했지만 눈에서는 호승심이 일렁이고 있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이룩한 높은 경지 때문에 강자와의 싸움에 목이 마른 표정이었다.
“정사대전이라. 크하하하. 좋지. 좋아.”
딸랑! 감령의 기세가 강해졌다. 그것을 느낀 모용청의 기세 역시 강해졌다. 필두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방매에게 말했다.
“옹주자가. 사람을 물려야 할 것 같습니다.”
“싸우는 거예요?”
“네. 무림인이니 이제 사소한 말은 뒤로 미뤄 두고 부딪쳐 가며 남은 말을 해야 하는 법이니까요.”
“말로 하면 되는데. 이상한 사람들이야 역시.”
방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저잣거리에서 나고 자라온 그녀에게 싸움은 일부러 걸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할 수 없을 때 하는 최후의 선택이었다. 가장 좋은 것은 싸움을 안 하는 것이었는데, 만우부터 시작해서 저 무림인이란 인간들은 싸움하는 것을 그리도 좋아했다.
“도련님.”
“걱정하지 마세요. 옥면산군이라 하여 쉽게 질 생각도 없을 뿐더러 옥면산군도 모용을 의식하여 손속을 과하게 쓸 수는 없을 것입니다.”
팔검단의 무인이 걱정 어린 얼굴로 모용청을 쳐다봤다. 모용청은 그런 시선을 받으면서 피식 웃었다.
“그러니 앞으로는 혀나 조심하십시오.”
“죄송합니다, 도련님.”
이 사태를 만든 무인이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모용청은 손사래를 쳐보이고서는 칠성이 박힌 검을 손에 쥐려다가 바지에 손바닥을 스윽 하고 닦았다.
“옥면산군…… 대채주인 그가 얼마나 강할지 솔직히 기대되고 떨립니다.”
약관을 갓 넘은 모용청이 드러내는 호승심에 팔검단의 무인들이 걱정스런 표정을 지으면서도 대견한 표정으로 흐뭇하게 걸어 나가는 모용청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단주님이 아시면 다 죽었다 우린 이제.”
물론 그 표정도 단주인 모용덕을 떠올리니 오래 유지할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나오라!!!”
“살살 해라. 모용이다 모용.”
감령이 신난 것 같아 보이자 필두가 이를 문 채로 복화술을 하는 것처럼 감령에게 말했다. 하지만 감령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빠져!”
“……그래. 뭐, 네가 실수하면 대장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그치?”
“…….”
우뚝 우둑거리면서 어깨를 풀고 있던 감령의 몸이 잠시 굳었다. 만우가 머릿속에 퍼뜩 떠오른 것이다. 모용청과 비무를 벌이다가 만약 감령이 모용청에게 부상을 입히거나, 최악의 경우에 죽이기라도 한다면? 물론 비무(批武)를 하다가 죽는 경우는 허다했다. 비무는 대련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 사정을 봐주지 않으며, 비무라는 말은 누군가를 계도하거나 지도할 때를 지칭하는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무림인이란 것은 언제나 죽음을 벗하고 피를 동행 삼아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비무를 하다가 사는 경우보다 죽는 경우가 더 많았다. 패배한 자를 살려두는 것은 또 미래의 우환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
그렇기에 감령이 모용청을 죽인다고 하여 그게 죄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죄는 만들기 나름이다. 그리고 모용청이 속한 모용세가는 그것을 ‘죄’로 몰아 감령에게 죄를 물을 수 있는 충분한 힘이 있는 가문이었고 말이다. 그리고 이 사행단은 연경으로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요녕성을 지나가야만 했다.
[네가 덜 맞았나 보네? 한 번 나랑 비무 한 번 할까? 나도 ‘실수로’ 네놈 목 한 번 따볼까?]
모용세가의 차남을 죽인 녹림의 대채주가 요녕성을 지나간다? 모용세가에서 비무이기에 그냥 그것을 보고만 있다가 보내 준다면 금세 요녕성의 패권을 잃고 봉문을 할 것이다. 차남을 잃은 모용세가에서 사적인 복수를 위해 나설 모용 씨의 고수가 한둘일까? 공적으로 나서는 것이면 문제가 될지 모르지만 세가에서 모든 모용 씨 무인들의 사적인 복수까지 관리할 수는 없다. 거기에 감령은 정파의 무인도 아니고 사파의 거두였다. 딱 무림맹에서 끼어들기에 좋은 명분이다. 녹림의 대채주는 사파의 거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나라에서 죄인으로 취급하는 산적들의 대두목이니 말이다. 거기에 모용세가의 차남을 죽였다는 명분까지 있으니 무림맹에서 끼어들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사림곡이 끼어들 수밖에 없다. 감령이 녹림 대채주를 하다가 갑자기 사라졌다고는 해도 대다수의 무림인들에게는 사파의 거두이니 말이다. 그렇게 연경까지 가는 길에 모용세가가 튀어나오고, 무림맹과 사림곡까지 튀어나와 길을 막게 되면? 부르르! 감령은 순간적으로 등골을 타고 흐르는 오한을 느끼고는 자신도 모르게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아씨.”
그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자신을 쳐다보는 만우의 표정을 떠올린 감령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아마 곱게 죽지는 못할 것이다. 끝까지 만우에게 구박을 받다가 죽겠지. 어쩌면 죽을 때도 만우가 옆에서 구박과 잔소리를 늘어 놓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거기에 진한 육체적인 대화는 덤이고. 벅벅벅 감령은 머리를 벅벅 긁었다. 이미 답은 나와 있었다. 결국 감령은 모용청을 봐줘 가면서 손속을 두고 겨뤄야 한다는 소리였다. 챙!!!! 모용청의 검이 챙 하는 소리를 내면서 손에 들렸다. 동시에 감령을 향해 모용청의 갈고 닦은 기세가 쏟아져 내렸다. 쭈뼛 쭈뼛. 비록 완숙한 경지는 아니라고는 하나 모용청은 저 어린 나이에 초절정의 초입에 오른 천재다. 거기에 경험이 없는 생초짜도 아니다. 요녕성의 패권을 모용세가가 손에 쥐게 된 것에 모용청 정도 되는 고수가 어리다고 하여 마냥 보호만 받았을 리 없기 때문이다. 당장 지금만 해도 검을 뽑아들자마자 쏟아져 나오는 투기가 예사롭지 않았다. 감령은 모용청의 투기에 솜털이 서는 것을 느끼면서 도를 집어 들었다.
“모용세가의 차남, 모용청이라고 합니다. 선배님.”
“녹림의 대채주…… 였지만 지금은 뭐, 그냥 수행원 노릇이나 하고 있는 옥면산군 감령.”
고오오오!!! 모용청의 날카로운 투기에 맞서 감령이 묵직한 기운을 풀어냈다. 감령의 별호에 산군(山君)이 붙은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었다. 감령의 독문무공은 패함찰건(沛陷拶乾)이라 불리는 무공이었다. 풀어서 말하면 ‘늪에 빠지듯 하늘에 짓눌리는’ 무공이었는데 그 이름처럼 중(重)의 묘리를 담은 무공이었다. 그런데 그 중(重)의 묘리가 일절이라 옥면산군과 병장기를 맞댄 이들은 마치 산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꼈다 하여 옥면산군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패함찰건공(功)을 맞상대하기 위해서는 공력을 몸에 상시 둘러야 온몸을 짓누르는 압력 아래서 움직일 수 있었기에 까다롭기가 그지없는 무공으로 알려져 있었다.
“후배이니 내 삼 초를 양보하겠다.”
감령은 도를 모용청의 미간에 겨누면서 말했다. 그러자 모용청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감령을 향해 폭발적으로 짓쳐들었다. 번쩍!!! 모용세가의 검은 이화접목의 극치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니 독문무공이 바로 두전성이(斗轉星移)인 것이다. 북극성을 옮겨놓는다 이름 지어진 무공이었지만 모용청의 일초는 빠르고 날랬다.
“관봉검(䝺蜂劍)!”
슥!! 감령의 머리 옆으로 날아다니는 벌을 꿰뚫을 수 있다는 쾌검법 중 하나인 관봉검이 펼쳐졌다. 감령을 노리고 들어갔던 찌르기가 빗나갔지만 모용청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직 이 초가 더 남아 있기도 하고, 당연히 빗나갈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모용청의 검이 변화를 일으켰다. 파바박!!! 모접엽렵(摹蝶獵獵), 나풀거리는 나비와 떨어지는 꽃잎을 본 따 만들었다는 초식이 모용청의 검에서 변화를 일으켰다. 쭉 뻗어진 검이 낭창거리며 휘는 듯하더니 기기묘묘한 궤적을 그리며 감령의 목을 노린 것이다. 동시에 쥐어져 있던 모용청의 남은 손이 슬쩍 펴졌다. 동시에 손가락 세 개에서 지풍(指風)이 은밀하게 감령의 도를 쥔 팔을 향해 날았다.
“제법.”
하지만 감령은 당황하지 않았다. 산전수전을 다 겪은 감령에게 이 정도는 속임수 축에도 끼지 못했다. 스스슥!!! 예측하기 힘든 검로를 그리며 날아오던 모용청의 검이 감령이 머리를 몇 번 흔드는 것만으로 간단하게 빗겨져 나갔다. 동시에 감령이 도를 들어 은밀하게 날아오던 지풍을 막아냈다.
“싸울 줄 아는 도련님이었구나!”
감령은 즐겁다는 듯 웃어 보였다. 나이가 어리기에 경험이 일천하다 생각했지만 생각보다 비열한 수도 거리낌 없이 썼다. 모접엽렵의 초식 안에 삼합지의 지풍을 숨긴 것이 바로 그랬다.
“삼합지(三合指)도 제대로 익혔고!”
아직 모용세가의 절기인 두전성이는 나오지 않았다. 두전성이는 상대의 무공을 그대로 돌려내는 차력타력(借力打力)의 무공인 것이다. 그랬기에 두전성이는 나오지 않았다. 감령이 삼 초를 양보하였기 때문이다.
“선배께 조금이라도 승기를 잡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습니다.”
모용세가를 무림의 세가에서 외면하는 이유는 사천당가를 대할 때의 이유와 비슷했다. 사천당가가 승리를 위해 독과 암기를 선택한 것처럼, 모용세가 역시 승리를 위해서라면 그 어떠한 수도 서슴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양보한 삼 초가 다 끝났다. 하지만 모용청은 검을 다잡고는 심호흡을 했다. 감령은 그런 모용청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오냐. 조심하마. 그러니…….”
딸랑딸랑! 감령의 도가 방울 소리를 냈다. 막대한 공력이 주입되면서 감령의 도가 부르르 진동했기 때문이다.
“버텨 보거라! 일 수에 무릎 꿇을 생각일랑 하지 말고!”
감령과 모용청이 폭발적으로 서로를 향해 짓쳐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