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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0. 사냥꾼과 사냥감 (3) (310/400)

310. 사냥꾼과 사냥감 (3)2021.12.18.

16553266918649.jpg“끄, 끄르륵…….”

털썩. 목이 한웅큼 뜯어져 나간 여진족 전사의 눈에서 생명의 빛이 꺼졌다. 호선의 발톱에 걸린 인간의 몸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연약했다. 호선의 발톱이 휘둘러질 때마다 인간의 육체가 쩍쩍 갈라지며 피를 뿜어냈기 때문이다.

16553266918654.jpg“마지막 한 놈이었다.”

16553266918659.jpg[아니에요. 두 명이 더 남았어요.]

쏴아아!!! 장대비 속에서도 만우는 옷깃 하나 젖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만우의 주변으로도 은은한 혈향이 피어올랐다.

16553266918654.jpg“두 놈은 살아야 우리에게 방향을 알려주지 않겠느냐.”

사방으로 산개하여 도주한 여진족의 전사들은 호선의 분노를 피해가지 못했다. 만우는 여진족 전사의 피와 자신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로 백호가 아닌 홍호(紅虎)가 된 호선을 보면서 혀를 끌끌 찼다.

16553266918654.jpg“등선은 아예 포기한 것이냐?”

16553266918659.jpg[악선이 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어요. 어차피 소녀는 등선하기에는 이승이 너무 좋더이다.]

호선은 씁쓸하게 그리 말하며 그르렁거렸다. 호선이 연을 맺었던 마을의 생존자들은 선기로 진법을 만들어 안전한 곳에 피신시켰기에 운신이 자유로울 수 있었다.

16553266918654.jpg“영생(永生)에 가까운 삶을 살지 않더냐. 그러니 다시 처음부터 도를 닦으면 되겠지.”

만우는 위로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호선은 그런 만우를 보면서 줄줄줄 흘러내리는 빗물을 큼지막한 앞발로 스윽 닦아 냈다.

16553266918659.jpg[너무하시네요. 자기 일 아니시라고.]

16553266918654.jpg“원래 그런 법이다. 내 손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픈 법이니까.”

16553266918659.jpg[역시, 제가 오라버니께 뭘 바라겠어요.]

16553266918654.jpg“이젠 또 오라버니냐?”

16553266918659.jpg[헤헤.]

500년은 살아온 호랑이가 자신을 오라버니라고 부르자 만우는 왠지 모르게 닭살이 돋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적어도 축축 늘어지지 않고 빠르게 회복했다는 것에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266918654.jpg“저 쪽이다.”

16553266918659.jpg[저도 느껴져요.]

16553266918654.jpg“그놈의 선주는 어디서 구해야 하는 거야 근데?”

만우는 호선에게 물었다. 선기의 정수인 선주만 호선에게 있었더라도 만우가 나설 일은 없었을 것이다. 호선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66918659.jpg[남의 것을 빼앗거나 아니면…… 기연을 얻는 수밖에는요.]

16553266918654.jpg“에휴. 500년이나 살아온 놈이 이렇게 약해서야.”

16553266918659.jpg[오라버니가 지나치게 강한 거예요!]

만우는 호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다. 동시에 만우가 발을 구르자 그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픽 하고 꺼졌다. 크와아앙!

16553266918659.jpg[얄미워!]

뒤늦게 만우가 사라진 것을 안 호선이 포효를 터뜨리며 그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발을 구르며 공간을 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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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266918649.jpg“우리가 앞장서겠소.”

16553266918649.jpg“부탁드리오!”

동범찰은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지 않았다. 내공이라는 것을 다루는 무림인들이 얼마나 귀신같은지 여러 번이나 겪어 보았기 때문이다. 쏴아아아!!! 지금처럼 한 치 앞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의 장대비가 쏟아질 때에는 자신들보다는 돕겠다고 나선 저들,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훨씬 더 나았기에 동범찰은 순순히 전사들을 뒤로 물렸다.

16553266918649.jpg“가자!!!! 이랴!!”

16553266918649.jpg“이럇!!”

두둑, 두둑, 두둑! 삿갓 위로 누군가 물을 쏟아붓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그 정도로 삿갓의 비스듬한 면을 따라 물이 줄줄 흐르며 옷자락을 적셨지만 팔검단 중 그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촤아악!!! 물웅덩이를 밟을 때마다 뒤에서 따라오는 이들이 물벼락을 맞았지만 팔검단주인 모용덕을 필두로 한 스무 명의 팔검단 무인들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16553266918649.jpg“제법이로구나.”

모용세가는 기본적으로 무공을 익힌 무림인의 세가이지만 요녕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모두들 말과 친숙했다. 때문에 뒤에서 그들을 따르는 동범찰이 제법 말을 모는 팔검단의 무인들을 보면서 감탄할 정도였다.

16553266918649.jpg“엔두리라. 어디서 그런 말도 안 되는.”

두둑, 두둑, 두둑! 동범찰은 근 오백에 달하는 전사들을 몰아나가면서 고복아알이 했던 말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66918649.jpg“산개하여 창이를 찾아라!!!”

오백의 전사들이 열 개조로 쪼개졌다. 열 개조씩 오십 명의 전사들이 사방으로 퍼져 나간 것이다. 그러면서도 방향은 팔검단이 앞장 선 방향을 놓치지 않았다. 두둑, 두둑, 두둑!! 그렇게 폭우가 쏟아붓는 너른 들판을 달리고 있던 모용덕과 팔검단의 귀에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가 아스라이 멀리서 들려왔다. 창, 차창!!!

16553266918649.jpg“전방이다!!!”

모용덕과 팔검단의 속도가 한층 더 빨라졌다. 모용덕이 외친 소리를 들은 동범찰과 오도리 부족 전사들을 태운 말의 속도가 빠르게 팔검단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모용세가의 기마술이 뛰어나다고 해도 여진족의 기마술을 따라잡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히히히힝!!!!! 그런데 그때 팔검단이 탄 말들이 앞발을 치켜들고는 그 자리에 떡하니 멈춰서면서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하마터면 말에서 떨어질 뻔한 모용덕이 이를 악물었다.

16553266918649.jpg“이 무슨!!!!”

요녕의 패자인 모용세가에서 그저 그런 혈통의 말을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아주 뛰어난 최상등마는 아니라고는 하지만 여느 상등마와 견주어도 뒤떨어지지 않을 말들이 일제히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크허어어엉!!!!

16553266918649.jpg“범이다!!!!”

쉬익!!! 그런 모용덕의 옆으로 동범찰을 필두로 한 여진족의 전사들이 스쳐지나갔다. 모용덕은 그 모습을 보면서 이를 악물고는 팔검단의 무인들에게 소리쳤다.

16553266918649.jpg“말을 버려라!”

165532670033.jpg“예!!”

여진족 전사들의 말은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탄 말과는 달리 난동을 부리지 않았다. 난동을 피우는 말 위에서 뛰어내린 모용덕과 팔검단의 무인들은 어찌하여 말들이 난동을 부렸는지 단박에 눈치챘다.

16553266918649.jpg“백호.”

16553266918649.jpg“저리 큰 백호가…….”

팔검단의 무인들 중 몇이 중얼거렸다. 꽤 떨어진 거리에서도 확연하게 보일 정도로 거대한 백호가 연신 포효를 내지르면서 살기를 피워 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앞에는 그들이 찾는 동맹가첩목아의 아들로 보이는 듯한 이가 땅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저 정도의 커다란 백호가 떡하니 버티고 서 있으니 모묭세가 무인들의 기마술로는 본능적인 위험에 거부감을 드러낸 말들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던 것이다.

16553266918649.jpg“도와야 한다!”

165532670033.jpg“예!!!”

모용덕은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이 거대한 백호를 보고서도 한 치로 뒤로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말을 몰아 달려드는 것을 보면서 소리쳤다. 파바밧!!! 팔검단의 무인들이 경신법을 이용해 달려 나갔다. 모용덕은 손을 들어 쏟아지는 빗물을 막아내면서 검을 뽑아들었다. 검가(劍家)로 유명한 모용세가인만큼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 검을 세가의 무인들에게 지급한다. 백련정강. 백 번의 담금질로 만들어진 검을 든 모용덕의 눈이 그 순간 커졌다. 쿠궁!!!!

16553266918654.jpg“감이 제법이구나.”

모용덕의 눈에 검은 무복을 입은 채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남자의 모습이 들어왔다. 동시에 호선을 향해 달려들던 여진족 전사 오백 중 수십이 피를 뿌리면서 그 자리에서 고꾸라졌고, 기수를 잃은 말이 앞발을 치켜들었다.

16553266918654.jpg“칠성(七星)을 단 것을 보니 모용이겠군.”

만우는 그 자리에 계속해서 서 있었다. 단지 만우가 원하지 않았기에 저들은 보는 것조차도 허락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런 만우가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한 순간, 모용덕의 눈에 만우가 떡하니 박혀 버린 것이다. 푸르륵 히히힝!!! 만우의 기세는 정확히 전사들이 탄 말에만 집중이 되어 있었다. 여진족 전사들의 기마술로도 만우의 기세에 놀란 말들을 진정시킬 수는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여진족 전사들이 말 등에서 내렸다. 말을 타고 있다가는 오히려 더 크게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의 상태를 보고 순식간에 파악해낸 것이다. 만우는 먼저 달려 나갔던 여진족 전사들과 뒤늦게 달려오던 모용세가 무인들 사이의 중간에 있었다. 그러니 양측 사이에 껴 있는 셈이었지만 만우는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16553266918654.jpg“오랑캐 놈들은 저기, 저 백호한테 얌전히 가던 길 가면 되는 것이고.”

오도리 부족의 전사들은 만우의 말에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동범찰이 모용덕을 살피면서 상황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66918649.jpg‘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모용세가를 홀로 막아섰을 리 없다.’

저 자가 고복아알이 말한 엔두리인지, 저기 저쪽에 쓰러진 동창 앞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는 백호가 엔두리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66918649.jpg‘창아.’

모용덕이 고개를 돌려 동범찰을 쳐다봤다. 모용덕이 입술을 달싹였다.

16553266918649.jpg‘구하러 가시오.’

모용덕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읽어 낸 동범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그들에게는 동창을 구하는 것이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임무였기 때문이다.

16553266918654.jpg“안 죽일게. 가라니까?”

이미 만우의 일검에 의해 오백이 넘던 오도리 부족의 전사 중 일 할 이상이 전투력을 상실했다. 그럼에도 사백이 넘게 남아 있던 전사들이 만우의 한 마디에 일제히 등을 돌려 백호를 향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16553266918654.jpg“자.”

빙그르르 만우는 이룡검을 부드럽게 한 바퀴 돌려서는 자신의 앞에 바짝 긴장한 얼굴로 선 모용세가의 무인들을 향해 겨누었다.

16553266918654.jpg“저 치들은 호선이가 부탁했지만 너희들은 아니니.”

모용덕과 팔검단의 무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치켜떴다. 만우의 검극이 자신들에게로 향하자 마치 밧줄에 묶이기라도 한 것처럼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66918649.jpg‘고수!’

모용덕은 내공을 끌어올려 만우의 압력에서 벗어나면서 크게 소리쳤다.

16553266918649.jpg“칠성진(七星陳)을 펼쳐라!!!”

사사삭!!! 모용덕의 목소리에 실린 내기가 팔검단 무인들의 몸을 구속하고 있던 만우의 기세를 풀어 냈다. 모용덕을 필두로 한 팔검단의 무인들이 칠성이 박힌 무복을 펄럭이며 사방으로 흩어졌다. 촤아악!!! 그들이 시야를 가리는 거추장스러운 삿갓을 집어던졌다.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을 정도로 세찬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고수와의 싸움에서 눈 한 번 깜박이는 것이 생과 사를 가를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16553266918649.jpg“나는 대(大) 모용세가의 팔검단주 모용덕이라 하외다! 고인의 존성대명을 알려주시오!!!”

모용덕은 모용세가의 이름으로 지금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하였다. 쓸데없는 분쟁을 피하고자 함이라고 스스로에게는 말했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 매끈한 피부에 검은 무복을 입고 하얀 검신의 검을 늘어뜨리고 있는 눈앞의 사내. 그 사내의 머리카락이나 옷자락이 이 장대비 속에서도 물방울 하나 묻지 않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봤기 때문이었다. 그 말인즉슨, 사내가 호신강기(護身强氣)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을 정도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이자 그 내공의 깊이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깊다는 뜻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수와 굳이 검을 나눈다는 것은 개죽음을 당하는 것이다. 만우는 그런 모용덕의 심리를 읽고서는 크게 웃었다.

16553266918654.jpg“고인이라니. 본주의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던가?”

16553266918649.jpg“본주…… 본주…….”

모용덕은 만우가 스스로를 본주라 칭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리고는 곰곰이 생각하던 모용덕의 눈이 커졌다.

16553266918649.jpg“서, 설마.”

만우는 눈이 커지는 모용덕을 보면서 부드럽게 웃어 보였다.

16553266918654.jpg“본주가 누구인지 무엇이 그게 중요할까. 우리는 검을 들고 있고, 그렇다면 서로의 무를 겨루어 보면 되는 것을.”

모용세가는 만우가 중원을 유람하던 중에도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가문이었다. 그들은 요녕에서 주로 활동하여 중원에서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명에서도 변두리에 위치한 요녕성인 데다, 모용세가의 뿌리가 선비족이라는 것 때문에 그들의 무공이나 무인으로서의 인성, 정체성과는 달리 은근히 배척받고 있는 가문이기도 했다.

16553266918654.jpg“모용세가의 독문무공인 두전성이(斗轉星移)는 그야말로 이화접목의 극치라 들었다. 허니 본주에게 모용의 검을 보여다오.”

촤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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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가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자 그의 앞으로 쏟아지던 장대비들이 순간적으로 잘려나갔다. 아니, 그것은 비를 가른 것이 아니었다. 단순하게 검을 한 번 휘둘러 공간 자체를 가른 것이다. 모용덕은 자신의 전신을 조여 오는 듯한 긴장감에 마른입을 축였다. 그는 만우가 절대로 자신들을 순순히 보내주지 않을 것이란 것을 직감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필사항전(必死抗戰).

16553266918649.jpg“개진(開陣)!!!!!”

모용덕의 목에 핏줄이 서면서 팔검단 무인들의 기세가 하나로 뭉쳐지기 시작했다. 만우는 자신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칠성진의 압박을 기쁘게 느끼며 이룡검의 끝을 살살 흔들기 시작했다.

16553266918654.jpg“오라!!!!”

파바바박!!!! 장대비를 뚫고 모용세가의 무인들이 만우를 향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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