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1. 니가 아는 검주가 아냐 (2)2021.10.12.
가마터에서는 온몸에 불이 붙어 살아 있는 장작처럼 된 도공이 두 손을 휘젓고 있었다. 매캐한 탄내가 사방에서 피어오르자 방매는 가슴에 들어찬 뜨거운 화기를 훅 하고 뱉어냈다. 후아아앙!!! 퍼억!!!! 우당탕탕!!! 그런데 바로 그때, 어디선가 광풍에 가까운 바람이 짓쳐들더니 도공을 장난감처럼 튕겨 내 버렸다. 그와 동시에 도공을 압살할 것처럼 불어온 바람에 그의 몸에 붙었던 불길이 퍽 하고 꺼졌다.
“다쳤구나.”
갑자기 도공이 튕겨져 나가자 놀라 눈을 크게 뜬 방매의 바로 옆으로 만우가 고양이처럼 날렵하게 착지하며 그녀를 슥 훑었다.
“갑자기 공격 받았어.”
“꽤 심한데.”
만우는 시뻘겋게 화상을 입은 방매의 발목과 장력이 스쳐지나가 벌겋게 익은 팔꿈치를 보면서 혀를 찼다. 방매는 괜찮다는 듯 일어나려고 했지만 다시 주저앉았다.
“악.”
“발목이 나갔어. 당분간 뛰어다닐 생각은 하지 말아야겠다. 못 돌아다녀서 어쩌냐.”
만우는 방매의 상처를 확인하고는 혀를 쯧쯧 하고 찼다. 특히 발목은 단순히 화상만 입은 것이 아니라 악력에 의해 퉁퉁 부어오르고 있었다. 꾹, 꾹
“악, 악! 뭐하는 거야!”
“가만히 있어 봐!!”
방매가 몸을 비틀었지만 만우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처를 입은 곳 주변을 손가락으로 꾹꾹 하고 눌렀다. 갑작스런 통증에 화들짝 놀란 방매였지만 놀랍게도 잠시 후 화끈거리던 상처가 시원해지는 것이 느껴져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
“화기는 이걸로 다 빼냈어. 그러니까 상처가 더 심해지는 일은 없을 거야.”
약식의 추궁과혈로 화기를 빼낸 만우는 아예 진기를 불어넣어 안쪽까지 어루만졌다. 그 기묘한 느낌에 방매가 악 하는 소리를 냈지만 아까처럼 몸을 뒤틀지는 않았다.
“그러니까 겁 없이 왜 돌아다녀. 그러니까 이렇게 다치는 거 아니야.”
옥령에게 죽을 뻔한 게 바로 얼마 전인데, 이번에는 또 열양공을 다루는 놈에게 걸려 죽을 뻔한 방매다. 그것도 팔자라면 참 파란만장한 팔자였다. 검주인 자신과 함께 다니면서 오히려 매일매일 더 큰 위험을 맞닥트리는 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 방 먹였다고.”
“그건 잘 했네.”
만우는 숨이 끊어진 도공을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찼다. 실력을 가늠해 보니 한 이류에서 일류 정도 되는 놈이었다. 그런 고수를 상대로 방매가 살아남았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위험을 맞닥트리면서 방매도 착실하게 성장을 해 온 셈이다.
“근데 뭔가 이상했어.”
“뭐가?”
방매는 만우의 진기에 의해 다리가 나아졌기에 스스로 설 수 있게 됐다. 화기도 빠져나갔으니 이제 찜질하고 거동을 조심하면 무리 없이 나을 것이다.
“조금…… 여기가.”
방매는 도공이 마치 아이처럼 말했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머리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만우는 자신의 장력에 적중 당해 즉사한 도공의 시체를 내려다보고는 팔짱을 겼다.
“열양공…… 열양공이라. 처음 보는 열양공인데.”
만우 정도의 고수라면 상대가 죽었더라도 대충 보면 견적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만우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을 알고 있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그가 아는 무공은 아니었다.
“조선에 무맥이 남아 있다는 뜻인가?”
곡산척가가 버젓이 조선제일무가로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아예 배제할 수는 없는 가능성이었다. 문제는 열양공을 익힌 자가 정상이 아니라는 점이고, 이런 자를 일개 도공으로 위장하여 백달원이 부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증좌가 사라졌네.”
“음…… 백달원 노인네가 있으니까. 그 노인네에게 사실을 실토하게 만들면 돼.”
방매는 송유 단지를 찾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도공에게 써 버려서 남은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만우의 방법도 동군영에게 죄가 없음을 명백하게 증명해 줄 수는 없다. 고신이나 협박을 통해 얻어낸 정보를 진실이라 주장하기에는 그마저도 확실한 물증이 아니라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온 증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아니, 무림이었으면 그냥 딱 한 마디면 되는데.”
만우가 복잡하다는 듯 머리를 벅벅 긁었다. 백달원이 열양공을 익힌 무인을 시켜 밭을 태웠다. 그 밭이 삼밭이라는 증좌는 없으나, 백달원이 켕기는 것이 없다면 산을 태우지 않았을 것이다. 중원이었다면 이렇게 말하면 그만이었다. 그런 ‘말’에 대한 신빙성? 검주 만우. 무림십좌의 일인인 검주 만우가 하는 말이었다. 무공에 대해서는 중원무림의 수천 고수들에 의해 인정을 받은 ‘전문가’가 하는 말인 것이다. 하지만 조선에서는 그게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때, 방매가 손가락을 튕겼다.
“아!”
“음?”
“방법이 생각났어!”
방매가 무슨 방법을 떠올린 것인지 눈이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
“교주께서?”
“교의 율법에 따라 다음 대 교주의 등극식을 준비하라는 마일 군사의 명이 있었습니다.”
“어찌, 어찌하여…….”
“전 교주께서 일본국의 지원을 받아 검주를 일본국으로 유인을 하였으나 분전한 끝에 유명을 달리하셨으니, 강자존의 율법을 받들어 결과에 승복하라는 당부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명나라의 최남서부. 찌를 듯한 봉우리들이 셀 수 없이 지천에 널려 있어 십만대산이라 불리는 그곳에서도 깊숙한 모처에 위치한 천마신교의 총단. 일본국에서부터 교주를 받들어 날아온 한 장의 서신이 천마신교의 총단에 천마신교의 모든 원로들과 간부들을 소집하게 만들었다. 혈세천마의 죽음! 그 비극이 알려짐과 동시에 승자인 검주의 아량으로 혈세천마의 아들인 마얼 주창이 다음 대 교주에 오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마얼 주창의 무위는 대외적으로는 숨겨진 비밀이었으나 교내에서 아는 이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천하제일인…….”
“교주께서 정녕, 정녕 검주에게 당하셨다는 말인가?”
“전 교주뿐 아니라 곡왕과 마존을 비롯한 마천대와 진혼대가 전부 검주에 의해…….”
“그 말이 정녕 사실이렸다!!!!”
마인들이 가득 모인 대전이었다. 도교의 도인들이 본다면 복마전이라 부를 그곳에 모인 마인들은 모인 것만으로 주변의 공기마저 마기와 패기로 물들이는 듯했다. 그 때문에 원로의 호통을 받은 전령은 어깨를 부들거리며 떨었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옵니다!!!!”
파천서생 마일이 보낸 서신이 맞았다. 그리고 그곳에는 천마신교의 상징을 뜻하는 마련검의 인장까지 찍혀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위조이거나, 혈세천마의 죽음이 거짓이라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어차피 드러날 사실을 이렇게 대놓고 거짓말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듣는 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이 한 줄의 문장이 스쳐지나갔다.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무림십좌의 말석이라 여겨졌던 검주 만우에 의해 일패 혈세천마뿐 아니라 이왕 중 곡왕, 삼존 중 마존을 비롯하여 막대한 교의 전력이 죽었다.
“그자가 조선으로 넘어간 것을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는가.”
총단에 모인 마인들 중 대다수가 단신으로 혈세천마와 비무를 하겠다면서 찾아왔던 만우를 기억하고 있었다. 인정할 수 없어 사실을 외면하고 있었지만, 그때도 이미 만우의 기도나 태도, 담대함은 무림십좌의 말석이라고 할 수 없을 만큼 탁월했었다. 단지 그가 동이족이란 것과 근간 없는 무공을 익혔다는 것에 사실을 외면하고 진실을 폄훼했던 것뿐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좌호법인 생사마의(生死魔醫) 조근이 우호법에게 말했다.
“새로이 천마대와 진혼대를 편성하고 천마대주를 선별하여 소교주를 맞이하여야 할 것이 아니오!”
“으음…….”
천마대와 진혼대, 그리고 혈세천마와 두 전투대를 이끌던 대주들의 죽음으로 인해 천마신교의 전력 중 4할이 날아가 버렸다. 이런 상황에서 소교주마저 횡액을 당한다면 천마신교의 미래는 불투명해진다. 그러니 조선을 거쳐 중원을 관통해 십만대산까지 와야 하는 소교주, 아니 이제는 차기 천마가 될 주창을 보좌할 이들을 보내야 한다.
“군사에게 전서구를 날려라. 신교에서 호위대를 보내겠노라고.”
투귀대의 고수들은 강하다. 하지만 검주에 의해 벌어진 일이 중원에 알려진다면 천마신교의 명예는 바닥에 떨어질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명예가 바닥에 떨어지면 평소 같으면 꼬이지도 않을 날파리들이 꼬이게 되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신교는 늘 증명해야만 했다. 그들이 최강임을. 승냥이 떼 같은 사림곡과 무림맹 놈들이 감히 도모하지 못하게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
“이렇게 꾸물거릴 때가 없소이다! 교주님을 두 분이나 잃고 싶지 않다면!!!”
조용하던 십만대산으로부터 작은 폭풍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
“황제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무림맹주이자 무왕(武王)이라 불리는 소림의 천혜대사가 황제의 낙인이 찍힌 낙서를 받아들고는 오체투지를 하면서 외쳤다. 만세, 만세, 만만세!!!! 관과 무림이 불가침의 관계라고는 하나 그들이 명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신민인 이상 황제의 백성인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 때문에 황제의 백성으로서 나라의 지존인 황제께 표할 예를 성실히 행한 맹주와 무림맹의 고수들이 몸을 일으켰다.
“속히 사람들을 꾸려 보내야 할 것이오!!!!”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합장을 하면서 황제의 사신에게 예를 표했다. 황제의 사신이 무림맹의 대전에서 물러나자 심각한 얼굴을 한 무림맹의 간부들이 모여들었다.
“천상, 그 소식이 사실인 모양이구려.”
“천하제일인.”
무거운 의미를 가진 별호가 개방방주 만타개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러자 간부들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은 모두 무림에 명성을 떨치는 고수이자 각 문파와 세가의 존경을 받는 이들이었지만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이라 함은 완전히 다른 수준의 의미를 가지는 법이다. 그건 단순히 한 개인에게 주어지는 별호가 아니라 존칭이었다. 무림이라는 세계에서 살아가는 이들이라면 모두 존경을 표해야 하는 존칭. 그런데 그 존칭을 정파의 무인도, 사파의 무인도, 심지어는 마교의 무인도 아닌 동이족 출신의 무인이 차지한 것이다. 그것도 스스로 마교의 지존인 혈세천마와 그 휘하의 천마대와 진혼대를 몰살시킴으로 인해서 모두가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하게 된 것이다.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아미타불.”
천혜대사는 하얗게 늘어진 눈썹을 파르르 떨면서 불호를 외웠다.
“이는 우리를 동원하여 황상께서 검주를 호송해 오라는 것 아니오? 우리와 그자를 상잔시키겠다는 것이오!”
오대세가 중 가장 강한 세를 구가하고 있는 남궁세가주인 남궁현덕이 얼굴을 붉히면서 그리 말했다.
“허나 아예 말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일반 군졸로 어찌 검주 그자를 호송해 올 수 있단 말입니까.”
제갈세가주이자 무림맹의 군사이며, 정보조직인 천안각의 각주인 제갈명공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거절할 명분이 없습니다. 맹주.”
“허어…….”
검주를 경시하고 무시하던 자들도 사실 진심으로는 얕보는 자가 하나도 없었다. 단지 그렇게 좁은 속내를 드러내 보이며 애써 사실을 외면했을 뿐이다. 하지만 혈세천마가 죽었고, 천마대와 진혼대가 단 일인에 의해 궤멸 당했다.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 현실로 다가오자 다들 침묵에 빠졌다.
“일본국의 왕이 보내온 친서로 판단한 것이라 하였소. 혹시 일본국에서 잘못 판단하였을 가능성은…….”
“혈세천마와 천마대, 진혼대가 바다를 건너 일본국으로 넘어갔다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정보에 능통한 제갈명공이 그리 밝히자 애써 닥쳤던 현실을 외면하려던 무림맹 간부의 입이 조개처럼 다물어졌다.
“일단은 사신단 중 하나를 보내시지요.”
제갈명공이 천혜대사에게 말했다.
“황상께서 여진족에게도 칙서를 보내신다고 하셨으니, 그들과 함께 공조를 한다면 검주를 호송해 오는 것 정도는…….”
제갈명공은 말끝을 흐렸다. 항상 확신에 찬 어조로 천혜대사의 든든한 책사가 되어 주었던 제갈명공이다. 하지만 그도 검주라는 상식 밖의 존재에 대해서는 확신과 확언을 할 수가 없었다. 천하제일인이라니. 자신이 살아 있는 동안 그 별호를 듣게 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누구든 무림십좌 중 일패(一覇)라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혈세천마조차도 천하제일인이라 불리지는 못했다. 하지만 만우는 중원도 아닌 먼 일본국에서 벌인 일로 모두의 머릿속에 ‘천하제일인’이라 생각케끔 만들었으니 제갈명공이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