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1. 조천사(朝天使)(5)2021.09.07.
“왜? 국왕이 눈치를 보는 양반이라면서. 간단하게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인데.”
“그건 올바른 방법이 아니니까.”
동군영은 드물게 만우에게 물러설 수 없다는 눈빛을 보였다. 단단하게 의지가 박힌 눈빛이었다.
소심한 동군영이 이런 식으로 의견을 강하게 피력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만우는 일단 흐음 하면서 팔짱을 꼈다.
“왜 올바르지 않은 건지. 설득해 봐.”
만우는 턱짓으로 동군영에게 말했다.
“정말 그게 왜 올바르지 않은 것인지, 모르는가?”
동군영은 거꾸로 만우에게 되물었다. 만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답을 하라고 했더니 거꾸로 질문을 받았기 때문이다.
“내 방식은 내 방식이야. 내가 걸어가는 길은 옳은 길이고, 내가 하는 방법은 옳은 방법이니까.”
만우의 말은 광오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검 한 자루로 자신만의 인생을 개척해 온 사람의 자부심이 섞인 말이기도 했다. 정사지간(正邪趾間). 하지만 동시에 만우는 그렇기 때문에 정사지간이란 소리를 들었다. 정과 사의 중간. 만우가 걸어가는 길이 때로는 지극히 정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지극히 사도스럽기 때문에 중원의 호사가들이 그리 부른 것이다. 하지만 만우는 단 한 번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은 길을 걷고자 한 적이 없었다. 어떤 방식이든 간에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했고,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걸었다. 그로 인해 피가 흐르고 생명이 불살라진다고 해도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보하는 자의 길은 고독하고 험난한 것이다. 늘 피와 원망이 뒤따르는 길이기도 하고. 허나 만우는 그 모든 것을 이겨 냈기 때문에 화경이란 고절한 경지에 도달했고, 무림십좌의 검주가 되었다.
“그건 자네의 길이지, 나나 주상전하의 길이 아니네.”
“그래서?”
만우의 말에 동군영은 재빨리 대답했다. 검 끝의 흔들림이 줄어들었다. 처음으로 만우에게 대항하는 것이기 때문에 처음에는 위축되었으나, 그 떨림이 줄어들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우와 함께 다니면서 혹독할 정도로 체력 수련을 하게 된 동군영은 이제 어느 정도 검사의 태를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자네의 말대로 조준 대감을 납치해 데려온다고 치세.”
“납치가 아니라…….”
“자네의 길에는 그게 납치가 아닐지라도, 내게는 납치일세.”
동군영은 딱 잘라 말했다. 만우의 말허리를 끊은 것이다. 이런 상황까지 치달았으니 동군영은 이제 눈 딱 감고 만우에게 달려든다고 생각하고 말했다.
“조준 대감은 조정 대신들의 지주일세. 실권은 우정승 하륜 대감의 손에 있다고는 해도, 많은 대신들이 조준 대감을 따르지. 왜 그럴 것 같은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노인네의 머릿속을 내가 어찌 알까.”
만우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이렇게 혓바닥으로만 이야기하는 것은 만우의 성미에 맞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검까지 가르친, 제자나 다름없는 동군영에게 검을 휘두를 정도로 만우에게 앞뒤가 없는 것은 또 아니었다.
“꺾이지 않는 강직함과 그 어떤 외압에도 굴복하지 않는 강인한 기개를 가지신 분이어서 그렇네.”
“흐음. 까다로운 노인네란 소리군.”
만우는 조준을 거침없이 깔아뭉갰다. 만우에게 조준이란 사람이 딱 그 정도라는 소리이기도 했다. 동군영은 혀를 내둘렀다.
“쯧. 어찌 그리 미움 받을 이야기만 그 입에서 나올까.”
“원래 그리 살아왔으니 특별할 것도 없지요, 나리.”
만우가 씩 웃어 보였다. 만우에 대해서 아는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의 입은 확실히 화를 불러오는 입이기는 했다. 말을 하는 데 있어 자신에 대한 확신 때문에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직설적으로 말하니 그랬다.
“고집불통이구먼. 그러다가 나이 먹으면 어린 아해들에게 욕먹네. 욕먹어.”
동군영은 혀를 끌끌거리며 찼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팔짱을 슬며시 풀었다. 슬슬 인내심이 다 떨어져 간다는 뜻이었다. 그러자 동군영이 다시금 황급히 입을 열었다.
“어쨌거나, 그 대쪽 같으신 분을 데려다 놓으면 주상전하께서 하시는 말을 그분께서 어찌 들으실까.”
난데없이 밤에 침입한 괴한에게 붙잡혀 와서 보니 궁이다. 그리고는 임금이 여의손의 일과 관련하여 말을 한다면 과연 그 강직하다는 조준이 어떻게 생각할까. 조선의 개국공신이자 개국 초기 권력의 중심에 섰던 정도전과도 뜻이 맞지 않아 단칼에 그와의 관계까지 끊었던 조준이다. 그랬던 조준인데, 늙었다고 하여 변했을까?
“오히려 긁어 부스럼이란 소리일세. 조준 대감이시라면 오히려 자신을 겁박한다 생각하실 것이 분명하시니까. 그렇다면 주상전하께서 여의손의 일에 부당하게 개입하여 압박을 하신다 생각하시고, 내 죄를 주창하시겠지.”
조준도 사람이다. 여의손의 일과 관련하여 조준은 어찌 보면 그 대쪽 같은 성격 때문에 제자라고 하여 감싸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나 조준을 걱정한 국왕이 그를 납치하듯 데려와 그런 것에 대해 묻는다? 아무런 생각이 없다가도 임금이 괘씸하여 하고자 하는 일에 딴지를 걸고 나설 것이다. 그 정도로 깐깐한 노인네가 바로 조준이었다.
“잡아온 다음 겁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이 말이네.”
“그건 동군영 나리가 겁박이란 것에 대해서 잘 모르기 때문이지.”
동군영의 말은 사리에 다 맞았다. 하지만 만우가 생각하는 바가 동군영이 생각한 범주보다 훨씬 더 비범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겁박? 동군영은 제대로 된 겁박이 어떠한 것인지 모른다. 제 아무리 대쪽 같다고 소문이 난 자들조차도 잡아와서 수백 가지 방법으로 고신을 하다 보면 듣고자 하는 말을 나오게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무림이다. 명 황실은 또 어떠한가. 고신이라면 무림에 뒤쳐지지 않는 곳이 바로 명 황실이다.
“내가 조준이란 늙은이 입에서 삼십 년 전 잘못한 것까지 나오게 해 줄 수도 있는데.”
만우는 살벌하게 웃어 보였다. 만우라면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더 겁박을 잘 하느냐는 지금 이야기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정말 이럴 텐가, 만우?”
“그러면 날 막지만 말고 대안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야지. 내가 직접 가서 좌정승을 데려오는 것 외에 무슨 방법이 있다고.”
만우가 원하는 것은 임금이 조준이 걱정되어 어찌할 줄을 모르겠다며 찡찡대는 것이 아니라, 앞을 가로막고 있는 장애물을 넘어갈 수 있는 대안이었다. 그런데 그런 대안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고 자신을 막으려고 밖에 하지 않으니.
“쯧쯧쯧.”
만우는 임금을 쳐다보면서 혀를 찼다. 어디서 이런 취급을 받아 본 적도 없는 임금은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전하. 소신에게 좋은 생각이 있나이다.”
만우의 말에 동군영이 기다렸다는 듯 임금에게 절을 하면서 말했다.
“말해 보라.”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보빙사 여의손이 거짓으로 고한 일에 대한 증좌가 없다는 것,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결국 지금 사건을 푸는 방법은 간단했다. 여의손이 거짓을 고했고, 동군영이 진실을 고했음을 증명하면 되는 일이다.
“보빙사 여의손에게 대량으로 개성삼(蔘)을 넘긴 작자. 그 작자를 찾아 보빙사 여의손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음을 자백케 하여 증좌로 삼으면 될 것이옵니다.”
“아.”
임금은 개안한 얼굴을 했다. 매일 같이 복잡하게 올라오는 상소에 명에서 보내온 친서, 저자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까지 얽혀 있다 보니 미처 생각하지 못한 간단한 진실이었다.
“그대의 말이 맞도다.”
“다망한 공사로 인하여 전하의 혜안이 가려져 있는 듯하니, 신은 오직 전하와 종묘사직에 대한 걱정뿐이옵니다.”
동군영은 넙죽 절을 하며 말했다. 혹시라도 임금의 심기가 상했을까 걱정한 것이다. 임금은 그런 동군영을 한 번 보고는 밖에 대고 외쳤다.
“상선! 도승지를 불러오라! 어명을 내리겠다!”
*****
“뭐야. 대체 무슨 난리야 이게?”
삼복은 눈이 동그래져서는 이곳저곳에서 빗발치는 정보에 신음 소리를 냈다. 각 도에서 올라온 뇌물들을 정리하고, 안국방에서 대량으로 갈취해 온 사향 덩어리들을 보면서 좋아하다가 허겁지겁 하오문 한양비주로 뛰어온 참이었다.
“애들이 상했다고? 누구한테?”
그 중에는 하오문도들이 상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그런데 그냥 상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이게 대체…….”
하오문도들은 대부분 떠돌이들이거나 뒷골목 삼류 인생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따로 장례를 해 줄 사람도 없어 뒤늦게 사고 현장에 도착한 동료들이 수습해 온 유해를 따로 묻거나 해야 했다. 때문에 삼복은 처참하게 고기 조각이 되어 버린 수하들의 시신에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이 정도로 많은 하오문도들이 죽거나 다쳤다면 한양지부장으로서 응당 보복을 해야만 한다. 그것이 하오문의 율법이자 뒷골목의 율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복은 시신을 보는 순간 알아챘다.
‘고수다!’
삼복은 기껏해야 삼류도 간신히 될까 말까 한 무공을 익히고 있었다. 내공이라 불릴 것도 없이 하오문으로부터 몇 가지 권법과 보법을 전수 받은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그 정도로도 뒷골목 왈패들 중에 삼복을 이길 자가 없었다. 물론, 은월루라는 놈들이 있었지만 어쨌거나 삼복은 한양 뒷골목의 최고수였다. 그런 삼복의 눈에 들어온 수하들의 시신은 참혹했지만, 동시에 고수가 벌인 짓이었다.
‘사람의 몸을 자르는 게 쉽지 않은데 저건…….’
저건 사람의 몸을 날붙이로 자른 것이 아니다. 잡아 뜯은 수준이었다. 그 시신에 수하들 중 몇몇은 헛구역질을 했다. 하지만 삼복은 그런 그들에게 뭐라고 할 수 없었다. 자신조차도 저 고수에게 붙잡혔으면 같은 처지였을 것이라는 불길한 상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무슨 괴력이.’
삼복은 죽었다 깨어나도 사람을 저렇게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더 놀라운 것은 저 참상을, 여고수가 했다는 것이다.
“갑자기 난입한 웬 미친 여자가 저렇게…….”
말을 미처 다 잇지 못하고 수하가 고개를 떨궜다. 저 참혹한 시신들이 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담 따먹기를 하던 동료의 몸 일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저 정도의 수준이 되려면 어느 정도가 되어야…….’
최소한 바로 얼마 전에 떠난 하오문 총지부에서 나온 고수들 수준은 되어야 했다. 그것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얘네들은 또 왜 이래!”
삼복은 어디서 죽도록 얻어터지고 하나도 성한 곳이 없는 몰골로 돌아온 수하들을 보면서 머리를 쥐어뜯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거의 서른 명이나 되는 수하들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몇은 몇 달 동안 요양을 해야 거동이 가능할 정도로 중상을 입은 놈들도 있었다.
“두목…… 크흑…… 저기 삼거리 주막에서 웬 놈들이…….”
그나마 상태가 괜찮은 수하가 눈물을 훔치면서 삼복에게 자초지종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삼복은 또 다시 등줄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었다. 무공 실력은 변변치 않아도 무공과는 별개인 생존 능력이 발달한 삼복이다. 그런 삼복이 들은 수하가 당한 일은, 그 역시도 고수가 벌인 일이었다.
“술을 몇 독?”
“수십 독은…….”
저기 국경 지대나 해안가에서 왜구와 도적들의 목을 치고 다닌다는 장수들도 그 정도로 술은 마시지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뿐이다. 내가고수. 내공을 가진 고수가 한 일인 것이다.
‘설마, 설마.’
하오문 총지부의 고수들은 모두 떠났다. 그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사람이 바로 삼복이다. 그런데 한양에 내공을 쓰는 고수들이 남아 있다?
‘그 괴물들!’
하오문주의 딸이자 총지부의 지부장이라는 임수미가 고개를 숙였던 소문만 무성한 남자, 그리고 그 남자가 살고 있던 집에 자갈처럼 굴러다니던 고수들.
“미친놈들. 설마, 설마!!!”
삼복은 입을 어버버거렸다. 만약 수하들이 건드린 것이 그들이라면 서둘러 이곳을 정리하고 도망가야 한다. 삼복은 그들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고수들인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신 따위는 수백 명이 있어도 일초지적도 되지 않을 고수였다. 그런 고수들에게 수하들이 달려들었으니, 만약 하오문도란 것을 그들이 봤다면 큰일이 나는 셈이다. 부르르 자신으로서는 상대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십령수를 한 손으로 가지고 놀던 옥면산군이라는 이름의 고수가 떠올랐다. 그때 거의 바지에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을 먹었었던 삼복이다. 그걸 떠올리자 또 다시 가랑이가 뜨끈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또. 칼부림? 한양 한복판에서? 갑사들이 죽고 다쳤다고? 전옥서로 데려갔고…….”
삼복은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정보들을 취합했다. 그러자 전체적인 윤곽이 그려졌다. 삼복은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었다. 자신이 사람을 부려 만든 검계를 한순간에 박살을 내 버리고 검투장을 무너뜨린 그자의 일행이 맞았다. 그렇다면 자신은 무엇을 해야 할까.
‘튀어야지. 어디 가서 숨어 있다가 오면 괜찮겠지.’
다행히 그들이 모두 전옥서로 잡혀갔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러니 아직 시간이 있었다. 삼복은 벌떡 일어나 하오문도들에게 소리쳤다.
“거점을 폐쇄해! 그리고 열흘 뒤 개집에 모인다!!!”
“헛!!”
“핫!!”
하오문도들이 갑작스런 삼복의 목소리에 머리를 치켜들었다. 그리고 잠시 후, 한양 지부 안이 도떼기시장처럼 파닥거리는 하오문도들로 인해 삽시간에 복잡해졌다. 하오문의 안가는 한양 내에 많았다. 그중 이곳이 마음에 들어 지부로 쓰고 있었던 것뿐이다. 문제가 생기면 이곳을 폐쇄하고 다른 안가로 옮기면 된다. 여기서 개집은 말 그대로의 개집이 아니라 일종의 은어였다. 개(開)집. 성문 근처의 안가로 모이라는 은어였다. 어쨌거나 지부장의 총 대피령에 하오문이 한창 시끄러울 때, 그곳의 입구를 가리고 있던 거적때기가 스윽 하고 말려 올라갔다. 그리고 그 안으로 끝자락이 마모되고 헤진 검은 장포를 입고 틀어 올린 머리를 그대로 드러낸 남자가 들어섰다.
“영업 안 합니다! 안 해요!!”
문도 중 하나가 손을 내저으며 남자의 몸을 밀려고 했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한 손에 부채를 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하오문도를 쳐다봤다.
“으그극…… 으그그…… 윽?”
남자를 아무리 밀려고 해도 한 발자국도 밀리지 않았다. 맨 처음에는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던 하오문도가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호리호리했는데.’
호리호리한 정도가 아니라 툭 밀면 쓰러질 것처럼 나약해 보이는 사내였다. 그런데 자신이 온 힘을 다해도 한 발자국도 밀려나지 않았다.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 그때 남자가 손에 들고 있는 작은 부채로 하오문도의 머리를 톡 하고 내리찍었다. 꾸르르륵. 별로 세게 치지도 않았는데, 하오문도가 눈을 까뒤집으며 입에 거품을 물고는 풀썩하고 쓰러졌다. 털썩 동료 중 하나가 거품을 물고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자 총 대피령에 불 위에 올린 메뚜기처럼 파닥거리며 도망갈 준비를 하던 하오문도들이 우뚝 멈춰 섰다. 그때, 조용해진 것을 들은 삼복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돌렸다.
“뭣들 하는 거야! 어서 준…….”
그때, 삼복과 검은 장포 자락을 늘어뜨린 남자의 눈이 마주쳤다. 그와 동시에 삼복은 뱀의 살기에 걸린 개구리처럼 몸이 딱 굳는 것을 느꼈다. 남자의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떠올라 있지 않았지만, 삼복은 분명히 깨달았다. 여기서 손 하나라도 잘못 까딱하면 바로 자신의 목이 떨어질 것이라고. 유달리 발달한 삼복의 생존 본능이 격렬하게 신호를 보내왔다. 제발 가만히 있으라고 허튼 짓을 하지 말라고 말이다.
“여기가, 한양의 하오문입니까?”
남자가 메마른 표정으로 표정과 비슷해 보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감정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 지극히 냉철하면서도 메마른 논이 쩍쩍 갈라지는 것 같은 목소리다. 삼복은 고개를 끄덕였다. 호리호리해서, 그 어떤 힘도 없을 것 같은 남자지만 삼복은 느꼈다.
‘괴물. 아니, 괴물이 아니라…….’
비수. 아주 작지만 날카로운, 그래서 언제 뻗어 나올지 모르는 비수. 그것이 삼복의 남자에 대한 첫 인상이었다. 온갖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이지만 삼복은 맹세컨대 이런 남자가 한양 안에 있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물어볼 것이 있어 왔습니다. 몇 가지, 아주 간단하게 물어볼 생각이니 허튼 생각은 하지 마시고…….”
남자의 입가에 메마른 미소가 걸렸다.
“제 주군, 어디 계십니까.”
뒤늦게 저잣거리에서 일어난 소동을 듣고 주군을 구출하기 위해 하오문을 찾아온 투귀대의 책사, 파천서생(破天書生) 마일의 전신에서 마기가 뭉클거리면서 뿜어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