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1. 혈성(3)2021.08.03.
“무, 무슨 짓을 한 것이냐!!!!”
저잣거리에서 싸움판이 벌어졌다고 해서 동료 하오문도를 도와주러 가던 하오문도들이 몸이 움직이지 않자 눈을 크게 뜬 채 다가오는 감령과 위문을 향해 소리쳤다. 아니, 대부분은 감령에게 소리를 쳤다. 위문은 딱 봐도 성질이 더러워 보이지만, 감령은 미끈하게 생긴 것이 기생오라비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어? 나한테 소리를 지르네? 딸꾹!”
감령은 붉어진 얼굴로 킬킬거리며 웃었다. 위문이 그런 하오문도를 눈을 찡그려 뜨고는 보면서 중얼거렸다.
“하오문도 주제에 죽으려무?”
“무무 소리하지 말라니까 딸꾹.”
“무무한 적 없다무!!”
감령과 위문이 서로의 말투를 지적하면서 티격태격했다. 그러면서 몸을 옥죄는 것이 느슨해졌다고 느낀 하오문도가 감령과 위문을 쳐다보면서 품속에 손을 넣었다.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르신이 바로 저잣거리의 날쌘 제비다!”
쉭!!!!
“날쌘 제비의 투검이다!”
“으악!!”
날쌘 제비라 불린 하오문도가 한양의 저자에서는 제법 유명한 모양이었다. 쉭 하는 소리와 함께 주변에서 구경을 하던 이들이 비명을 내질렀으니까. 하지만 날쌘 제비와 주변 사람들의 비명소리에도 비명을 지를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흐흐흐. 이엉 워야. 어아라이냐. 께꾹.”
감령의 이 사이에 날쌘 제비가 날린 날카로운 은비녀가 물려 있었기 때문이다. 날쌘 제비가 날린 은비녀를 이로 잡아챘다는 소리다.
“에이.”
쓰윽 그 상태로 말을 하니 침이 뚝 하고 떨어졌다. 감령은 비틀거리며 소매로 침을 닦아 내고서는 날쌘 제비를 쳐다봤다.
“가져가.”
쉬익!!! 서컥!! 날쌘 제비의 몸이 덜컥하고 굳었다. 날아오는 것이 보이지도 않았는데, 서컥 하는 소리가 들렸기 때문이다. 그런데 몸의 여기저기를 봐도 어디 아픈 곳이 없었다. 그렇다고 피나는 곳도 없었고. 하지만 아랫도리가 허전해지는 느낌이 들어 아래를 쳐다본 날쌘 제비는 바지춤을 끌어올렸다. 감령이 입으로 뱉어낸 은비녀가 하오문도의 바지춤을 베고 지나간 것이다.
“어르신이라고 했다무? 그러면 내가 마실 술을 깬 네놈들은 이 어르신을 어떻게 할 거냐무?”
“으, 으으…….”
위문이 더러운 인상을 구기면서 말하자 하오문도들이 겁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약한 것은 물론, 강한 것도 기가 막히게 냄새를 맡는 놈들이었다. 그런 하오문도들이 감령과 위문이 자신들이 상대할 만한 수준이 아니란 것을 알아챈 것이다.
“도, 도망가라! 도망가!!!!”
날쌘 제비가 가장 먼저 등을 돌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하오문도들이 사방으로 몸을 날렸다.
“어딜 가. 딸꾹. 흐흐흐흐. 술 물어내기 전에는 아무데도 못 가지. 딸꾹.”
감령이 괴소를 흘리면서 손가락을 튕겼다. 만우의 옆에서 보고 배운 지풍이었다. 만우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초절정 고수인 감령이었기에 위력이 부족하진 않았다. 뻐버버버벅! 아악!!!! 도망가던 하오문도들이 종아리를 부여잡고는 픽픽 쓰러졌다. 담을 타던 놈들도, 지붕을 타던 놈들도 털썩하고 떨어져 내린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날쌘 제비가 남았다. 쉬잇!!!! 턱!!! 날쌘 제비란 이름처럼 빠르게 달리던 날쌘 제비의 몸이 덜컥하고 굳었다. 분명 말이 안 되는 일이었지만, 누군가 자신의 머리를 밟고 있었기 때문이다. 천천히 눈을 위로 들어 올린 날쌘 제비가 흐윽 하는 소리를 내면서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술! 내놓고 가라무!!!!”
위문이 감령이 구박하는 무무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풀린 눈으로 날쌘 제비의 머리를 밟고 서 있었다. *****
“아니, 관심 없다고. 무슨 혼인이야.”
“그럼 설마 내 손녀를 데리고 놀았다는 말인 겐가?”
화르륵!!! 만우는 척일에게서 느껴지는 강렬한 기세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마익후는 그런 척일을 보면서 적의를 불태웠다.
“괜찮아 마익후.”
“하지만. 대장.”
“간장아. 그 검은 나중에 집에 가져와. 마익후랑 같이.”
“혀, 형님. 괜찮으시겠습니까?”
간장은 그 대단한 곡산척가의 태상가주라는 척일의 등장에 만우를 걱정하는 모양새였다. 만우는 그런 간장을 보면서 웃는 낯으로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괜찮아.”
“크, 크음…….”
간장은 안 들어가려고 버티는 마익후를 끌고 대장간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만우가 자리를 비켜 줬으면 한다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 만우는 척일을 쳐다봤다.
“거추장스런 이 기운이나 좀 치우지?”
“아직 자네의 답변을 듣지 못했다네.”
만우는 자신의 온 몸을 옥죄는 듯한 척일의 기운을 느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만우가 강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손녀와 관계된 일이라고 소위 말에 눈이 뒤집힌 것이다.
“아니, 본주가 왜 네 말에 대답해 줘야 하는 거지?”
콰아!!!!!
“흡!”
만우는 슬쩍 짜증이 치밀어 올라 기운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척일의 기운이 단박에 확 하고 밀리며 척일의 몸이 휘청거렸다.
“어차피 튼튼해 보이는데. 그 나이 먹었다고 한두 대 맞는다고 골병이 들진 않겠지. 안 그래?”
본래 만우의 성격은 더럽다. 무공을 익힌 무인이 상대라면 더더욱 더러워진다. 웬만큼 튼튼하기 때문에 어중간하게 때려도 어떻게든 살기 때문이다. 병신이 되어도 산 건 산 거니까.
“이, 이 설마 사영이에게도 이런 식으로 군 것이냐? 고얀 놈이로고! 여인에게 어찌…….”
“화경에 든 앤데 여인은 무슨. 검 드는데 남녀가 어디 있어?”
척일에게 오해가 생긴 것 같았지만 만우는 두 눈을 부라렸다. 하지만 아까 전의 한 수로 만우의 실력이 자신보다 월등히 뛰어나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인지 제정신을 차린 것 같았다.
“아니. 본주가 데려왔나? 그 애가 왔다니까?”
“그래도! 응당 돌려보내는 것이 사내라면 할 일이지.”
“걔가 애야? 어련히 옆에 있다가 알아서 돌아갈 건데. 어디서 맞고 다닐 실력도 아니구먼.”
하지만 생각해 보면 척사영은 만우 옆에 붙어 다니면서 여기저기서 맞고 다니기는 했다. 화경에 오르고 나서도 그녀보다 강한 상대만을 상대했기 때문이다. 만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고는 척일에게 말했다.
“그냥 애나 데려가. 애가 가겠다고 하면. 그런데 세가 안에서만 키우는 게 능사가 아닐 텐데. 보니까 좌우의 균형도 맞지 않아서 제 실력 발휘를 다 못 하더만.”
그래도 친히 척사영의 검과 도를 썩둑 잘라 버린 만우다. 그 사실을 모르는 척일은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모든 일에는 순리가 있는 법이네.”
“아, 알려주려고 하셨다?”
만우는 코웃음을 쳤다. 그런 말도 안 되는 무책임한 소리가 어디 있단 말인가. 병장기란 모름지기 무인의 손발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맞지 않는 손과 발을 줘 놓고는 그것에 익숙해진 다음에 다른 것으로 바꾼다니.
‘주화입마에 안 걸리면 다행이지.’
만우는 한숨을 작게 내쉬고는 몸을 날려 대장간의 지붕 위에 섰다. 팟!!! 그러자 척일도 그런 만우를 따라왔다. 만우는 수상쩍은 늙은이에게 자신의 집을 알려준다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일단은 데려가기로 했다. 척사영의 조부라니 마냥 무시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기 때문이다.
“아. 노인네.”
만우는 자신의 집으로 향하면서 척일을 향해 경고했다.
“가서 괜히 입 나불거리지 마. 혼인을 올리라니 뭐 그런 거. 난 그럴 생각 추호도 없으니까.”
“우리 손녀가 어때서!”
손녀 이야기만 나오면 괜히 버럭 하는 팔불출 척일이었다. 만우는 싸늘하게 살기를 피워 올리면서 다시 한 번 더 척일에게 경고했다.
“본주는 분명히 말했다? 쓸데없는 소리하면…… 진짜 재미없을 거야.”
안 그래도 없는 노인에 대한 공경이 더욱 사라질 것이다. 척일은 그렇게 앞서는 만우를 보면서 속으로 끌끌거리며 웃었다.
‘부끄러워하긴. 끌끌. 우리 사영이면 최고의 신붓감이지. 강하기도 저 정도면…….’
*****
“으하아아아아암!!!!”
호선은 영물이다. 즉, 겉모습은 인간으로 둔갑하고 있지만 그 속은 500년 묵은 호랑이란 뜻이다. 본래 호랑이들을 비롯한 짐승들은 먹이를 사냥하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휴식으로 보낸다. 그렇게 하루 종일 축적한 힘을 먹잇감을 사냥하면서 한 번에 쏟아 내는 것이다. 그러니 호랑이도 토끼를 잡을 때는 최선을 다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그게 당연한 것이니 말이다. 하지만 호선은 그런 짐승의 범주를 뛰어넘은 영물이다.
“잘 잤다.”
때문에 호선은 한양까지 내달리느라 소모한 체력을 잠깐의 단잠으로 금세 보충했다. 인간들이 보지 못하게 주변에 진(陳)을 쳐 놓고 백호의 모습으로 돌아가 단잠을 잔 호선은 간만에 느껴보는 상쾌함에 혀로 앞발의 털을 정돈한 후 큼지막한 앞발과 혀로 얼굴 여기저기를 단장했다. 호랑이 시절의 버릇이지만 영물이 되어서도 버리지 못한 버릇 중에 하나다.
“끄으으응…….”
두두둑!!!! 만우의 집만 한 크기의 호선이 기지개를 쭉 하고 켜자 꼬리가 옆집의 지붕을 탁 하고 때렸다. 그 때문에 괜히 마당에서 일을 하던 아낙네가 왁 하고 놀라며 엉덩방아를 찧었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두둑거리며 몸까지 푼 호선은 입맛을 쩝쩝 다시며 앞발을 가슴 밑에 깔고는 지붕 위에 앉았다.
“하아. 좋다. 역시 한양이 최고야. 사람 냄새가 최고지.”
호선은 사람 사는 활기를 좋아했다. 짐승 출신의 반선치고는 드문 취향이었지만 호선은 아리따운 여인의 모습으로 사람들 틈에서 사는 것이 좋았다. 평생을 숲 속에서 고독하게 홀로 살아오다 보니 북적한 속세가 마음에 든 것이다.
“으하아아아암.”
백호가 사람 하나를 통째로 삼킬 수 있을 것 같은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하고는 혀를 쩝쩝거렸다. 인간의 모습도 좋지만 이렇게 백호 모습으로 돌아오면 쌓였던 피로가 전부 풀리는 것 같아 상쾌했다.
“슬슬 배가 고프니까 저자에도 나가…… 응?”
펑!!!!!
희뿌연 연기가 사방에서 치솟더니 호선이 하늘거리는 하얀 장삼을 걸친 아리따운 미녀의 모습으로 변했다. 눈꼬리가 쳐져 교태가 한껏 배가 된 인간 모습의 호선이었다. 호선은 그대로 고개를 들어 올려 하늘을 쳐다봤다.
“……혈성이잖아?”
아직 해가 넘어가지 않아 하늘이 밝음에도 불구하고 또렷하게 빛나는 붉은 별이 있었다. 혈성. 붉은 혈성의 모습이 백주대낮에 버젓하게 드러나자 호선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래. 이래서 내가 그랬던 거야. 그런데 만우 대협은…….”
호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순간 호선이 눈을 번쩍하고 크게 떴다. 어떻게 보면 절호의 기회였기 때문이다. 인세를 어지럽힌 혈성을 벌하고 그 혈성의 힘으로 호선에게 필요한 선주를 만드는 것. 물론 선주를 만들면 선행을 통해 다시 그 안에 선기를 쌓아야겠지만, 지금처럼 아예 등선할 방법이 막힌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해서 빈 선주라도 만들지 않으면 지금의 호선은 또다시 오백 년, 어쩌면 천 년을 수행해야 처음부터 선주를 만들어 선기를 쌓아 등선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막을 사람도 없고.”
마침 주변에는 그런 호선을 막을 만우도 없었다. 그리고 한양 한복판에서 혈성을 드러낸 인간은 선량하고 무고한 양민들을 해칠 것이다. 그야말로 호선(虎仙)이 친히 나서야 할 절호의 기회다.
“헤헤. 그럼…….”
호선의 신형이 쭉 하고 늘어나는가 싶더니 멀리 떨어진 곳의 지붕을 살포시 밟았다. 그렇게 축지법을 사용한 호선의 신형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면서 혈성의 기운이 느껴지는 곳을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