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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2.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2) (252/400)

252.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2)2021.05.29.

무기를 든 상대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괴검(怪劍) 문형일은 무림의 생리를 너무나도 잘 알았다. 와아아아아!!!! 그런데 그 때, 사무라이들과 닌자들 사이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사무라이들과 닌자들이 두 패로 나뉘었다가, 한 패가 패주하여 달아나는 것이 동군영의 눈에 들어왔다.

16553252252049.jpg“어느 쪽이…… 설마. 천황이 패주한다?”

동군영은 저 멀리 먼저 패주하여 어소를 빠져나가고 있는 쪽이 천황이란 것을 발견하고는 두 눈을 크게 떴다. 결국 요시미츠가 기습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천황의 세력을 물리친 것이다. 진혼대 고수들이 펼친 음공이 만우와 문형일에 의해 무너지고, 질적으로 훨씬 더 우수한 요시미츠의 닌자와 사무라이들이 우위를 점한 것이다. 하지만 동군영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16553252252049.jpg“이겼는데?”

분명 이긴 것은 요시미츠 쪽이다. 하지만 요시미츠의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은 천황을 추격하지 않았다. 오히려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철수할 준비를 하는 것이 동군영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16553252252049.jpg“문 별감. 부탁합니다.”

문형일은 동군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경공을 펼쳐 요시미츠가 있는 쪽으로 향했다. 그리고는 잠시 후, 허공을 격하며 날아온 문형일이 동군영에게 말했다.

16553252252065.jpg“천황 쪽에서 동원한 병력이 요시미츠의 병력을 패퇴시켰다 합니다.”

16553252252049.jpg“패퇴요?”

동군영의 눈이 커졌다. 동군영은 요시미츠의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이 봉공중(호코슈)를 외치던 것을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했다. 밀리고 있는 상황에서도 믿을 구석이 있었다는 것은, 봉공중이라는 군대가 대단히 강력하다는 뜻이다. 반면 천황 쪽은 그런 봉공중이 오기 전에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의지를 몰아붙였던 것이고 말이다.

16553252252049.jpg“어쨌든 잘됐습니다.”

동군영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된 이상, 만우에게도 알려야 한다. 닌자와 사무라이 대전에서 요시미츠 측이 이겼다고는 하나, 상대가 군대를 패퇴시켰다면 요시미츠 쪽도 남은 패잔병들을 추슬러 다시 한 번 회전을 걸어야 한다. 닌자 사무라이와 군대. 이 두 개의 균형이 절묘하게 들어맞은 것이다.

16553252252049.jpg“만우에게도 이 사실을 알려야겠소. 만약 저들에 의해 우리가 요시미츠 쪽과 연결점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

16553252252065.jpg“예.”

문형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동군영이 몸을 돌리려는 순간, 보빙사가 덥썩 하고 동군영의 손목을 붙잡았다.

16553252252089.jpg“도, 동 감찰. 이, 이렇게 그냥 가시면 어떻게 하는가.”

16553252252049.jpg“그냥 가다니. 무슨 말씀이신지.”

동군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여의손은 간절한 표정으로 동군영에게 말했다.

16553252252089.jpg“우리를 지켜줘야 하지 않는가. 저자가 별감이고, 자네도 감찰이니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이고. 그러니 보빙사를 지켜야…….”

16553252252049.jpg“인삼을 밀수하여 이득을 취하시려고 했던 보빙사를, 제가 지켜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동군영의 말에 여의손이 펄쩍 뛰면서 손을 내저었다.

16553252252089.jpg“무슨 말인가 그게! 그리고 자네 말대로 그건 자네에게…….”

16553252252049.jpg“아. 그렇죠. 제가 가져갔죠. 제가…….”

동군영은 허리춤에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는 촹 하는 소리와 함께 발검했다. 그러자 여의손이 히익하는 소리와 함께 뒤로 나자빠졌다.

16553252252089.jpg“자, 자네 이게 무슨…….”

16553252252049.jpg“그러니까. 그 이야기를 한양에 가셔도 하실 것 같으니 그 입을 여기서 막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마침…… 의심도 받지 않을 것 같고.”

동군영은 핏자국이 자욱한 주변을 둘러보면서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살인멸구. 동군영의 말에 여의손이 손을 내저었다.

16553252252089.jpg“아, 아니. 그건, 그건 실수일세. 내가 그러려던 것이 아니라…….”

이곳에서 죽는다면 말 그대로 개죽음이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여의손은 여기서 죽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동군영의 말대로 여기서 죽는다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여길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여의손은 진짜로 저 검이 자신에게로 향할까 싶어 손을 내저었다.

16553252252089.jpg“아니, 되었네. 되었어. 암. 이곳을 뒷수습하고 정리하려면 사람이 필요하겠지. 자네나 문 별감은 되었네. 허허허허. 되었어.”

여의손의 말에 동군영은 씩 웃고는 납검했다. 그리고는 여의손에게 말했다.

16553252252049.jpg“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대감.”

16553252252089.jpg“어허허. 걱정하지 마시게. 어허허허.”

여의손이 발바닥에 부리나케 도망가는 것을 본 동군영이 몸을 돌렸다. 그러자 앞에 서있던 문형일이 놀란 눈으로 동군영을 쳐다보다가 박수를 쳤다.

16553252252065.jpg“나리.”

16553252252049.jpg“와. 떨려서 죽는 줄 알았네. 어떤가. 만우 흉내를 내봤는데.”

동군영이 호들갑을 떨면서 하는 말에 문형일은 피식 웃었다.

16553252252065.jpg“최고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보빙사를 베어버리려고 하셨던 겁니까?”

만우를 흉내냈다는 동군영은 제법 그와 비슷했다. 만우와 비슷하게 막무가내처럼 보이면서도, 언제든지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동군영은 무슨 소리냐는 표정으로 문형일을 쳐다봤다.

16553252252049.jpg“응? 내가 그럴 리가. 한양에 돌아가서 난 죽고 싶지 않네. 그리고 보빙사가 무슨 죄라고 죽이기까지 한단 말인가?”

16553252252065.jpg“밀수는 그 정도의 중죄가 아닙니까.”

문형일의 말에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16553252252049.jpg“그건 주상전하께서 결정하실 일이네. 난…… 그냥 보빙사의 입을 다물게 해야겠다 싶어 만우 흉내를 냈을 뿐이네.”

동군영의 말에 문형일은 고개를 돌리면서 갸웃거렸다.

16553252252065.jpg“이래서 어릴 때 부모님이 친구를 잘 사귀라고…….”

초록동색, 근묵자흑이라 했던가. 어느새 만우에게 물든 동군영을 보면서 문형일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 꽈릉!!!!! 혈세천마가 한 걸음을 내딛은 순간, 주변의 마기가 요동치면서 만우를 짓눌렀다. 군림이라는 것은 본래 사람들의 위에 군림하는 것이다. 쩌저적!!!! 만우가 선 곳을 제외하고, 혈세천마의 한 걸음이 향한 곳의 땅이 모두 주저앉았다.

16553252310616.jpg“큭큭큭.”

혈세천마는 옴짝달싹하지 못 하는 만우를 보면서 광소를 터뜨렸다. 동시에 혈세천마가 한 걸음 더 내디뎠다. 군림을 위한 걸음은, 한 걸음으로 끝나지 않았다. 콰지직!!! 불복하는 자가 있다면, 불복을 할 때까지 걷는 것이 군림자의 걸음이다. 그리고, 군림의 걸음이 많아질수록 불복한 자에게 가해지는 압력은 강해지는 법이다. 콰지직!!! 만우의 발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가 일어났다. 만우의 발이 발목까지 땅을 파고든 것이다. 혈세천마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우지직!!!! 그러자 몇백 년을 버텼는지 모를 암석이 퍼석하고 깨져나갔다. 동시에 검은 마기가 뭉클거리며 천마의 존재감을 사방에 퍼뜨렸다.

16553252310616.jpg“어디까지 버티나 보자꾸나.”

콰지직! 콰지직!!!! 혈세천마의 천마군림보의 만우의 두 다리가 무릎까지 땅바닥에 박혀들었다. 그냥 서 있던 사람의 두 다리가 땅에 박혀들 정도라는 것은, 극한까지 수련하지 않은 신체라면 그 압력만으로도 눌러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16553252310616.jpg“어떠냐. 검주.”

혈세천마는 만우가 무릎까지 땅에 박힌 턱에 자신보다 낮아진 만우를 내려다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하지만, 만우의 표정을 본 혈세천마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16553252310616.jpg“무슨…….”

만우의 표정이, 마치 안마라도 받고 있는 것처럼 평온하기 그지없었기 때문이다. 다리가 무릎까지 땅에 박힌 사람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평온함이었다.

16553252341641.jpg“공간을 점하는 무공이라.”

만우는 당황한 혈세천마의 얼굴을 올려다보면서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군림보는 검이나 권으로 펼치는 무공과는 달리 공간 자체를 지배하는 무공이다.

16553252341641.jpg“재밌을 뻔했어.”

만우는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혈세천마에게 말했다. 혈세천마의 가슴속에 한 줄기 불안이 피어올랐다.

16553252341641.jpg“혈세천마, 네 무공의 화후나, 공력이 더욱 깊었더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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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자자자작!!!!! 무릎까지 박혔던 만우의 주변에, 갈라졌던 땅이 아예 통째로 부서지더니 자갈과 부서진 돌조각, 흙이 허공으로 솟구쳤다. 턱, 턱. 그리고 무릎을 붙잡아 놓고 있던 땅을 그대로 부셔버린 만우가 천마군림보의 공간지배를 전혀 받지 않는 것처럼 가볍게 무너진 땅을 밟고 걸어 나왔다.

16553252341641.jpg“천마군림보. 역시. 아쉬워 혈세천마. 그대가.”

만우는 공중에 떠있는 혈세천마를 응시했다. 오싹. 그 순간, 혈세천마의 등줄기에 소름이 오소소 돋았다. 혈세천마는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려 천마의 무공이다. 그리고 자신은 극마에 이르러 탈마를 목전에 둔 일패, 무림십좌의 일패다. 그런데 고작해야 사주 중 말석을 차지하고 있는 검주에게 피부가 오싹한 공포를 느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16553252310616.jpg“크아아아압!!!!”

혈세천마가 기합을 내지르는 사이로 만우의 평이한 목소리가 피어올랐다.

16553252341641.jpg“초대 천마가 아니라는 것이. 그 자를 만나보고 싶군. 정말로 재밌었겠어.”

즉, 초대 천마가 아닌 혈세천마는 만우에게 재미조차도 주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 아쉬움이 가득 담긴 만우의 목소리에 혈세천마의 얼굴에 핏줄이 툭툭 불거져 나왔다. 콰아아아!!!! 그런 혈세천마의 양 손에서 거무튀튀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불안하게 흔들리긴 하지만, 또렷한 권강(拳强)이었다.

16553252310616.jpg“천마강림(天魔降臨).”

혈세천마의 전신에서 무시무시한 마기가 폭사됐다. 천마신공의 오의가 혈세천마에 의해서 펼쳐진 것이다. 하지만 만우의 눈은, 여전히 따분함과 아쉬움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16553252341641.jpg“재미없다니까.”

쿠웅-!!!! 혈세천마의 눈이 커졌다. 순간적으로, 그의 귀에는 들렸다. 그의 몸에 내려앉은 마기가, 그 모든 마공의 위에 군림한다는 천마신공의 마기가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16553252341641.jpg“극마라고는 하나 제대로 된 싸움을 모르는 놈을 봐주면서 손속을 나누는 것도.”

무림에 출도한 이들 중 소위 말한 명문이라는 것들의 약점을 혈세천마는 고스란히 가지고 있었다. 아니, 그가 천하제일인이라는 일패(一覇) 자리에 너무 오랫동안 올라 있어 안주를 해버린 것일까. 혈세천마는 상대를 보는 눈(目)이 흐려져 있었다. 상대와 나의 차이를 가늠할 수 있는, 무림의 모래알처럼 많다는 삼류 낭인들조차도 자기들끼리 다툼을 벌이기 전에 하는 것을 혈세천마는 외면했다. 천마신교와 일패라는 자만이 그의 눈을 가린 것이다. 그의 끝을 확인한 만우는 더 이상 그에게서 볼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했다.

16553252341641.jpg“그게 네놈이 가진 것의 전부라면.”

만우의 주변으로 자욱한 기가 깔리기 시작했다. 해가 뜰 때쯤, 십만대산의 봉우리들을 자욱하게 물들이며 휘감는 운무였고, 하늘의 구름 같은 기(氣)의 집합체였다. 혈세천마는 뭉클거리며 만우 주변으로 몰려드는 기 사이로, 여전히 무감정하게 빛나는 만우의 눈을 보면서 등골이 오싹해져오는 것을 느꼈다.

16553252341641.jpg“네 아들놈보다 못한 놈이니, 그곳에 있을 자격이 없어 보이는군.”

화륵!!! 만우의 신형이 기천 안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 기천 안에서, 시퍼렇게 타오르는 광망이 만우의 존재감을 그대로 드러냈다. 만우는 자신의 모습을 감춘 것이 아니다.

16553252341641.jpg“기천무(氣天舞).”

기천 제오초식. 기천무.

16553252310616.jpg“크아아아아!!!!!”

혈세천마는 두려움을 떨쳐버리려는 듯, 시커멓게 타오르는 권강을 더욱더 키우며 자신을 덮쳐오는 기의 하늘을 향해 주먹을 내뻗었다. 콰아아아아!!!!! 혈세천마의 일권, 일권은 소림의 백보신권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대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아무리 강해도 적을 맞추지 못하면 말짱 꽝이다. 혈세천마는 자신의 권강이 기의 하늘 속으로 너무나도 허무하게 사라지자 발악하는 것처럼 권강을 쏘아보냈다. 극마라는 단계를 넘어, 무리해서 혈세천마는 탈마의 경지에 올라야만 쓸 수 있는 것들을 쓰고 있었다. 그러지 않고서는, 공포를 떨쳐낼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16553252310616.jpg“어디 있느냐. 비겁하게 숨지 말고 나와라!!!!!”

혈세천마는 어느 순간 자신이 주변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기천 속에 들어와 있음을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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