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1)2021.05.25.
“크하앗!!!”
혈세천마가 검은 마기로 이글거리는 주먹으로 만우의 흉부를 노렸다. 혈세천마의 흉험한 마기가 만우의 가슴팍을 부서뜨릴 생각으로 뻗어져 왔다.
“천마권(天魔拳).”
만우는 혈세천만의 독문무공인 천마권을 보면서 감탄했다. 일반 사람이 인지할 수 없는 속도로 공방을 나누고 있는 만우와 혈세천마였지만, 혈세천마의 천마권이 천하일절이라는 것을 만우는 느낄 수 있었다. 우르릉!!!!! 혈세천마의 주변으로 우르릉거리며 대기가 울음을 터뜨렸다. 강대한 혈세천마의 마기에 공기가 밀려나면서 비명을 내지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짙은 마기에 맞서듯, 만우의 이룡검에서 찬란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꽈앙!!!!! 혈세천마의 천마권이 이룡검으로 출수한 기천의 기면(氣面)에 막혔다. 하지만 그 충격에 주변의 대지가 퍽퍽하고 부서져 나가는 것이 만우의 눈에 들어왔다.
“이것이 바로 천마신공(天魔神功)이니라.”
혈세천마는 껄껄거리며 웃었다. 만우는 솔직히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더럽게 무식하고 패도적인 무공이네?”
“신교의 초대천마이자 신(神)이신 천마께서 만드신 무공이니라. 그 무공이 범상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냐?”
혈세천마는 흘흘거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천마신공이 괜히 신공이라 불리는 것이 아니다. 전설에 따르면 천마신교를 세운 초대천마는 그 무공이 하늘에 닿았다 알려져 있었다. 정파의 무공이 태산북두라 불리는 소림사의 달마대사에 의해 만들어져 파생된 것이라면, 마공의 대부분의 기초와 뿌리를 만든 사람이 바로 초대 천마였다. 그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알았고, 그것으로 무수히 많은 무공을 만들어냈다. 현재 무림에서 이어져 내려오는 거의 모든 마공들은 이 초대 천마가 창안한 무공에서 변형이 되거나 파생이 되어 내려온 것이라 봐도 무방했다. 그러나 결국, 초대 천마의 모든 깨달음과 무학이 담긴 천마신공을 익힌 자가 마도(魔道)의 정점인 천마신교의 교주에 오를 수 있는 것이다. 모든 마공은 천마신공의 아류일 뿐이니, 가장 심오한 무학을 담고 있는 천마신공을 익힌 자만이 천마신교의 교주에 올라 천마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이어받을 수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마교인들은 천마라는 신을 모셨다. 그렇기 때문에 천마신교란 이름으로 스스로를 지칭하는 것이다. 마공의 원류.
“거 참. 시끄럽네. 네놈처럼 시끄럽고 무식한 무공일 뿐이잖아 그건.”
하지만 그런 천마신공에 대한 만우의 평가는 무자비할 정도였다. 만우의 심드렁한 평가에 혈세천마의 두 눈에 귀화가 피어올랐다.
“놈!”
“왜. 내가 틀린 말을 했어?”
만우는 히죽 웃으며 혈세천마를 도발했다. 혈세천마의 전신에서 뭉클거리며 마기가 풍겨져 나오기 시작했다. 푸화아악!!! 그에 뒤지지 않고 만우도 공력을 끌어올렸다. 그러자 만우의 전신에서 폭발적으로 공력이 뿜어져 나오면서 만우의 머리카락이 거꾸로 치솟았다. 고오오오!!! 파지지직!!!! 만우가 뿜어낸 공력과 혈세천마의 마기가 공중에서 부딪치면서 밀고 밀어내기를 반복했다. 만우는 재밌다는 듯, 입술을 혀로 할짝 핥고는 이룡검을 손에 쥐었다.
“확실히, 그 곡왕이란 놈보다는 강해.”
아래에서 보기에는 화경이 대단히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정작 화경에 올라가면 그 안에서 다시 한 없이 이어진 길을 보게 된다. 화경은 무의 정점이 아니라, 첫 번째 언덕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화경이라고 해서 동등한 것은 아니었다. 그 증거로, 곡왕 부고야는 만우를 단 한 번도 오싹하게 만들지 못했다. 음공이란 것이 까다롭기는 해도, 만우와 부고야 정도의 격차라면 아무런 해를 입힐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혈세천마는 아니었다. 그의 마기는, 만우을 오싹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팔과 다리에 닭살이 돋아 만우는 환하게 웃었다. 이 느낌. 강자와 마주했을 때의 이 짜릿한 희열, 만우는 바로 이것을 원했다.
‘진법이 있어서 다행이야.’
그리고 만우는 살인진이 있어서 다행이라고 느꼈다. 이 살인진이 만우의 공력을 끈질기게 잡아두고, 무겁게 만드는 턱에 이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재미가 없었겠지.’
만우는 히죽 웃었다. 이건 마치 손에 이십 근짜리 추를 달아두고 상대와 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지만 그래야 균형이 맞았다.
“입을 찢어주마. 건방진 놈.”
“하. 함정을 파놓고, 인질도 잡은 놈이 입만 살아서는. 역시, 시끄러운 놈답게 시끄러운 무공을 쓴다니까?”
“노옴!!!!!”
패도적인 기운이 가득 담긴 혈세천마의 권이 기묘한 방위를 점하며 만우를 향해 날아들었다. 만우는 그 간단한 일권에 담긴 무리(武理)에 감탄하며 몸을 뒤틀었다. 카가가강!!!! 만우의 이룡검이 혈세천마의 검을 빗겨냈다. 그러자 불똥이 파바박하고 만우의 눈앞에서 튀어올랐다. 도저히 검과 주먹이 맞닿았다고는 믿을 수 없는 현상이었다.
“기극.”
그렇게 혈세천마의 일권을 무위로 돌린 만우의 손이 순간적으로 흐릿해졌다. 극쾌의 찌르기. 만우의 손에서 기극이 펼쳐지자 퍽 하는 소리와 함께 혈세천마의 몸이 빙그르르하고 뒤로 돌아갔다. 혈세천마가 기극의 여력을 해소하기 위해 몸을 회전시킨 것이다. 하지만 곧바로, 혈세천마는 사량발천근(四兩拨千斤)의 한 수와 함께 만우를 향해 발을 내뻗었다. 이 역시도 천마신공의 무리가 녹아들어있는 천마보(天魔步)의 초식 중 하나였다.
‘천마란 사람. 아무래도 무(武)의 화신, 이런 게 아니었을까.’
만우가 이렇게 생각할 정도로 천마신공을 익힌 혈세천마는 모든 움직임 하나하나에 무리가 녹아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우를 넘을 정도로 압도적이냐?
‘그렇지는.’
문제는 혈세천마에게 있었다. 물론, 본인은 전혀 모르고 있는 것 같지만, 진인의 경지에 도달한 만우의 눈에는 보였다. 혈세천마의 약점이.
‘저 아이들 문제만 해결이 되면.’
만우는 슬쩍 곁눈질로 방매와 김향을 쳐다봤다. 두 소녀의 목에 단검을 대고 있는 마원을 보자 저절로 이가 뿌득하고 갈렸다.
‘네 놈은 곱게 죽이지 않겠다.’
인질만 아니라면, 만우는 혈세천마를 쳐죽였을 것이다. 하지만 혈세천마가 수세에 몰리면 마원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기 때문에, 만우는 시간을 끌었다. 그리고 솔직히, 천마신공이란 고절한 무학을 조금 더 견식해보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도 아니고. 퍼엉!!!!! 주르륵!!! 순간적으로 기면을 펼쳐 혈세천마의 장력을 받아낸 만우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렸다. 그 안에 담긴 여력까지 해소할 방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만근추로 몸이 밀려나지 않도록 두 발을 땅에 단단히 고정한 만우에게 짙은 마기를 전신에 휘감은 혈세천마가 한 발을 내딛었다.
꽈릉!!!! 진각. 혈세천마가 내딛은 곳에 거미줄 같은 실금이 일어나며 땅이 부서져 나갔다. 동시에 만우는 강력한 압력이 어깨를 짓누르는 것을 느꼈다.
“천마군림보(天魔君臨步).”
혈세천마가 뭉클거리는 마기를 뿜어대면서 만우를 보며서 악마처럼 웃어보였다. *****
“저게…….”
“…….”
심후한 그들이 내공으로도 보이지 않을 거리에서 뭉클거리며 피어오르는 마기(魔氣)에, 침음성과도 같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거대한 마기가 피어오르는 것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것은 영물인 호선이었지만,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감령과 필두, 그리고 투귀대의 고수들은 물론이거니와 화경에 오른 척사영과 여포의 표정이 더할 나위 없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들이 감각을 자극하는 흉악한 기세 때문이었다.
“교주.”
“천마신공.”
무공의 경지가 일천해 가장 늦게 눈치 챈 마일의 입에서 천마신공이란 말이 흘러나왔다. 저 정도의 강대한 마기라면, 교주인 혈세천마가 유일했다.
“지독한 기운.”
호선은 소름이 돋는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선기(善氣)를 품은 호선에게 마기는 상극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그녀가 타락하면서 몸에 쌓였던 낙기(落氣)보다 더욱 오염된 기운이 바로 마기였다.
“교주가 나섰다는 것은.”
“검주가 교주와 조우했다는 뜻이겠지.”
위문의 말에 백영이 대답했다. 그러자 척사영의 눈이 떨렸다. 그녀에게 있어 만우는 은공이다. 은공이 저런 흉악한 마기와 맞서고 있다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아니다. 그 분은 이기실 것이다. 강하신 분이니까.’
만우는 강하다. 그 확고부동한 믿음을 다잡으려 척사영은 애썼다. 하지만 이렇게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저릿하게 느껴질 정도의 가공할만한 기운이다. 그런데 그 때, 휙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경공으로 가까워져 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바람소리와 함께 연회가 열리는 어소에 있어야 할 문형일과 동군영이 나타났다.
“만우, 만우는 어디에 있는 건가?”
동군영이 문형일의 등에서 내렸다. 문형일의 등에 업혀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동군영은 내리자마자 감령과 필두에게 물었다. 감령과 필두가 손가락으로 거대한 마기가 피어오르고 있는 금각사를 가리켰다.
“저곳에? 이보게 문 별감. 어서 저곳으로 가서 만우에게…… 문 별감?”
내공을 익히지 않은 동군영은 흉악한 마기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문형일은 온 몸을 조여 오는 것 같은 심상치 않은 마기를 느끼고는 고개를 돌렸다.
“아니. 이보시게. 문 별감!”
“갈 수 없습니다.”
문형일은 굳은 얼굴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무공을 익힌 문형일은 느낄 수 있었다. 저곳에 가는 것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자살 행위다. 이리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살이 다 저릿할 지경인데.
“그, 그러면 어찌하자는 것인가! 군대가, 군대가 교토로 몰려오고 있거늘!!!!”
“군대라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동군영의 말을 들은 마일이 급히 뛰어나오며 동군영에게 경위를 물었다. 동군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니까 그게 말이오…….”
***** 문형일이 검을 들고 나섰기 때문에, 동군영은 난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물론, 그런 동군영을 발견한 보빙사 여의손이 구르듯이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의 싸움을 피해 동군영 뒤로 달려온 것은 덤이었다.
“도, 동 감찰. 동 감찰. 나도, 나도 살려주시게. 나도.”
여의손은 갑자기 칼부림이 일어나자 적잖이 놀란 모양이었다. 동군영은 여의손을 보면서 고개를 주억거렸다. 만우를 만나기 전에 자신이 딱 저랬기 떄문이다. 검이란 건 그냥 장식품인 줄 알았던 바로 그 때. 그 때 만우 때문에 크고 작은 싸움이 휘말리면서 얼마나 놀랐던지.
‘그러고 보면 꽤 익숙해졌네.’
그 때와 지금의 동군영을 생각해보면 거의 다른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다. 물론 지금도 보는 와중에 가슴이 철렁거리고 심장이 두근거리기는 했으나, 그 때는 아예 쳐다보지도 못하고는 벌벌 떨었었다. 그 때를 생각하면 경천동지할 정도의 변화였다.
“가만히 계시면 됩니다. 문 별감의 무예가 뛰어나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하도 만우를 비롯해 고수들을 봐왔기 때문에, 동군영은 문형일을 해할 자가 이 안에는 없음을 똑똑하게 기억했다. 거기에 이곳에 있는 모두가 적이 아니라, 적어도 요시미츠는 아군은 아니어도 적도 아니었기 때문에 문형일이면 얼마든지 대처가 가능함을 잘 알았다.
“보빙사께서는 다른 사람들을 수습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그래도 동족인데, 동족들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고 있을 수 없었기에 동군영은 보빙사에게 말했다. 마음 같아서는 가문을 멸문시킨 마교를 잡기 위해 뛰쳐나간 만우를 쫓아 어서 그곳으로 가고 싶었다. 마교. 평화롭게 살던 자신의 가문을 멸문시킨 그 원수들이 만우의 검에 의해 죽어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촤악!!!! 문형일의 검이 진혼대 고수의 목을 예리하게 갈랐다. 닌자들과 사무라이들이 뒤섞이고, 그 사이에 진혼대의 고수들이 휘말리면서 음공은 깨진 지 오래였다. 애초에 그리 강한 음공이 아니었긴 했지만, 문형일은 자신에게 무기를 휘두르면서 달려드는 적들을 한 명도 살려두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