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 호위무사가 되어라(4)2020.10.13.
소령은 말끝을 흐렸다. 정의대의 분위기는 침울하기 그지없었다. 자기 문파에서 다들 콧대가 높아져 있다가 처음으로 조선에 와서 개박살이 나고, 동료가 죽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지.”
검인의 눈꼬리가 쳐졌다. 만우는 그런 검인과 소령을 보다가 기가 차다는 듯 말했다.
“아직도 그거 가지고 그러고 있다고? 됐다. 그놈들, 돌아가면 문파에 처박혀 있으라 그래. 아서라. 무림출두는 무슨.”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달포가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 무력감과 패배감에 사로잡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은 무림인으로서 실격이다. 무림인은 내공과 몸을 단련하는것 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마음과 정신을 다스리는 법이다. 검과 무공을 옆에 두고 사는 이상 죽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것은 가장 친한 동료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패배감과 상실감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없다. 그것은 만우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시 발전의 기회로 삼느냐, 혹은 그것에서 얼마나 빨리 빠져나오느냐는 정신력에 달린 법이다. 그런 점에서 정의대의 고수라는 놈들은 대부분이 무림인 자격 실격이었다.
“그런 혹독한 전투를 겪어본 자들이 얼마나 된다고. 다들 괜찮아질걸세.”
“쯧쯧…… 그러니까 살풍대가 중원을 횡단하는 것도 모르고 있었지.”
만우는 혀를 쯧하고 찼다. 살풍대가 마교에서 출발해 조선에 오기 위해서는 중원을 횡단해야 한다. 그런데 무림맹은 그들의 움직임을 놓쳤다.
“아니. 놓친 게 맞기는 맞아? 이 기회에 무림맹도 나 죽이겠다고 한 손 거든 거 아니야?”
“만우! 맹에 마(魔)와의 타협은 없네!”
그런 만우의 의심에 검인이 발끈했다. 하지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검인. 너를 의심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난 기본적으로 무림의 그 누구도 믿지 않아. 정파나 사파나 마교나. 내 눈엔 다 똑같은 놈들이야.”
정파라고 해서 만우를 덜 핍박하거나 사파나 마교라고 해서 만우를 더 핍박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편의에 의해 이름을 붙여 파벌을 나누고 있을 뿐이지 그 근본은 다르지 않다.
“그러니 똑같은 놈들끼리 손을 잡는다고 해서 이상할 건 없어. 아니라고 하지 마. 그렇다는 걸 내가 수도 없이 겪어봤으니까.”
화산파나 소림사 정도가 아니면 만우는 정파도 믿지 않았다. 화산파야 만우가 직접 겪어보았고, 소림의 땡중들은 대부분 자기 수양에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파에도 만우는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이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들 만우에게 가문의 고수들이 한두 번씩은 깨져 창피를 당한 문파나 세가들이다.
“그…….”
“됐어. 그러면 교지나 볼까?”
검인의 말문을 막아버린 만우는 교지를 탁하고 펼쳤다. 그리고 교지를 내려가던 만우의 눈썹이 꿈틀했다.
“삼한제일검? 나보고 인형극을 하라고? 이 왕이 미쳤나.”
와작하고 교지를 구겨버리려던 만우의 손이 멈칫했다. 교지의 맨 끝에 조선의 왕은 현명하게도 만우에게 내밀 달콤한 당과를 적어놓은 것이다.
“김약항…… 어르신을 광산군(君)으로 복원하고, 가문을 복구한다. 그에 따라 김약항의 손녀인 김향을 다시 양반 신분으로 되돌린다?”
만우는 계속해서 읽어내려간다.
“그리고 원한다면, 둘쨰 효령군과의 혼인을 추진하여 김향을 왕가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만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얄밉게도 임금은 만우가 원하는 것을 모조리 꿰뚫고 있었다. 만우에게는 천금(千金)이나 되는 재물도 소용이 없었고 그렇다고 여자나 명예를 원하지도 않았다. 그런 만우가 조선에 온 이유는 순전히 김향 때문이다. 그런데 김향의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고 하니, 만우가 한 번이라도 더 고민할 수밖에 없게끔 만드는 것이다.
“괜히 왕이 아니야. 여우 같은 국왕 같으니라고.”
만우는 투덜거렸다. 하지만 왕의 교지에 실린 내용은 거기가 끝이 아니었다.
“또한 이번 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춘추관 기사관 겸 암행어사 동군영을 사헌부(司憲府) 정4품 장령(掌令)에 임명하여 승진토록 하고 원 기마대의 조선 국경 침입 사건에 대한 감찰을 맡긴다.”
만우는 교지를 접었다. 암행어사는 임시직이다. 그리고 춘추관 기사관은 정6품의 관직이었다. 그런데 그런 동군영을 단박에 사헌부 정4품 장령으로 승진을 시켜 이번 사건에 대해 전권을 맡긴다는 뜻이다.
“사헌부라.”
만우는 사헌부가 어떤 일을 하는지는 잘 모르지만, 이번 일에 대한 감찰의 전권을 맡길 정도라면 결코 힘이 작지 않은 곳이라 판단했다. 만우의 예상대로 사헌부(司憲府)는 각사나 지방에 파견하여 부정을 적발하고 그에 대한 법적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곳이었다. 때문에 형조(刑曹), 한성부와 더불어 출금삼아문(出禁三衙門)이라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곳이었다. 거기에 관원의 인사에도 관여하여 임금이 임명한 관원의 자격을 심사하여 이에 대한 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정도이니, 인사권과 사법권을 겸한 곳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곳의 장령이라면 종2품 대사헌 밑으로 한 명 있는 종3품 집의(執義)를 제외하면 가장 높은 관직이다.
“전하께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조치를 취했다고 하시더군.”
검인도 조선의 관직체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임금이 말한 대로 만우에게 말했다.
“옹주의 호위무사? 내가 방매의 호위무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최, 최대한 신경을 쓰시겠다고 전하께서 약속하셨으니 괜찮을걸세.”
“……후우.”
만우는 부글거리는 속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그냥 걷어차기에는 임금이 보증을 해준 보상들이 너무나도 좋았다. 특히 김향과 동군영의 일을 가장 나은 방향으로 처리해 줬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다. 제길. 해. 해야지. 연기나 하면 되는 거라면서.”
“자세한 것은 입궐하면…….”
“좋아. 좋아. 제대로 한 번만 하면 되겠지. 안 그래?”
만우가 검인을 보며 물었다. 검인은 아무것도 모르고 만우의 시선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기랄. 호위무사라니. 내가, 팔자에도 없는 호위무사라니!”
***** 쉭! 쉬익!!!! 검은 무복의 목깃 부분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밤 중이기 때문에 티가 나지 않았다. 비교적 추운 북방 지역이 아닌 남방 지역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입김이 펄펄 나올 정도로 추운 날씨임에도 불구하고 검을 휘두르는 이는 무아지경에 빠진 것 같았다.
“후욱. 후욱.”
베기와 찌르기, 사선베기 같은 간단한 기본에 불과했지만 남자의 움직임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기초를 신경 써서 배웠다는 것이 티가 났다. 그렇게 한 시진을 넘게 휘두른 남자가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는 검을 검집에 꽂은 후 터벅터벅 걸어 가죽수통에 든 물을 벌컥거리며 마시고는 나무에 등을 기대고는 털썩 주저앉았다.
“어떻습니까. 조금 나아진 것 같습니까?”
“예.”
바스락. 분명 아무도 없는 숲속 공터였지만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허공에 대고 말을 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것처럼 나무 위에서 선이 얇은 것이 여자임이 분명한 이가 떨어져 내렸다.
“무사님. 더 강해질 수 있을까요?”
무사라 불린 여자, 척사영은 땀으로 흠뻑 젖은 동군영의 얼굴에 쉽사리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빈말을 해 상대에게 헛된 희망을 품게 하지 않는다.
“그렇군요. 너무 늦게 시작한 거겠지요?”
땀으로 흠뻑 젖은 얼굴의 남자, 동군영이 흐릿하게 웃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이었다. 척사영은 그런 동군영의 얼굴을 보면서 말했다.
“미래는 모르는 법입니다. 무예는 근골이 유연한 어릴 때 시작하는 경우가 많지만, 늦게 시작한다고 해서 빛을 보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그 확률이 극히 적을 뿐이지만, 이란 말을 빼먹은 척사영은 동군영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지난 달포 동안 많이 가까워진 둘이었다. 동군영은 가문을 수습하기 위해, 그리고 척사영은 무사로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돕겠다며 남아서 한 달이 넘는 남짓의 시간을 함께 보냈기 때문이다.
“그런 어색한 위로, 그래도 많이 도움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동 어사님은 충분히 강하십니다.”
“강하다…….”
동군영에게 ‘강함’을 그려보라고 하면 숨도 쉬지 않고 곧바로 그려지는 이가 있었다. 바로 만우였다. 동군영의 생각을 눈치챈 척사영이 동군영에게 말했다.
“은인은 용(龍)입니다. 용을 따라가기 위해 인간이 쫓아가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틀 안에서 강해져야 하는 법입니다.”
“제게는 척 무사님도 봉(鳳)인 것처럼 보입니다. 강하다는 건 두 분을 보고 하는 말이겠지요.”
동군영에게 만우는 모든 것이 다 강한 사내였다. 무력은 물론, 정신력조차도 동군영 자신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했다.
“제가 만우의 반만큼 강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원의 기마대가 휩쓸고 간 익주동가는 풀 한포기 나지 않을 정도로 폐허가 되어있었다. 원의 기마대는 목적을 가지고 살육을 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지나가는 길에 그곳에 들려 보급을 하고, 그러면서 모든 이들을 죽였다. 아이부터 시작해 개나 닭까지. 원의 기마대가 휩쓸고 지나간 익주동가에는 살아남은 생명체가 단 하나도 없었다. 동군영은 그런 본가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분노를 느꼈다. 그리고는 그날부터 낮에는 익주동가를 다시 세우기 위해 동분서주하며 뛰어다니고, 밤에는 검을 잡았다. 강해지기 위해. 만우처럼. 그래서 또다시 가문을 잃지 않기 위해 검을 잡은 것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자신이 조금도 강해지고 있다고 느끼지 못했다. 만우라는 벽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었다. 척사영은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약한 동질감을 느꼈다. 만우를 보면서 자신의 나약함이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은 척사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그녀를 구한 은인이지만, 그 전에 척사영은 만우를 뛰어넘을 하나의 산으로 보았다. 하지만 그 산은 북방에 있는 백두산(白頭山)보다 더 높아보였다. 그 끝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마(心魔)인가.’
동군영은 심마에 빠져 있었다. 다행이라면 그가 내공을 익히지 않은 상태라 주화입마에 빠질 일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심마에 빠진 무인은 실력이 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그 상태에서의 수련은 자신의 몸을 좀 먹는다. 바라볼 수 없는 높은 산을 보면서 자꾸만 따라하려 하기 때문이다. 뱁새가 황새를 쫓다가 다리가 찢어지는 경우다.
“일어나시지요.”
척사영은 그런 동군영을 위해 검을 들었다. 동군영은 놀란 눈으로 척사영을 쳐다봤다. 척사영은 지금까지 동군영을 지켜보기만 할 뿐 나선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너무 높은 산을 쳐다보지 마라, 그게 동 어사님의 몸을 좀 먹는다 하여도 알아듣지 못하시겠지요. 그러니.”
척사영의 눈이 동군영을 훑었다. 늘 차분해보이던 척사영의 눈이 이글거린다는 것에 동군영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그런 생각 따위, 들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그러니 검을 드세요. 동 어사님.”
“처, 척 무사님.”
“어서요.”
동군영이 주춤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그런 동군영을 향해 척사영의 검집이 허공을 날았다.
“꿰엑!!!!?”
“잡생각은 패망의 지름길입니다. 다른 생각이 들지 않도록 해드리겠습니다.”
“자, 잠…… 꿰애애액!!”
동군영이 멱을 따는 소리가 밤하늘 높이 울려 퍼졌다. 익주에서 출발해 한양으로 향하는 관도 위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
“은공. 어서 오십시오.”
“……큼. 미안하게 됐습니다. 나으리.”
“아닙니다. 얼마든지 편하게 쓰셔도 좋습니다.”
설미수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만우를 맞이했다. 만우는 영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것이 퍽이나 웃겼다.
“그리 싫으십니까?”
“싫습니다, 나으리. 난 그냥 편하게 살고 싶습니다. 그런데 후…….”
“전하께서 은밀히 저를 부르셔서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말씀을 편하게 하셔도 됩니다.”
설미수는 한성, 도성인 한양을 다스리는 판한성부사이다. 한성판윤이라고도 불리는 그는 172간이나 되는 한성부 관아의 수장이자 8인의 관원을 두고 일을 한다. 격무에 시달려야 할 그를 임금이 친히 부탁하여 만우를 달래줄 것을 요청하였으니, 이번 일에 임금이 얼마나 신경을 쓰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습니까? 하아…….”
본래 설미수에게도 거침없이 반말을 했던 만우지만, 그가 먼저 자신을 존중하자 만우도 그에게 말을 높였다. 무엇보다도 조 부인이나, 설미수의 아들인 설윤도도 보는데 그 앞에서 말을 막 하는 것이 부담이 됐다.
“뭐가 이렇게 복잡한 겁니까. 왕이 아니라고 했으면 아닌 줄 알아야지.”
얼마나 답답했으면 만우가 설미수에게 답답함을 토로할 정도였다. 설미수는 부드럽게 웃었다.
“본래 정치란 것이 그런 법입니다. 왕과 신하들은 늘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는 입장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부강한 조선이 될 수 있사옵니다.”
“으흠…….”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왕권이니 뭐니 복잡한 개념이 나와야 하지만 설미수는 듣는 청자를 고려해 그 정도까지만 설명했다.
“왜의 사신이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사신을 그리 홀대한다는 것은 유학자들의 입장에서는 용납할 수 없는 일이옵니다. 허나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그에 대한 것을 대소신료들에게 소상히 밝혀야 하는 것은 당연한 법이지요.”
“왕이 한 일인데도 말입니까?”
“임금, 한 나라의 지존이라고 하여 다른 이들을 찍어누르기만 하면 그 누가 진정으로 주상전하를 따르겠나이까.”
만우는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삼한제일검이라니. 그것 때문에 연기까지 해야 한답니다. 안 어울리는 옷까지 입고.”
“야인(野人)으로 살았다고는 하나 옹주자가를 모시는 호위무사라면 그 정도 직함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드러나지 않았던 옹주자가니까요.”
“끄응. 반란 이야기까지 한다면서요?”
“조사의의 난(亂)에서 옹주자가와 은공께서 세우신 전공(戰功)까지 합쳐진다면 그에 대해 왈가왈부할 소인배는 없을 것이옵니다.”
“끄응…….”
조정의 일에는 설미수만큼 정통한 자가 없다. 적어도 만우가 당장 만날 수 있는 사람 중에서는 그랬다. 그 때문에 만우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제 안사람과 윤도도 은공을 보고 싶어 합니다. 특히 윤도가요.”
“그렇습니까?”
조 부인과 윤도가 화제에 오르자 만우의 표정이 슬며시 풀렸다. 만우는 떠나기 전에 윤도에게 입선건이라는 기물까지 선물로 주고 떠났다. 그 정도라면 윤도를 어여쁘게 여긴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요즘 한층 더 개구장이가 되어서 골목대장 노릇을 톡톡히 합니다.”
“또 목검을 들고 뛰어다니는 모양입니까?”
“예. 뭐, 자기가 만우 형아라면서…… 하하하.”
윤도의 귀여운 모습을 떠올린 만우가 흐뭇하게 웃었다. 그때 문 밖에서 일복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감마님. 궁에서 옹주자가의 치장을 위한 상궁과 나인들이 도착하였습니다요.]
“나가도록 하지. 아. 아마 은공의 의복도 저들이 지어왔을 것이옵니다. 가시겠습니까?”
“의복…… 후우.”
만우는 길게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거추장스러운 의복은 질색하는 만우다. 항상 검은 무복만을 입고 다녔기에 그게 가장 편했다.
“불편함을 하루만 참는다고 생각하시고, 그 후에 원하시는 것을 얻어간다고 생각하십시오. 그러면 조금 편하실 것이옵니다.”
“에잉…….”
어차피 방매와 만우가 조정 대신들을 만날 일은 없었다. 그저 방매와 만우가 실존한다고 대신들 앞에서 보여주기만 하면 된다. 그것을 대대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이례적으로 옹주의 행차를 널리 알리고 그것을 백성들이 볼 수 있게 한다고 했다.
“얼굴은 나만 팔리는데 말이야.”
어차피 왕족의 얼굴을 백성들이 볼 일은 없다. 가마 안에 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보이는 것은 만우뿐이다. 만우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설미수의 뒤를 따라 일어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