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너처럼 강한 여자는 처음이야(1)2020.03.10.
“형님. 이제 이깔나무만 있으면 됩니다. 그러면 이 검이, 이 검이…….”
간장은 잔뜩 흥분해 자신의 머리통만 한 크기의 거대한 크기의 비늘을 보고는 발갛게 상기된 채 펄쩍거리며 뛰었다. 하지만 간장과 만우를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전부 반쯤 넋이 나가있었다.
“스승님!!!”
하나 더. 양녕은 만우가 이무기를 끝끝내 굴복시키는 것을 보고서는 만우 앞에 넙죽 무릎을 꿇으면서 자신을 제자로 받아달라고 떼를 쓰고 있었다. 만우는 그런 양녕을 슬쩍 무시하고서는 동군영의 뒷통수를 따악하고 때렸다.
“어사 나리 씨!”
“악! 왜 때려!”
동군영이 멍하던 상태에서 빠져나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만우는 피식 웃었다.
“요즘, 검 휘두르는 걸 게을리 하던데? 내가 하루도 빼놓지 말라고 했지?”
움찔
“그, 그건…… 지금 우리가 이동 중이니까. 어제는 이무기까지 봤는데…….”
“그리고 방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가볍게 무시하고는 방매를 불렀다. 방매가 어깨를 파르르 떨었다. 만우가 보여준 신(神)적인 무위에 자신도 모르게 겁에 질렸을 때 나오는 반응이다.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익숙했기 때문에 만우는 방매에게 말했다.
“야. 원래 이무기가 있는 곳에는 자연기가 넉넉해서 진짜 산삼이니 뭐니 하는 것들이 그득한데. 뭐했냐?”
자신이 돌아다니면서 우르릉 쾅쾅 계곡을 다 부숴놓았지만 그것은 쏙 빼놓은 만우다. 그 소리에 방매의 눈에 불이 번쩍하고 켜졌다. 여전히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방매였다.
“진짜? 진짜? 나 그럼 돌아갈래. 응? 돌아갈래!!!”
산삼이라니. 산삼이라면 돈깨나 있다는 양반들이나 궐에서 억만금을 주고 사가는 값비싼 약초였다. 산삼 중 년수가 오래 된 것은 영약으로 취급을 받기도 한다. 그것을 놓쳤다는 것에 방매는 자신의 가슴을 탕탕하고 두드렸다.
“아직 멀었어. 멀었다고. 고작 이무기 따위에 놀라서 돈을 놓치다니…….”
이무기가 순식간에 ‘따위’가 되었지만 방매는 곡이라고 할 것처럼 머리를 쥐어뜯었다. 만우는 자신의 바짓자락을 움켜쥐려는 양녕의 손을 슬쩍 피하면서 초절정 고수 육인방을 쳐다봤다.
“야! 정신 안 차려? 슌스케. 너 어제보다 늦다?”
“헉! 빠, 빨리 달리겠습니다!”
콰가가가가!!! 만우의 일갈에 어제보다 더 만우의 눈치를 보고 있던 슌스케의 속도가 확 빨라졌다. 그러자 경공으로 옆에서 뛰어오던 남은 다섯 명도 퍼뜩 정신을 차렸다.
“역시 대장님이십니다!”
“대장. 최고!”
문형일과 마익후가 엄지손가락을 척하고 치켜세웠다. 최고라고 할 때 자기네 나라에서는 이렇게 한다고 마익후가 문형일에게 알려준 것이었다. 게다가 그 둘은 만우의 이 말도 안 되는 무위에 조금 더 단련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신을 차렸다. 감령과 필두, 이찬은 여전히 여운에 젖어 있었지만 공통점이 있었다. 만우를 쳐다보는 시선에 존경심과 경외심이 가득하다는 것이다. 만우는 남정네들의 시선에 부르르하고 한번 어깨를 떨어주고는 수레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아. 개운하네. 역시 사람은 몸을 움직여야지.”
이무기와 거하게 한 판을 한 것이 의외로 만우도 만족스러웠다. 그런데 그때, 앞장서서 달리던 슌스케가 뒤를 돌아보고 소리쳤다.
“주인님! 앞에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흙먼지?”
만우는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러자 슌스케의 말대로 저 멀리 앞에서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최소한 500 이상의 인원이 움직일 때 나는 흙먼지였다. 만우는 슌스케에게 턱짓으로 말했다.
“그냥 달려. 계속!”
“예!”
슌스케는 이미 이무기에게 비늘을 뜯어내던 만우를 두 눈으로 봤기 때문에 앞에 흙먼지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계속해서 달렸다. 만우가 멈추라고 하기 전까지는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두두두!!! 수레의 바퀴가 덜덜거리며 땅을 즈려밟았다. 그렇게 흙먼지에 점점 가까워져 가는 와중에, 만우의 눈이 가늘어졌다.
“저거 뭐야. 관복인데? 관병이라고? 그런데 왜 저 꼴이야?”
다른 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지만 만우의 눈에는 보였다. 그리고 더 거리가 가까워지자 다른 초절정 고수들의 눈에도 흙먼지를 일으키고 있는 이들의 몰골이 눈에 보였다.
“패잔병……?”
“왜 저 모양으로…… 꼭 도망치는 것 같지 않아?”
“오백이나 되는 관병이 나섰는데 졌다고? 아니, 반군이 벌써 한판 붙었나…….”
차례대로 한 마디씩을 했다. 그때 동군영이 관병이란 소리에 놀라 몸을 반쯤 일으켰다. 동군영이 만우에게 물었다.
“관군이라고?”
“어. 그런데 몰골이 패잔병인데? 오와 열도 안 맞추고 있고 겁에 잔뜩 질려 있고. 말을 탄 장수 놈도 없고.”
“벌써 반군과 관군이 조우했을 리는 없어.”
동군영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안변은 그들이 거쳐 온 문주보다 아래에 있었다. 만약 조사의가 정말 난을 일으키려 한다면 안변이 그 근거지일 것이다. 그러니 진압군이 가도 안변으로 갔을 것이다. 안주의 절제사가 관군을 몰아온다고 해도 이쪽은 아니었다.
“이 근처에는 영흥부가 고작인데. 영흥부는 반군이나 관군이나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곳이라…….”
영흥부에는 변변한 성벽이 없었다.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그렇지 않다면 대체 저 많은 관군들이 누군가로부터 도망가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 주인님. 어떻게…….”
관도를 통해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이대로 달리다가 보면 도망치는 관군들과 마주칠 것이다. 만우는 슌스케에게 손을 내저었다. 오른 쪽으로 빠지라는 신호였다.
‘세자도 있고, 굳이 휘말릴 필요는 없지.’
만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에 수레가 관도에서 오른쪽의 숲길로 빠졌다. 그곳에서 잠시 동안을 기다리자 겁에 잔뜩 질린 관군들이 우르르 스쳐 지나갔다.
“수자기(帥子旗)도 없는 관군이라. 딱 봐도 패잔병인데. 왜 영흥부 근처에 이 패잔병들이…….”
동군영이 옆에서 중얼거렸다. 만우는 눈을 가늘게 좁혀 떴다. 패잔병들의 행색을 유심히 관찰하기 위함이었다.
“피가 묻은 옷을 입고 있는 놈들은 있지만, 부상을 입은 놈들은 없어. 두 발로 뛰어서 도망가고 있고, 입가에 작게 거품까지 물고 있는걸 보면…….”
실제로 보고 있는 와중에도 더 이상 도망가지 못 하겠다는 듯 땅바닥을 구르는 관병들이 눈에 보였다. 그들은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숨을 몰아쉬거나 토하는 이들도 있었다. 체력이 극에 달했다는 뜻이다.
“아니, 아무리 패잔병이라고 해도 저 정도로 무서워할 필요는…….”
그 순간 만우의 고개가 휙 하고 돌아갔다. 육인방 역시 마찬가지였다. 특히나 육인방들의 표정이 볼만했다. 경악이 서린 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우는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이런 고수가 조선에 있었다고?”
만우의 입에서 ‘고수’라고 나온 것이 거의 처음이었기 때문에 육인방이 놀라 만우를 쳐다봤다. 동군영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 고수? 저들이 그러면…….”
“그거밖에는 설명이 안 되는데? 이 정도면…… 음.”
만우는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가 만우가 손가락을 딱하고 튕겼다.
“주창. 마교의 소교주랑 비슷한 수준인데?”
“허억!!!”
“주창???”
투귀대의 대주이자 혈세천마의 아들인 마얼 주창을 모르는 이는 중원에서 온 사인방 중에는 아무도 없었다.
“피 묻은 관복은 보이지만 부상을 입은 놈들은 없어. 그 말인즉슨…….”
“검이 한 번 휘둘러지면 무조건 죽는다는…….”
“응. 그 정도야 간단하잖아? 내공도 못 쓰는 관병들인데.”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문형일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 작은 조선 땅에 그 정도의 고수가 있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권희달보다 강하다고?’
조선제일검 권희달은 분명 화경의 고수다. 하지만 제대로 된 강자와 싸워본 적이 없는 반쪽짜리 화경이었다. 초반에는 무각에 갇힌 문형일 본인과 호각을 이룰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선에서는 그런 권희달이 조선제일검이었다. 그런데 그 권희달보다 더 강한 이가 조선 땅에 있었다?
“아니. 주창보다 약간 더 낫나? 그래봤자 반의 반수 정도?”
만우는 히죽 웃었다. 그러자 문득 궁금해진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런데 관병을 그런 고수가 왜 쥐 잡듯이 잡는 거야?”
***** 스걱!!! 크아악!! 척사영의 좌검우도가 한 번씩 휘둘러질 때마다 반드시 두 명 이상의 관병들이 죽어나갔다. 곡산척가의 일원인 척사영이 관병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는 이유는 간단했다.
“인두겁을 뒤집어 쓴 놈들!!!”
척사영은 분노를 토해내고 있었다. 척사영이 이들을 만난 것은 영흥부에서 함주로 가는 길목 사이에 있는 한 작은 마을에서였다.
“한 놈도 살려두지 않을 것이다.”
영흥부의 소윤인 김권과 박관이 이끄는 반란군이었다. 반군인 그들은 더 이상 조선에 얽매이지 않았다. 조선에 반기를 든 이상 조선의 규율에 얽매일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김권은 동북면 등을 돌면서 경력을 쌓은 무장이다. 그는 동북면을 침탈하려는 왜구들과 맞서 싸우면서 잔인해진 심성을 지닌 무장 중 하나였다. 그 때문에 그는 휘하의 반군의 사기를 끌어올릴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다. 약탈. 방화. 살인. 강간. 분명 모든 반군 병사들이 조선에 반기를 드는 것에 찬동할 리 없었다. 하지만 원래 무지렁이 같은 병사들은 환경이 만들어지고 다수의 사람들이 따르면 그에 동조하게 되어 있다. 그걸 위해 김권은 북진하던 도중 발견한 작은 마을을 약탈하도록 반군들에게 허락한 것이다. 동북면을 떠돌던 김권의 휘하에는 그 시절부터 그를 따랐던 이들이 많았다. 그런 이들은 그 경험과 경력으로 다른 병사들을 선동하였다. 조선의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관병이 된 이들이 조선의 백성들의 마을을 습격하고, 강간과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버러지 같은 놈들!”
하지만 그들의 불행이라면, 지독한 방향치인 척사영을 그곳에서 만났다는 것이다. 함주로 향해야 했던 척사영은 애초에 방향을 잘못 잡고 아래쪽으로 내려오다가 그 참상을 목도한 것이다. 목불인견(目不忍見). 당연히 자신들의 본분을 잊고 백성을 약탈하고 살인하는 관병들을 본 척사영의 분노는 폭발했다. 척씨세가는 본래 백성들을 지킨다는 것을 사명으로 삼는 곳이었다. 고려 무신으로 불린 척준경의 자손들이 만든 세가이지만, 선조인 척준경을 통해 권력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지를 지켜본 그들은 출사를 꺼렸다. 그리고는 왕조를 돕는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지킨다는 미명 하에 고려를 휩쓸었던 역성혁명 속에서도 중립을 지켰다. 그러니 그런 사명을 어려서부터 세뇌 당하듯 듣고 자라온 척사영이 분노하는 것은 당연했다. 고려는 옆의 대국에 비하면 너무 작았고, 툭하면 전란을 일으키는 그들로부터 백성들을 지키기 위해 무예를 수련하였는데 조선의 관병들이 백성들의 민가를 약탈하다니. 촤자자자자작!!! 척사영은 좌검우도를 마치 자신의 신체의 일부처럼 능숙하게 사용했다. 그녀가 한 번씩 검과 도를 떨칠 때마다 주변의 대기가 들끓으며 주변의 병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서거걱!!!! 척사영의 신법은 마치 표홀한 한 마리 제비를 보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가 좌검우도를 휘두르는 것은 마치 폭풍과도 같았다. 한 번 바람을 일으키기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 폭풍처럼, 그녀는 그녀의 시야 안에 드는 모든 것들을 휩쓸어버렸기 때문이다.
“숨어도 소용이 없다!”
척사영의 기감을 빠져나갈 수 있는 관병들은 없었다. 김권과 박관은 애초에 일합(一合)에 목이 떨어졌다. 그리고는 개미떼처럼 흩어지는 관병들을 삼일밤낮 동안 추격하면서 차례차례 하나씩 잡아 죽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척사영은 수풀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 역시 그런 것이라 생각했다. 쾅!!!! 하지만 척사영의 눈이 커졌다. 한 번도 막힌 적이 없었던 그녀의 검이 거대한 폭음과 함께 처음으로 막혔기 때문이다.
“크윽.”
그러나 그녀의 공격을 막아낸 상대도 충격을 받은 것인지 비칠거리면서 물러서는 것이 보였다. 방금 전의 충돌에 의해 주변의 수풀들이 쭉 밀렸기 때문에 수풀 안에 가려졌던 이들이 그녀의 눈에 들어왔다. 제법 강하지만 그녀를 긴장할 정도는 아닌 여섯 명의 고수들. 어린 꼬마 하나와 여인 한 명, 그리고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남자 한 명. 그리고…….
“와. 내가 본 여인 중에 너처럼 강한 여자는 처음인데?”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랍다는 듯 말하는 남자까지. 특히 그 남자를 본 척사영의 뒷목에 소름이 쫙하고 끼쳤다.
“웬 놈들이냐!!!!”
척사영의 입에서 날카로운 고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