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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세자의 고모(3) (119/400)

119. 세자의 고모(3)2020.02.18.

16553217815394.jpg“칙쇼!!”

16553217815394.jpg“^[email protected]$!!!”

만우가 나선 이유는 간단했다. 표창에 스친 이찬의 몸에 독기운이 돌면서 그의 신형이 비틀거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들 중에는 이찬보다 강한 자가 없었다. 가장 강한 이는 다른 사무라이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검을 세 개를 찬 무인이었는데, 그도 기껏해야 절정의 초입이었다. 하지만 독과, 차륜전으로 인해 이찬의 몸에 나는 상처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아마 시간이 흘렀다면 결국 쓰러지는 것은 이찬이었을 것이다. 저벅, 저벅, 저벅. 만우의 진각 한 번과 공력 발출에 포위망을 형성하고 있던 사무라이들이 우르르 쓰러지면서 뻥하고 구멍이 뚫렸다. 만우는 그 사이로 여유롭게 걸어들어왔다. 그리고는 딱딱한 표정으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사무라이들의 대장을 쳐다봤다.

16553217815394.jpg“誰だ!”

16553217815415.png“어디서 왜어야? 조선말 해.”

만우는 이를 드러내면서 살기를 흘리자 사무라이들이 그물에 잡힌 물고기처럼 몸을 펄떡거리며 떨었다. 사무라이 대장이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16553217815394.jpg“어, 어떻게…….”

16553217815415.png“봐봐. 하네.”

만우는 활짝 웃는 얼굴이었지만 사무라이 수장의 얼굴은 공포로 물들었다. 그런 만우를 알아본 이찬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16553217815394.jpg“검주…….”

16553217815415.png“호오. 본주를 알아보네?”

16553217815394.jpg“세자저하가…… 세자저하가…… 욱.”

이찬의 입에서 새까만 피가 튀어나왔다. 표창에 발라진 독이 몸 안에서 날뛰고 있다는 뜻이었다. 만우는 쯧하고 혀를 찬 뒤 품에서 단약을 꺼내들었다.

16553217815415.png“야. 이거 먹고 운기조식해. 바로.”

16553217815394.jpg“나보다는 세자저하를…….”

만우는 살짝 신경질적인 표정을 지었다. 자신의 몸도 가누지 못하면서 세자, 세자 거리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16553217815415.png“야. 말 지지리도 안 들어먹어서 여러 사람 고생시키는 그 애새끼는 왜. 네가 죽기 직전인데.”

16553217815394.jpg“저하께서 홀로…… 홀로 떨어지셨…….”

16553217815415.png“시끄러 임마!”

이찬은 가물거리는 눈으로 종이에 쌓인 물체를 쳐다봤다. 손으로 쥐지 않았음에도 청아한 향이 콧속으로 흘러들어오는 듯 했다.

16553217815415.png“독에 좋은 거. 그냥 먹어.”

혹시나 몰라 비상약으로 들고다니던 화산파의 매화단이었다. 장로급 이상에게만 지급이 되는 단약이었다. 소림의 소환단이나 무당의 태청단만큼 좋은 것은 아니었지만, 독이나 내상에 즉각적인 효력을 발휘하기 때문에 구명(求命)용으로 딱 좋았다. 저 단약 하나에 금 한냥이나 했지만 어차피 만우는 공짜로 얻은 것이다.

16553217815415.png‘왕한테서 뜯어내지 뭐.’

작다고 해도 조선도 하나의 어엿한 나라다. 그러니 명 황실에 있는 진귀한 물건들이 모여있다는 진귀전(珍貴殿) 같은 곳이 있을 것이다.

16553217815415.png‘그 정도 보상은 하겠지.’

만우는 그 동안 살기로 찍어누르고 있던 사무라이들을 쳐다봤다. 이찬이 눈을 감고 운기조식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사무라이들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래야 할 정도로 이찬의 상태는 위중했다. 저 몸으로 이 포위망 안에서 열이 넘는 사무라이를 홀로 베었다는 것이 대단할 정도였다.

16553217815394.jpg‘무슨 이런 괴물이.’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신검조의 대장 사무라이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함주에 들어간 일월조가 모두 행방불명이 되어 생사를 알 수 없다는 것에 자신들의 차례가 왔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이곳, 조선은 복마전이었다.

16553217815415.png“뭐, 이놈에게 물어보면 될 테니까…….”

만우의 눈가가 서늘해졌다. 조선을 기껏해야 떼로 몰려다는 것밖에 할 줄 모르는 사무라이들이 활보하고 다녔다는 것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 때문에 만우는 사무라이들에게 말했다.

16553217815415.png“단 한 놈이라도.”

만우가 살기를 품기 시작하자 주변의 공기가 차가워졌다. 아니, 차가워진 느낌이 들었다. 사무라이 대장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벌벌 떨리기 시작한 자신의 신체에 당혹감을 느꼈다.

16553217815415.png“손가락 하나라도 까닥할 수 있다면 살려주마.”

스르릉!

16553217876254.png

  만우의 괘검이 시퍼런 검신을 드러냈다. *****

16553217876259.png“응? 사, 삼인가?”

노느니 약초라도 캐라고 했다고, 근처에 쓸만한 약초가 있나 뽈뽈거리며 산을 헤집고 다니던 방매의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얇은 줄기에서는 청아한 향기가 느껴지는 듯 했고 주변의 다른 풀떼기와 비교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풀줄기가 보였기 때문이었다. 꿀꺽. 침을 꿀꺽하고 삼킨 방매는 손을 싹싹 비볐다. 손의 감각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약효를 가득 머금은 산삼은 잔뿌리 하나 다치지 않고 캐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16553217876259.png“……응?”

삼을 캐기 위해 허리를 숙였던 방매의 눈에 의아함이 깃들었다. 산삼이 고고한 자태를 뽐내고 있는 곳 바로 옆에 웬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든 머리끈이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16553217876259.png“이런 게 여기 왜 떨어져 있지?”

바로 옆에 관도가 있었기 때문에 심마니가 아닌 다음에야 산을 탈 필요가 없었다. 게다가 이런 질 좋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머리끈을 쓸만한 사람이 다니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장소다.

16553217876259.png“아이가 쓰는 것 같은데.”

머리끈의 폭이나 길이를 보니 아이가 쓰는 용 같았다. 방매는 주변을 휘휘 둘러봤다.

16553217876259.png“에이, 몰라.”

이 머리끈이 산중에 떨어져 있다는 것은 주변에 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뜻이다. 하지만 당장 눈앞에 있는 산삼이 우선이었다. 툭. 방매는 긴장된 표정으로 삼 주변에 손가락을 얹었다. 하지만 방매는 그 자세 그대로 굳었다. 그러더니 이내 일어나서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16553217876259.png“꺄악! 신경 쓰여!”

자꾸만 머리끈이 신경이 쓰였다. 아이가 있다고 생각하니 자꾸만 잡생각이 머리에 맴돌았기 때문이다. 아이의 머리끈이 있다. 그 아이는 왜 여기에 있을까? 부모를 잃어버렸을까? 부모를 잃어버렸으면 얼마나 무서울까. 몇 살이나 된 아이일까. 어릴까? 어리면 이런 산 속은 위험할텐데…….

16553217876259.png“에이씨. 삼아. 너 여기 딱 기다려. 내가 주변만 한번 훑어보고 올게. 응?”

방매는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그리고는 큼지막한 나뭇가지를 꺾어 땅에 쿡하고 박았다. 산삼의 위치를 기억하기 위해서였다. 작게 한숨을 내쉰 방매는 몸을 돌렸다. 툭. 방매가 모습을 감추자 산삼 앞에 박아놓았던 나뭇가지가 툭하고 쓰러졌다. 아마 천운이 따르지 않는 이상 산중에서 이곳을 다시 찾아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16553217876259.png“아이야! 아이야!”

방매는 목소리를 높여 주변을 돌아다녔다. 이름을 모르니 ‘아이야’라고 외치며 돌아다니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찾아다닌지 반 시진 정도 지났을까, 방매의 눈이 살짝 커졌다. 약간 둔덕이 져서 사람의 눈이 잘 닿지 않는 사각지대에, 빼꼼 나와있는 비단 옷자락이 보인 것이다. 그 옷자락의 색과 머리끈의 색이 일치했다. 방매는 모른 척 그곳으로 다가갔다.

16553217876259.png“아이야! 어디있니! 아이 참. 어디있지?”

방매는 슬금슬금 그 쪽으로 다가갔다. 아이가 저렇게 숨어 있다는 것은 사연이 있는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방매는 충분히 그 쪽으로 접근했다고 생각했을 때, 휙하고 몸을 날렸다.

16553217876259.png“얘!!”

16553217815394.jpg“으아아아악!!!”

입과 코까지 틀어막고 숨소리조차 죽이고 있던 아이, 양녕이 숨이 넘어갈 것처럼 놀란 표정을 지었다. 방매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16553217815394.jpg“이엑!”

휘익! 하지만 양녕은 그런 방매를 향해 곧바로 목검을 휘둘렀다. 아이의 신체에 맞게 만들어진 목검이었지만 그 속도가 제법 매서웠다. 하지만 어른에게 통할 정도는 아니었다.

16553217876259.png“이 쪼그만 한 게 어디서 이런 걸 휘둘러!”

아이의 차림새를 보니 딱 봐도 귀한 집의 자제 같아보였지만 방매는 말을 높이지 않았다. 자신이 이성계로부터 사성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양녕은 자신의 회심의 일격이 너무나도 쉽게 막히자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방매는 그런 아이에게 손바닥을 펴보였다.

16553217876259.png“아니야. 널 공격하려는 거. 그러니까 진정해.”

16553217815394.jpg“…….”

양녕은 씨익씨익거리면서 방매를 쳐다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바마마나 궁인들 없이 나와본 세상은 혹독했다. 어디서 대체 정보가 새어나간 것인지, 문주로 방향을 잡은 순간부터 어디선가 나타난 왜인 무사들이 공격해 왔기 때문이다. 결국 이찬은 자신이 미끼가 되어 무사들을 유인하기로 하고, 양녕에게 이 산중에 숨어 있으라고 하고는 떠났다. 양녕도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군말하지 않았다. 또한 자신이 사라졌다는 것을 알면 아버지인 국왕이 수색대를 보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예상과는 달리 방매에게 너무 빨리 발각됐다.

16553217815394.jpg“넌 누구냐!”

양녕이 경계심 가득한 목소리로 방매에게 소리쳤다. 방매는 그런 양녕을 보면서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16553217876259.png“이 꼬맹이가? 너 때문에 내가 산삼을 놓쳤는데. 죽을래?”

방매가 주먹을 치켜들었다. 하지만 그게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양녕은 그런 방매를 보면서 코웃음을 쳤다.

16553217815394.jpg“혹시 너도 왜인이냐? 날 죽이러 온?”

16553217876259.png“왜인? 야! 왜인이 조선말 이렇게 잘 쓰는거 봤어?”

왜인이냐는 질문에 방매가 발끈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방매가 갸웃했다.

16553217876259.png“왜인? 너 왜인한테 쫓긴 거야? 왜인이 널 왜?”

16553217815394.jpg“그건…… 말해줄 수 없다!”

양녕은 자신이 세자라는 것을 방매에게 밝힐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

16553217876259.png“여기서 기다리면 누가 오기로 한거니?”

16553217815394.jpg“물어보지 마라! 아는 체도 하지 말고! 내가 여기있다는 것도 발설하지 말고!”

방매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름 호의를 가지고 도와주려고 온 것인데, 이렇게 격렬하게 자신을 거부하면 어쩔 수 없었다.

16553217876259.png“그래. 그럼 거기서 얼어죽든지 말든지. 배고파 죽든지 말든지. 마음대로 해라. 흥. 도와주러 왔더니 뭐 이런 건방진 꼬맹이가 다 있어.”

방매는 이럴 줄 알았으면 산삼이나 캘걸 하고 쿵쿵거리며 등을 돌렸다. 그런데 그때 뒤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꼬르르륵. 휙! 방매가 뒤를 돌아보자 양녕이 볼을 붉히고는 몸을 휙하고 돌렸다. 많이 쳐줘야 십대 초반으로 보이는 어린아이다. 방매는 다시 마음이 약해져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16553217876259.png“네게 무슨 사연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배가 고프면 따라와. 밥 한 끼 정도는 해줄 테니까.”

16553217815394.jpg“바, 밥?”

양녕이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궁에서는 매일 시간이 맞춰 끼니가 나왔다. 그런데 사무라이에게 쫓기면서 끼니 몇 번을 건너뛴 참이었다. 그러니 뱃속에 거지가 든 것 같았다. 양녕은 방매의 얼굴을 살폈다.

16553217815394.jpg‘악독해 보이는 계집아이는 아닌데.’

양녕은 갈등했다. 방매는 여전히 갈등하는 양녕을 보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저렇게 생각이 많은 사람을 다루는 방법은 간단했다.

16553217876259.png“그래? 싫으면 말고. 난 간다? 여기 산속에서 늑대나 호랑이가 나와도 몰라?”

흥정을 할때도 상대가 생각이 많으면 이미 반쯤 성공한 것이다. 그때, 파투를 낼 것처럼 뻐팅기면 결국 상대는 넘어온다.

16553217815394.jpg“기, 기다려!”

방매는 씩 웃었다. 저 아이도 어른스러운 척을 하고는 있었지만 겉모습 그대로의 아이일 뿐이었다.

16553217815394.jpg“이, 이 몸이 특별히 같이 가주도록 하지.”

16553217876259.png“그래. 착하다. 그럼 이 누나 손을 잡아야지?”

16553217815394.jpg“소, 손을 잡으라고? 남녀칠세부동석도 모르는…….”

16553217876259.png“넘어져서 저기 아래로 떨어지면, 인생 쫑나는 거란다 아이야.”

방매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역시, 귀한 집 자제가 맞았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도 체면을 차리지.

16553217815394.jpg“그, 그러면 이번만…….”

16553217876259.png“그래. 알겠으니까 빨리!”

그렇게 자신들도 모르게 산중에서 만난 고모와 조카가 사이좋게 손을 잡고 산의 능선을 타고 넘었다. *****

16553217815415.png“하핫. 하오문이라고?”

만우는 싸늘한 시체가 된 신검조 대장의 몸을 내려다보면서 비릿하게 웃었다.

16553217815415.png“그럴 리가 없지. 그놈들이 미치지 않은 다음에야.”

하지만 만우는 그 신검조 대장의 말을 믿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는 믿을 수가 없었다. 조사의에게 양녕의 이동 경로를 알린 것이 자신을 하오문이라 밝혔다고 사무라이는 만우에게 그렇게 실토한 것이다.

16553217815415.png“뭐 때문에?”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오문이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왕의 자식을 노릴 필요는 없었다.

16553217815415.png‘자기네가 찾으면 되는데. 왕이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하오문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제부투혼이다. 하지만 만우는 일말의 의심은 남겨두기로 했다. 확신만큼 무림에서는 필요 없는 것이 없었다.

16553217815415.png“내 경로까지 발설을 할 리가 없어, 그놈은. 그렇다면…….”

확신을 접기로 했다고 해도, 일단 돌아가는 정황이 그랬다. 그렇다면 대체 반군에게 양녕과 만우의 경로를 알려 이득을 볼 이들은 누가 있을까?

16553217815415.png‘은월루? 확률은 낮지. 왕과 함께 움직이는 것 같았는데.’

설마 은월루에서 자신을 반군을 견제하는 용도로 이용하려고 했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 운기조식을 끝마친 이찬이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이찬은 일어나다 말고 갈라진 살갗에서 통증이 느껴졌는지 신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16553217815415.png“꾀병 부리지 말고. 세자 찾으러 가야지.”

16553217815394.jpg“고맙소. 이 은혜는…… 은혜는…….”

16553217815415.png“세자는 어디에 있는데?”

16553217815394.jpg“만주로 들어오는 관도 부근에서 나 혼자 말을 달렸소. 세자저하께서는 인근 산속에 숨어계시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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