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9. 내가 그런 사람이야(2)2019.10.01.
“……뭐라?”
이성계의 눈이 만우에게로 향했다. 만우는 그런 이성계에게 말했다.
“당신이 쏘아죽인 두 명의 사신을 말함이다. 본주는 그대가 두 명의 사신을 활로 쏘아 죽였기 때문에 이 어사를 지키기 위해 이곳까지 온 것이다.”
“내가 쏘아 죽이다니. 누굴?”
이성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상한 소문이 한양도성에 퍼지고 있다는 것을 꺠달은 것이다. 만우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상왕이 사신을 쏘아 죽인 것이 아닌 것 같군.”
“그런…… 그럼 누가…….”
동군영은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그때 쉭하는 소리와 함께 화살이 만우의 눈앞을 스쳐지나갔다. 털썩.
“끄으으……할아버님.”
이성계의 화살이 강순일을 들어 올리고 있던 만우의 공력을 끊어낸 것이다. 화살로 자신의 공력의 흐름을 차단할 줄 몰랐던 만우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저자의 말이 맞더냐?”
이성계의 엄준한 목소리가 강순일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아까 만우에게 하던 것과는 전혀 다른 태도였다.
“할아버님. 소자는.”
“네가 패악을 부리고 다닌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 아니다.”
이성계는 강순일을 쳐다봤다. 강순일의 몸이 바짝 굳었다. 이성계가 그를 총애한다고는 하나 그전에 이성계는 상왕이고 무인이다. 불복하는 부하들의 목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칠 수 있을 정도로 군법에 통달한 사람이기도 했다.
“허나 네가 어리석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네 스스로 너의 잘못을 깨닫기를 바랐다. 허나.”
이성계의 손이 꿈틀하고 움직였다.
“네 패악으로 인해 전주 이가(李家)와 곡산 강가(姜家)의 강적을 맞이하였으니, 그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만우는 이성계를 보면서 쓴웃음을 머금었다. 이성계가 강순일을 징치하는 것은 그가 백성들에게 패악을 부렸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가 이성계의 가문과 현비 강씨, 강순일의 가문에 해를 입혔기 때문이다. 그렇게 이성계는 만우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본궁으로 돌아가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근신하고 있으라. 차후에 너에 대한 벌을 정할 것이니.”
“소자는 잘못이 없습니다. 정녕 소자를 버리시는 것이옵니까.”
강순일은 나가지 않고 버텼다. 그런 강순일을 보는 이성계의 눈이 더욱 엄해졌다.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이런 사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어찌하여 소자를!!!”
퍽! 스르륵. 이성계는 강순일의 말을 더 이상 듣지 못 하고 강순일의 뒷목을 수도로 내리쳤다. 그러자 강순일이 눈을 까뒤집고 허물어져 내렸다.
“이 정도로 정리하지.”
이성계가 만우를 쳐다봤다. 그게 이성계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양보였다. 어쨌거나 강순일은 벌을 받을 것이다. 만우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냥 본주가 죽이겠다.”
“피를 봐야 한다면 물러서지 않기로 하지. 어차피 나에 대한 이상한 소문이 한양에 도는 것 같은데, 더 죽인다고 해서 달라질 것도 없다.”
이성계가 활을 움켜쥐었다. 만우는 그런 이성계를 보면서 박달나무 지팡이를 쥔 손에 힘을 더했다.
“잠깐! 잠깐만 고정하십시오 상왕전하. 만우 자네도!”
그런데 그 순간 만우와 이성계 사이로 동군영이 뛰어들어 가로막았다. 소심한 동군영의 성격을 생각하면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동군영은 두 손을 번쩍 든 채로 막고 서서는 상왕에게 말했다.
“자존심을 놓고 칼부림을 하실 때가 아니옵니다, 상왕전하. 누군가 상왕전하를 음해하려는 것 아닙니까!”
“…….”
이성계는 동군영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하지만 동군영도 물러서지 않았다. 여기서 동군영이 물러서면 만우와 이성계는 누가 죽을지 모르는 싸움을 하게 될 것이다.
“누군가 상왕전하께서 한양으로 돌아오는 것을 바라지 않거나, 다른 불경한 마음을 품은 자가 있는 것이옵니다. 허니 고정하시옵소서.”
“……그대의 말이 이치에 맞다.”
이성계는 동군영을 쳐다보다가 활을 내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후우……후우…….”
만우와 이성계가 뿜어내고 있는 기세는 범인(凡人)이 받아낼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군영은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그 사이를 가로막았기 때문이다. 동군영이 입은 장삼이 그 짧은 시간에 땀으로 흠뻑 젖었다. 그것이 이성계의 마음을 돌렸다.
“못 다한 승부는 나중에 겨루도록 하지.”
이성계는 만우에게 은은한 호승심을 드러내 보이면서 말했다. 만우는 동군영을 힐끗 쳐다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물러서야 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지만, 지금 만우는 역졸이다. 그러니 어사가 원치 않는 싸움을 할 필요는 없다.
“기다리도록 하지.”
만우가 흰 이를 드러내면서 사납게 웃었다. ****
“가지 않겠다.”
자리를 옮겨 이성계는 기루의 다른 방에 자리를 잡았다. 사람들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반파가 된 방에서는 이야기를 나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동군영이 다시 한번 이성계에게 말했지만 이성계는 바위 같은 사내였다. 바위는 한번 자리를 잡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석공이 정과 망치를 가지고 와 내려찍기 전까지 바위는 그 자리를 고수하는 법이다.
“내 자식이기 때문에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한 것이다. 방원이와 나는 같은 하늘 아래서 살 수 없음이다.”
자식이지만 자신의 형제를 죽인 놈이다. 이성계의 눈에 그런 이방원의 행동은 왕위에 눈이 먼 미친놈의 행동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것을 보고 나니 왕위에 대한 정이 싹 떨어져 함주에 와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한양으로 돌아오라니. 이방원이 이 나라의 왕이었지만 이성계가 인정한 왕은 아니다. 그냥 이성계가 박차고 나온 왕좌를 이방원이 차지했을 뿐이다.
“왜. 명 황제가 옥새라도 보여 달라고 하더냐?”
“전하!”
이성계는 한양에서 나오면서 옥새도 이방원에게 주지 않았다. 그럼으로 인해 이방원은 정통성을 인정받지 못한 왕이 됐다. 이 문제로 명에서 트집을 잡는다면 이방원은 명분이 없어진다. 이성계는 그것 때문에 이방원이 자신을 한양으로 불러들이려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왕위의 정통성을 이성계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주상전하께서는 상왕전하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두 명이 죽었다면 그에 대한 조사를 하면 될 터. 나는 아니니 그대가 돌아가 다시는 사람을 보내지 말라 전하라.”
“전하!!”
“오늘의 인연이 재미가 있어 그대와 대면을 한다만은, 그렇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성계는 단호하기가 그의 활만큼이나 자비가 없었다. 동군영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럼 어찌하면 전하께서 한양으로 돌아가시겠나이까.”
동군영은 이성계 앞에서 고집스럽게 물러서지 않았다. 이성계는 왕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왕의 신하다. 그리고 동군영은 절대왕권을 신봉하는 유학자다.
“글쎄. 방원이가 죽으면?”
“전하! 어찌 그런 참람한 말을…….”
“왜. 나에게 역모를 한다라고 하기라도 할 것이냐?”
만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이성계는 숫제 동군영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만우는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으…… 윽…….”
“허리 피고 있어. 얼마 전에 칼도 찔렸으면서.”
호선의 도술로 인해 상처가 다 낫긴 했지만 만우는 일부러 이성계가 보는 앞에서 동군영의 허리를 꼿꼿하게 만들었다.
“상왕.”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그런 말투는 오랜만이다.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자가 이 조선에 있을 줄이야.”
“만우. 이봐. 무슨 말을 하려고…….”
“어차피 이 노친네. 어사 나리 말 안 들어. 장난을 치고 있잖아. 여기까지 몇 달이 걸려서 온 어사 나리한테 말이야.”
만우는 뻔뻔한 표정의 이성계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이성계는 만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도 일말의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래. 가지 마. 그런데 노친네가 햔양으로 안 가서 여기를 온 이 어사 나리나, 앞으로 올 그 사람들에게 그게 무슨 민폐야?”
“허허허. 내가 보내라고 하였더냐?”
“그걸 말이라고 해?”
윗사람은 아랫사람의 고충을 모른다. 거기에 이성계에게 파견되었던 이전의 두 처사들은 피살까지 당했다.
“당신은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 민폐야. 그럴 바에는 한양에 가서 민폐를 끼치라니까. 거긴 상왕이건 왕이건 누구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
“민폐? 이곳은 나의 고향이다.”
“그래. 상왕이 태어난 고향이겠지. 고향으로 낙향해 여생을 보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해. 근데.”
만우는 동군영의 아혈을 짚었다. 동군영은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무 것도 없었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이따가 풀어줄게. 그런데 어사 나리가 하는 것처럼 해서는 이 노친네, 말귀 못 알아들어.”
“허허허…….”
앞에서 새파랗게 어린 만우가 노친네 노친네 거리고 있었지만 이성계는 그저 웃었다. 만우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는 무인이었기 때문이다. 뭐, 무례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무례함이 실력과 비례한다고 생각하면 저런 만우의 무례함은 설명이 된다. 만우가 고개를 돌려 이성계를 쳐다봤다.
“부자가 싸우면 부자만 힘들면 되지. 이 수많은 사람들은 무슨 죄인데? 상왕이 함주에 자리를 잡느라 함주가 개판된 건?”
“…….”
“관아는 있으나 마나 한 것이 됐고, 강순일이 나오면 사람들은 숨을 죽이고 돌아다녀. 그 한 놈 때문에 수백 명이.”
만우에게서 살기가 뭉클 풍겨져 나왔다.
“죽이면 간단하겠지. 응?”
“…….”
“상왕이 벼슬이야? 아니, 상왕, 날 때부터 왕족이었어? 아니잖아. 그런데 상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이 많은 함주 백성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든다고? 상왕, 왕 맞아?”
이성계는 만우의 지적에 할 말을 잃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그에게도 당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는 동북면을 수호하는 일개 무장일 뿐이었다. 문관들에 의해 철저하게 무시를 받다가, 난세가 찾아오면서 시류를 타 승승장구하여 조선이라는 나라까지 건국했을 뿐이다. 그런데 당연하다는 듯이 이성계는 자신이 누리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대의 말이 옳다. 허나.”
이성계는 만우의 말에 반박했다.
“그것과 내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것과는 별개의 이야기다. 그렇다면 난 차라리 아무도 연락이 닿지 않는 곳에서 살겠다. 차라리 절에 귀의를 하고 말 것이야.”
“전하!!!”
동군영이 전하라고 외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자신의 아들을 인정하지 못해 불교에 귀의하는 상왕이라니. 그렇게 되면 최악이었다.
“허나 저자의 말이 아예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이성계는 만우를 쳐다봤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난 허언을 하지 않아.”
“그 자신감이 맹랑하지만 역시 그것도 저자의 성격일 것이고.”
이성계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직도 손이 근질거렸다. 마음 같아서는 만우와 활을 들고 어울리고 싶었다. 이기고 지는 것은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나이가 먹었기 때문에 만우를 이기지 못할 것이란 것을 이성계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만우와 겨루는 그 순간만큼은 나이를 잊을 것이다. 잠깐 본 만우의 실력은 자신이 늙고 젊고를 잊을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하여 동 어사 그대와 그대의 역졸인 건방진 저 작자에게 말하고자 한다.”
“하명하십시오, 전하.”
“말이 길다.”
동군영은 만우가 한 마디를 할 때마다 십 년은 늙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만우는 태평했다. 조선보다 훨씬 큰 명에서도 이러고 다녔기 때문이다.
“역졸, 저자의 말대로 나의 존재로 인해 이곳이 엉망이 되었다면 내 손으로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겠지. 하지만 그전에 그대들의 정성을 보여라.”
“분부하십시오.”
“정성. 정서어엉?”
동군영은 군말하지 않고 그러겠다고 외쳤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여기까지 세 달이나 걸려서 왔어. 나머지 세 달 사이에 돌아가야 돼. 약속하고 왔다니까? 그러니까 가부만 정해서 말해.”
“만우!!!”
동군영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네가 명에서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모르나 여기는 조선이고, 저분은 상왕전하시네. 그리고 자네는 역졸이고.”
“호오…….”
만우의 두 눈이 번쩍이자 동군영이 순간적으로 움찔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연스런 반응에 불과했다. 만우에게 지금까지 당한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군영은 이를 악물었다. 자신 앞에서는 괜찮지만 다른 사람 앞일 경우를 위해서였다. 이 조선에서 만우는 무명이다. 명에서야 만우가 유명할지 모르지만 조선은 칼 한 자루 잘 다룬다고 해서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해주는 곳이 아니다.
“그러니 어느 정도 예의를 차려야 하네. 매번 다른 사람과 싸울 수는 없지 않은가. 다른 속 좁은 양반이라면 사달이 나도 골백번은 났어.”
“흐흐흐.”
동군영이 이를 악물고 만우에게 말했다. 그러자 만우가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만우는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기특하다는 듯 말했다.
“날 생각해 줘서 말하는 것은 고마워 어사 나리. 헌데.”
만우가 이성계를 쳐다봤다.
“상왕도 정녕 그렇게 생각하나? 내가 하는 게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것으로만 보이고?”
이성계는 동군영을 쳐다봤다. 동군영은 제발 만우를 말려달라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성계는 만우를 쳐다봤다.
“그래도 야생마 같은 네놈을 신경 써주는 놈 하나 정도는 있구나.”
“뭐, 그렇지. 내가 하도 괴롭혀서 날 그렇게 생각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만우가 의외라는 눈으로 동군영을 쳐다봤다. 역졸에 불과한 만우를 격의 없이 대해준다는 것 자체가 동군영의 그릇을 말해줬다. 단지 그는 지나치게 소심할 뿐, 그가 가진 그릇과 능력은 소심함에 가려져 아직 빛을 보지 못 했을 뿐이다. 그마저도 만우와 모험 같은 여정을 하면서 조금씩 깨져나가고 있었다. 당장 상왕 앞에서 동군영이 제대로 말을 할 수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만우를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라니.
“그런데 누가 누굴 걱정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그건 그렇군.”
이성계는 만우의 말에 동의했다. 동군영은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만우는 그렇게 놀랄 필요 없다는 듯 말했다.
“어사 나리가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줄게. 나리는 유학자지?”
“그러네.”
“그런데 나리가 공자나 맹자 같은 사람을 만난다고 쳐봐. 그러면 어때?”
“놀랍지.”
“그거 말고.”
만우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사람들 앞에서 나리가 가진 지식이 더 뛰어나다고 뽐내고 그들을 무시할 수 있냐고.”
“미쳤나? 내가 애초에 배운 게 그분들의 말씀들인데.”
동군영은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만우가 그런 동군영을 보면서 씩 웃었다.
“내가 그래.”
“……뭐?”
“내가 그런 사람이라고.”
동군영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이었다. 만우의 말이 한 번에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예가 학문이라면 난 그 분야의 공자, 맹자 같은 사람이라고. 검을 쓴 사람이라면 알아볼 수 있는.”
“…….”
“그곳은 실력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곳이야. 그리고 제대로 눈이 달린 놈이면 알아볼 수 있고.”
만우가 이성계를 쳐다봤다. 동군영이 이성계를 쳐다보자 이성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신하된 자로써 상왕의 얼굴을 똑바로 본다는 것은 불경한 일이었지만 동군영은 이성계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러니까 난 고개를 숙일 수 없어. 그게 아무리 조선의 왕이거나 상왕이라고 해도.”
만우가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검주거든. 내가 제일 강하니까.”
“그런 말도…….”
“내가 그런 사람이야. 그냥 이해하고 받아들여.”
만우가 씩 웃음을 지은 채 동군영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성계는 그런 만우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실력이 어쭙잖으면 오만하다 하겠지만 저건 오만한 게 아니라…….”
이성계는 만우의 얼굴을 보면서 맞는 말을 찾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문학에 조예가 깊지 않은 이성계는 한참을 생각한 끝에 박수를 짝하고 쳤다.
“패왕지재(霸王之材)로고. 패왕지재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