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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 검계 박살!(3) (41/400)

041. 검계 박살!(3)2019.05.21.

16553196657355.jpg“진은(眞銀), 황동합금(黃銅合金)은 만년한철이나 묵철에 견줘도 뒤떨어지지 않는 금속인데 명이나 조선에서는 구할 수가 없어. 명에서 온 색목인 사신들에게 들은 적이 있지.”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명나라의 수도인 북경에서 색목인을 찾아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당장 마익후만 해도 색목인이다.

16553196657355.jpg“그렇다는 말은 저 먼 색목인들의 나라에도 검이 있다는 뜻이야. 당신이 천하제일이라고는 하나 중원과 조선밖에 보지 못했겠지. 난 내 검이 세계제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야장의 두 눈은 야망으로 활활 불타올랐다. 그 눈을 보니 만우도 피가 끓는 기분이었다.

16553196657394.png“천하제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다. 중원을 유람하다보니 검주라는 호칭을 얻었다. 그런데 왜 중원 밖으로는 나갈 생각을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

16553196657394.png‘어르신의 유언을 들어드린 다음에.’

그다음에, 그 때도 만약 자신에게 향상심이 남아 있다면 세계 유람을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러다 보면 당연히 자신은 계속해서 검의 길(劍道)을 걸어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16553196657394.png‘명이 세계의 전부는 아니니까.’

명은 물론 거대한 나라다. 하지만 중원 곳곳을 유람하면서 만우가 느낀 것은 하나였다.

16553196657394.png‘명 바깥에는 더 큰 세상이 있다.’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야장의 두 눈이 활활 불타올랐다. 야장은 자신이 쓰는 집게와 망치를 챙겨들더니 만우에게 솥뚜껑만큼 큰 손을 내밀었다.

16553196657355.jpg“내 이름, 간장이오.”

16553196657394.png“간장막야의 그 간장?”

16553196657355.jpg“뭐, 그네만큼이나 뛰어난 야장이 되고 싶어 그런 이름을 썼다고 해두지.”

야장은 스스로를 간장이라 칭했다. 간장막야(干將莫耶)는 중국의 춘추시대에 간장이란 장인이 만든 두 자루의 명검을 뜻한다. 오나라 도장(刀匠)인 간장은 임금으로부터 명검을 만들어달란 청을 받고 아내인 막야의 머리카락과 손톱을 넣어 두 자루의 검을 만들고 음양법에 의해 양을 간장, 음을 막야라 하여 진상하였다.

16553196657355.jpg“이것도.”

만우는 간장이 손바닥만 한 목각상을 챙기는 것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야장신(冶匠神)이다. 야장신은 도깨비의 일종이다.

16553196657394.png“난 만우다.”

16553196657355.jpg“앞으로 함께 해야 할 시간이 길 것 같으니 내 형님이라 부르겠소.”

만우는 눈을 크게 떴다. 간장은 마치 삼국지에 나오는 장비처럼 거대한 체구에 철사 같은 수염을 달고 있어 나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간장은 놀란 만우의 얼굴을 보고는 이해한다는 듯 씩 웃었다.

16553196657355.jpg“올해로 약관이오.”

16553196657394.png“약관?”

그 얼굴로 약관, 스무 살이란 것이 믿겨지지 않았지만 만우는 이내 놀란 표정을 거둬들였다. 생각해보면 말이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중원의 몇몇 노괴물들은 주안술이나 막대한 공력으로 노화를 늦춰 일흔, 여든을 먹었어도 서른 마흔 정도의 모습을 유지하고 사는 이들도 있다. 그런데 특별히 조금 더 늙어 보인다고 해서 놀랄 것이 무에 있겠는가.

16553196657355.jpg“만우 형님. 형제가 된 예는 나중에 치르기로 하고, 정말 검계를 혼자 작살내 버리실 수 있소?”

간장은 자기 마음대로 형제가 됐다고 나불거리고는 만우를 향해 말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196657394.png“어찌 보이더냐?”

16553196657355.jpg“검계에 만우 형님보다 강한 놈들은 없소. 하지만 그놈들이 워낙 영악한 놈들이라…….”

강력하고 흉포한 호랑이도 결국 인간의 꾀에 넘어가 사로잡히고 죽어 가죽이 벗겨진다. 간장은 그것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만큼 검계가 악독한 방법으로 간장을 쥐어짰다는 의미였다.

16553196657355.jpg“이 꼬마 계집은 누구요?”

간장은 방매를 보고는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방매의 키는 간장의 딱 가슴팍까지 밖에 오지 않았다. 방매가 볼을 부풀렸다. 퍼억!

16553196657355.jpg“으억!!”

16553196687965.png“말 조심해. 얻다대고 계집애래?”

방매의 각법(脚法)은 제법이다. 때문에 대장간 일로 몸이 강철처럼 단련된 간장도 방매의 발길질에는 이겨낼 도리가 없었다. 약해 보이기만 한 방매의 발길질에 담긴 위력에 간장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16553196657355.jpg“미안하오. 내가 헛소리를 했구려. 그 가녀린 다리에서 이 정도라니.”

만약 방매가 저 발차기에 진력을 담았으면 어떻게 됐을까. 무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사람의 몸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한다. 간장은 사람의 몸에 통달하기 위해 무덤에서 죽은 사람을 끄집어 내 해부를 한 적도 있었다. 그리고 간장은 방금 방매가 걷어찬 부분이 욱씬거리는 것을 생각하고는 방매가 온 힘을 다했다면 자신의 허리가 수수깡처럼 부러졌을 것이란 생각이 들자 고개를 흔들었다.

16553196687965.png“알면 됐어!”

16553196657355.jpg“그럼 누이는 몇 살이오?”

간장은 사교성이 뛰어났다. 아니, 정확히는 사교성이 아니라 그냥 거절을 당해도 별로 부끄러워하지 않는 철판을 얼굴에 한 다섯 겹은 깔았기 때문에 주눅 들지 않았다. 방매가 소리를 바락 질렀다.

16553196687965.png“내가 왜 그쪽 누이야! 나참!”

수염 때문에 서른은 족히 넘어 보이는 간장에게 누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보니 방매의 나이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16553196657355.jpg“그럼…….”

16553196687965.png“열…… 여덟 살이다 왜!”

방매는 어렸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쳐다봤다. 간장이 껄껄거리며 웃었다.

16553196657355.jpg“그럼 방매라고 부르면 되겠네. 방씨 성을 가진 여동생(妹)이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형님?”

16553196657394.png“마음대로 해라. 너희들끼리.”

만우는 피식 웃고는 검계의 본거지를 향해 걸어갔다. 간장은 대장간에서 나오다가 챙긴 것인지 검 한 자루를 만우에게 건네주었다.

16553196657355.jpg“검계주 놈이 주문한 검이오. 내가 제대로 된 검을 만들어 주기 전까지 만우 형님이 써주오.”

만우의 눈이 살짝 커졌다. 평범해 보이는 칼집이었지만 검병을 쥔 순간 알 수 있었다. 마치 오래 전부터 써오던 검처럼 손에 착하고 감겼다. 야장은 단순히 검을 예리하고 튼튼하게 만드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었다. 검을 쓰는 사람에게 맞는 길이와 무게, 그리고 검병을 쥐었을 때의 감각까지 제대로 살려야 검장(劍匠)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16553196657394.png“좋네.”

팅! 아주 질이 좋은 쇠를 쓴 것이 아니었지만 간장의 실력이 뛰어나 웬만한 검 이상의 예기와 내구도를 자랑했다. 만우의 칭찬에 간장은 금세 우쭐한 표정을 지으며 으쓱했다.

16553196657355.jpg“날 얻으신 거, 아마 하늘에 감사를 해야 할 거요.”

치기 어린 자신감이었지만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간장 정도 되는 검장을 구하기란 쉽지 않다.

16553196657394.png‘게다가 이제 약관.’

게다가 이제 약관인데 벌써 이런 실력이다. 그렇다면 간장이 십 년, 이십 년, 삼십 년 뒤에는 어떨 검을 만들어 낼지 상상이 가질 않았다.

16553196657394.png“여기다.”

16553196657355.jpg“……여기? 여기에 뭐가 있소?”

만우가 멈춰 섰다. 뒷방길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이었다. 간장은 주변을 둘러봤지만 딱히 검계가 있을 것처럼 생기지 않은 곳이었다.

16553196657394.png“잘 봐.”

만우는 방매와 간장을 보면서 히죽 웃었다. 그러고는 다리를 들어 땅을 굴렀다. 쿠웅!!!!! 그러자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방매와 간장이 휘청거렸다. 간장은 만우가 진각을 밟은 곳의 땅이 거미줄처럼 깨졌다는 것에 입을 쩍 벌렸다. 파앗! 하지만 방매와 간장에게는 더욱 놀랄 일이 남아 있었다. 분명 그냥 땅이었다. 뒷방길의 특성상 더럽고 냄새가 나는 그런 땅. 이 주변이 전부 홍등가나 색주가, 기루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이 뒷방길을 통해 먹고 남은 음식물을 내다버리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땅에서 갑자기 문이 튀어나왔다.

16553196657394.png“여기.”

만우는 손가락으로 그쪽을 가리켰다. 그곳에는 반쯤 부서진 문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의 끄트머리를 빼꼼 보여주고 있었다. 간장은 만우에게 말했다.

16553196657355.jpg“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16553196657394.png“진법이다. 착시 현상을 일으키는 진법.”

그리고 그것을 진각으로 파훼한 만우다. 간장은 만우의 무식함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16553196657394.png“무식한 게 아니라 이게 제일 효과적인 방법인 거지.”

16553196657355.jpg“이제는 사람 머릿속도 읽으시오?”

간장이 눈을 크게 떴다. 만우는 그런 간장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어깨를 으쓱했다.

16553196657394.png“눈에 다 보여. 저놈들처럼.”

촤앙!!! 철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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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우의 허리춤에서 새하얀 섬광이 순간적으로 치솟았다. 간장과 방매는 마치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뽑을 때처럼, 만우가 납검을 하는 것은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간장과 방매는 두 눈을 꿈벅거렸다. 서거거걱!!!

16553196657355.jpg“허…… 허억!”

간장과 방매는 뒤에서 난 헛숨을 들이키는 소리에 뒤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눈을 크게 떴다. 아까까지만 해도 누군가 쫓아온다는 낌새 따위는 전혀 느끼지 못한 둘이었다. 그런데 담벼락 위에 거의 스무 명이나 되는 검계들이 창백해진 안색으로 주저앉아 있었다. 주르륵. 춘삼은 자신의 머리를 매만졌다. 자신을 향해 새하얀 벼락이 치는 것을 봤기 때문이었다. 그 벼락은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대응할 수 없는 속도로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춘삼은 자신의 정수리가 허전하단 것을 느꼈다. 손에 매끈한 머리통이 만져졌다. 그런 춘삼의 눈앞으로 스르륵하며 꼭지가 잘린 죽립이 내려와 시야를 가렸다.

16553196657355.jpg“내, 내 머리!”

16553196657355.jpg“흐익!!!”

스무 명이나 되는 검계들이 전부 정수리가 민머리가 되어 기겁을 하는 모습은 한 편의 광대놀음에 가까웠다. 방매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뜨렸다.

16553196687965.png“꺄하하하하! 저게 뭐야! 꺄하하하하!”

정수리만 머리카락이 잘려나갔기 때문에 검계들의 머리 꼬라지들이 퍽이나 볼만했다. 거기에 죽립은 잘려 머리를 가릴 수도 없었다. 그 상태로 담벼락에 주저앉아 버렸으니 방매는 간장의 팔뚝을 팡팡 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16553196657394.png“그렇게 눈에 다 보이게 숨어 있는데. 숨으려면 잘 숨던가.”

춘삼이 벌벌 떨리는 손으로 죽립을 들어올렸다. 만우의 목소리가 천둥처럼 귓가에서 울려 퍼졌기 때문이었다. 그 순간, 춘삼은 깨달았다. 검계 수준으로는 만우를 상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검계주, 아니 검계주 할애비가 오더라도 만우를 상대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뒷방길에서 굴러먹으면서 검계 행동대장까지 오른 그의 본능이 이야기해 주고 있었다. 꿀꺽. 춘삼의 목이 요란하게 출렁거렸다. 이건 일생일대의 위기였다. 춘삼은 떨리는 목소리로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16553196657355.jpg“어느 고인(古人)이십니까.”

16553196657394.png“고인? 스물다섯한테 고인?”

만우가 발끈했다. 중원에서도 그렇고 자신의 실력의 일부만 보여줘도 멋모르는 놈들은 자신을 한 백 살쯤 먹은 노인네로 취급했다. 대부분 무공이란 것의 화후가 나이와 직결이 되기 때문이었다. 길거리에서 아무나 뽑아서 무공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문파 같은 곳에서는 일정한 자질을 가진 아이들을 모아 어릴 때부터 가르친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특출난 재능을 가진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입문 년차에 따라 실력의 차이가 명백하게 드러나는 것이다. 하지만 만우는 아니었다.

16553196657394.png“중원이나 조선이나. 다들 생각하는 건 비슷하네.”

치이익! 만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극쾌(極快)의 발검(拔劍)으로 인해 뜨거워진 검집을 손가락으로 눌러 식히며 불평했다. 그 모습을 보는 간장의 눈이 반짝였다. 간장은 만우의 행동 하나하나를 보면서 만우에 대한 자료를 모으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16553196657355.jpg‘형님을 위한 최고의 검. 세계제일검(世界第一劍)을 위한 단 한 자루의 검을 위해서.’

16553196657394.png“내가 어느 고인인지 아닌지는 알 바 없고.”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196657394.png“내가 아래 내려가서 작살을 내줄까, 아니면 내가 원하는 걸 너희가 찾아올래?”

만우는 춘삼에게 말했다. 그러자 춘삼은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그는 행동대장을 하고 있지만 눈치가 비상한 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귀신같이 치고 빠질 때를 잘 알았다. 지금은 넙죽 엎드릴 때였다.

16553196657355.jpg‘튀지도 못 해.’

이 뒷방길에서만큼은 내금위가 몰려와도 상대가 가능하다 자부했던 검계다. 그런데 만우 앞에서는 검 한 번 뽑아보지 못했다. 검을 뽑기도 전에 죽을 것 같은 기분이 든 것은 처음이었다.

16553196657355.jpg“가져오겠습니다. 어떤 걸 원하십니까.”

춘삼의 대답이 마음에 든 것인지 만우가 상큼한 미소를 머금었다.

16553196657394.png“간장. 간장의 염왕채 차용증과 김향의 염왕채 차용증.”

16553196657355.jpg“…….”

춘삼의 얼굴이 굳었다. 검계를 찾아온 이유 중 하필이면 염왕채라니. 춘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16553196657394.png“왜. 안 돼? 나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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