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 검계 박살!(2)2019.05.18.
[방해하지 말라. 용무가 있어 온 것이니 방해하면 가만두지 않겠다.]
광문자가 멈칫했다. 그는 은월루주 어리의 명으로 만우를 아주 먼 거리에서 은밀하게 따르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광문자의 머릿속에 만우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목소리를 들은 광문자의 등이 식은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광 오라버니. 만약 그자가 오라버니를 인지한다면 곧바로 그 자리에서 도망치세요. 반드시 죽습니다.’
광문자의 머릿속에 어리의 경고가 맴돌았다. 어리가 왜 그렇게까지 경고를 했는지 광문자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 뛰어난 무인이라고 해도, 그게 심지어 조선제일검이라고 해도 광문자는 들키지 않고 감시를 할 자신이 있었다. 스스로의 무위에 자신도 있었지만 은신술과 추적술에 있어서 그는 당당히 자신이 조선 최고라고 자부했다. 조선제일검이 권희달이라면, 광문자는 조선의 유일한 양상군자(梁上君子)다. 더불어 뛰어난 살객(殺客)이기도 했다. 그것도 은월루가 최고라 자랑하는.
‘너무 방심했나?’
광문자는 자신이 방심했다 생각했다. 원거리에서 감시만 하면 되는 일이기 때문에 살행을 할 때처럼 주의를 깊이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정도만 되도 광문자를 눈치챌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고 그는 자부했다. 하지만 만우는 단박에 광문자를 눈치챘다. 오십 장. 오십 장의 거리에서 그냥 관찰만 하고 있던 광문자의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 거리까지 전음을 날린 것이다.
‘천하제일!’
광문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하지만 그는 자신감을 잃지 않았다. 살객의 살법은 정상적인 전투와는 그 궤를 달리한다. 그렇기 때문에 광문자는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고 할지라도 자신의 은밀한 검을 피해갈 수 없다고 자부했다.
‘일단은 물러난다.’
하지만 살객은 어디까지나 자신을 상대로부터 완전히 숨길 수 있을 때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 어리의 말처럼, 살객인 그가 상대방에게 위치를 들킨 이상 죽었다 깨도 저 정도의 고수를 상대하는 것은 무리다. 그렇기 때문에 광문자는 무리하지 않고 몸을 돌려 그 자리에서 벗어났다.
‘위험인물임에는 확실하다.’
어리는 광문자가 만우를 보고 직접 느끼기를 원했다. 그렇기 때문에 억지로 나왔는데, 광문자는 나오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만우를 직접 겪어보지 못하고 만약 살행을 해야 했다면, 구할 구푼 구리의 확률로 자신은 죽었을 것이다. 만우를 암살할 수 있다고 자신하지만, 그건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를 보지 못했다면 반드시 틈을 드러낼 테고, 그렇다면 만우에게 죽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모르지.’
하지만 광문자는 이제 자신의 방심을 버렸다. 어리에게로 돌아가는 광문자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 땅, 땅, 땅! 이제 야장이 철을 두드리는 소리가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 하지만 방매는 이상하다는 듯 만우에게 물었다.
“여기 가려고 한 거야?”
“응. 대장간.”
“대장간…… 저잣거리에도 있는데.”
“그런 곳 말고.”
만우라고 해서 저잣거리에 대장간이 있다는 것을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저잣거리의 대장간에서는 검을 만들지 않았다. 호미나 낫 같은 그런 것들. 그런 농사에 필요한 도구들만 만드는 곳이었다. 조선은 사병을 보유하는 것도 금지고, 날붙이를 들고 다닐 수도 없기 때문에 대장간에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이 엄격하게 정해져 있었다. 검은 오로지 군영에서만 만들 수 있었다.
“들리지 않아? 검이 태어나는 소리가?”
만우는 우렁찬 검명을 들으면서 흐뭇하게 웃었다. 방매는 그런 만우를 미친놈 쳐다보듯 쳐다봤다.
“검이 태어나는 소리?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저긴 검을 만드는 곳이야. 무기들. 낫이나 호미가 아니라.”
만우는 검계 조직원을 쳐다봤다. 검계가 왜 검계겠는가. 이름에서처럼 그들은 검을 패용하고 다니는 파락호들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아예 자체적인 대장간이 따로 있었다. 만우가 의외인 점은, 규칙적으로 들리는 망치 소리로 미루어 보건데 야장의 솜씨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만우가 뒤를 힐끗 쳐다봤다. 그러자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수많은 기척들이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만우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은 검계들이다.
“뭐 다 오면 나야 편하지. 그냥 붙잡고 줘패면 되니까.”
만우는 입맛을 살짝 다시고는 지풍을 쏘아 조직원의 마혈(痲穴)을 짚었다. 그러자 뻣뻣한 통나무처럼 조직원이 쿵하고 옆으로 쓰러졌다.
“히엑!”
방매가 놀라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만우는 그런 방매의 팔목을 붙잡고는 대장간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아직 수량 다 못 맞췄으니까 나중에 와서 가져가!”
후욱! 그런 방매의 뒤를 따라 들어가자 대장간 안에서 후끈한 열기가 느껴졌다. 만우는 열악한 대장간의 장비에 실망스런 표정을 지었다. 땅, 땅, 땅! 하지만 저기서 맑은 검명 소리가 들리자 만우의 눈이 반짝였다. 대장간 안에는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수가 꽤 많았다.
하지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전부 잡역꾼이었다. 발풀무를 밟아 바람을 들어가게 하거나 불이 꺼지지 않게 지켜보고, 다 만들어진 것을 옮기는 사람들이었다. 그중에서 한 명만 메를 쥐고 붉게 달아오른 쇳덩어리를 내려치고 있었다. 메란 가열한 쇳덩어리를 형태를 잡는 데 쓰이는 기구를 말한다. 원래 한 사람이 집게로 금속을 잡고, 두 명이 번갈아가면서 메질을 하는 것이 정석이었다. 하지만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저 야장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필요하지 않았다. 땅, 땅, 땅, 땅! 메의 무게는 장정이 두 손으로 잡고 내려쳐야 할 정도로 무겁다. 그리고 고른 형태로 금속을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같은 힘과 같은 속도로 내려쳐야 하기 때문에 여간 고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만우가 보고 있는 야장은 거대한 근육을 꿈틀거리면서 한 손으로 두 명이 하는 것보다 더 빠르고 균일하게 금속을 내리치고 있었다. 치이익!!!!! 그렇게 달아오른 쇠를 물속에 넣자 뿌연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야장은 그렇게 검의 형태가 잡힌 몽둥이를 옆으로 내던지자 그것을 받아 다른 한 명이 숫돌이 대고 열심히 갈기 시작했다.
“뭐! 또 뭐가 필요해서 그런데!!!”
만우를 검을 가지러 온 조직원으로 알았는지 야장이 고개를 훽 돌리면서 소리를 질렀다. 그 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대장간 안이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검야장(劍冶匠)인가?”
“그러면. 내가 보섭불미나 다루는 놈으로 보이나?”
보섭불미는 쟁기를 주로 만드는 풀무를 뜻한다. 한마디로 그런 농사 도구나 만드는 야장이 아니라는 자부심이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아니. 그런데 그런 것치고는 검을 대충 만들길래.”
“대충? 내가 하루에 만들어야 하는 검이 열 자루다.”
야장의 만우보다 머리 하나는 더 컸다. 거기에 팔뚝의 굵기가 방매의 허벅지만 했다. 그 정도의 근육과 타고난 신력이 어우러져 장정 세 명이 해야 메질과 담금질을 혼자서 다 할 수 있는 것이다.
“너.”
그런데 그 때 야장의 눈이 커지더니 만우의 손을 덥썩 붙잡았다. 야장의 눈가가 바르르 떨렸다.
“검계놈이 아니구나.”
“검계놈?”
만우는 자신의 손을 정신없이 들여다보는 야장을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곳에서 일하고 있길래 검계 조직원인 줄 알았다. 하지만 검계놈이라고 하는 것을 보니 검계 조직원이 아니다.
“어떻게 여기까지 들어왔지? 검계 놈들이 들어오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텐데.”
“너, 잡혀온 놈이구나?”
“염왕의 노예지. 혹시 너도?”
염왕의 노예란 뜻은 염왕채를 썼다는 소리다. 하루에 검 열 자루를 뽑아낼 수 있을 정도의 숙련도라면 어딜 가든 굶어죽을 일은 없다. 그런데 염왕채 때문에 이곳에서 검계들의 검이나 만들어주는 야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지. 너 정도면…… 내가 본 검계의 누구보다도 뛰어난데.”
야장은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만우의 팔과 어깨를 주물거렸다. 그러고는 감탄했다.
“무골이구나. 천상 무골이야. 검을 일만 번 휘둘러도 흠집 하나 나지 않을 근육과 힘줄이다.”
만우는 자신의 몸을 검시하듯 눌러보는 야장을 보면서 웃었다. 만우가 야장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이래서였다. 야장들은 순수했다. 그들은 모든 일생을 뜨거운 불 앞에서 쇳덩어리와 투쟁하면서 보내는 것을 아까워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영혼과 마지막 한 줌의 숨까지 그러모아 최고의 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사는 단순한 인간들이다. 검의 정점을 바라보는 만우와 비슷하다. 그렇기 때문에 만우는 야장들을 좋아했고, 만우와 분야는 다르지만 일생을 투쟁(鬪爭)하며 살아가는 그들을 존경했다.
“넌 검계에 들어오긴 아까워. 차라리 놈들을 죽이고 도망가라.”
“그쪽의 솜씨도 여기서 이 놈들이 쓸 쓰레기 검이나 만들어주고 있기에는 아까운데.”
“난 도망가지 못해.”
야장은 쓰게 웃었다.
“늙으신 노모께서 계시거든. 노모를 모시고는 어디도 못 가. 집 밖으로만 벗어나고 돌아가실 거다. 간신히 약재 몇 첩을 지어먹이는 게 다야.”
“그래?”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내가 여기에 있으면 노모께서 돌아가실 일은 없어. 내가 일해주는 대신 노모의 약값을 검계 놈들이 대주기로 했거든.”
“네가 준 검으로 사람들을 상처입히고 협박하고 다니면서?”
만우의 말에 야장은 상처 입은 표정을 지었다. 그 어떤 야장도 자신이 만든 무기가 그런 식으로 쓰이길 바라지 않는다. 사람을 해하는 무기를 만드는 야장이지만 그 무기가 무분별하게 아무나 해하는 것은 원하지 않는다. 모순적이지만, 그래서 그들은 더욱 순수하게 철을 다루는 일에만 몰입하고 집중한다. 생각이 많은 야장은 절대로 명검을 만들어낼 수 없다.
“그래도 어쩔 수 없어.”
야장은 아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억울하지만 그 억울함을 참는 표정이었다. 만우는 그런 야장이 마음에 들었다.
“기회가 온다면?”
“기회? 이 지긋지긋한 검계 놈들이 박멸 당하지 않는 이상 내 인생은 없어.”
“그 기회.”
야장이 흠칫했다. 만우가 은연중에 기세를 드러냈다. 눈앞의 야장 정도의 실력이라면 만우의 자세나 기세만 느끼고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너…… 아니. 당신은…….”
“내가 준다면?”
“무골이나 잠재력이 높다고만 생각했는데…….”
만우가 고의적으로 기세를 드러내지 않는 이상, 만우를 읽어낼 수 있는 고수는 거의 없었다. 같은 무림십좌나 각 문파마다 있다는 전대의 고수가 아닌 다음에는 불가능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야장도 만우의 몸을 만져보고, 그가 무골이거나 잠재력이 높다고밖에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검계.”
만우의 눈이 반짝였다.
“본주가 쓸어버릴 테니 너, 나만을 위한 검을 만들어라.”
“……!!!”
야장의 눈이 격동했다. 만우의 몸에서 흐르는 기세를 읽어낸 것이다. 절대자만이 가질 수 있는 기세에 야장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넌…… 아니, 당신은 천하제일인가?”
“검에 있어서는?”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렇다면, 내 검을 들고 세계제일(世界第一)이 되어다오.”
“세계제일?”
야장의 말에 만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야장의 눈에는 기이한 열망이 깃들어 있었다. 만우는 새삼 세상이 참 넓다고 생각했다. 이런 눈을 가진 야장은 중원에도 없었다.
‘이런 이들이 마검이나 신검을 만드는 건가.’
검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많은 곳이 바로 중원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보니 별의별 전설들이 다 떠돌지만, 그중에서도 무림의 후기지수들이 가장 좋아하는 이야기가 바로 마검과 신검의 이야기다. 주인을 해하는 마검(魔劍). 주인을 보하는 신검(神劍). 하지만 그토록 검을 좋아하고 수집하는 것을 즐겨한 만우도 마검과 신검을 본 적은 없었다.
‘마교주의 검을 천마신검이라 부른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하지만 혈세천마는 만우와의 비무를 거부했다. 그 때문에 만우는 천마신검을 보지 못했다. 그것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세상은 넓어. 그리고 특이한 금속들이 많지. 몇몇 금속들은 명에서도 구할 수 없는 금속들이 있다는 소문을 들은 적이 있어.”
야장은 눈을 부릅떴다. 철사처럼 삐죽삐죽 솟은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