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반역?(1)2019.04.16.
“후.”
으슥한 골목길에 들어선 만우가 얼굴을 가렸던 복면을 풀었다. 시야를 가리고 호흡을 방해하는 물건이었지만 정체를 감추기에는 제격인 물건이었다.
“아는 놈이 하나도 없네.”
이미 하오문에도 찾아갔던 만우였다. 하지만 하오문에서는 은월루란 조직 자체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그들의 규모를 봤을 때 이미 짐작은 했지만 중원의 하오문과 비교하면 정보력이 대단히 부족했다. 그래서 기둥서방들이나 뒷골목의 파락호들을 중점적으로 조사했다. 하지만 그들도 아는 것이 없었다. 단서는 단 하나.
“양반들이 안다는 거지.”
은월루는 오직 양반들의 의뢰만 받는다고 했다. 의뢰비가 워낙 비쌌기 때문에 웬만한 양반들도 엄두를 내지 못 한다고 했다. 그 때문에 그들은 양반들 중에서도 고위 관직에 있거나 역사가 있어 저력이 있는 가문들, 혹은 상단의 대행수들이 주요 고객이었다.
“그들 중 하나를 덮친다?”
만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가 무림십좌 중 일인인 검주라고 하지만 나라의 권력을 들쑤시고 다니는 것은 조심해야 했다. 한 손이 열 손을 당하지 못 하는 법이다. 무공은 초인의 힘을 내줄 수 있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만능이 아니란 것을 만우는 잘 알고 있었다.
‘나에 대해 모르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일 때가 기회다.’
만우는 혼자였다. 문형일과 마익후가 있다고는 하나 그들에게까지 모든 것을 털어놓은 것은 아니다. 그들은 일방적으로 만우에게 반해 만우의 부하가 되겠다고 투신한 이들이었으니까. 오랜 기간 홀로 중원을 독보하면서 만우가 얻은 교훈은 딱 하나였다.
‘사람을 믿지 마라.’
사람이란 연약하고 갈대처럼 지극히 작은 반응에도 흔들리기 일쑤여서 아무리 몸과 마음을 다 바친다고 했어도 자그마한 갈등과 유혹으로 인해 변하기 마련이다.
“은월루란 놈들. 보통 놈들이 아닌 것 같단 말이지.”
지난 며칠 간 한양 뒷골목을 들쑤시고 다니면서 만우가 얻은 정보는 양반이란 단서가 전부였다. 그렇다는 것은 그들이 지극히 비밀 조직이라는 셈이었다. 기둥서방들은 그들의 이름을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죽을 수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응?”
설미수의 저택으로 돌아가던 만우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그의 시야에 기마를 탄 관군으로 보이는 이들이 오와 열을 맞춰 설미수의 저택 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강해.’
그보다도 그들은 모두 강했다. 붉은 명광개 갑주로 통일한 그들 하나하나가 최소 일류에서 최고 절정이었다. 그런 이들이 수십이 넘었다. 관군인 것을 보면 저들은 모두 합격술을 익힌 이들일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집단전에서 같은 수와 수준의 무인들을 상대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모두 행공(行功)을 익힌 자들이다. 내공이 아니야.’
조선과 중원의 가장 큰 차이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중원은 체계화 된 무공을 스승으로부터 사사해 기초를 쌓는다. 그들이 가장 중점을 두는 것이 내공이기 때문이다. 내공이란 초반에는 굉장히 불안정한 것이어서 조금만 실수를 해도 바로 주화입마에 빠지게 된다. 그 때문에 스승의 존재가 가장 중요한 것이다. 반면 조선의 무예는 전부 행공이다. 좌공이나 입공을 하여 움직일 수 없는 내공과는 달리 행공은 몸을 움직이는데 중점을 둔다. 흔히 외공(外功)이라 불리는 신체를 단련하고 한 명의 스승 아래 수십 명의 제자들이 동시에 사사를 받으며 같은 행동을 수 천, 수만 번을 반복하여 연마한다. 마치 군대에서 조교에게 신병들이 싸우는 법을 배우는 것처럼.
‘그래서 중원에서는 스승이 한 번에 한 명밖에 신경을 써줄 수가 없지. 문파나 세가에서는 기초무공을 행공 방식으로 교육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옥석을 가리기 위함이니까.’
반면 조선은 그런 옥석을 가려내지 않지만 전체적인 수준을 끌어올리는데 중점을 둔다. 저 붉은 명광개를 입은 관군들은 그중에서도 특출난 이들만 모아서 만든 집단인 것 같았다.
“내금위가 북촌에는 웬 일이래?”
“내가 아나? 저 양반 나리들이 또 무슨 짓을 하다가 들켰나 보지 뭐.”
“아이고. 또 곡소리가 나겠구만.”
옆에서는 그것을 지켜보던 백성들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양반들을 추포할 때 나서는 관군이라. 내금위인가?”
만우는 그들의 수준이라면 내금위일수도 있겠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대체 왜 그들이 설미수의 저택으로 향한다는 말인가.
“설마.”
만우의 안색이 굳었다. 설미수는 반역이나 내금위에 끌려갈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 하지만 최근 설미수 저택에 일어난 변화라면 딱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만우 일행. 그리고 얼마 전에 궐에 입궐하여 세자에게 이야기를 했던 것도 만우의 일행들이었다. 문형일과 마익후. 그리고 감령과 필두.
“죄인 만우, 문형일과 마익후, 감령과 필두는 나와서 오라를 받으라!!!”
붉은 명광개 갑옷을 입은 내금위 수십이 설미수 저택을 감쌌다. 절정에 이르는 내금위 군관들이 수십이나 동원된 것을 보니 만우 일행의 실력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빠져나오지 못해.’
개개인의 실력은 만우 일행이 나았다. 하지만 저택을 포위한 내금위의 기세로 보건데 그들보다 한 수가 떨어져도 저들은 합격술과 인원으로 오히려 저들을 압도할 것이다. 그것이 훈련받은 군인들의 무서움이다. 아무리 초인 소리를 듣는 무인이라고 할지라도 수만 대 수만이 맞붙는 전장터에 내보내면 삽시간에 도륙당하고 만다. 스륵. 만우의 신형이 주변으로 녹아들었다. 중원에서 배운 잡기술 중에 하나였다. 만우는 늘 혼자였고, 상대는 많았기 때문에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그나마 심도 있게 배운 것 중에 하나가 바로 은신이었다. 내공으로 기척을 죽이고, 기도를 지우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어렵지 않은 기술이었다.
“그런데 대체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왕실과 관련된 내금위가 출동해 자신을 비롯한 중원 출신들을 잡아들일 명분이 없었다. 갑작스런 내금위의 등장에 설미수 저택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하지만 내금위장으로 보이는 강인한 인상의 무인은 수염을 파르르 떨면서 다시 한번 소리쳤다.
“어명이다! 죄인 만우, 문형일, 마익후, 감령, 필두는 어서 나와 오라를 받으라!!!!”
쩌렁쩌렁!!
“악!”
“으악!”
산천초목을 떨게 한다는 호랑이의 울음소리가 이러할까. 괜히 내금위장이 아니라는 듯 내금위장의 목소리에서는 추상같은 위엄이 느껴졌다. 그에 놀란 일반인들이 엉덩방아를 찧었다.
“죄인들을 추포하라!!!”
죄인들로 지목된 자들이 제 발로 나오지 않자 내금위장은 내금위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그러자 흉흉한 무기를 든 내금위들이 사방으로 산개해 설미수의 저택을 포위했다. 쾅!!! 만우는 침음성을 흘렸다. 내금위들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다. 저택의 주인인 설미수는 정2품 고위 문반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금위들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포위망이 완성되자 내금위들이 저택의 문을 도끼로 쪼갰다. 주로 역모와 반란 등을 진압하기 위해 결성된 내금위들은 최정예들이었다. 도끼질 몇 번에 두꺼운 저택의 대문이 산산조각이 나 사방으로 흩어졌다. 쾅!!!
“으악!”
“으아악!”
우당탕탕! 하지만 기세 좋게 들어간 내금위들이 순식간에 저택 바깥으로 튕겨져 나왔다. 내금위들이 땅바닥을 볼품없이 나뒹굴다가 간신히 몸을 일으켰다.
“감히! 어명에 거역하면 반역이다!!”
내금위장의 두 눈에서 불꽃이 토해졌다. 조선제일검인 권희달의 그늘이 크다고 하지만 내금위장도 그에 못지않은 무인이다. 중원의 무인들과 무예를 수련하는 방법이 다를 뿐, 결국 조선의 무(武)나 중원의 무(武)나 만류귀종인 법이다. 내금위장의 전신에서 노도와도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형일이나 마익후보다 반 수 정도 처지는 실력.’
그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보던 만우의 눈이 번쩍였다. 동시에 내금위장의 기세를 이어받아 내금위들이 기세를 끌어올렸다.
‘군진(軍陣)!’
그러자 개개인으로 볼 때는 잘 단련된 최정예처럼 보였던 내금위들의 기세가 단박에 몇 단계를 건너뛰었다. 대규모의 인원으로 펼치는 군진인 것 같았는데, 만우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 정도 규모로 단련된 군관이 펼치는 군진이라면 능히 그들보다 몇 배는 더 뛰어난 적을 상대할 수 있었다. 우웅!!! 그리고 그 군진의 기세와 내금위장의 기세가 합쳐지자 그 기세가 또다시 증폭됐다. 만우는 저 군진 안에서만큼은 내금위장의 기운이 문형일보다 반수 정도 앞선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 했다.
“…….”
저벅, 저벅. 잠시 뒤 부서진 대문 밖으로 문형일과 마익후, 감령과 필두가 걸어 나왔다. 그들은 모두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무리 무림인이라고 하지만 내금위들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눈치챈 것이다. 그에 앞서 어명까지 나왔다는 것은 무언가 일이 잘못되어도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뜻이다. 그 때 설미수가 걸어 나왔다.
“내금위장! 어찌하여 내 저택 앞에서 이런 소란을 피우는 것인가!!”
설미수의 호통은 벼락같았다. 검 한번 쥐어본 적이 없는 설미수였으나 붓과 묵과 함께했기 때문일까, 대나무 같은 꼿꼿함이 그에게서 보였다.
“설 부사 어르신. 이 일에 대해서는 유감이오나 소장은 어명을 받고 나왔소이다!”
“…….”
설미수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도 알고 있었다. 내금위장까지 나왔다면 역모에 준하는 중한 죄였다.
“이보게 내금위장. 이들은 내 식객일세. 이들이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은가. 이들은 조선말에도 익숙하지 않네!”
설미수는 어조를 바꿨다. 내금위장도 어명을 받고 왔다고는 했으나 고위 품계를 가진 설미수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내금위장은 딱딱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건 소장이 알 바가 아니옵니다. 소장은 그저 전하의 어명을 전달하고 명을 수행하는 사람일 뿐.”
창!! 내금위장이 전투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로 검을 뽑아들자 겁에 질린 양민들이 사방으로 흩어졌다. 내금위장이 물러설 것 같지 않았기 때문에 설미수는 다시 한번 간곡하게 말했다.
“내금위장. 내 얼굴을 봐서라도 그 연유를 알려줄 수 없겠는가? 조선말도 못 하는 이들을 궁궐로 압송해 봤자 서로 간에 오해만 쌓일 뿐이야.”
“…….”
내금위장은 고민했다. 추상같은 어명이 있었지만 설미수의 말을 마냥 무시할 수도 없었다. 내금위장은 서리가 내린 얼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검(劍)!”
“검?”
설미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만우의 폭력 때문에 조선말을 빠르게 습득한 다른 네 명도 고개를 갸웃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자저하께서 검을 잡으셨소.”
“아…….”
설미수는 고개를 떨궜다. 보위에 오른 지금의 왕이 검이란 무구를 얼마나 혐오하는지는 모든 관직에 오른 이들이 다 알고 있었다. 왕 스스로가 피의 길을 걸어 형제를 주살하고 그 자리에 올랐기 때문이었다.
“그것을 전하께서 보시었고, 진노하셨소. 그리하여 세자저하께 미혹을 불어넣은 그 주범들을 잡아들이라는 엄명이 계시었소.”
“…….”
설미수는 고개를 돌려 문형일과 마익후, 감령과 필두를 쳐다봤다. 그러고는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가 없네. 전하의 어명이야.”
“…….”
“…….”
고오오오!
네 명의 몸에서 노도와도 같은 기세가 일어났다. 네 명 다 중원에는 왕에 부족하지 않은 권력을 누린 이들이다. 아무리 그들이 만우에게 짓눌려 있다고는 하지만 초절정의 무위라는 것은 능히 한 지방을 제패하고도 남을 정도의 실력자였다. 실제로도 감령과 필두는 각기 수적과 산적을 아우르는 왕이 아니었던가. 거기에 문형일과 마익후도 검주의 맹목적인 추종자여서 그렇지 그 둘의 실력만 놓고 봐도 절대로 감령과 필두의 아래가 아니었다.
“역심을 품은 것인가!!”
“우리는 조선왕의 신하가 아니다!”
감령의 입에서 날카로운 중원어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내금위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후우우웅!!! 네 명의 몸에서 뿜어져 나온 기세와 내금위가 만들어낸 기세가 허공에서 맞부딪치면서 작은 용권풍을 만들어냈다.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네 명을 보면서 내금위장의 아미가 미미하게 떨렸다.
‘길보다 흉이 많겠구나.’
저 네 명은 결코 그의 하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내금위장은 내금위의 군진과 함께라면 권희달도 자신을 이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물러서지 않는다.’
내금위장인 그가 물러서면 끝장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보는 눈이 많았다. 그러니 왕실의 권위를 위해서라도 그는 물러설 수 없었다.
“이보시게들!!!”
설미수가 다급하게 네 명에게 말했지만 네 명은 듣지 않았다. 그 네 명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은 만우밖에 없었다.
‘막야야 한다!’
설미수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지만 방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 때 설미수를 비롯한 네 명의 귓가에 만우의 전음이 울려 퍼졌다.
[반항하지 말고 순순히 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