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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 검주, 입궐!(4) (30/400)

030. 검주, 입궐!(4)2019.04.13.

16553194351382.jpg“은월루?”

16553194351382.jpg“예, 예. 대형!”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신을 찾아온 기둥서방들에게 불퉁한 표정을 짓던 광문자의 얼굴이 놀람으로 물들었다.

16553194351382.jpg“어제 당한 놈들만 열 명이 넘습니다. 그리고 다들 똑같은 질문을 받았어요. 은월루에 대해서 말입니다.”

은월루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도 조심스러운 것인지 기둥서방들이 주변을 살폈다. 하지만 이내 광문자는 따분한 표정을 지었다.

16553194351382.jpg“그래서?”

16553194351382.jpg“대, 대형에게도 찾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시라고…….”

16553194351382.jpg“왜. 내가 죽기를 바라면서.”

광문자가 하얀 이를 드러내면서 사납게 웃었다. 광문자는 기둥서방들의 대형이었다. 정확히는 그가 되고 싶어 대형이 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스스로 광문자를 대형으로 모셨을 뿐이다. 그는 한낱 기둥서방이라고 하기에는 그 무력이 과할 정도로 강했으니까. 웬만한 파락호들 상대로도 밀리지 않는 기둥서방이 스무 명 넘게 매복하고 있다가 덮쳤는데도 광문자를 이기지 못 했다. 그 이후로 그는 기둥서방들의 대형이 되었다. 광문자를 덮친 이유? 간단했다. 조선에서 유명한 기생이 누구냐 묻는다면 양반들마다 각자 다른 대답이 나올 것이다. 평양의 누구, 동래의 누구, 한양의 누구누구. 하지만 그중 조선 최고의 기생을 한 명만 뽑으라고 하면 모두가 단 한 명을 지목할 것이다. 기생 어리. 18세의 나이로 한 송이 수선화 같은 아름다움은 물론이거니와 시서예화(詩書藝畵)에 모두 능했으며 조선을 세운 공신이자 역적이 된 삼봉 정도전의 정식 제자는 아니었어도 그가 사사(師事)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리고 정도전을 비롯한 그의 모든 일족이 임금에 의해 숙청을 당했으면서도 어리가 살아남은 이유가 그녀의 미색이 임금조차 매료했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었다.

16553194351382.jpg“저희가 어떻게 광문자 형님을…….”

16553194351382.jpg“언제부터 내가 네놈들의 형님이야?”

광문자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자 우르르 몰려들었던 기둥서방들이 움찔했다. 광문자의 어깨는 떡 벌어져 있었고 키는 천장에 닿을 정도로 컸다. 가히 삼국지의 장비의 현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부리부리한 두 눈이 기둥서방들의 기를 찍어 눌렀다.

16553194351382.jpg“더 이상 듣기 싫으니까 썩 꺼져.”

16553194351382.jpg“……네. 형님. 그럼…….”

광문자의 축객령에 모여들었던 기둥서방들이 꽁지가 빠져라 도망갔다. 광문자는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부리부리한 눈을 풀었다. 그러자 그의 눈꼬리가 순식간에 아래로 쳐졌다. 나른한 인상이 된 광문자는 햇빛을 쐴 요량인지 바깥으로 나와 기둥에 등을 대고 앉았다. 낮의 기루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16553194351382.jpg“에이씨. 은월루라니. 어떤 미친놈이 그걸 건드리고 다니는 거야.”

은월루를 알아내기 위해 기둥서방을 족치는 놈이 있다는 소리가 어지간히도 걸린 모양이었다. 광문자가 버럭 짜증을 내면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16553194351382.jpg“아가씨. 듣고 있는 거 다 아니까 나오십쇼.”

광문자가 말하자 기둥 너머에서 인형이 불쑥 튀어나왔다. 호리호리한 몸이 영락없는 여자의 체형이었다. 그러나 뭇 여자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여자가 등장한 순간 낮임에도 불구하고 주변이 환하게 밝아지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16553194351382.jpg“오라버니. 화났어요?”

16553194351382.jpg“내가 왜 오라버니입니까. 다른 나리들 들으시면 큰일나게.”

16553194351382.jpg“핏. 남자들은 왜 그렇게 오라버니란 소리를 듣고 싶어 하는지 몰라.”

어리가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런데 그 표정마저 교태스럽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광문자의 얼굴은 미동도 없었다.

16553194351382.jpg“들으셨죠?”

당연했다. 광문자는 어리가 그냥 기생이 아니란 것을 알고 있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 중 한 명이었다.

16553194351382.jpg“들었어요. 그렇게 우르르 몰려와서 난리를 피던데요? 그것도 신기루 기둥서방들이 아니었잖아요. 모를 리가 있나.”

기둥서방들은 기생들과 가장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이다. 기생들의 일을 알선해 주고 유사시에는 보호도 겸했기 때문이었다.

16553194351382.jpg“그래. 어떻게 하실 겁니까.”

16553194351382.jpg“뭘요?”

어리는 모르겠다는 듯 순진한 얼굴로 반문했다. 다른 남자였으면 그 얼굴에 껌뻑 넘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미색과 교태는 선천적인 것이다. 경국지색의 서시의 현신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16553194351382.jpg“은월루 말입니다.”

16553194351382.jpg“흐응…… 그게 왜요? 그네들이랑 어울리면 별로 끝이 좋지 못한 거 아시면서.”

은월루에 대해서 모르는 하류 인생들은 없었다. 중국의 하오문이 있듯, 조선에는 은월루가 있었다. 비록 근래에 들어서는 은월루가 활동을 하지 않아 그 빈자리를 하오문이 치고 들어오는 중이긴 했다.

16553194351382.jpg“아니, 저잣거리에 나가보면 하오문이란 놈들이 들끓습니다. 은월루가 나간 자리를 그놈들이 치고 들어오고 있어요. 그런데 이제는 기둥서방들을 족치면서 은월루를 찾고 다니는 괴한도 나타났습니다.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광문자의 시선이 주변을 슥 훑었다. 그는 입술을 살짝 축이고는 입을 열었다.

16553194351382.jpg“루주.”

어리가 생긋 웃어보였다. 그녀의 붉은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16553194351382.jpg“원래 달은 잡을 수 없답니다.”

매혹적인 어리의 얼굴이 빛을 발했다. 광문자는 그런 어리를 난감함이 어린 얼굴로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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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194351382.jpg“저, 저게 무엇이냐!”

임금이 두 눈을 부릅떴다. 철혈의 임금이라 불리는 임금의 용안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동궁전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습을 지켜봤다.

16553194351382.jpg“왜, 왜 세자가 무복을 입고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냐!”

16553194351382.jpg“저, 전하.”

상선이 다가와 허리를 숙였다. 상선은 내시들을 총괄하는 사람이자 임금의 가장 최촉근에서 그를 보필하는 내관이다.

16553194351382.jpg“상선은 상세히 고하라! 어찌하여 세자가 책 대신 검을 쥐고 있는 것인지!”

임금의 목소리에 노기가 실렸다. 동궁전 안에서는 세자가 세자복을 집어던지고 무사들이 입는 무복을 입은 채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지금이 고려라면 모르겠으나 이제는 조선이다. 그리고 조선은 칼이 아니라 책으로 나라의 기틀을 다잡았다. 비록 그것이 역적 삼봉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고는 하나 한때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임금이기에 그의 사상에 많은 부분을 가져다 조선의 기틀을 바로 세웠다. 그리고 그 안에 검은 없었다. 검으로 흥해 검으로 망한 나라가 바로 고려다. 손에 쥔 검을 함부로 휘둘렀기 때문에 나라와 대신들이 부패해질수록 그 검에 희생당하는 것은 바로 백성들이었다. 검은 나라를 지키는 무관들이 쓰면 되는 법이다. 나라를 다스릴 왕이 휘두를 검은 진짜 검이 아니라 머리에서 나오는 지식과 사람이라는 검이다.

16553194351382.jpg“당장 멈추어라!!!”

상선이 대답하지 못하고 꾸물대자 임금의 입에서 호통이 터져 나왔다. 동궁전 바깥에 서 있는 임금을 발견한 세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세자는 서둘러 검을 자신의 뒤로 숨겼다. 성큼 성큼. 대노한 임금이 등장하자 내관들과 궁녀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것은 아슬아슬한 표정으로 세자가 검을 휘두르고 있던 것을 보고 있던 계방 무인들도 마찬가지였다. 설운은 톡하면 쓰러질 것 같은 얼굴로 부복했다.

16553194438043.jpg“전하!!!!!”

원래라면 내관이 먼저 왕의 행차를 알렸어야 한다. 하지만 대노한 임금은 내관이 그걸 말할 새도 없이 동궁전에 그대로 들이닥친 것이다. 동궁전 앞뜰에 들어선 임금의 부리부리한 눈에 놀란 얼굴로 자신 앞에 고개를 숙이고 선 세자가 들어왔다. 그런 세자의 손에 들려있는 목검의 손잡이가 제법 떼가 타 있다는 것을 발견한 임금의 얼굴이 무섭도록 굳었다. 이내 임금의 입에서 무거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16553194351382.jpg“세자! 네가 손에 든 것이 무엇이냐!!!”

16553194351382.jpg“…….”

세자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 사적으로는 아버지지만 공적으로는 이 나라의 임금이다. 그리고 세자는 아버지란 존재가 얼마나 차가워질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왕위에 오른 아버지는 제 손으로 어머니의 친척들, 그러니까 세자의 삼촌들을 모조리 죽였다. 그 피비린내 나는 아버지의 결정을 어린 나이부터 보고 자란 세자다. 그렇기 때문에 세자를 비롯한 임금의 자식들은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다.

16553194351382.jpg“썩 대답하지 못할까!!!”

임금의 입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하지만 세자는 이제 고작 9살이다. 쉽사리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철썩!!!

16553194438043.jpg“저, 전하!!”

세자의 두 눈이 부릅떠졌다. 세자는 무언가 세차게 자신의 얼굴을 때렸다는 것을 시간이 지나서야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가움이 몰려들었다. 데구르르. 세자의 손에서 목검이 땅에 떨어졌다. 그러고는 데구르르 굴러갔다. 세자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볼을 부여잡았다. 임금의 용포가 크게 펄럭였지만 임금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의 얼굴에는 세자에 대한 실망감이 서려있었다.

16553194351382.jpg“세자는 자신의 잘못을 숨기지 말라!!!”

임금의 호통이 떨어졌다. 그러자 세자가 정신을 퍼뜩 차렸다. 그러고는 임금의 발치에 엎드렸다.

16553194351382.jpg“아, 아바마마!!”

바닥에 넙죽 엎드려 길게 읍을 하는 세자의 뒷통수로 임금의 추상같은 목소리가 쏟아져 내렸다. 어마어마한 분노가 담긴 목소리였다. 조정의 내로라하는 대신들도 감히 마주하지 못하는 임금의 호통이 어린 세자 위로 쏟아져 내렸다.

16553194351382.jpg“넌 이 나라의 세자다! 그런데 어찌하여 세자인 네가 너의 허물을 네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비겁한 짓을 하는 것이냐!”

16553194351382.jpg“소, 송구하옵니다, 아바마마.”

세자의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제법 어른스럽다고 하지만 이제 아이일 뿐이다. 어제 들은 무림인의 무용담에 손이 근질거려 참을 수 없었을 정도로 어렸을 뿐이다.

16553194351382.jpg“익위사!”

16553194351382.jpg“예! 전하!”

16553194351382.jpg“오늘부로 세자는 동궁전에 근신한다! 빈객 이내를 붙여 세자의 교육을 담당하라 이르라!”

16553194351382.jpg“알겠사옵니다!”

세자의 얼굴이 다시금 하얗게 질렸다. 뛰어놀기 좋아하고 활동적인 세자를 근신에 처하게 한다는 것은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임금은 거침없었다.

16553194351382.jpg“세자에게 검을 가져다 준 이. 앞으로 나서라!”

설운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세자인 양녕이 졸라 검을 가져다 준 것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설운은 앞으로 나섰다.

16553194466927.png“신 세자익위사 좌익찬 설운!”

설운의 얼굴을 본 임금의 구겨진 아미가 펴졌다. 설운의 이름은 그도 들어 알고 있었다. 권희달이 차대 조선제일검이라 평가했던 재능 있는 무관이었다. 임금은 인재를 사랑하고 좋아했다. 물론 그 인재가 임금의 말에 복종하고 잘 따를 때만 총애가 유지됐지만.

16553194351382.jpg“어찌하여 세자에게 검을 내주었는지, 과인을 설득하라!”

하지만 인재는 인재고 실수는 실수다. 임금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칼 같았다. 그리고 이건 간단한 일이 아니라 무려 세자와 관련된 일이다. 설운이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리고 이내 그가 그간 있었던 일을 임금에게 설명했다.

16553194351382.jpg“뭐라? 무림인이라면 중원의 무뢰배들이 아닌가! 그들을 궁으로 들였단 말인가!”

그 말을 전부 들은 임금의 얼굴에 노기가 떠올랐다. 설운은 그 모습을 보면서 눈을 질끈 감았다. 임금이 대노하여 만약 만우와 그 일당을 잡아오란 명령을 내린다면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날까.

16553194466927.png‘생각하기도 싫다.’

그들은 무림인이다. 그리고 만우를 제외한 전부가 대국 사람이며 개중 하나는 색목인이기까지 하다. 또한 그들이 중원에서 어떤 신분을 가지고 있는지도 불분명했다. 만약 임금이 대노하여 그들을 구금하였다가 대국이 항의라도 하면 어떻게 될까.

16553194466927.png‘순순히 잡혀준다는 가정 하에.’

그것도 그들이 순순히 잡혀준다는 가정 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계방 무인들과 그들 두 명이 호각을 이루는 것을 설운은 보았다. 만우의 아래에 모여든 네 명 중 자신 있게 이길 수 있는 이들이 단 한 명도 없었다.

16553194466927.png‘게다가 만우 그자는…….’

그자는 재앙이다. 임금에게 미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말을 해야겠다고 설운이 생각한 찰나 임금이 먼저 입을 열었다.

16553194351382.jpg“그자들도 이번 일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내금위는 당장 출동하여 그 자들을 압송하여라!”

16553194438043.jpg“예! 전하!!!”

임금의 추상같은 명령에 내금위들이 번개 같이 움직였다. 설운은 돌아서는 임금의 옷자락이라도 잡을 기세로 간절하게 입을 열었다.

16553194466927.png“전하! 그래서는 아니되옵니다!!!”

임금의 두 눈이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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