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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5. 어? 검주가 왜 여기서 나와? (15/400)

015. 어? 검주가 왜 여기서 나와?(1)2019.02.19.

하오문 한양지부 지부장인 삼복은 오래된 종이 냄새를 맡으며 마련된 하오문 안가에 들어섰다.

16553190736852.jpg“오셨습니까 지부장님.”

16553190736852.jpg“그래. 십령수(十靈手) 어르신은?”

16553190736852.jpg“안쪽에 계십니다.”

하오문 한양지부는 본국인 명에서도 거의 터부시되는 곳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정보의 중요성이란 것이 있고, 때로 조선에서 시작된 몇 번의 바람들이 중원 무림 전체를 휩쓴 적이 있기 때문에 유지하고 있는 곳이었다. 하지만 본국과 거리가 멀기 때문에 좌천성 인사가 배정되거나, 그나마도 본국에서 거의 사람이 넘어오지 않아 조선인들이 임명되고는 했다. 본국에서는 좌천성 인사지만 조선의 하오문도에게는 최고의 자리였다. 본국의 간섭이 적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임의로 처리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하오문주나 다름없는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 때문에 삼복은 평민 신분이었지만 절대로 평민 신분이 모을 수 없는 막대한 돈을 벌 수 있었다. 본국에서 넘어오는 정보 몇 개를 상인들에게 팔기만 해도 막대한 돈이 굴러들어왔기 때문이다.

16553190736852.jpg‘본국에서 온 분이라니. 이게 십 년 만에 있는 일이던가?’

하지만 지금의 삼복은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긴장으로 인해 쿵쾅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히기 위해 애를 썼다.

16553190736852.jpg“야. 나 어떠냐. 옷 제대로 입었지?”

16553190736852.jpg“예. 잘 어울리십니다.”

삼복의 심복인 말똥이 대답했다. 삼복과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온 동네 동생이다. 원래라면 소작이나 하면서 살아가야 되는 놈을 삼복이 거둬들였다.

16553190736852.jpg“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 십령수라니. 별호도 무시무시하구만.”

그래도 하오문의 지부장이었기 때문에 삼복은 얼마간의 무공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이가 삼류라 불리기에도 창피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길거리에서 그를 상대할 자가 없었다. 포도군사들도 상대가 되지 않았고 포도군관 정도는 돼야 했다.

16553190736852.jpg“정말 손짓 하나면 산을 허물고 바다를 가를까요?”

하지만 본국에서 온 십령수를 본 순간 삼복은 자신이 우물 안의 개구리란 것을 느꼈다. 본국의 하오문에서 특수한 임무를 받고 왔다는 십령수는 무려 이류급의 고수였다. 당연히 삼복으로서는 전의조차도 느낄 수 없는 것이 당연했다.

16553190736852.jpg“대협. 한양 지부장입니다.”

16553190736852.jpg“들어오라.”

삼복은 십령수를 최선을 다해 극진히 대접했다. 그가 혹여라도 기분이 상한다면 삼복으로서는 곤란하게 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일 진수성찬에 밤에는 기생들을 안겨주었다. 그 때문에 십령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삼복을 맞이했다.

16553190736852.jpg“그래. 무슨 일인가.”

그는 낮임에도 불구하고 기생을 옆에 끼고 있었다. 비록 일류급 기생은 아니지만 중소 기루에서 가장 인기가 좋은 기생이었다.

16553190736852.jpg“말씀하셨던 노비들을 모두 간추려 내었습니다.”

16553190736852.jpg“그래?”

십령수의 눈이 날카로워졌다. 그의 기세가 달라지자 삼복이 침을 꿀꺽 삼켰다.

16553190736852.jpg“불만이 많은 노비들로만. 확실하겠지?”

16553190736852.jpg“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16553190736852.jpg“그러면 머슴들은?”

16553190736852.jpg“머슴들도 특별히 불만을 가지고 있거나 원한을 품은 이들을 선별했습니다.”

16553190736852.jpg“신경을 써야 한다. 이번 일의 동량(棟梁)이 되어야 할 이들이니까.”

16553190736852.jpg“예.”

16553190736852.jpg“그럼 그다음은?”

16553190736852.jpg“서달과 표운평이란 자이옵니다.”

16553190736852.jpg“흠…… 서달과 표운평이라.”

십령수가 턱을 쓰다듬었다. 그는 50대가 넘은 초로의 노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욕이 왕성해 밤마다 기생을 갈아치웠다. 삼복은 주름진 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하고 눈을 내리깐 채 그의 결정을 기다렸다.

16553190736852.jpg“서달이란 자부터 시작한다. 자리를 마련하라.”

16553190736852.jpg“예. 대…….”

와자작!!!! 고개를 꾸벅 숙이고 대답하려던 삼복이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무너진 벽이 그의 머리를 강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십령수는 괜히 이류가 아니라는 듯, 갑작스런 상황에도 파편을 쳐냈다. 그런 십령수의 눈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16553190736852.jpg“웬 놈이냐!!”

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십령수는 내기를 끌어올려 안력을 강화했다. 하지만 십령수가 먼지 속의 습격자를 파악하기도 전에 자욱한 먼지 속에서 팔이 불쑥 튀어나왔다. 퍼벅!!! 십령수는 그 팔을 향해 자신의 주먹을 휘둘렀다. 그는 스스로에게 십령수란 별호를 지어 그렇게 부르도록 했다. 열 명의 목숨을 앗아간 손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십령수의 눈이 커졌다. 자신의 육합권이라면 조선에서 자신의 주먹을 받아낼 수 있는 자는 별로 없다고 자신하고 있었다. 중원에 비해 조선에는 제대로 된 고수라고 불릴 이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중원의 한 성(州)보다 작은 조선이고, 현재의 강력한 왕은 관을 제외한 다른 세력이 힘을 얻는 것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무인들이 줄어든 것도 그렇게 판단하는데 한몫했다. 하지만 육합권에 얻어맞고도 흔들림 없는 팔은 십령수의 예상을 뛰어넘는 고수라는 소리다.

16553190736852.jpg“컥!!!!”

아니, 십령수는 자신의 생각을 고쳤다. 먼지 구름 속에서 튀어나온 손이 자신의 목을 틀어쥐는 순간, 자신이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길 수 없는 고수라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 것이다. 하오문도로 무림에서 삼십 년을 구르면서 십령수가 얻은 것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눈치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단박에 상대와의 실력 차이를 알 수 있었다.

165531907671.jpg“너냐? 여기 지부장이?”

그리고 먼지구름을 헤치고 튀어나온 얼굴을 본 십령수의 두 눈이 찢어져라 커졌다. 먼지구름을 헤집고 나온 얼굴은 하오문도라면 절대로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다. 유명인사나 유명한 고수에 대한 용모파기를 모두 숙지하기도 하지만 밑바닥 인생인 하오문과는 떼려야 델 수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산적. 십만 녹림의 왕. 갑자기 자취를 감춘 녹림제일채 옥면대체의 주인! 옥면산군 감령.

16553190736852.jpg“왜, 왜 감 대협이 거기서 나오십니까?”

십령수가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감령이 자신의 손아귀에 목줄이 잡힌 십령수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165531907671.jpg“날 알아? 조선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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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55319078278.jpg“고, 고마운데 이것 좀 놔!!!”

탁! 만우는 자신의 손아귀의 힘을 느슨하게 해서 방매가 손을 빼낼 수 있게 했다.

1655319078278.jpg“너 뭐야? 뭔데 날 도와줘?”

방매는 맨 처음 인상 그대로였다. 통통 튀다 못해 당돌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하는 게 직선적이었다.

16553190782788.jpg‘무림의 재녀들이랑 비슷하네.’

일반인의 성격보다는 무림의 수많은 여인들과 비슷한 성격이었다. 자신들의 실력에 자신이 있어 남자보다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거나 남자들을 눈 밑으로 보는 그런 여인들. 부르르.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검주의 비무행에서 가장 끈질기게 들러붙었던 사천당가의 당소소가 떠오르자 만우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1655319078278.jpg“어? 어디 아파? 역시. 아까 어디 맞은 거지? 괜찮아?”

하지만 방매는 그것을 어딘가 아픈 것으로 생각한 것인지 만우의 몸 여기저기를 살폈다. 하지만 만우의 몸은 지극히 깨끗했다.

16553190782788.jpg“내가 물어볼 게 있어서 말이야.”

만우는 손을 내저으면서 방매에게 말했다. 방매는 어깨의 보따리를 고쳐 메면서 만우를 쳐다봤다.

1655319078278.jpg“크게 다칠 뻔했는데 구해줬으니까. 기분이다. 두 가지까지는 물어보는 거에 대답해 줄게.”

16553190782788.jpg“뭐?”

만우는 벙찐 표정을 지었다. 칼에 찔릴 뻔한 것을 구해줬는데 그 대가가 고작 질문 두 개라니. 하지만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가 물어볼 것은 그 정도의 가치가 있기는 했다.

16553190782788.jpg“네 보법이랑 각법. 사문(師門)이 어디야?”

1655319078278.jpg“아. 그게 궁금했구나?”

무림에서 상대방의 사문을 물어보는 것은 꽤나 조심해야 되는 일이다. 명문정파(名門正派)의 자제라면 모를까 무림에서 상대방의 이력에 대해 캐묻는 것은 금기에 속한다. 하지만 방매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밝게 대답한다.

1655319078278.jpg“안국방(安國坊)의 조 할아버지가. 어릴 때 배웠어.”

16553190782788.jpg“안국방 조 할아버지?”

만우가 고개를 갸웃했다. 만우의 기천은 김약항이 명으로 가기 전 비싼 돈을 들여 산 무예서에 적혀 있는 고대 한반도의 무예였다.

16553190782788.jpg“그걸 뭐라 부르는데?”

1655319078278.jpg“수박희(手搏戱). 아마 아는 사람들 많을 거야?”

16553190782788.jpg“수박희…….”

만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여아가 알 정도면 삼재검법이나 육합권처럼 대중화 된 것일지도 모른다.

16553190782788.jpg‘각법이라. 특이하긴 하네.’

각법이라는 점에 있어서 만우의 흥미를 끌었다. 기천은 보법과 권법, 검법과 기천무는 있지만 각법은 없었기 때문이다.

16553190782788.jpg‘기천과 같은 뿌리를 가진 각법이라. 한번 안국방을 찾아가야겠어.’

만우는 안국방 조 할아버지라는 이름을 기억했다.

1655319078278.jpg“또 물어보거나 그럴 건 있어? 내 개인적인 것도 가르쳐 줄 수 있는데.”

방매는 대담하게 말했다. 만우는 그런 방매를 보면서 귀엽다는 듯 웃었다. 자신의 소맷자락을 붙잡고 칭얼대던 화산파의 소령과 비슷해 보였기 때문이다.

16553190782788.jpg‘은퇴한다면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 했구나 그 세계에서.’

도산검림의 강호무림에서 은퇴하겠다 생각했지만 아직 완벽하게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긴 지난 오 년을 그 세계에서 깊숙이 발을 담그고 살았는데 빠져나오는 것이 몇 달 만에 가능할 리 없다.

16553190782788.jpg“아니. 없어.”

1655319078278.jpg“그래? 아쉽네. 내 이름 정도는 알려줄 수 있었는데.”

만우의 말에 여인으로서 서운할 법도 하지만 방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16553190782788.jpg“방매. 아니야?”

1655319078278.jpg“어! 내 이름을 어떻게 알았어?”

방매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러자 예쁘장한 얼굴에 어울리는 표정이었다. 만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16553190782788.jpg“귀가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는 걸 못 들었겠어. 좋은 구경했다. 내가 조선에 온 지 얼마 안 됐거든.”

1655319078278.jpg“진짜? 어디에 있다 왔는데? 왜(倭)? 아니면 명?”

16553190782788.jpg“명.”

만우가 말하자 방매의 눈빛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리며 빛나기 시작했다. 명에 대한 환상이라도 있는 모양이었다.

1655319078278.jpg“거, 거긴 어때? 내가 화장품을 파는데 명에서 들어온 게 항상 엄청 비싸고 품질도 좋거든. 거기 사는 여자들은 전부 선녀 같이 생겼어? 이렇게 좋은 걸 바르니까 선녀처럼 생기진 않았을까?”

만우가 헛웃음을 지었다. 좋은 화장품을 바르니 선녀처럼 생겼을 것이라니.

16553190782788.jpg“똑같아. 조선 사람들이랑 비교해서 특별히 더 예쁘진 않아.”

1655319078278.jpg“그래? 아쉽네. 그래도 팔 때는 도움이 되겠다. 마나님들이나 콧대 높은 영애들은 자신들이 제일 예쁘기를 바라거든. 그런데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되나?”

방매가 콧잔등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매분구로서 여러모로 고생이 많은 듯했다.

16553190782788.jpg‘재밌는 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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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앞에서 이렇게 조잘조잘 이야기를 늘어놓는 여자를 보는 것도 오랜만이다. 칙칙한 남정네들이랑만 백 일 동안 붙어 다녔더니 더 기분이 좋은 건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화장품이 들어 있는 행상에서 은은한 분 냄새가 풍겨져 나왔으니까.

16553190782788.jpg“너. 매분구면 한양 지리는 빠삭하겠네?”

1655319078278.jpg“당연하지.”

16553190782788.jpg“그럼 아까 못한 부탁을 쓰자.”

만우는 한양 지리를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감령도 마찬가지다. 명나라 사람인 그가 한양 지리를 알면 그게 더 이상하다.

16553190782788.jpg‘하오문 때문에 한창 정신도 팔려 있을 거고.’

어디로 가는지는 말해놨으니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만우는 방매를 쳐다봤다.

16553190782788.jpg“길 안내 좀 해줘. 판한성부사 설미수 나리 댁이 어디야?”

  *** 중원무림은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평화에 최고 전성기를 구가했다. 명나라 주원장 때부터 시작된 무림의 평화는 현 황제인 영락제의 의지에 따라 그대로 이어졌다. 그는 강력한 왕권을 원하는 황제다. 그렇기 때문에 명나라 속 또 다른 세상인 무림인들이 설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등극 초기면 으레 왕권으로 모든 권력이 집중되기 때문에 무림의 사파나 마교는 허리를 숙인 채 행동을 최대한 자제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태평성대처럼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수면 위에 뜬 백조가 우아해 보이지만 물속에서 보면 물장구를 계속해서 치고 있는 것처럼, 평온해 보이는 겉모습 아래로 무림의 세력들은 바쁘게 암중으로 움직였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바로 하오문. 정보력과 무력에서 개방에게 밀리기 때문에 주로 사파의 정보 창구가 되어주고 있는 하오문의 무화 임수미는 희열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무림에서는 힘이 곧 법이고 권력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이라고 해도 절대적인 힘 앞에서는 언제나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뒷골목 좀도둑이나 기생처럼 사회에서 외면당한 하류인생들이 모여든 곳이기 때문에 그럴듯한 무공 하나 없는 하오문에서는 가장 고강한 무공을 지닌 자가 절정에 불과할 정도였다. 일반 중소문파만 가도 절정들이 두세 명씩 있는 반면 중원 전역의 정보를 다루는 하오문의 절정 고수가 고작해야 두세 명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환경이 열악하다는 뜻이었다. 때문에 그들에게는 높은 무공으로 고수를 배출하는 것이 하오문 전체의 염원이었는데, 하오문에 드디어 그 방법이 굴러들어온 것이다.

16553190828522.jpg“드디어. 우리 하오문에게도 기회가 왔습니다!”

무화 임수미가 유례없이 흥분한 채 손에 들린 장보도(贓寶圖)를 들고 부르르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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