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이곳에는 황금 마검이 없는 것 같습니다.”
발레린은 당황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제르딘은 아예 탐색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더 안 찾으시나요?”
“이렇게 찾다간 이곳에서 완전히 길을 잃을 것 같습니다. 동굴도 끝이 없고 우리가 처음에 빠진 지점이랑 점점 멀어지고요.”
“…….”
“거기다 탐색기로 마력을 찾는다 해도 그곳에 황금 마검이 있을지도 모르고요.”
발레린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다. 넓은 모래 바닥은 어디까지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고 이곳은 어둡기만 했다. 거기다 등불도 점점 약해지고 있었다.
발레린이 등불을 빤히 쳐다보자 제르딘이 말했다.
“등불은 걱정하지 마세요. 왕궁에서 쓰던 등불은 일주일은 갈 겁니다.”
“일주일이요?”
“마력을 입혀서 쉽게 꺼지지 않습니다.”
“등에 마력을 입히다니. 50년 전에는 그저 기름만 입혔지 않나요?”
제르딘이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발레린은 세상이 많이 발전했다고 느꼈다.
“그러고 보니 공녀는 탑 안에서 오래된 책만 읽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네, 그래서 세상이 이렇게 변했을 줄은 몰랐어요. 마력으로 등불을 이용하다니.”
발레린은 다시 등불을 바라봤다. 약간 약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꺼질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발레린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왕자님, 등불에 마력이 있다면 마력 탐지기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걸 수도 있지 않나요?”
“그러기에는 등불에 있는 마력이 많이 약합니다. 여기에 탐지되는 마력은 무기에 쓰이는 마력이라 꽤 강력할 거고요.”
발레린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주변을 둘러봤다. 여전히 어두운 동굴 안에는 모래가 많았다. 이곳에서 황금 마검을 찾는 것은 무리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전히 발레린의 콧속에는 미미한 사과 향이 존재했다. 발레린은 다시 집중해서 냄새를 맡아 보았다. 그때 묘하게 톡 쏘는 냄새가 따라왔다.
발레린은 곧바로 눈을 뜨고서 냄새를 따라갔다.
“공녀.”
제르딘이 뒤따라오며 물었다.
“혹시 독 냄새를 맡은 겁니까?”
발레린은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는 안 났는데 지금은 묘한 냄새가 나요.”
발레린은 정신없이 냄새를 따라갔다. 제르딘은 더 말을 붙이지 않고 발레린을 따라갔다. 그는 틈만 나면 발레린을 쳐다봤다. 발레린은 제르딘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저 콧속에 따라오는 냄새를 쫓아가려는 심정뿐이었다.
발레린은 약간 흥분한 채 말했다.
“분명 냄새가 나요. 아까는 나지 않았는데 여기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아요.”
그때 어깨 위에 있던 그로프가 말했다.
“그런데 주인님, 아까도 이런 냄새를 맡은 겁니까?”
“아니.”
“그럼 갑자기 이런 냄새는 왜 나는 걸까요? 원래는 주인님께서 다른 냄새는 느끼지 않으셨잖습니까?”
그 순간 발레린은 멈춰 섰다. 옆에서 따라오던 제르딘도 발레린의 발에 맞춰 멈췄다. 발레린은 약간 멍한 얼굴로 말했다.
“이것도 내 능력 아니야?”
그 말에 그로프가 받아쳤다.
“능력이요?”
“그러고 보니 내가 정말 집중할 때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지금은 또 그 묘한 냄새가 안 나.”
그 말을 하면서 발레린은 눈을 감으며 코를 킁킁거렸다. 한참 냄새를 맡던 발레린은 빠르게 눈을 떴다.
“냄새가 나!”
그때 제르딘과 눈이 마주쳤다. 제르딘은 무척이나 흥미로운 듯 발레린을 보고 있었다. 그의 눈에 은근한 생기가 비쳤다.
발레린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왕자님! 뜻하지 않게 능력을 발견한 것 같아요!”
제르딘은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물었다.
“무슨 능력이요?”
“제가 집중하면 독 냄새를 더 잘 맡는 것 같아요. 심지어 지금은 아까 맡은 냄새가 나지도 않아요.”
그때 그로프가 개꿀개꿀 울면서 말했다.
“역시 주인님이십니다. 능력도 스스로 발견하시고요.”
발레린은 활짝 웃으며 그로프를 보았다. 확실히 무언가 달라졌다. 이젠 저주도 발레린의 능력으로 서서히 변하고 있었다. 발레린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제르딘에게 말했다.
“왕자님, 새삼스럽지만 다시 한번 고마워요. 왕자님이 아니었다면 저는 지금도 입에서 독기를 그대로 내뿜고 있었을 거예요.”
그러곤 발레린은 곧바로 눈을 감은 채 냄새를 맡았다.
제르딘은 여전히 발레린을 쳐다봤다. 발레린은 정말이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여태껏 그가 한 번도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기도 했다.
제르딘의 시선은 발레린에게서 한시도 떠나가지 않았다.
13. 뜻밖의 발견
발레린은 곧 냄새를 따라서 걷기 시작했다. 제르딘은 별말 하지 않고 발레린을 따랐다. 발레린은 오로지 독 냄새에 집중하며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떴다가 빠르게 걸었다. 그렇게 한참 가던 발레린은 문득 멈춰 섰다.
어깨 위에 얌전히 있던 그로프가 급히 물었다.
“주인님, 찾은 겁니까?”
“여기에서 가장 강하게 냄새가 나!”
그 말을 듣고서 제르딘은 곧바로 칼을 빼 들었다. 그는 발레린이 서 있는 지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칼을 찔러 넣었다. 그때 제르딘이 문득 멈칫하며 발레린을 쳐다봤다.
발레린은 놀란 눈으로 제르딘이 칼을 꽂아 놓은 모래 바닥으로 다가갔다.
“뭐가 있나요?”
제르딘은 잠시 굳은 얼굴로 있다가 천천히 칼을 빼 들었다. 그때 칼끝에서 초록빛 액체가 흐르며 흰 연기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발레린이 동그랗게 눈을 뜨자 제르딘이 설명했다.
“독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행히 제 칼은 어느 정도 마력이 저항이 있어서 녹지는 않았지만.”
“그럼 황금 마검은 없는 건가요?”
“이 주변을 모두 칼로 찔러 보면 되겠죠.”
제르딘의 말은 너무나 차분했다. 하지만 마음이 급한 발레린은 주변에 앉아서 손으로 모래를 파내기 시작했다. 그때 제르딘이 발레린 곁으로 급히 다가왔다.
“공녀, 무작정 파낸다고 해서 황금 마검을 찾는다는 보장도 없습니다.”
“하지만 여기선 분명히 아까와 다른 독 냄새가 났어요. 그리고 아까 왕자님이 칼에서 초록빛 액체가 떨어졌는데 분명 플린 독이었어요.”
그때 그로프가 끼어들었다.
“그런데 주인님께서는 아까 다른 독 냄새가 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이상해. 아마 플린 독과 마력이 통하는 무기가 함께 있어서 냄새가 특이하게 나는 것 아닐까?”
그 말에 그로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다면 마력과 함께 동화되면서 냄새가 변했을 수도 있고요.”
발레린은 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책에서도 마력이 통하는 무기를 너무 많이 소독하면 마력에 영향을 받아서 독에도 변형이 온다고 했거든.”
발레린은 생각할수록 머릿속이 착착 돌아가는 게 기분이 좋았다. 발레린은 확신의 미소를 지으며 제르딘을 쳐다봤다.
“왕자님, 분명 여기에 황금 마검이 있을 거예요!”
제르딘은 그다지 확신하지 않는 듯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곧바로 발레린 옆에 무릎을 굽히며 앉았다.
“제가 뭘 도와주면 되겠습니까?”
발레린은 제르딘의 칼을 보았다.
“혹시 그 칼을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 아무래도 독이 있어서, 왕자님이 혹시라도 잘못되실까 봐 걱정이 되어서요.”
“생각보다 무거울 텐데요.”
“그렇게 무겁나요?”
제르딘은 발레린에게 칼을 내밀었다.
“한번 들어 보시겠습니까?”
발레린은 머뭇거리지 않고 칼을 받았다. 그 순간 손이 밑으로 처지면서 칼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그러나 제르딘이 능숙하게 칼자루를 마주잡아 주었다. 손이 마주쳐서 몹시 당황스러운 가운데 제르딘이 천천히 칼 손잡이를 잡았다.
손에 닿는 체온이 꽤 뜨거웠다. 발레린은 당황하며 빠르게 말했다.
“그럼 제가 손으로 다 파낼게요.”
하지만 제르딘은 칼을 놓지 않았다. 발레린이 천천히 시선을 들자 제르딘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공녀, 칼을 놓아주셔야 제가 칼을 가져가죠.”
발레린은 급히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놓았다. 제르딘은 능숙하게 칼을 허리에 있는 칼집에 넣었다. 발레린은 어색한 상황에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 맨손으로 모래를 파내려 했다.
그때 제르딘이 급히 발레린의 손을 잡았다. 발레린은 깜짝 놀라며 제르딘을 쳐다봤다.
“지금 모두 조사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우선 이곳에 위치를 기억한 뒤 조사관이 오면 찾도록 지시하겠습니다.”
발레린은 그저 멍한 얼굴로 제르딘을 쳐다봤다. 제르딘은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 지었다. 너무나 눈부신 미소였다. 누군가 보면 한눈에 반할, 아니, 넋을 빼놓을 만한 미소였다.
그때 그로프가 울었다.
“개꿀개꿀.”
발레린은 곧바로 고개를 내렸다. 하지만 여전히 제 손이 제르딘의 손과 맞닿아 있었다. 발레린이 멍하게 보고 있자 제르딘이 멈칫하며 물러났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발레린은 여전히 제르딘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기계적으로 모래를 파내려던 찰나였다.
“공녀, 일어나세요.”
꽤나 낮은 목소리에 발레린은 놀라며 제르딘을 올려다봤다.
“괜히 손 더럽히지 마세요. 이 위치는 제가 기록했으니 조만간 조사관이 조사를 할 겁니다.”
“그분들이 오기 전이라도 살펴보면 안 되나요?”
“살펴보기에는 꽤 넓고 끝도 없을 겁니다. 두 명이서 조사하기에는 무리고요.”
“그럼 정말 독이 있는지만 살펴보면 안 되나요?”
제르딘은 발레린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혹시 배고프십니까?”
그 말을 하면서 제르딘은 마른 육포를 꺼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