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68화 〉 왜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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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 황녀와 이레아 한의 만남이 썩 좋다고 할 순 없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렌 황녀는 잠잠하게 그녀의 밑에서 수학하는 중이었다.
그녀의 눈빛을 보고 있으면 이레아 한에게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닌 게 분명했는데 그래도 배울 건 배워야 하니 조용히 그녀의 밑에서 성질을 죽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나야 좋은 일이었다.
아렌황녀가 이레아 한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그녀가 우뚝 설 수 있을 확률이 줄어드는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이레아 한의 말을 철썩 같이 들어서 나에게도 의존하지 않으려고 한다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였다.
이레아 한은 객관적으로 볼 때 정말 뛰어난 교육자다.
라일라의 천성이 워낙 강력해서 그녀의 성격을 바꿔 놓지는 못했지만 라일라는 자신의 위치에서 그녀가 어떤 것을 해야 할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참모의 정석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얌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습이 아주 든든했으니까.
아렌 황녀가 그런 이레아 한의 말을 잘 듣고 완전한 군주로 성장하게 된다면 나에게 무슨 해가 될지 알 수 없었다.
'나에게 해가 되는 것 보다는 아렌 황녀가 입는해가 훨씬 더 크겠지.'
내가 입는 해라고 해봤자 아렌황녀를 일찍 죽여서 받는 손해 밖에 없는 데 아렌황녀는 괜히 나대다가 명을 단축하게 되는 셈이니까.
아무튼 앞으로의 일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다시 생각해 보기로 하고 이제는 당장 중요한 전쟁에 관심을 가져야 할 때가 왔다.
'세력이 워낙 약해서 아무런 신경도 안쓰고 있었지만 진짜 전쟁이 목전에 다가온 지금까지 무시하고 있을 수는 없지.'
1황녀와의 전쟁은 모두가 내 승리를 점치고 있었다.
당장 아이작 세력만 해도 내가 1황녀에게 승리한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 제안을 하러 왔고 다른 세력들도 이제 진정한 황실파가 완성될 거라고 생각했는지 내 밑으로, 정확히는 아렌 황녀의 밑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일주일에 하나 정도의 세력이 황실파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충분히 이런일이 일어날 수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아렌 황녀가 1황녀를 몰아내고 어린 나이에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나름 강한 세력들이 그녀를 지지해 주고 있기 때문에 선황보다 상황이 더 안 좋기는 해도 그녀가 제대로 된 황제로서 움직일 수 있다는 계산을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렌 황녀의 옆에 있다가 그녀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면 제 2의 중앙파 같은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건데 지금까지 제대로 된 선 하나 없이 난세를 살아온 작은 세력들의 눈이 돌아가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선황 때와 비교하면 야망있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제대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가장 크게 성장하고 있는 세력인 만큼 그 가능성을 보고 들어오려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성공률이 아주 높고 고점도 높은 데다가 저점까지 같이 높은 로또였으니까.
그리고 나는 정말 당연하게도 오는 이들을 막지 않았다.
나는 그들을 제어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다.
어차피 내가 제어할 수 없는 큰 세력들은 아렌 황녀의 밑으로 들어오려고 하지도 않았고 지금 들어오는 세력들의 대부분이 잔챙이에 속하는 세력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막을 필요가 없었다.
내가 제어할 수 없는 이들이 오더라도 상관 없었다.
그렇게 큰 세력이라면 아렌황녀님을 지지할 거라는 확신이 없다는 이유로 쫓아내면 됐으니까.
"전쟁준비는 잘 돼가고 있어?"
"아무런 문제 없이 잘 되어 가고 있으니까 너무 걱정 하지 마. 특히 제도 출신인 알라마하가 사령관의 자리를 맡기로 했으니까 절대로 질리가 없을 거야."
"알라마하 말고 우리 세력의 애를 군단장으로 세워, 어차피 누가 군단장을 맡아도 지기가 쉽지 않은 전쟁인데 경험치를 쌓아 줘야지."
"알았어, 되도록이면 우리 애들한테 맡길게."
1황녀와의 전쟁이 바짝 가까워졌다.
1황녀는 1황녀나름대로 제도에서 있는 병력 없는 병력 다 모아가면서 힘을 짜 내고 있었고 나도 나 대로 내 세력을 사용해서는 처음 경험해 보는 전쟁을 준비 중이었다.
내가 황실파의 대장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다 보니 나에게 병력을 지원해 주겠다고 한 이들도 많았다.
그들 중 몇몇은 전쟁에서 공을 세우기 위해서 병력을 지원한다고 일렀고 또 몇몇은 진심으로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병력을 지원해 준다고 한 것이었지만 나는 그들의 지원을 받지 않았다.
내 힘으로도 충분히 이겨낼 수 있는 적을 상대로 굳이 다른 이들과 공을 나눌 필요가 없었으니까.
"제가 도와드릴 건 없습니까?"
그런 나에게도 고민을 하게 만드는 지원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에프로트의 지원이었다.
'흐음...'
그녀의 얼굴은 순수해 보였다.
전공을 위해서 나를 도와준다기 보다는 나에게 고마운 것이 있어서도와주고 싶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이건 못 믿지.'
그녀가 나에게 거짓 표정을 짓고 있을 거라는 게 아니라 그녀에게 붙여준 참모가 나에게 받은 은혜를 갚아 한다면서 에프로트를 꼬득였을 가능성이 너무나 높았다.
에프로트는 전쟁에 나가서 공을 세워야 하다는 마음으로 나를 도와주겠다고 말할 정도로 뻔뻔한 이가 아니었지만 참모는 또 달랐으니까.
'그래도 에프로트는 이야기가 좀 달라.'
내가 다스리는 지역 안에서 세력을 기르는 중인데다가 다른 동맹군들과는 다르게 그녀를 내 아래에 복속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나에게 있어서도 기회일 수도 있겠네.'
다른 이들의 지원은 아예 받지 않는데 에프로트의 지원만 받는 다면 다른 이들은 뭐라고 생각할까?
에프로트와 나의 관계가 그렇게 끈끈하다고 생각할까? 에프로트 자체가 원래 프레스티아의 세력에 있다가 내 세력으로 넘어온 자인데?
당연히 에프로트가 나에게 복속되었다고 생각할 거다.
나는 그걸 이용하면 된다.
에프로트가 나의 것이라는 것을 다른 곳에서 외치고 다니는 게 아니라 단 한번의 전쟁에서 그녀가 마치 내 부하인 것 같은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그녀를 완전히 나에게 복속시키는 것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었다.
'에프로트의 참모가 여기까지 계산하지 못했을까?'
그러지는 않았을 거라고 본다.
내가 다른 이들의 지원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참모도 모르는 게 아니었을 테니까.
아마 참모는 나를 따르는 게 에프로트 세력 전체를 유지하는 데 더 이득이라고 생각하거나 에프로트 자체가 내 밑의 사람이라는 인식이 퍼지는 것을 무효화할 수 있을 정도로 큰 이득이 전쟁에서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거겠지.
'머리 싸움은 그냥 시에린한테 맡기자.'
"전장에 나설 아주 강력한 기사 전력이 부족한데 에프로트님이 참여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에프로트님 처럼 강력한 기사가 전장에 참여 한다면 그야말로 천군 만마를 얻은 기분일 겁니다."
"알겠습니다! 은인을 도울 수 있다니 오히려 제가 더 기쁘군요!"
그녀는 진심으로 기쁜 표정으로 나에게 대답했다.
'그래, 에프로트의 참모야. 너는 도대체 어떤 이득을 챙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에 에프로트를 전쟁에 참여 시키려고 한 거지?'
기쁜 표정을 짓고 집무실을 나서는 에프로트를 바라보며 그녀의 뒤에 있을 참모를 떠올렸다.
그녀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에프로트를 전장에 참여시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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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아이데스님이 주군한테 전쟁에 참여할 걸 부탁하셨다고요?"
"어! 그래서 바로 알겠다고 했지! 어차피 가서 전쟁에 참여해도 되냐고 여쭤보라고 했잖아."
에프로트의 참모는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을 수 밖에 없었다.
그녀가 에프로트에게 아이데스의 전쟁에 참여하고 싶다고 말하라고 했던 것은 그저 안부 인사 정도의 위치를 가지고 있는 일이었다.
어차피 참가 시켜주지 않을 것을 알고 있는 상태였기에 한 번 아이데스에게 말이라도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은 예의에서 차이가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번 말이나 해보라고 한 것이지 당연히 될 거라고는 생각도 안하고 있었다.
"하...하하... 큰일 났네요..."
"뭐가 그렇게 큰일이 났어?"
"다른 세력들은 전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데 에프로트님 혼자만 아이데스님을 지원하면 다른 세력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요!"
"글쎄? 나랑 아이데스님이 가깝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프레스티아 헬링님 밑에 있다가 뛰쳐나와서 최근에 합류한 주제에요?"
참모의 말에 에프로트의 입이 꿀먹은 벙어리가 된 듯 다물어졌다.
'시에린 말에 꼬득여진 게 문제지...'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에프로트를 바라봤다.
'그냥 아이데스님의 밑으로 들어가는 쪽으로 방향을 잡을까?'
명목상으로는 다른 세력이어도 실제 관계는 군신 관계와 비슷한 느낌으로 끌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일단 제가 전략을 세워볼게요."
"그럼 나는 전쟁 준비를 할게!"
아무런 걱정과 생각 없이 밖으로 나서는 에프로트를 보며 한숨을 내쉰 뒤 아카데미에 들어가기 전 부터 친구였던 시에린이 있는 곳을 향해 발걸음을 때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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