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2화 〉 습격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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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샤의 군대가 숲밖으로 나오니 확실히 숲 안에서 행군 할 때 보다 공격하기가 힘들었다.
경로를 수정한다면 아이작이 있는 곳까지 평지와 성만 밟고 움직일 수 있었으며 전문적으로 위장술을 배우지도 않은 그녀들이 평지에서 몸을 숨기고 갑작스러운 기습을 하기엔 불가능함과 동시에 평지는 숲과 다르게 말의 이동이 자연스러운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공격한 다음에 숲으로 도망가면 따라올 수 없었지만 이제는 도망치면 말타고 추격대를 꾸미면 그만이었다.
주변에 프레스티아 말고 다른 적도 없으니 아나샤까지 합류해서 따라올 수 있었고 북부의 기사들이 아나샤를 지원하고 경기병들이 기사를 지원하고 든다면 아무리 프레스티아라도 위험에 빠질 수 있었다.
사실 800명 정도 되는 전력을 미리 깎아내고 아무런 손해를 보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큰 전공이었다.
이 이상 아무도 죽이지 않고 그냥 돌아가도 하이네스가 기록해 놓은 영상자료로 인해충분히 전공을 인정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프레스티아는 아직 배가 고팠다.
고작 일반 병사 800명을 줄이고 상대의 사기를 낮춘 것은 대규모 회전이 벌어지면 순식간에 따라잡힐 수 있는 전공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프레스티아는 아나샤의 군대에서 가장 큰 전공을 가져다 줄 대상 하나만 더 잡아서 본진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어차피 더 시간을 끌어서 괴롭히려고 해봤자 성타고 평지타고 가다가 아이작과 합류하면 자신이 더 손해 볼 가능성이 크니 이쯤에서 멈추려는 것이다.
"오늘은 아예 작정하고 전면에서 나타나셨구만, 지금까지는 중간만 끊어 먹더니 기사들을 중간 위주로 배치해서 힘들었나봐?"
"자신의 작전에 너무 과한 자부심을 가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정면을 선택한 건 평지라서 몰래 습격하기 힘들기 때문이지 중앙에 기사들이 많아서가 아니야?"
그 동안 여러번의 습격을 받으면서 아나샤의 대비도 굉장히 좋아졌다.
프레스티아가 전면으로 쳐들어오자마자 빠른속도로 기사들이 앞쪽으로 몰려왔다.
이렇게 기사들이 빠르게 합류 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확인된 모든 프레스티아의 수하들이 전부 모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나샤가 데리고 온 기사들은 50명에 달했다.
제대로 된 기사라고는 10명도 채 되지 않는 프레스티아가 감당하기에는 힘든 전력이었다.
근래에 드디어 통제권을 잡게된 적기사단의 손을 빌린다면 기사 50명은 커녕 만명에 해당하는 군단 전부를 쓸어 버릴 수 있었겠지만 안타깝게도 적기사은 명목상 황제의 소유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전장으로 데려올 순 없었다.
그렇다고 프레스티아의 세력이 마냥 밀리는 건 아니었다.
방학동안 빡세게 훈련해서 어느덧 무력 60을 바라보고 벨리아와 루이나가 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신입생도 데려올 걸 그랬군.'
아직 초짜라서 전장의 광기에 미쳐 버려 말을 잘 듣지 않을 까봐 두고 왔는데 이렇게 힘대 힘 구도로 흘러가니 그녀의 강한 무력이 이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아나샤, 나와 1대1로 대결을 하는 건 어떤가? 각 군사를 이끄는 자들의 수장으로서 검을 겨누는 거다."
"네가 나랑?"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프레스티아는 분명 무력 잠재력이 넘쳐나는 인물이었다.
무력 잠재력이 100이 넘는 미친 재능 덕분에 군주일에 집중하면서도 요즘 빠르게 성장해 무력 60을 넘어섰지만 아나샤를 상대하기엔 아직 많이 부족했다.
일단 아나샤는 아이작의 심복중 하나였다.
강함을 추구하는 아이작이 자신의 옆에 둘 정도로 아나샤는 높은 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릴 때 부터 자신의 영지 근처에서 몬스터와 야만족을 잡으면서 자라온 아나샤는 25살인 현재 무력이 75가 넘었고 아이작 다음으로 소드마스터의 경지에 도달할 것으로 유력하게 여겨지고 있었다.
그런 나한테 저딴 애송이가 1대1로 도전한다?
프레스티아가 무조건 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언니가 말씀하셨지, 내가 무조건 이길 것 같은 상황이 나오면 상대방에서 꿍꿍이가 있는 거니까 무슨 일이든 절대 들어주지 말고 바로 상황을 빠져나오라고.'
아나샤는 언니말을 잘 듣는 착한 기사였기 때문에 콧방귀를 뀌면서 프레스티아의 발언을 거절했다.
"됐어. 너같은 꼬맹이랑 뭘 싸우겠냐."
"쫄았어?"
여자가 여자를 상대하기 이토록 좋은 말이 없을 정도로 완벽한 도발이었지만 아나샤는 화난 표정만 지을 뿐 절대로 프레스티아에게 먼저 다가가지 않았다.
개인적인 일이었다면 상대가 프레스티아건 언니의 말씀이건 뭐건 돌진해서 다 때려 부쉈겠지만 지금 자신은 군단장의 위치에 있는 몸이었다.
수많은 병사들이 자신을 따르고 있으며 이 병사를 잃었다가는 아이작이 길길히 화를 낼 것이 분명했다.
"그래 쫄았다."
"고작 꼬맹이라면..."
"네 힘에 쫀 게 아니다."
아나샤가 눈에 힘을 빡 주고 프레스티아를 노려봤다.
"너의 혀가 무섭다. 너의 계락이 무섭다. 네가 나에게 어떤 사특한 짓을 써서 부당한 승리를 가져갈지가 두렵다. 그렇기에 나는 너와싸우지 않을 것이다."
아나샤의 뒤에 있던 기사들이 일제히 검을 꺼내 들었다.
"우리 병사들을 수백명씩 죽여 놓은 주제에 정정당당한 대결을 바라지 마라."
기사들이 프레스티아 쪽으로 천천히 다가오기 시작했다.
"쯧, 골빈 병신년이라고 들었는데 생각이 있는 놈이었잖아?"
프레스티아가 자신이 들고 있는 검을 저 멀리 던졌다.
검은 땅에 닿는 순간 폭발하여 사라졌다.
군단장이라는 년이 멍청하게 가장 앞장서서 나왔으면 이 검을 이용할 각이라도 봤겠지만 기사들을 먼저 내보내고 단단히 숨어있었기 때문에 마땅한 각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만 돌아가도록 할게. 본 전장에서 봤으면 좋겠어."
"누구 마음데로, 너희는 이곳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우리를 막으려면 다음엔 마법사를 데려오라고."
프레스티아가 신호를 보내자 하이네스가 텔레포트 마법을 사용했다.
미리 준비한 마법진을 작동시켜 발동한 마법은 프레스티아 무리를 순식간에 다른 장소로 이동시켰고 아나샤는 닭 쫓던 개가 된 것 마냥 프레스티아가 사라진 곳을 멍하니 쳐다 볼 수 밖에 없었다.
***
"아깝군, 잘만 하면 아나샤 년 모가지를 따다 갈 수 있었을 텐데 말이야."
아나샤의 군단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건 아나샤였다.
아이작의 측근인 만큼 포로로서의 가치도 높았고 만명의 병사를 이끌던 군단장을 잡았다는 것 만으로도 큰 전공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검을 아나샤쪽으로 던지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래봤자 다른 기사들만 다치지 아나샤 년한테는 피해를 입힐 수 없어. 차라리 허공에 던져서 아무런 피해를 안 입히는 게 나아. 어차피 그 상황에서 죽여봤자 기사 한 둘 더 죽이는 건데 기사 하나둘 더 죽이는 것 보다는 마지막 인상을 깔끔하게 남기는 게 나아."
벨리아와 프레스티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하이네스가 자신들이 이동한 곳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평범하게 사용해도 제대로 못하는 다인원 텔레포트를 아무리 마석이랑 마법진을 이용해서 사용했다고 해도 상황을 보다가 능동적으로 발현해야 하는 마법인 만큼 그 정확도가 부족했다.
본래는프레스티아의 진지로 이동하려고 했지만 지금 도착한 곳은 진지에서 무려 3km나 떨어진 곳이었으니까.
그녀들이 하루만에 주파한 300km의 거리에 비하면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였지만 지금 그들에게는 말이 없다.
프레스티아의 수하들인 만큼 몸관리가 잘 되어 있어 3km정도 더 가는 것에 힘들어 할리는 없었지만 아무리 그녀들이라도 물리적인 한계는 존재했기 때문에 병영까지 돌아가는데 30분은 투자해야 했다.
그렇게 진지로 돌아가고 있던 그들의 기감에 누군가가 걸렸다.
가든이 시켜서 병사들이 마중을 나왔나 싶었지만 명확하게 느껴지는 살의는 절대로 아군의 것이 아니었다.
"어디갔다가 이제 오십니까?"
"젤리, 이게 얼마 만이야. 인사라도 한 번 할까?"
쾌활히 말하는 어투와는 다르게 프레스티아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산발이 된 머리카락, 대충 걸쳐 입은 듯 하면서도 은근히 틈이 없는 사슬 갑옷, 자신의 몸만한 대검.
그녀는 프리스티스 헬링의 수하였다.
자신들의 정적을 제거하는 용도로 사용하는 킬러라는 게 아주 큰 문제였지만.
그녀 하나만 있었다면 큰 문제 없었겠지만 진짜 문제는 주변에 상당수의 기사들이 배치되어 있다는 것이다.
"막사안에 잘 계셨으면 이런일도 없었을 텐데 왜 갑자기 나대셔서 이런일을 만드십니까."
젤리가 껄렁이는 표정으로 프레스티아에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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