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8화 〉 집2
* * *
"저녁은 먹었어?"
"못 먹었어요."
2시 정도부터 계속 잤으니 당연히 밥을 먹지 못했다.
혹시 나 빼고 저녁을 먹은 건 아닐까 싶어서 애들의 눈치를 살폈는데 눈을 반짝반짝 빛내고 있는걸 보니 날 버리고 지들끼리 밥을 먹는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은 걸로 보였다.
"저녁해놨으니까 맛있게 먹으렴."
어머니가 가리킨 식탁에는 상당히 많은 양의 음식들이 정돈되어 있었는데 그 수준이 상당히 높아서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나올 정도였다.
내 반응이 기분 좋으셨는지 어머니가 방긋 하고 웃으셨다.
"그러면 많이들 드세요."
그리고 자리를 비켜 주셨는데 나와 여자애들 세 명이 앉아서 맛나게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각종 고급음식들에 찌들어 있던 내 입맛에도 아주 편안하게 잘 들어맞는 걸보니 역시 집밥만 한 게 없었다.
'섀도스탭은 어딨지?'
여름 방학 때 미네타의 영지에 들렸다 오는 길에 영입했던 아이가 집에서 보이지 않는다.
어머니랑 편지로 주고받길 집에서 딸처럼 키우고 계신다고 했는데 어디로 간걸까?
"섀도스탭 찾니?"
"섀도스탭이요?"
내가 어머니한테 얘 이름을 말해줬나?
'자기 스스로 이름을 짓기 전까지는 무명으로 있어야 해서 다른 사람한테 말해준 기억은 없는데...'
아무래도 벌써 자기 이름을 지은 모양이다.
섀도 스탭이라니, 지금 생각해봐도 정말 중2병 스러운 이름이지만 섀도 스탭의 차가운 성격속에 중2병 기질이 가득 숨어있어서 그런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플레이어가 개명하라고 하면 호감도랑 충성도가 쭉쭉 떨어질 정도로 이름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기도 하고.
"어, 그 아이가 앞으로 자기를 그렇게 불러 달라고 하더라, 엄마 생각엔 예쁜 이름은 아닌 것 같은데 자기가 그렇게 불러달라는데 어떡하겠어."
"결국 걔는 어디 있는 거에요?"
"너보고 찾아달라는 데? 집 안에 숨어있어. 멀리 떨어지지도 않았단다."
어머니가 푸근하게 미소지으셨다.
"애가 재능이 대단하더라고 제대로 가르친지 아직 반년밖에 안됐는데 은신술을 거의 마스터 했어. 가끔은 나도 찾기 힘들 정도로 주변에 잘 숨어든단다."
마나를 활용하는 방법이 마법과 검기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사람에 따라 마나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고 섀도스탭은 은신을 위해 마나를 사용하는 데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이쪽도 마법이긴 해.'
마법의 정의는 마나가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모든 현상의 총칭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검기도 마법의 일종이 되어 버리기 때문에 통상적인 마법은 서클 마법만을 가리키지.
"어머니가 찾기 힘들 정도면 저도 못 찾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찾아야 할걸? 네가 찾느냐 찾지 못하느냐에 따라서 그 아이가 너를 따라갈지 안 갈지가 달려있으니까."
"허... 참, 주군 말을 듣지 않는 수하라니..."
라일라가 낮게 혀를 찼다.
'일이 좀 복잡하게 흘러가는데?'
내가 상단의 동선 손해를 보면서 굳이 아이데스 마을에 방문한 이유는 물론 어머니와 플린을 보기 위함도 있지만 새도스탭을 데려가기 위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어머니가 전문적인 암살자도 아니다 보니 더 이상 어머니 밑에서 배울 게 없을 거라고 생각해서 제대로 요원으로 써먹으려고 데리러 온건데 내가 못 찾으면 날 따라가지 않겠다고?
'불쌍해서 주워와 줬구만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
그렇다고 찾지 않을 수도 없었다.
그녀는 앞으로 내 일에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재였으니까.
"제가 도와줘도 될까요?"
"안돼요. 그 아이는 플레아 혼자서 자신을 찾기를 바라고 있답니다. 타인의 도움은 인정하지 않을 거에요."
"하아... 일단 밥 부터 먹고 찾을 게요."
오랜만의 집밥인데 느긋하고 맛있게 먹고 싶다.
"플레아 너 어떡하냐? 큰일 난 것 같은데."
"닥치고 밥이나 먹어 시에린."
시에린이 키득하고 웃고 있을 때 우리 어머니의 얼굴이 싸악하고 굳으셨다.
그리고는 시에린을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노려 보시는 데 굳이 말씀 하시지 않아도 내가 시에린을 이름으로 불렀다는 부분에서 오해를 하고 계시다는 걸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남자가 여자를 이름으로 부른 다는 건 정말정말 친하거나 연인이라는 뜻이니까.
'근데 어머니가 그렇게 착각하시면 안되죠.'
어머니는 시에린이 내 가장 친한 친구들 중 하나인 것을 알고 계신다.
거기에 더불어 내 수하기도 한 만큼 내가 시에린을 이름으로 부르는 게 아주 이상한 상황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상황이라고도 볼 수 있지. 수하를 꼬박꼬박 성으로 불러주는 주군이 이세상에 얼마나 있겠어.
"마디안씨라고 하셨나요? 제 아들과는 무슨 관계시죠?"
"아주 친한 친구이자 수하입니다. 아주머니가 걱정하는 관계는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맞아요. 그냥 친한 친구면서 수하에요. 아무리 남녀 관계여도 서로 친하면 이름 정도는 부를 수 있잖아요?"
"일단 알았다."
어머니가 미심쩍은 눈빛으로 시에린을 한참 바라보다가 눈빛을 거두셨다.
어머니의 오해가 일단락 된 뒤 밥을 다 먹었는데 이제 부터 숨바꼭질을 할 시간이 찾아왔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제 힘만으로 찾아야 한다는 거죠?"
"그래."
일단 마법부터 사용해 보기로 했다.
2개의 서클로 발현할 수 있는 탐색 마법의 종류는 굉장히 제한적이었지만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반경 5미터 정도의 탐색 범위를 가진 채 우리 집 전체를 돌아다녔는데 그 어디에도 섀도스탭의 모습은 잡히지 않았다.
'내 마법이 통하지 않을 정도로 실력차이가 많이 나는 걸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움직임에 맞춰서 자리를 이동하는 걸 수도 있지.'
어느쪽이 됐건 마법으로 섀도스탭을 찾기란 쉽지 않아보였다.
'섀도스탭이 얼굴이 통하는 상대도 아닌데...'
시에린이 숨어있는 거였으면 맨얼굴 보여준다고 하면 바로 나왔을 텐데 얘는 잘생긴 얼굴 하나를 보고 나올 정도로 만만한 애가 아니었다.
섀도스탭도 여자인 만큼 잘생긴 얼굴을 좋아하긴 하겠지마 그것 하나만으로 신념을 져버리진 않겠지.
결국 내가 믿을 건 마법밖에 없었다.
맞으면 은신이 겨우 풀릴 정도의 약한 공격마법을 사용하며 집 전체를 돌아다녔음에도 섀도스탭은 잡히지 않았다.
"집 안에 있는 건 맞죠?"
"당연히 있지 아들, 아들이 못 찾는 것 뿐이란다."
어머니가 저렇게 당당히 말씀하시니 나한테 사기를 치고 다른데 숨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한참을 뒤져도 섀도스탭을 찾지 못하자 결국 어머니가 중재를 시작했다.
"아들, 그냥 못 찾은 걸로 끝내는 게 어떠니?"
"안돼요. 무조건 찾아야 해요."
걔가 해줘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 데 여기에 두고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처음엔 내 안전을 걸고 협박할까 고민을 해봤지만 그런짓을 했다간 라이넬이 달려와서 나를 제압할 게 뻔했기 때문에 바로 기각시켰다.
3분가량을 멍하니 서서 생각했는데 도저히 섀도스탭을 찾을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섀도스탭, 이제 나오렴."
허공에 그림자가 일렁이며 소녀의 모습이 나타났다.
얘도 성장기인지 키가 한뼘은 큰 것 같은데 다행이 나보다는 훨씬 작은 편에 속했다.
"바로 앞에 있었네."
"오랜만입니다.주군."
서로의 모습을 확인하자마자 섀도스탭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나를 올려다봤다.
"그리고 내일 헤어지겠지. 내가 널 찾지 못했으니까."
작정하고 화를 내볼까도 고민했지만 섀도스탭같이 딱딱한 애한테 화를 내봤자 나만 힘들지 제대로된 성과도 못 낸다.
그냥 덤덤하게 손해를 받아들이자.
분하긴 해도 그게 맞는 판단이니까.
"아닙니다. 저는 주군을 따라 갈겁니다."
"왜? 나는 분명 너를 찾지 못했는데 말이야."
"주군께 저를 찾아달라고 부탁드린 이유는 주군의 능력을 시험하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저의 실력을 판가름하기 위함이었죠. 제가 모시는 주군에게도 들킬정도의 은신술을 가지고 있다면 주군에게 합류하는 것 자체가 누가 되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러면 오히려 찾으면 큰일 날 뻔 했던거야?
악착같이 방법을 떠올려서 어떻게든 찾아냈으면 가만히 있어도 합류할 섀도스탭을 먼 미래로 떠나 보낼 뻔했다.
"잘됐네. 결국 따라온다는 거잖아."
시에린이 섀도스탭의 뒤로 다가와서 꼭 껴안으려 하자 섀도스탭이 상당히 빠른 속도로 시에린의 몸을 피했다.
"죄송합니다. 다른 사람과 몸이 닫는 걸 그리 즐기지 않습니다."
"아니야... 내가 갑자기 다가간 게 잘못 된거지..."
시에린이 축하고 쳐지니 라일라가 옆에서 꼭 안아줬다.
'결국 다 모으긴 모았구만?'
앞으로 한동안 인재에 목마를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재는 다다익선이지만 당장 세력을 운영하는 데에는 이 정도 인재들이면 족하니까.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