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1화 〉 청십자회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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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 아카데미의 학장은 중앙파의 인물이다.
지금 내 앞에 계신 학장님 말고 난세의 학장을 말하는 것인데, 나름 멀끔하게 생긴 귀족이긴 했지만 중앙파의 인물이었다.
나름 높으신 귀족이었지만 남녀역전의 여파로 그 분은 사라지시고 여자 학장님이 그 자리를 채우셨는데 저번에 헬링에게 적색기사단의 단장을 소개 시켜 줄 때부터 중앙파는 아닐 거라는 생각을 가지긴 했지만 설마 청십자가 연맹에 속해 있을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학장님이 왜 여기서 나오세요?"
"왜 여기서 나오냐니, 너를 이동시켜준 것도 나구만."
왜 기숙사에 숨어 있던 리트레이트의 종이 잘리지 않고 남았는지.
나름 철저한 보안을 자랑하는 기숙사실에 편지를 두고 갈 수 있었는지에 대한 의문이 한번에 풀렸다.
학장이 청십자가 연맹원이었다면 너무나 쉽게 해결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건 좀 충격인데...'
아무리 난세와는 다른 세계의 다른 인물이라지만 원래는 중앙파였던 학장이 청십자가 연맹원으로 나오는 건 좀이상하지 않아?
밸런스 잘 맞는 거야?
'확실히 난세보다는 황실파가 조금 더 유리한 환경이긴해.'
난세에서는 1황자 세력도 주요 세력으로 등장한다. 모계의 세력도 약하고 본인의 능력도 낮은 편이지만 가장 먼저 태어났고 남자라는 이유로 이점을 받게 되었는데 아마 청십자가연맹도 1황자냐 1황녀냐를 두고 싸웠을 것이다.
그런데 남녀역전이 일어나면서 1황자 세력이 사실상 몰락했기 때문에 여자라서 더 적법하고 더 강한 세력을 가지고 있는 1황녀를 온전하게 밀 수 있었기 때문에 황실파의 힘이 집중될 수 있는 환경이기도 했다.
"이동시킨 뒤에 바로 따라오면 됐지 왜 이제야 나오세요?"
"그러면 재미 없잖아.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이 나같이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었거든, 한을 대하는 거 보니까 정신이 아주 잘 박혀 있더라."
"왜 자꾸 나를 물고 늘어져!"
"그럴 수도 있지, 너 원래 동네북이잖아. 막내가 새로 들어왔다고 해서 설마 동네북 신세를 빠져나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거야?"
"나는 위대한 황실..."
"의 종인 한 나미트다. 됐지? 재는 황실에 대한 충성심이랑 실력은 확실한데 그거 빼면 너무 다혈질이라서 남는 게 없어. 밸런스를 좀 잘 맞췄으면 훨씬 좋은 인재가 됐을 텐데."
지금까지 내가 학장한테 가지고 있던 이미지와는 상당히 상반된 이미지였다.
늘 차분하고 친절하게 말하는 학장의 모습과는 달리 장난스럽고 수다스러웠으며 뻔뻔했다.
남자애들 얘기 들어보면, 젊고 멋진 느낌에 마법까지 수준급인 학장님을 아이돌 취급하는 애들도 몇몇 있었는데 아마 이런 모습을 보면 정을 때 버릴 것이다.
아닌가? 오히려 멋지다고 꺅꺅될 수도 있지.
'아예 처음 본 모습은 아니야.'
흑마법사들을 처리한 공로로 학장한테 보상을 받았을 때도 지금이랑 비슷한 모습을 보여줬지.
오히려 이쪽이 본 성격이라고 보는 것이 옳다.
학장으로 있을 때는 예의를 차려야 하기 때문에 예의 있는 모습을 보이는 거지만, 이런 자리에선 굳이 촐랑이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없으니까.
굳이 필요없는 행위를 하는 쪽이 더 본 모습에 가깝다고 봐야지.
"각자 자기소개 하던데 나는 안 해도 되지? 내가 제국 아카데미의 학장인거, 너도 잘 알잖아."
"네, 아주 잘 알죠."
다른 곳도 아니고 내가 다니는 아카데미의 학장님이시니까 모르면 간첩이지.
게다가 직접 만난적도 있잖아? 변장을 한 것도 아니고 말이야.
"이야, 네가 아무리 대단하고 제국에 대한 충성도도 높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벌써 청십자가연맹에 들어올 줄은 몰랐어. 누가 추천한거야?"
"그건 비밀로 하는거 아니었습니까?"
"에이, 우리사이에 비밀이 어딨냐?"
"저희가 도대체 무슨 사인데요."
"학장과 학생이지,"
"비밀이 충분히 많을 것 같은 사인데요?"
"째째하게."
학장님이 내 팔을 툭 밀어서 의자에 앉혔다.
그리고는 내 바로 앞에서 나를 내려다 봤는데 익살 스럽게 웃고 있어서 그런지 전혀 무섭지는 않았다.
'오히려 우스꽝스러울 정도야.'
"그러면 사상검증 한 번 해볼까?"
"하아... 마에아, 꼭 해야하는 일인가?"
"해야지, 지금까지 다른 신입들은 다 대답했는 데 말이야."
사상검증? 분위기를 보니까 그렇게 심각한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우리 청십자가 연맹은 제국의 존속과 발전을 위해 황실을 섬기는 집단이야. 그건 알지?"
"네."
"가장 가능성이 높은게 1황녀님이셔서 그 분을 푸시해 드리고 있지. 눈에 띄게 밀어드릴 순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도움을 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래서요?"
"너는 제국을 안정화 시키기 위해선, 반드시 1황녀님이 황제의 자리에 앉으셔야 한다고 생각해?"
"당연히 1황녀 님이 황제가 되셔야지! 1황자님과 3황녀님은 세력이 너무 약하시고 2황녀 님과 2황자님은 중앙파의 귀족들이 단단히 감시를 하고 있어, 1황녀님이 아니면 황제가 되실 분이 없으시다."
"아니, 2황녀님이나 2황자님이 중앙파의 손 아귀에서 벗어나실 수도 있는거잖아?"
목 뒤가 쎄했다.
"누가 제국을 지배하든, 제국을 안정화 시키고 강한 황권을 발휘할 수 있으면 되냐, 아니면 무조건 1황녀님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야 하냐에 대한 질문이죠?"
"그렇게 말하니까 편하네, 맞아. 같은 의미야."
'이 인간 설마...'
아니겠지? 벌써 부터 날 뛸 세력이 아니야.
그 세력이 움직이려면 아직 2년이 더 남았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학장이 그 세력의 사람이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경계하자.
"누가 제국을 지배하든 중앙파를 몰아내고 제국을 안정화 시킬 수 있다면 2황자님이나 2황녀님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셔도 상관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어차피 가장 가능성이 높은 건 1황녀님이니 무조건 1황녀님을 도와드러야죠."
"역시 그렇지?"
학장이 방긋 하고 웃었다.
"흥! 1황녀님은 황실을 계승하실 적법한 분이시다. 중앙파에 조금 밀리긴 해도 1황녀라는 직위 덕분에 우리가 모시는 것도 다른 분보다 쉽지. 도대체 1황녀님이 아니면 누가 황제에 올라 선다는 거야?"
'있지. 한명.'
어두운 곳에 숨어서 제국의 실권을 노리는 사람이 말이야...
회의는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학장과 나는 이미 아는 사이었기 때문에 소개를 오래 하지도 않았고 추가로 남아서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았다.
학장의 마법으로 기숙사로 돌아왔고 회의는 파해졌다.
침대에 앉아서 가면을 책상 위에 내려놨다.
'복잡하네.'
학장이 1황녀를 적극적으로 지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의 말 처럼 1황녀가 아니면 달리 황제로 옹호할 사람도 없긴 했지만, 굳이 황제여야만 제국을 통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대리 통치 체재가 있지.'
황제가 제대로 실권을 잡지 못했거나 너무 어려서 제국을 운영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대리 통치를 맡길 수 있는 제도가 있다.
아무래도 이 쪽을 노리는 것 같은데...
'훗날의 이야기니 나중에 생각하자.'
어차피 내가 막으려 해봤자 막는 게 불가능한 사건이기도 하니까.
옷을 갈아입고 자리에 앉아서 과제를 진행했다.
오늘은 왠지 과제가 손에 잘 잡히지 않았다.
***
"드레이크 경, 둘이서 이야기 좀 할까요?"
"알겠습니다!"
드레이크와 티르를 우리 파벌에 받아 들인지도 꽤 시간이 지났다.
세력 관련 이야기를 할 때에는 드레이크와 티르를 빼 놓고 이야기 했기 때문에 둘은 우리 파벌에서 상당히 겉도는 느낌이 있었다.
'이제는 제대로 영입해야지.'
나의 잘난 면모와 군주로서 가지고 있는 비전 등을 넌지시 보여줬다.
티르는 몰라도 드레이크는 나를 볼 때마다 늘 존경심에 찬 눈으로 보곤 했다.
"드레이크 경."
"네, 아이데스님."
"당신을 저희 세력에 영입하고 싶습니다."
"저를 아이데스님의 세력에 말입니까?"
이미 같은 파벌에 들어와 있다는 걸 생각했을 때, 갑자기 다시 세력으로 영입하고 싶다는 말이 어색하게 들릴 수도 있었지만 드레이크는 오히려 기쁘게 상기 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봤다.
드레이크를 차별한 건 아니지만 친구들이랑 몰려 다니면서 이야기를 한 경우가 많다 보니 드레이크도 나와 내 친구들이 따로 세력을 이루었다는 건 알 수 있었겠지.
"네, 단순히 학창시절을 함께 헤쳐나가는 파벌속의 존재가 아니라 평생 함께 할 군주와 수하의 관계로서 드레이크 경을 영입하고 싶습니다."
드레이크가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저 레밀레 드레이크, 주군을 지키는 검이 되겠습니다!"
음... 미안한데 넌 기사 아니라 군단장이 될 몸이란다.
'뭐, 그걸 굳이 말할 필요는 없지.'
착각은 자유라는 말도 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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