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초대자가 지옥에서 살아남는 법-45화 (45/61)
  • 〈 45화 〉 44. 카마엘

    * * *

    “사안의 중대함을 보면 그리 간단하게 정할 일이...”

    그렇게 루시퍼와 아가레스의 논쟁은 한참을 더 이어졌으나 마땅한 결론이 나지 않았다. 서로 조금도 의견을 굽히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후우...”

    그런 둘을 한참 지켜보던 사탄이 한숨을 쉬며 둘의 대화를 멈추었다. 사탄이 멈추라는 손짓을 하자 격렬하던 논쟁이 한순간에 끝이 났다.

    그후 잠시 둘의 대화를 복기하던 사탄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

    루시퍼와 아가레스의 대화를 멈춘 이후 한동안 이어진 사탄의 침묵. 잠시 동안 묘한 정적 속에서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정적이 깨진 것은 다시 사탄이 말을 꺼냈을 때였다.

    “방금까지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아가레스와 루시퍼, 둘 다 타당한 근거를 들어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둘 모두 강경하게 자신의 주장을 밀고 나가며 어떻게든 자신의 생각을 관철하려는 태도를 보였지.”

    사탄은 잠시 말을 멈추고 연회장을 내려다 보았다. 어느새 루시퍼와 아가레스 주변에는 저마다의 악마 무리가 형성되어 있었다. 둘 중 하나의 의견에 공개적으로 동의하는 악마들이 모여든 것이었다.

    루시퍼의 주변에는 마스테마와 아자젤을 비롯한 타천사 계열 악마들이 많았다. 원체 같은 타천사 악마들끼리 친분이 두텁기도 했고, 다들 회유와 끌어들이기의 대가들인지라 죽이기보단 이쪽 편으로 끌어들이자는 주장에 더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았다.

    아가레스의 주변에는 안드로말리우스나 파이몬처럼 레메게톤의 72 악마 군주에 속한 이들이 많았다. 물론 72명의 반도 안되는 숫자이긴 하지만, 워낙 독선적인 면이 강한 그들 특징상 이 정도면 많은 것이었다.

    72명의 악마 군주들은 각자의 개성이 강하지만 천사들에 대한 증오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 중에 절반이나 되는 숫자가 조각 소유자를 죽이자는 의견에 동참한 것이었다. 오래 전 광천사에게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이 그들이었으니, 그 조각에 대해 더 강한 경각심을 가지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모여있는 두 무리보다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악마들이 훨씬 많았다. 그들은 모두 뒤쪽에 자리한 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망하고 있었다.

    그런 악마들을 바라보던 사탄이 말했다.

    “내 생각에는 이렇게 논쟁을 계속하면서 의견이 합치되길 기다리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아마 끝나지 않는 논쟁이 이어지면서 갈등이 심해지기만 하겠지. 이미 두 악마에게 동참하는 악마들도 생겼고, 둘 중 누구도 상대를 숫자로 누를 만큼 많지 않은 상황이니 말이다.”

    논쟁에 참여한 악마들부터 그렇지 않은 악마들까지 대부분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들도 마침 이 논쟁이 그저 시간만 소비하고 결론이 안 날 거라고 예상하던 참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가지 간단한 해결책이 있다.”

    갑자기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탄에게 모든 악마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이 지루한 대치 상황을 끝낼 방법이 있단 말인가?

    “그냥 각자 알아서 하는 거다.”

    “.....”

    상상도 못한 해결책에 잠시 모든 악마가 할 말을 잃었다. 그렇게 다들 벙 쪄 있는 사이에 사탄이 말을 이었다.

    “조각을 가진 자를 죽여 없애자는 입장도, 그를 계약 등의 방법으로 끌어들이자는 입장도 모두 타당한 면이 있다. 그리고 둘 다 물러날 생각이 없다. 그러니 그냥 다들 자기가 원하는 대로 하면 되는 것이다. 굳이 하나로 의견을 합칠 필요 없이 말이다.

    루시퍼가 말했다시피 우리 악마들의 힘은 서로 견제하고 경쟁할 때 그 진가가 드러난다. 양쪽으로 나뉜 의견을 합치지 않고 놓아둠으로서, 그리고 어디에도 동의하지 않는 이들은 나름대로 개별 행동을 함으로서 우리는 서로 경쟁하게 된다. 그럼 이번에도 우리는 본래 우리가 가진 힘 이상의 효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의 이야기를 들은 악마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사탄의 해결책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알아서 하도록 방치 했다가 서로 부딛혀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할 수도 있고, 죽도 밥도 안되는 상황이 되어 천사들에게 조각을 뺏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이것보다 나은 해결책이 없다는 것은 확실했다. 의견을 합치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중립을 유지하는 악마들은 중재할 생각도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악마들은 본래 이런 상황에서 알아서 행동하며 나름의 결과를 얻어왔다. 하나로 단결된 조직은 아니지만 개개인의 능력이 뛰어난 점조직들. 이것이 악마들이 지금까지 고수해온 방식이었다.

    “옳습니다. 의미 없는 말다툼을 이어가기보다 개별로 행동하는 것이 더 낫겠지요.”

    “알았어. 입 아프게 말로만 뭐라 하는 것도 의미 없지. 동의할게.”

    대립하던 양측의 대표인 아가레스와 루시퍼가 사탄의 말에 동의했다. 그러자 자연스레 다른 악마들도 편승하면서 모두 동의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좋다. 그럼 광천사의 조각과 그 소유자에 대해서는 이것으로 논의를 마치도록 하겠다. 다들 자신이 원하는대로 조각에 대한 대처를 하길 바란다. 물론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충돌이나 견제는 알아서 해야 할 것이다.”

    그 말과 동시에 사탄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손을 들어 다시 손가락을 튕겼다.

    딱 ­

    그러자 연회장의 모습을 이루고 있던 모든 마기가 제어를 잃고 흩어졌다. 순식간에 온갓 장식들과 가구들이 사라지자 휑한 아가레스의 심처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럼 이만 모임을 마치도록 하지. 다들 시간 내서 한자리에 모이느라 수고 많았다.”

    사탄이 모임을 파하자 악마들이 속속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용하던 아가레스의 심처에는 다시 수많은 마기의 유동이 생겨나며 악마들이 하나 둘 사라졌다.

    아가레스의 심처를 떠나가는 악마들은 저마다 제각각의 표정을 지으며 떠나갔다. 누군가는 재밌어 죽겠다는 듯이 웃었고, 누군가는 앞날을 걱정하며 굳은 얼굴을 했으며, 또 누군가는 자신만의 책략을 세우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

    ***

    “진운!”

    “오케이!”

    ‘저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투화악 ­ !

    진운의 검이 땅에 꽂히며 막대한 마력을 주입했다. 땅에 주입된 마력은 빠르게 앞쪽으로 이동한 다음 위로 솟구치며 벽을 형성했다.

    잠시 후 이쪽으로 달려오던 그렘린 몇이 하얀색 화염의 벽에 부딪혔다. 그와 함께 그들의 몸에는 성화가 옮겨 붙어 그들의 살을 갉아 먹었다.

    끼에에에엑 ­ !

    끼에에엑­ !

    놈들은 죽어라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 했다. 앞서 가던 동료 몇이 불에 휩싸여 땅을 구르니 뒤이어 달려오던 그렘린들이 멈칫 거리는 것이 보였다.

    “내가 마무리 한다! 다들 고개 숙여!”

    린펠의 외침을 듣자 마자 나를 비롯한 모든 팀원들이 상체를 아래로 숙였다. 이어서 후위에 선 린펠의 몸에서 강한 마력 유동이 발생했다.

    ‘여섯 번째 춤사위 ­ 산개하는 어둠 가락’

    린펠이 손에 쥐고 있던 비도들을 던지자 흑색의 광선 여러개가 그렘린들을 향해 쇄도했다. 그 가공할 속도에 놈들은 반응조차 하지 못하고 가슴팍이 꿰뚫렸다. 저마다 몸에 커다란 구멍이 난 그렘린들이 픽픽 쓰러졌다.

    “후우... 힘들구만.”

    “어쨌든 오늘도 15마리나 잡았네.”

    팀원들은 어느새 마석으로 화한 악마들에게 다가가 빠르게 마석을 회수했다. 그리고 나는 내 몫 만큼을 주워서 입에 털어넣었다.

    우리는 요즘 지금처럼 숲 초입에서 악마 사냥을 하고 있었다. 다른 초대자들처럼 소환 이전에 미리 전투감각을 날카롭게 유지하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겸사겸사 레벨도 올리고 말이다.

    그렇게 밤에는 푹 쉬며 컨디션을 조절하고 낮에는 최하급 악마들을 상대하며 벌써 내일로 다가온 소환에 대비하고 있었다.

    [그렘린의 마석을 흡수.]

    [그렘린의 마석을 흡수.]

    [그렘린의 마석을 흡수.]

    ...

    [Lv 39 > Lv 40]

    그러면서 레벨도 꽤 많이 올렸다. 부지런히 최하급 악마들을 사냥한 덕분에 어느새 내 레벨은 40을 달성했다.

    그렇게 올라간 레벨과 늘어난 마력을 체감하며 쉬고 있었는데, 내 눈앞에 갑작스럽게 메세지 창 여러개가 떠올랐다.

    [무기의 숨겨진 해금 조건 달성.]

    [해금 조건 ­ 체내에 보유한 마력이 일정 수치를 넘어서기(Lv 40 달성)]

    [기술 세트에 포함된 식의 일부가 해금된다.]

    [‘수호 검술 2식 ­ 추방자를 베어가르는 검’ 해금.]

    [‘수호 검술 6식 ­ 반석 위의 요새’ 해금.]

    [‘수호 검술 10식 ­ 성역화(??化) ­ 성소’ 해금.]

    [초대자의 마력 수준을 검토 중... 검토 완료.]

    [초대자 김진운의 마력이 자격 요건을 충족하여 무기의 본질의 일부가 깨어난다.]

    [무기에 잠든 인격이 깨어남을 확인.]

    [‘웨폰 에고(Weapon Ego) ­ 카마엘(Camael)’이 일부 해방된다.]

    이날 내 지옥에서의 여정 중 가장 중요한 변환점이 내게 찾아왔음을, 한참 나중에야 알 수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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